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52화 (52/209)

52화

웅성웅성.

아침을 먹은 대호와 일행들은 샌안토니오 미션스와의 원정 경기를 떠나기 위해 숙소에서 나왔다.

“하! 원정이네.”

꿀 같은 홈경기가 끝나고, 미들랜드 락하운즈는 오늘부터 샌안토니오 미션스를 시작으로 코퍼스크리스티 훅스,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스, 마지막으로 아마릴로 소드푸들스로 이어기는 악몽의 원정 열두 경기를 가야만 했다.

한 마디로 텍사스 주를 한 바퀴 도는 코스였다.

“젠장! 미션스하고 원정 경기는 어떻게 하지?”

선수 중 한 명이 중얼거렸는데, 현재 락하운즈와 미션스가 센트럴 리그에서 각각 1위와 2위로 치열한 우승 경쟁을 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 달 전에 있었던 홈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날 뻔할 만큼 신경전이 벌어졌다 보니 선수들도 결코 편한 시합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동안 홈구장에서 시합하느라 꿀을 빨았는데, 지옥의 원정 열두 경기를 치르기 위해 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선수들에게는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좋았잖아?”

대호는 복도를 걸으며 물었다.

“그렇긴 하지만… 누가 일정을 짰는지 참 개같이 잡았어!”

“맞아!”

홈 10연전을 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 말 없던 이들이 원정 경기를 떠나려고 하는 순간,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한 명이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입을 열며 복도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호호, 원정을 가는 것에 불만들이 참 많나 보네요?”

대호의 옆에서 걷던 한나 포커스가 물었다.

“하하, 당연한 것 아닙니까? 텍사스 주를 한 바퀴 도는 일정인데.”

대답을 한 것은 대호가 아닌 그 옆에 있던 브렛이었다.

텍사스 토박이인 브렛이었기에 이번 원정이 얼마나 고될지는 잘 알고 있었다.

“여기 미들랜드에서 시작해서 5시간 50분을 달리면 샌안토니오죠. 그리고 경기를 치르고 다시 4시간 40분을 달려서 코퍼스크리스티 훅스. 다시 6시간 30분을 이동해서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스, 마지막으로 5시간 30분을 돌아가 아마릴로 소드푸들스와 각각 세 경기씩 총 열두 경기를 치러야 하니까요.”

“아…….”

한나 역시 일정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입으로 들으니 정말 고된 여정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대호가 브렛의 말을 이어 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2위인 미션스와 승수 차이가 여섯 경기라는 거죠.”

“아하? 그 말씀은 첫 원정 경기인 미션스와의 시합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도 되겠네요?”

씨익.

대호는 핵심을 짚은 한나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네. 미션스와의 경기에서 위닝 시리즈만 가져가더라도 나머지 경기에 대한 부담이 확 줄어드는 셈이죠. 지금 저희의 경기력이라면 충분히 자력으로 우승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방심해선 안 되겠지만.”

한나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힘든 경기가 되겠지만, 구단이나 선수들 분위기를 보면 원정 경기도 무난하게 치를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이죠. 미래의 레전드가 여기 있는데!”

브렛은 한나의 말에 동의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옥의 원정 경기라는 스케줄에 불평하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든 변화였다.

그 자신감의 바탕에는 정대호의 실력이 있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현재 더블A 리그를 통틀어 봐도 대호와 견줄 만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대호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경기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상승해 있는 상태지.’

특히 미션스와의 경기는 벼르고 있는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4번 타자 베키나와 6번 타자 칼라부이그가 이를 갈고 있었다.

두 사람은 미션스의 에이스 시몬 카스트로의 위협구에 당할 뻔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헤드 샷이야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기억이 있기에 이 둘의 눈빛은 출발 전부터 유난히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 * *

웅성웅성.

샌안토니오 미션스와 미들랜드 락하운즈의 경기가 시작하기 전, 미션스의 홈구장인 넬슨W울프 뮤니시펄 스타디움은 만원 관중으로 꽉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리그 1~2위를 다투는 두 팀의 순위가 사실상 결정되는 3연전이었으니까.

“샌안토니오 미션스와 미들랜드 락하운즈, 락하운즈와 미션스의 경기가 곧 시작됩니다.”

“센트럴 리그 남부 1~2위 구단의 경기인 만큼 오늘도 관람석은 꽉 찼군요.”

