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58화 (58/209)

58화

따아악!

배팅 게이지에 선 대호는 피칭 머신이 던져 주는 공을 받아쳐 전방 그물망에 그려진 거리 표시판을 넘기고 있었다.

웅성웅성.

“와! 홀리 싯! 어떻게 저런…….”

대호의 프리 배팅을 지켜보고 있던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선수들이 하나 둘 한마디씩 하였다.

그들은 조금 전 타격 훈련을 하기 전, 내기를 걸었다.

트리플A로 막 콜업 된 대호를 향해 기선 제압을 하기 위해 내기를 제안했는데, 지금 대호의 배팅이 자신들이 생각하던 것 이상이었기에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이었다.

“하… 이건 뭐, 정말 인크레더블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었군!”

“내가 뭐라고 했어? 대호는 진짜라고 했잖아!”

켈리 달튼은 고작 하루 만에 대호와 아론과 친해진 이후, 훈련을 함께 하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이 대호나 아론을 경계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솔직히 켈리 달튼은 대호를 부르는 인크레더블이란 별명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곳 트리플A로 올라올 정도면 하위 리그에서 그 정도 성적과 이름값은 거두고 올라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바뀌기까진 불과 일주일 정도면 충분했다.

주전 선수들이 원정 경기로 외부에 나가 있는 관계로 에비에이터스에 남은 후보 선수들은 각자 자율 훈련을 하였기에 그동안 제대로 된 실력을 보지 못했지만, 오늘부터 본격적인 팀 훈련이 시작되며 대호의 진가가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홈런을 몇 개나 쳤지?”

달튼의 물음에 아론이 바로 대답했다.

“스물세 개.”

“뭐? 벌써 그렇게나 쳤어?”

아론의 대답을 들은 달튼은 깜짝 놀랐다.

대호가 배팅 게이지에 들어선지 불과 3분도 지나지 않았다.

타격 준비를 하고 피칭 머신이 작동을 시작한 뒤 그동안 공이 날아온 숫자를 생각하면, 스물세 개라는 홈런 개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맷 데이비슨이 몇 개를 쳤지?”

달튼은 대호의 홈런 개수를 듣고 대호와 홈런 대결을 한 맷 데이비슨의 홈런 개수를 물었다.

맷 데이비슨 말고도 대호와 홈런 대결을 벌이는 이는 더 있었는데, 공격형 포수로 오클랜드에서 주시하고 있는 유망주인 오스틴 알과 외야수인 빈스 페르난데스가 있었지만 이들의 홈런 개수는 겨우 다섯 개와 여섯 개였다.

이번 내기는 아웃 카운트 네 개가 올라가기 전까지 몇 개의 홈런을 쳤는가를 따지는 것이었기에, 각각 다섯 개와 여섯 개도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다만 1루수를 맡고 있는 맷 데이비슨이 열한 개를 기록했으며, 대호는 지금까지 스물세 개를 쳤으니 두 사람을 언급할 필요성 자체가 없었을 뿐.

“그 다음으로 잘한 맷이 열한 개의 홈런을 쳤으니까 뭐… 비교 불가네!”

목소리를 높이면서 아론은 자신들이 있는 반대쪽에 모여 웅성거리는 맷 데이비슨의 무리를 바라보았다.

아론이 이렇게 맷 데이비슨이 들을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한 것은, 그가 대호를 처음 보자마자 시비를 걸며 무시를 했기 때문이다.

194㎝의 키에 98㎏의 체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호는 겉으로 보기에 그다지 무게감이 있거나 커 보이지 않았다.

아니, 키 큰 유격수를 보는 것 같은 날렵한 체형이었다.

더욱이 얼굴은 전형적인 아시안, 즉 어려 보이는 동안이었다.

대호의 나이가 이제 스무 살이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강해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현재 홈런 레이스가 벌어진 이유였다.

오클랜드 슬랙스 역대 최고 계약금의 외국인 유망주라는 타이틀과, 하위 리그를 초토화 시키며 팬들에게 인크레더블이란 별칭까지 얻은 대호를 질투해 벌어진 이번 홈런 레이스는 결과적으로 대호의 압승이었다.

