59화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는 트리플A 퍼시픽 코스트리그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중에서 서부지구에 속한 구단이다.
메이저리그 구단인 오클랜드 슬랙스와는 2019년에 산하 트리플A 구단 계약을 맺고 현재까지 연장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오클랜드 슬랙스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 중 루키 리그와 싱글A, 하이 싱글A와 더블A 구단들은 각 리그에서 선두권의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 것에 반해, 현재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는 리그에서 고작 4위에 링크된 상황이라 상급 구단인 슬랙스와 마찬가지로 팬들에게 욕을 무지막지하게 얻어먹고 있는 중이었다.
웅성웅성.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홈구장인 라스베이거스 볼파크는 좌우 폴 대까지의 거리가 100m이고, 중앙 담장까지의 거리는 126m로 잠실 야구장과 비슷한 규모였다.
수용 인원은 총 10,000명인데, 비록 지금까지 팀의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예전부터 팬이 많은 구단이라 오늘도 관중석은 만원이었다.
* * *
“1번은 빈스 페르난데스, 2번 켈리 달튼, 3번 맷 데이비슨, 4번 오스틴 알렌…….”
수석 코치인 브라이언 맥언은 조금 뒤에 있을 주전 선수의 명단을 발표했다.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는 매번 경기가 있을 때마다 그날 오전 훈련 컨디션이 가장 좋은 선수들로 주전 선수를 발표하였기에, 이를 듣고 있는 선수들은 표정은 그저 담담했다.
하지만 콜업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대호와 아론은 이런 운영 방식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경기 직전에 선발을 발표하는 게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선수들을 정신적으로 너무 극단적이게 몰아가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또한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 부분에서도 좋을 것이 없을 듯했다.
그러다 두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 선수들이 아무런 반발이 없어 그게 의문이었다.
‘이래도 되나?’
대호는 많은 의문을 뒤로하고, 아직 신입인 자신이 나설 때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그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9번 대호 정! 이상이다.”
툭.
9번 타자로 대호의 이름이 호명되자, 조용히 지켜보던 아론이 대호의 어깨를 살짝 치며 축하를 해 주었다.
“대호, 축하해.”
“아론, 나도 오늘 주전으로 출전하니까 나도 축하해 줘!”
코치가 경기 선발 명단을 발표하고 로커 룸을 떠나자, 언제 다가왔는지 달튼이 두 사람에게 다가와 있었다.
“왜 이래 질척거려? 달튼, 좀 떨어지라고.”
“아, 왜 그래? 좀 축하해 주면 어디가 덧나?”
“에휴… 그래, 축하한다. 이제 됐냐?”
“하하, 고마워!”
오늘도 티격태격하는 아론과 켈리 달튼을 보며 대호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저렇게 보여도 상당히 친해진 두 사람이었으니까.
‘음… 오늘은 1루 후보인 달튼이 선발로 나가면서 멀티 포지션을 보던 맷이 3루수가 됐지. 그리고 저번 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준 나도 9번이라…….’
대호의 생각대로 오늘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감독 프란은 평소와 다르게 타선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다만 기존에도 장타력이 부족하다고 평가 받는 팀이었기에 평소와 다른 것은 그저 막 더블A에서 콜업 된 대호가 참가했다는 것뿐이었다.
아직 아무런 활약을 보인 건 아니었지만, 대호는 프란 감독이 자신에게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지 대충 알 수가 있었다.
“헤이, 대호! 오늘 선발에 뽑히게 된 거 축하해.”
세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함께 홈런 대결을 펼쳤던 맷 데이비슨이 다가와 축하를 해 주었다.
그리고 축하는 맷 데이비슨뿐만이 아니라, 함께 대결했던 빈스 페르난데스와 오스틴 알렌도 함께해 주었다.
“콜업 되자마자 바로 홈경기에 선발 출전을 하다니… 역시 최고 유망주인가?”
“그래. 인크레더블한 루키니까 오늘 경기도 인크레더블하게 가자고.”