“하하하, 지금은 락하운즈와 미션스의 승수 차가 여섯 경기나 나지만, 한 달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벌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네, 그 말씀대로입니다. 이 모든 게 한 선수 때문이지요?”

장내 아나운서와 해설은 경기가 시작하기 전, 흥을 높이기 위해 이번 시리즈와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씩 풀고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미션스와 락하운즈의 승수는 이렇게까지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미션스가 한두 경기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4월 중후반에 콜 업 된 대호로 인해 미션스와 락하운즈의 순위가 바뀌었다.

대호는 36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145타석 102타수 62안타 22홈런, 도루 26개 볼넷 43개를 기록하고 있었다.

타율이 무려 0.608이고 OPS는 무려 2.17이나 되었다.

이런 괴물 같은 기록이니 오클랜드의 단장인 조엘이 뉴욕 킹덤즈의 단장 하비에르가 현역 메이저리거와 트레이드를 하자고 해도 거부한 것이다.

“제가 정대호 선수의 현재 스탯을 정리해 왔습니다.”

“와우… 클래식 스탯이긴 하지만 굉장하네요. 수치 자체가 다른 선수들과 수준이 달라요.”

“네. 그리고 OPS를 보면 득점 생산력 또한 아주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해설은 정대호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참, 그러고 보니 지난번 미션스와 락하운즈의 경기에서 조금 신경전이 있었죠?”

“그렇습니다. 여기서도 정대호 선수가 연관되어 있었죠.”

“하하, 그 경기에서 홈런도 두 개나 쳤으니 미션스도 벼르고 있겠네요.”

“락하운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여기서 누가 잘했고 못했고를 따지기는 힘들겠지만… 아마 오늘도 뜨거운 시합이 될 거라 예상합니다.”

장내 아나운서와 해설, 두 사람의 이야기 덕에 관중석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와아아아아!”

미션스의 홈구장인 넬슨W울프 뮤니시펄 스타디움 9,200좌석은 만원이었고, 그중에는 원정 팀인 락하운즈의 팬도 500명가량 포함되어 있어 구장 내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락하운즈의 원정 팬들은 대부분 대호의 팬들로 이전에는 락하운즈를 응원하던 이들이었지만, 현재는 락하운즈 팬이면서 또 대호의 절대적 지지자들이었다.

혜성처럼 등장해서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 줬고, 또 시즌 중에 관찰 카메라를 24시간 찍었으니 당연히 개인 팬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HO! HO! HO! HO!”

8,700:500에 불과했지만, 락하운즈의 응원석에서 대호를 연호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홈팀인 미션스의 응원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점점 대호에 대한 팬들의 응원 소리가 커지자, 원정 팀의 더그아웃에서도 작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 * *

“HO! HO! HO! HO!”

“어이, 대호!”

락하운즈의 감독 바비 크로스가 대호를 불렀다.

“네, 감독님! 부르셨나요?”

경기 시작 전 가볍게 브렛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대호는 감독이 느닷없이 자신을 부르자 잠시 브렛에게 손짓하고 그의 앞으로 달려갔다.

“들어 봐!”

감독의 앞에 서자, 바비 크로스는 아무런 설명 없이 그저 들어 보라는 말만 하였다.

그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대호의 귓가에 자신의 이름 끝 자를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일부 자신의 팬들이 자신의 이름인 대호를 끝자만 때어 ‘HO'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 샌안토니오에서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을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대호는 감동의 물결이 밀려오는 듯했다.

“나가 봐!”

감독은 그저 씩 웃으며 나가 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것이 어떤 뜻인지 잘 알고 있던 대호는 더그아웃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원정 팀 응원석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와아! HO!”

“슈퍼 보이!”

그 장면을 목격한 팬들은 더욱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비록 홈구장은 아니었지만, 원정 응원을 온 락하운즈의 골수팬들은 멀리까지 온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야구를 좋아하고, 또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선수를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이곳에 왔는데, 화답해 주는 선수가 나타났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대호! 오늘도 홈런 한 방 부탁해!”

“오늘 제 생일이에요. 생일 선물로 홈런 쳐 주세요!”

배 나온 중년의 남성 팬이든, 이제 겨우 유치원에 들어갔을 만한 꼬마든 홈런을 쳐 달라는 소리를 질렀다.