“대호! 네 압승이야. 그만 해도 돼!”

아론은 큰 목소리로 대호를 부르며 그만 하라고 떠들었다.

그런 아론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대호가 소리쳤다.

“아론, 이거 감질 나는데 속도 좀 더 올려도 돼?”

느닷없는 대호의 물음에 아론은 그만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달튼을 돌아보았다.

지금 벌이고 있는 홈런 레이스는 코칭스태프의 허락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닌, 타격 훈련 중 암묵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호가 이를 잊고 피칭 머신의 구속을 올려도 되냐는 질문을 하였다.

“뭐, 네가 마지막이니 상관없지 않을까?”

질문을 받은 달튼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냥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솔직히 선수가 더 힘들게 훈련하겠다는데 막는 코칭스태프가 더 이상한 것이기도 하고.

다만 확실히 하기 위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선수들의 스윙 자세를 점검해 주던 제이슨 하트 보조 타격 코치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코치님, 대호가 피칭 머신의 구속을 좀 더 올리고 싶다는데, 괜찮겠습니까?”

“그래? 지금 구속 얼마로 훈련하고 있지?”

제이슨 코치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런 제이슨 코치의 질문에 아론은 처음 내기를 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을 하였다.

“97마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응?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피칭 머신이 던지는 구속을 들은 제이슨 코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대호는 그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좀 더 구속을 올렸으면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얼마나 올리려고?”

“그건 잘 모르겠는데, 일단 올려도 되는지 물어보는 겁니다.”

구속을 얼마나 더 올리려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선수가 먼저 피칭 머신의 구속을 올리고 싶다는 말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기에 제이슨 보조 타격 코치는 흥미를 느꼈다.

“좋아. 어디 얼마나 올려서 훈련하려는 건지 한 번 보자고.”

제이슨 코치는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스윙 폼을 봐주던 이에게 혼자 연습을 더 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타격 훈련을 하는 게이지로 걸어갔다.

그러고 나서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대호에게 물었다.

“대호! 구속을 얼마나 올리려는 것이지?”

“160㎞로 올리려고 합니다.”

“160㎞? 음… 99마일 정도인가.”

미국에서는 시속보다는 마일 단위를 주로 사용하기에, 제이슨 코치는 순간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바로 계산하지 못했다.

“99마일이면 꽤나 힘들 수도 있을 텐데 괜찮겠나?”

“네, 괜찮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150이상의 속도에 익숙해져 있던 대호에게는 어림도 없는 얘기였지만 말이다.

“선수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그 자신감만큼 실력도 괜찮길 바라지.”

제이슨 코치는 그 말을 남기고 바로 피칭 머신으로 걸어가서 기기를 조작했다.

위이잉!

기기를 조작하자 조금 전보다 RPM이 올라가 모터의 소리가 더더욱 위협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팡!

요란한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피칭 머신에서 공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왔다.

불과 4㎞/h라고 하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공을 마주하고 있는 대호의 눈에는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다.

‘된다.’

대호는 피칭 머신을 보며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자 지난 더블A 마지막 경기에 있었던 현상이 다시 발현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되었을 때나 만날 수 있던 현상을 어제 오후부터 임의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비록 효과는 자연적으로 생긴 것보다 못했지만, 160의 공을 눈에 담기에는 충분했다.

따아아악!

방금 전에 내기를 하며 97마일의 공을 쳤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맑은 타격음이 울렸다.

발사각은 이상적인 홈런의 각도보다 조금 낮았지만, 소리만 듣고도 이건 홈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트 중심부에 맞은 깔끔한 타격이었다.

‘하하! 정말 미친놈, 미친놈이라는 말밖에는 안 나오는군.’

머신의 속도를 올린 뒤 대호가 친 타구를 본 달튼은 다시 한번 왜 인크레더블이라고 불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 * *

한참 사무실에서 밀린 업무를 보고 있던 프란 감독은 밖에서 들리는 소음에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지?’