처음에는 대호를 경계하던 에비에이터스의 선수들은 실력을 보여 주자 금방 태도를 바꾸어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보통은 뛰어난 실력을 보게 된다면, 경계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외야수인 빈스 페르난데스는 겹치는 포지션이니 말이다.
그러나 홈런 대결에서 대호가 압도적인 성적으로 그들을 눌러 버리고, 또 거기서 그치지 않고 100마일에 가까운 공을 가볍게 때려 내자, 그냥 규격 외 선수라고 생각해 버렸다.
조만간 무조건 메이저리그로 승격할 선수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오히려 친하게 지내는 것이 이득이겠다 라는 생각도 했고.
‘참… 무슨 생각들 하는지 뻔히 보이네.’
당연히 대호는 그들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사실 처음 구단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하위 리그와 다른 트리플A의 분위기에 당황했지만, 실력을 보여 주니 여타 리그와 똑같았다.
‘그동안의 경기 기록을 살펴보니까 나 같은 거포가 확실히 필요했겠구나. 훈련 얘기를 들었는지 바로 경기에 투입한 것도 그래서겠지.’
* * *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선발 투수는 1선발인 파커 던이었다.
현재 그는 리그에서 3승2패 방어율 3.14를 기록하고 있는데, 타선의 지원만 받았다면 적어도 3승은 더 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안타까운 선수였다.
펑!
“스트라이크!”
파커 던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좌익수 자리에서 이를 지켜보던 대호는 눈을 반짝였다.
사실 방금 전 투구가 파커의 실투란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포수의 사인보다 공이 높게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자도 그러한 사실을 알았는지, 공을 그냥 보낸 것을 자책하고 있었다.
팡!
“볼!”
1B 1S가 되었는데, 방금 볼이 된 공은 정말로 아까웠다.
초구와 비슷한 코스로 들어갔지만, 두 번째 볼은 패스트볼이 아닌 체인지업이었다.
하지만 너무 일찍 떨어지는 바람에 타자가 이를 눈치채고 스윙을 멈춰 유인구가 실패하고 말았다.
‘타자가 적극적인데?’
대호는 조금 전 타자의 행동을 보면서 선두 타자이면서 성격이 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선발인 파커를 쉽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찌 됐든 타자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자, 대호는 파커의 투구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자리를 벗어나 움직였다.
따악!
솔트레이크 비스의 1번 타자가 파커가 던진 패스트볼을 당겨 쳤다.
타다다다!
공이 배트에 맞자, 타자는 물론이고 수비를 보고 있던 에비에이터스의 선수들도 공을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먼저 움직인 대호로 인해 한껏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급격히 식어 버렸다.
텁!
잘 맞은 타구가 좌측 선상에서 대호에게 잡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힘들게 잡지도 않았다.
타구의 방향을 미리 보고 먼저 도착해 안정적으로 받았고, 이를 지켜본 솔트레이크 비스의 주루 코치는 턱이 빠질 정도로 놀랐다.
휘익!
어려운 타구를 너무도 가볍게 잡아낸 대호는 글러브에서 공을 빼내 가까운 곳에 있는 3루수 맷 데이비슨에게 던졌다.
‘이것 봐라?’
맷은 대호가 자신에게 공을 던져 주는 것을 보고 그 의도를 금방 깨달았다.
기껏해야 1회 초, 타자 한 명을 잡은 것에 불과하지만, 투수의 기를 살리고 상대의 분위기를 죽일 수 있는 퍼포먼스럴 보여 주는 것이었다.
맷 역시 2루수 닉 알렌에게 곧바로 공을 던졌고, 이어서 달튼, 다시 투수에게까지 돌아왔다.
“우와아아!”
라스베이거스 볼파크에 모인 팬들은 순식간에 공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며 신나게 함성을 질렀다.
또한 더그아웃에서 지켜보고 있던 코칭스태프들 역시 1회부터 너무 상대를 자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했지만,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선발 투수의 기를 살려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의도는 적중했다.