“하하! 가능하면 도전해 볼게요.”

대호는 자신에게 홈런을 쳐 달라는 팬들의 요구에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매 경기마다 홈런을 치고 싶지. 그렇지만…….’

사실 홈런을 의식하고 타석에 들어서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분명 대기하고 있을 때까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투수가 잘 던지는 구종, 컨디션 등등… 그렇지만 막상 타석에 서는 순간, 대호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투수의 손끝에서 날아오는 공만을 의식할 뿐.

띠링!

[특별 퀘스트]

생일 선물로 홈런 볼을 원하는 어린 팬의 소원을 들어주시오

성공 : 경험치 상승, 힘, 컨택 포인트 1 상승

실패 : 3일간 컨디션 10% 하락

참으로 오랜만에 퀘스트가 등장했다.

그런데 보상이 이전과는 너무도 달랐다.

이전에 시스템이 미션을 줄 때는 그 보상이 타이틀, 즉 업적이었는데, 오늘은 스탯의 상승을 보상으로 주었으니까.

경험치 상승이야 당연한 것이기에 차치하더라도 스탯 상승은 지금 대호에게 너무도 절실한 것이었다.

레벨이 오를 만큼 오른 상태에서 단순히 훈련만으로 스탯을 올리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퀘스트는 정말 오랜만인데.’

대호는 속으로 씩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새는 스탯을 올리는 게 너무 힘들어진 판국이었어. 그런데 힘이랑 컨택을 1씩 올려 준다고? 하핫.’

살짝 상태창을 열어 현재 스탯을 확인한 대호는 컨택이 59인 것을 알고 더더욱 기뻐졌다.

이번 보상을 받으면 메이저리그 평균이라고 할 수 있는 60을 달성하는 셈이니까.

또한 힘 역시 60을 넘긴 이후로는 성장이 계속해서 더뎌졌고, 오히려 꾸준한 훈련이 거듭되지 않으면 예전보다 떨어질 수도 있었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린 대호는 응원석에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팬들을 향해 다시 한번 웃어 주었다.

“와아아! 오늘도 파이팅!”

팬들의 응원을 뒤로하고 다시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대호는 브렛과 마주쳤다.

“대호, 뭐 하느라 이렇게 늦었어?”

퀘스트를 받고, 또 팬들과 교감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아마 찾으러 온 듯했다.

그런데 바깥에서 서 있던 대호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으니, 브렛으로서는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하, 날 위해서 환호하는 팬들을 보니까 어쩐지 가슴이 벅차서 좀 멍하게 있었어.”

“그래?”

평소의 똑 부러진 대호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브렛이 잘 생각해 보자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직접 나가서 환호를 받아 준 건 처음이었으니까.

“앞으로 자주 있을 일이니까 익숙해지겠네.”

“…그럴지도.”

엉뚱한 대호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브렛의 뒤로, 언제 다가왔는지 칼라부이그가 어깨동무를 하며 말을 걸었다.

“빅 타이거의 표정이 좋네? 무슨 좋은 일 있어?”

“음… 그러니까 팬들의 환호에 감동했다고 말해야 하나…….”

“뭐? 하하! 대호, 지금까지 계속 환호 받았으면서 갑자기 왜 그래?”

칼라부이그는 브렛과 한 어깨동무를 풀고 대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음, 계속 듣긴 했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치며 인사한 건 처음이라고나 할까.”

“흐흐, 확실히 중독성 있는 일이긴 하지. 괜찮아! 대호 네 실력이면 앞으로 안 익숙해지는 게 더 이상한 일일 테니까.”

브렛은 둘의 대화를 보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고, 대호 저 녀석이 저런 미소를 지을 땐 언제나 큰일이 벌어지던데… 오늘 경기도 기대해 봐도 되겠네.”

하이 싱글A때부터 대호가 저렇게 싱글벙글 웃을 때면 언제나 무시무시한 결과를 보여 주었다.

브렛은 당연히 대호에게 숨겨진 비밀인 레벨 업이라든가 상태창 같은 것을 알지 못했지만, 훈련 중이나 경기 전에 갑자기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팬들의 환호성이 더해진다면 이전보다 더욱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으리라.

“그럼 갈까?”

대호가 앞장서자, 칼라부이그와 브렛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