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55화 (55/209)

55화

대호를 상대로 1회 초, 바깥쪽 꽉 찬 코스로 던졌다가 솔로 홈런을 맞았던 시몬 카스트로는 이번에는 반대로 인코스 낮은 코스로 던졌다.

하지만 스트라이크 존을 9분할했을 때, 어느 쪽이든 고른 타격률을 가지고 있는 대호에게 그런 수작은 통하지 않았다.

따아아악!

인코스 빠른 패스트볼을 자신 있게 던졌지만, 그의 자부심은 부풀어 오른 자신감만큼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와아!”

1회 초 솔로 홈런에 이어 3회 투런 홈런이 터졌다.

스코어는 4:0.

3회 초에 무려 4점차로 벌어져 버렸다.

이에 샌안토니오 미션스의 감독은 빠른 투수 교체를 결정하였다.

아무리 팀의 1선발이라 하지만, 3회 초에 4점이나 내준 상황에서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팀을 위해서도, 그리고 투수 본인을 위해서도 방치해서는 안 될 상황이었다.

“고생했다.”

“…….”

감독은 교체되어 들어온 시몬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남겼지만, 시몬의 마음은 이미 갈기갈기 찢긴 상태였다.

대호에게 다시 한번 당했다는 열등감, 팀과 감독도 자신을 믿지 않았다는 자괴감이 들면서 말이다.

게다가 3회 초, 노 아웃 상황에서 올린 미션스의 두 번째 투수는 더욱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판단 미스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팀의 제1선발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라이벌 팀에게 4점을 주고 조기 강판 당했다.

시몬 카스트로 뿐만이 아니라 미션스의 선수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금방 드러났다.

따아악!

락하운즈의 4번 타자 베키나가 대호에 이어 솔로 홈런을 쳤다.

마치 락하운즈에는 대호뿐만 아니라 자신도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듯 솔로 홈런을 친 것이다.

그러나 미션스의 수모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락하운즈에는 대호와 베키나뿐만 아니라 또 다른 장타자가 있었으니까.

따악!

또다시 홈런.

3번 타자 대호에 이어 4번 타자 베키나, 그리고 5번 타자까지 락하운즈의 중심 타선이 오늘 제대로 그 이름값을 하였다.

평소에는 3번 자리를 맡고 있던 골드버그가 오늘은 베키나의 뒤 타선인 5번에 들어갔는데, 3번에 있을 때도 잘 쳤지만 오늘도 2타석 2안타 1홈런을 쳤다.

이로 인해 락하운즈는 3회에 노 아웃 상황인데도 벌써 미션스와 스코어를 6점차로 벌릴 수 있었다.

* * *

따아아악!

7회 초, 2아웃 만루 상황에서 대호는 그랜드슬램을 날렸다.

이로써 대호는 마이너리그에서 세 번째로 사이클링 홈런을 친 선수가 되었다.

사이클링 홈런은 미국에서 홈런 사이클이라 불리는데, 솔로 홈런(1점) 투런 홈런(2점) 쓰리런 홈런(3점) 만루, 혹은 그랜드슬램 홈런(4점) 이렇게 한 선수가 점수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1830년,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에 보스턴에서 현대 야구와 비슷한 타운볼이란 경기가 시작되고 1839년에 현대 야구와 같은 형태로 발전을 하며 200년 가까이 야구 경기가 있었지만, 사이클링 홈런은 대호가 친 것까지 모두 합쳐도 고작 세 번밖에 나오지 않은 기록이었다.

역사상 첫 번째 기록은 1998년에 더블A 선수였던 타이론 홈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로부터 24년 후인 2022년에 더블A선수였던 첸들러 레드몬드다.

‘운이 좋군.’

대호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단순히 홈런만 네 번 친다고 이룰 수 있는 기록이 아니라, 자신의 앞에서 주자들을 차곡차곡 쌓아야 했으니까.

더군다나 오늘 대호를 포함해 프로에서 사이클링 홈런을 친 두 선수는 모두 더블A에 있을 때 만들어 낸 기록이었다.

락하운즈와 미션스의 스코어는 대호의 그랜드슬램으로 인해 14:3으로 확 벌어졌다.

아직 7회이긴 하지만 미션스는 맹타를 휘두르는 락하운즈 타선으로 인해 투수력이 고갈된 상태.

올리는 투수마다 족족 안타와 홈런을 허용하며 대량 실점을 하는 바람에, 1선발인 시몬 카스트로를 비롯해 원 포인트 릴리프와 중간 계투, 심지어는 패전처리 투수까지 총 여섯 명의 선수가 올라왔다.

여기서 더 투수를 소비하게 되면 남은 2연전을 치르기도 힘들어진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미션스의 감독은 현재 머릿속이 무척이나 복잡했다.