파커 던은 방금 전 타자에게 안타성 타구를 맞았을 때까지만 해도 아차 싶었지만, 대호가 쉽게 잡아내고, 또 퍼포먼스를 보여 주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수비도 괜찮은데?’
투수조 훈련 때문에 대호의 수비 훈련은 보지 못했던 파커였다.
그는 오전 훈련 막바지에 타자들이 타격 훈련하는 모습을 잠깐 보았는데, 락하운즈에서 콜업 된 대호의 타격이 심상치 않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트리플A는 처음인 만큼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방금의 한 수로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웃!”
너무 신중하게 가다가 한 방 얻어맞았지만, 대호의 호수비로 안정을 되찾은 파커는 그 뒤로 2, 3번 타자를 손쉽게 잡아냈다.
하지만 공수가 교대되고 에비에이터즈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되었지만, 홈팀인 에비에이터즈 타자들도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잔루 1루로 공격을 마쳤다.
2회, 그리고 3회 초.
솔트레이크와 라스베이거스는 서로 별다른 소득 없이 0:0의 대치를 계속해서 이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3회 말, 경기의 향방은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공격에서 시작되었다.
따아악!
타석에 들어선 8번 타자 닉 알렌은 솔트레이크 비스의 선발 아드리안 펠릭스가 던진 슬라이더를 밀어 쳐 1, 2루를 가르는 내야 안타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첫 타석에 들어선 대호, 그가 타석에 들어서자 라스베이거스 볼파크에 집결한 홈팬들이 크게 환호했다.
대호가 비록 이제 갓 콜업 된 선수이기는 했지만, 그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으니까.
정대호.
더블A에서 괴물 같은 활약을 펼친 것 때문에 불법 약물 사용 의심을 받으며 뉴스에 이름이 올라온 사람.
그러고 나서 MVP 인터뷰에서 폭탄 발언을 한 대범한 성격.
사생활 노출을 감수하고 24시간 관찰 카메라를 찍는 추진력까지…….
이미 대호의 이름은 일개 마이너리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었다.
자칫하면 무리수로 보일 수 있었던 관찰 카메라는 전화위복이 되어 전미 야구팬들에게 정대호라는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고, 또한 계속 찍으며 보여 주는 야구 실력 또한 뇌리에 남기 충분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이 트리플A 첫 출전, 첫 타석임에도 이곳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판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HO! HO! HO!”
에비에이터스의 팬들이 경기장에서 연신 대호를 불러 댔다.
팬들의 연호에 대호는 잠시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하고 타석에서 물러났다.
아무런 이유 없이 타석에서 타임을 부르며 물러나는 행위는 경기 지연 행위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심판도 지금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었기에 타임을 받아 주었다.
그렇게 타석에서 물러난 대호는 몸을 관중석으로 돌리며 오른손을 높이 들어 보였다.
팬들의 환호에 호응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타석에 들어서서 자세를 잡았다.
팬들의 환호가 있었기 때문인지 여느 때보다 집중이 더 잘되는 듯했다.
‘팬들의 환대를 받았으면 호응을 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
그렇게 팬들의 환호에 보답을 하기 위해선 큰 거 한 방이 필요했다.
집중.
자유자재까진 아니지만, 원할 때 쓸 수 있게 된 기술을 사용하자, 투수의 동작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하나하나 눈에 띄었다.
그중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공을 잡고 있는 손가락의 그립.
‘패스트볼이다.’
투수의 손 모양을 보며 포심 패스트볼이라는 것을 알아낸 대호는 바로 타격 준비를 하였다.
휘잉!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날아온다.
그런데 포심 패스트볼인 것은 맞았지만, 날아오는 코스가 예상한 것보다 바깥쪽으로 꽤 빠지는 공이었다.
그냥 놔두면 볼이 될 상황.
하지만 대호는 이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주심의 성향에 따라 바깥쪽 코스에 후한 심판들이 있고, 특히나 마이너리그에서 활동을 하는 주심 중 그런 성향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따아아악!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