훈련 시간이라고 엄숙하지는 않지만, 저렇게 함성을 지르는 건 드문 일이라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에 타격 훈련을 하는 곳 중심으로 선수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고, 왜 한데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였다.

“에이미, 무슨 일인지 좀 알아볼래?”

“네, 알겠어요.”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서 세무 업무를 보고 있는 에이미 오르단은 사실 감독인 프란의 딸이었다.

그렇다고 부정 취업을 한 건 아니었고, 그저 같은 직장을 다니게 된 것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에이미는 프란 감독에게 밖이 소란스러운 원인을 들려주었다.

“맷과 몇몇 선수들이 이번에 더블A에서 올라온 대호 선수와 내기를 했다고 하네요.”

자신이 듣고 온 내용을 고스란히 들려준 에이미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일을 하였다.

그리고 에이미로부터 밖이 소란스러운 원인에 대해 들은 프란 감독은 눈을 반짝였다.

대호에 관해서는 진즉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운영하는 에비에이터스의 일도 복잡하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평균 구속은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해서 상향되었고, 현재는 96마일까지 올랐다.

시속으로 따지면 거의 154㎞/h가 넘는 속도.

그렇기에 이곳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서 타격훈련을 할 때는 피칭 머신의 구속을 그보다 1마일 빠른 97마일로 놓고 훈련을 한다.

그런데 방금 전 이제 갓 하위 리그에서 올라온 뉴비가 100마일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정확하게 타격했다니 놀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우연하게 한 방 얻어 걸린 것도 아니고, 정확하게 보고 타격했다니… 정말 과장된 실력이 아니었군.’

그렇지 않아도 현재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는 장타를 쳐 줄 거포가 필요했지만, 더블A와 트리플A는 또 다른 영역이었기에 고민하고 있었다.

한데 99마일의 공을 쳐 정확하게 배트의 중심에 맞출 수 있는 선수가 등장했다는 것은 프란으로 하여금 대호를 자신이 찾던 마스터 피스라 여기기에 충분했다.

‘찾았다.’

프란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오늘 오후에 바로 시험해 봐야 할 것 같군.’

한 번 그런 생각이 들자, 프란 감독은 머릿속에서 빠르게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오후에 있는 홈경기 상대인 솔트레이크 비스를 떠올렸다.

* * *

따아아악!

대호가 친 타구는 이상적인 홈런각을 그리며 150야드라고 표시되어 있는 지점을 같아했다.

150야드를 미터 단위로 치환하면 137m.

이는 프로야구 구장 규격인 외야 98m, 중앙 102m를 훌쩍 초과한 거리였다.

즉, 실제 경기였다면 경기장을 한참 넘는 대형 홈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덜컹.

타격 훈련을 마치고 게이지를 빠져나온 대호, 그런 대호를 맞이한 것은 더블A에서 함께 콜업 된 아론도, 콜업 된 첫날 우연히 만나 친해진 달튼도 아닌 제이슨 보조 타격 코치였다.

“듣던 대로 엄청나군.”

“감사합니다.”

자신을 보고 칭찬하는 코치에게 대호는 그저 간단하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사실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에 있는 코치들은 좀처럼 이렇게 개인적으로 칭찬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이슨 코치가 이렇게 대호를 찾아와 칭찬을 하는 것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타격 폼을 대호가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하체와, 팔꿈치가 옆구리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몸 전체에 힘을 빼고 허리의 회전과 당기는 힘만을 이용해 날아오는 공을 배트 중심에 정확히 맞추는 대호의 타격 폼은 야구 교과서에 나와도 좋을 정도로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끝까지 공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니, 타격 코치로서 칭찬을 하지 않을 수가 없기도 했다.

“거의 100마일인데 이렇게나 가볍게 치다니… 당장 메이저리그에 가도 충분하겠어.”

“감사합니다.”

계속되는 코치의 칭찬에 대호는 거듭해서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감독님이 보셨다면 조만간 시합에서도 네 타격을 볼 수 있겠군.”

제이슨 코치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코치가 사라지자, 대호의 타격을 구경하던 선수들도 마무리 훈련을 하러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