뿐만 아니라 점수 차가 11점으로 벌어지면서 미션스를 응원하던 팬들 일부는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대호의 그랜드슬램 이전 7점차까지만 해도 아직 7회 말과 8회, 9회 말 공격이 남아 있으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팬들도 대호의 만루 홈런을 본 뒤로는 가망이 없다 판단한 것이다.

“오늘 경기는 정말 실망이군.”

“그러게. 락하운즈 선발도 손톱 부상 때문에 조기 강판됐는데, 왜 우리 선수들은 점수를 못 내는 거야?”

“치잇…….”

사실 투수가 바뀐 이후로 3점을 냈으니 아예 희망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교체된 투수가 안정되고, 또 탄탄한 수비진들의 활약 덕분에 더 이상의 실점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에 반해 미션스의 투수들은 락하운즈의 타선을 멈추지 못했으며, 수비들은 그들의 불방망이에 구멍이 뚫려 버렸다.

회가 진행될수록 탄탄해지는 락하운즈, 무너지는 미션스.

어느 쪽이 유리할지는 당연한 일이었다.

장내 아나운서와 해설은 빠져나가는 팬들을 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 이럴수록 팬들이 선수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 줘야만 합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팬들의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오늘 미션스에게는 뭔가 믿음이 가지 않아요. 감독에서부터 선수들, 어느 누구 하나 믿을 만한 점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들이 보기에도 미션스의 경기 운영은 정말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비록 초반에 4점을 주기는 했지만, 그건 상대방의 역량이 너무 뛰어나서였다.

그런데 3회 초에 선발을 강판시켜 대기하고 있던 투수들의 멘탈까지 박살 내 버렸으니 그 결과가 어떻겠는가.

바뀐 투수는 연달아 솔로 홈런을 맞고, 또다시 흔들렸는지 안타로 인해 1점을 더 내주고 나서야 물러났다.

“사실 시몬을 빨리 내린 것 자체가 감독의 작전 실패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미션스의 1선발이 그렇게 맥없이 물러났는데, 바뀐 투수들이 락하운즈의 불방망이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죠. 그것도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입니다.”

그나마 몇몇 선수들은 어떻게든 점수 차를 극복해 보기 위해 덤벼들었지만, 기껏해야 한두 명이 마음을 다잡는다고 역전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진 않았다.

모든 선수가 단합을 해도 극복하기 힘든 일인데, 그게 가능하겠는가?

더욱이 상대인 락하운즈 선수들은 모두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똘똘 뭉쳐 경기를 하고 있는데 말이다.

* * *

락하운즈와 미션스의 첫 경기는 아무런 이변 없이 14:3으로 마무리되었다.

더 이상 무언가를 해 보려는 선수가 나오지 않았고, 그로 인해 마지막 2회는 시시하게 흘러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의 여파는 3연전 동안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전날, 투수들을 너무 많이 소비한 미션스는 마운드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6회까지 2:0으로 잘 막아 냈지만, 7회 초 선발투수가 물러나고 불펜이 들어서면서 방화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경기 최종 스코어는 11:2.

락하운즈가 원정 2승을 먼저 가져가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경기도 전날과 똑같이 흘러갔다.

투수력의 차이로 인해 허무하게 무너졌고, 결국 스윕 패를 당하고 만 것이다.

반면 락하운즈의 입장에선 극악의 원정 열두 경기 중 지구 라이벌인 미션스를 상대로 3연승을 하는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게 되었으며, 미션스와의 경기 차도 9경기로 늘릴 수 있었다.

그리고 미션스는 지구 2위에서 3위로 밀려나게 되었고.

그렇게 미들랜드 락하운즈는 기분 좋은 상태로 다음 상대가 있는 코퍼스크리스티 훅스로 떠났다.

* * *

오클랜드 우승까지: 와 씨! 슬랙스 놈들 오늘 경기 봤냐? 없던 암도 재발할 것 같다. 특히 외야는 뭐…….

⤷ 아직도 그놈들 경기 보냐? 난 더블A에 있는 루키 경기 보는데, ㅋㅋㅋ

⤷ 더블A? 루키?

⤷ 한 달 전 불법 약물 루머 있던 그놈?

⤷ 야! 그거 다른 팀 놈들이 분탕질 했다는 게 밝혀진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런 말을 하고 있냐?

⤷ 그래? 그 말이 맞다고 해도 마이너가 하면 얼마나 한다고?

⤷ 윗분 아직도 소식이 느리네? 어디 사막이나 밀림에라도 다녀옴?

⤷ 무슨?

⤷ 걔가 프로 역사상 세 번째로 사이클링 홈런 침!

⤷ 사이클링 홈런?

⤷ ㅇㅇ 샌안토니오 미션스 상대로 원정 경기에서 침.

⤷ 헐! 사이클링 홈런이라니… 대박!

⤷ 우리에게도 일본의 천재 타자 히데오 소이치로에 못지않은 천재가 있음!

⤷ 천재는 무슨, 오버하지 마라. 히데오는 지금 메이저고, 정대호 그놈은 아직 마이너리거다. 메이저>>>>넘사벽>>>>>마이너

한 사람이 올린 오클랜드 슬랙스 홈페이지의 글에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내용은 대부분 현재 마이너리그에 있는 대호에 대한 것들이었다.

지금 이런 글을 쓰고, 또 댓글을 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인이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선수들이 예전보다 못했기 때문에, 마이너에 있는 유망주인 대호에게도 시선이 끌렸던 것이다.

또한 거기에는 현재 메이저리그에 활약하고 있는 일본의 천재 타자에 대한 부러움 또한 섞여 더욱 불타올랐다.

* * *

덜컹.

“보스, 이것 보셨습니까?”

오클랜드 슬랙스의 단장, 조엘의 사무실 문이 열리고 그의 비서인 크리스가 들어오며 소리쳤다.

“뭐?”

한참 선수 명단을 살피고 있던 조엘은 느닷없이 물어보는 크리스의 질문에 짧게 반문했다.

“더블A에서 정대호 선수가 사고를 쳤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사고라니?”

사고란 말에 단장인 조엘은 깜짝 놀랐다.

그것도 오클랜드의 희망이라 할 수 있는 대호에 관한 소식이었기에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는 긴장한 조엘의 모습에 아차하며 곧바로 덧붙였다.

“아! 그렇게 놀라지 마요. 나쁜 소식은 아니니.”

“그럼 어떤 소식인데?”

“흠흠, 다름이 아니라 원정에서 기록을 하나 세웠다고 합니다. 비록 메이저에서 기록한 건 아니라고 하지만, 역대 세 번째라고 합니다.”

“흐음…….”

역대 세 번째 기록을 세웠다는 소리에 조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이저리그 기록도 아니고 고작 마이너리그에서 세운 기록 하나 때문에 크리스가 이렇게나 흥분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듣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홈런 사이클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응? 방금 뭐라고 했지?”

조엘은 방금 전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니면 환청인지 알 수가 없어 되물었다.

“미스터 정이 미션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홈런 사이클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하하핫!”

요즘 한창 대호의 타격에 물이 올랐다는 것은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보고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블A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해, 조만간 트리플A로 콜업 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전에 이렇게 사고를 칠지는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참으로 기분 좋은 사고가 아닐 수 없었다.

“허허! 허허허! 이거 참…….”

조엘은 홈런 사이클이란 크리스의 말에 저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구단의 경기력이 좋지 못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팬들과 지역 언론에서도 프런트와 감독을 난타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스토브리그 동안 사라졌던 신경성 위궤양이 재발한 것처럼 속이 쓰리고 더부룩했다.

또 요즘 들어 얼마 없는 머리카락마저 빠지고 있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오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 같아서는 정대호 선수를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콜업 시키고 싶지만… 안 되겠죠?”

기분이 좋아진 조엘을 보며 그의 비서인 크리스가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아닌 게 아니라 오클랜드 슬랙스 프런트는 현재 죽을 쓰고 있는 팀을 개편하기 위해, 부족한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들을 모두 처리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해서 선수들을 함부로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

자칫 잘못했다간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협 간의 관계를 망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신중한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하. 그나마 마이너리그에 있는 유망주들이 제대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야 하나?’

조엘은 잠시 현실을 잊고 마이너리그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 유망주들을 떠올렸다.

오클랜드가 가지고 있는 해외 유망주 중 최고인 대호를 비롯해, 본토와 남미의 유망주들까지 예상 밖으로 잘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나 보고에 의하면 더블A에 있는 대호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던 선수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음을 보고받았다.

같은 더블A에 있는 아론 헤들러를 비롯해 하이 싱글A에서 함께 콜업 된 브렛 등은 더욱 성장 폭이 컸다.

특히나 하이 싱글A에서 올라온 브렛의 경우 조엘도 알지 못하는 마이너리그 선수였다.

그런데 하이 싱글A에서 몇 년을 썩던 브렛이 대호와 함께 더블A로 콜업 되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2루수와 유격수의 멀티 포지션을 수행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

오클랜드와 같은 선수 운용 풀이 작은 구단에게 멀티 포지셔닝을 가진 선수가 얼마나 절실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선수를 자신이 그 동안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에 놀랐지만, 알고 보니 브렛이 처음부터 이런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정대호, 정말 복덩이야. 다른 선수들한테 미치는 영향도 전부 긍정적인 것뿐이니까…….’

브렛이 다름 아닌 대호의 조언을 얻은 뒤로 2루수와 유격수를 커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더 이상 더블A에 놔둘 필요가 없겠군!”

“맞습니다. 논란도 이미 해결이 되었고, 더 이상 더블A에선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도 단장인 조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이렇게 대호의 트리플A 콜업이 결정되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