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51화 (51/209)

51화

관찰카메라 1일차, AM 05:00.

띠띠띠!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알람이 울리자 침대에 자고 있던 인영이 곧장 벌떡 일어났다.

창에는 암막 커튼을 달아 놓았기에 방 안은 무척이나 어두웠지만, 그런 것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인지 자리에서 일어난 인영은 어두운 방을 거침없이 움직였다.

덜컹!

실내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화장실로 들어가 간단하게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나왔다.

AM 05:05.

저벅저벅!

“흐하암!”

기숙사를 나온 대호는 현관 입구에서 크게 기지개를 펴고 작게 신음을 흘렸다.

그러고 나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는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 코스는 미들랜드 락하운즈 선수 숙소에서 홈구장인 시큐리티 뱅크 볼파크를 돌아, 트레이드 윈즈 대로를 거쳐 루프250 프론티지 로드로 복귀하는 코스다.

AM 05:45.

정확하게 40분 동안 달려 10㎞ 새벽 달리기를 마친 대호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나온 뒤, 하이 싱글A에서 함께 콜 업 되어 올라온 브렛을 깨웠다.

콜 업 당시 브렛은 대호에게 더블A에 가면 아침을 책임지겠다는 말을 했고, 정말로 더블A에 올라온 뒤로 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이너리거의 식사가 부실하다는 것은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보통 마른 식빵과 땅콩 잼으로 연명하거나, 개중 주머니 사정이 좋은 선수는 슬라이스 치즈나 햄 조각을 첨가할 뿐이었다.

그러나 대호는 이곳 텍사스가 고향인 브렛 덕분에 영양가 높은 육류를 섭취할 수 있었다.

“브렛, 아침이야. 일어나!”

아직 오전 6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마이너리거들이 이 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민폐는 아니었다.

“일어났어. 일어났으니까 그만해!”

대호는 방 안에서 브렛이 목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더 이상 그의 방문을 두드리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는 것이다.

AM 08:00.

대호는 아침을 먹고 미들랜드 락하운즈의 홈구장인 시큐리티 뱅크 볼파크에 도착하였다.

곧장 로커 룸에 들려 옷을 갈아 입고 그라운드로 나왔는데, 그 옆에는 함께 아침을 먹은 브렛과 아론이 함께하고 있었다.

2루수 주전인 아론과 백업인 브렛이 함께하는 모습은 좀 이상해 보일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둘은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이는 중간에 대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쟁 관계였던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며 실력을 쌓아 갔고, 현재는 절친이 된 상태였다.

물론 절친이 되는 과정에서 브렛이 제공하는 아침 식사가 많은 도움이 된 것은 부정할 순 없었지만 말이다.

“흐음…….”

누구보다 일찍 그라운드에 나와 몸을 풀고 오전 훈련 준비를 하다 보니, 일찍 사무실에 나온 락하운즈 관계자들은 모두 이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트리플A로 콜 업이 확실시되는 두 사람 대호와 아론, 그리고 아론을 이어 락하운즈의 2루를 책임질 브렛이 모범을 보이자, 프런트 관계자들은 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것을 느꼈다.

새벽 운동에 이어 오전 운동에서도 솔선수범을 보이고, 또 오후에는 홈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대호의 모습은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 *

미들랜드 트리뷴은 대호의 관찰 카메라를 긴급 편성하여 방송에 내보냈다.

1일차 방송은 소소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불과 2일 만에 시청자가 몇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1일차 분량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퍼지면서, 기존 대호의 성적과 그에 관한 불법 약물 의혹이 맞물려 관심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MLB 사무국에서 약물검사를 통해 부정 약물 사용을 하지 않았다고 발표를 하고, 또 원 소속팀인 오클랜드 슬랙스 프런트에서 매주 2회 검사를 실시했다고 해도 대호는 계속해서 잠재적 약물 사용자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실시하게 된 24시간 관찰 카메라였으니,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관찰 카메라까지 동원해도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슨 사건만 일어나면 음모론을 떠드는 사람들처럼 24시간 카메라로 대호의 생활을 찍어 올렸음에도 조작을 의심했다.

그렇지만 대호에 관한 관찰 카메라의 회차가 늘어 갈수록 대호에 대한 의심은 줄어들었고, 불법 약물 사용 의혹을 주장하던 불편러들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의 관찰 카메라는 정말로 24시간 동안 대호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모든 일상을 촬영하고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화장실처럼 개인적인 공간까지 말이다.

뿐만 아니라 외부로 나갈 때면 촬영 스텝이 따라가거나, 아니면 드론이 공중에서 찍으며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이 때문에 촬영 초기에는 락하운즈 코칭스태프진과 작은 마찰이 있기도 했지만, 곧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다른 선수들의 훈련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합동 훈련을 할 때는 운동장 안이 아닌 관람석에서 원거리 촬영을 하는 것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 * *

미국의 한 인터넷 커뮤티니.

슬랙스헤븐 : 역시 역대급 뉴비! 믿고 있었다고.

⤷믿고 있긴. 너도 아시안이 그런 성적을 내는 것은 의심스럽다 하지 않았나?

⤷맞아! 나도 위에 놈이 쓴 글 봤어!

MLB마스터 : 빌어먹을! 나도 관찰 카메라 보기 전까진 믿지 못했는데, 정말로 내추럴이라니,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

⤷이 정도면 보스턴의 그 일본인 뉴비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말이지?

⤷아니, 어떻게 이제 겨우 더블A에 있는 놈하고 메이저에 있는 천재와 비교를 하냐? 히데오 >>> 넘사벽 >>> 정대호

⤷누가 같다고 했냐?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했지.

⤷비슷하긴, 정대호가 더 대단하지.

⤷딱 봐도 윗댓 한국놈일 듯.

⤷그럼 너는 일본놈이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대호의 관찰카메라로 인하여 불법 약물 사용 의혹이 해소되었음을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보스턴 블루삭스의 괴물 신인 히데오 소이치로에 대한 언급도 함께 나왔다.

1년 차이로 동양인 천재들이 연속해서 나왔으니, 비교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대호의 관찰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밀리고, 두 사람을 라이벌로 엮으려는 이들과 아직은 이르다는 의견으로 갈려 난장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대호가 히데오보다 인지도에서 밀리는 것은 명백한 상황.

이 사건 자체가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 대호의 인지도가 상승했고, 관찰 카메라에 대한 관심도 더욱 올라가는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킹오클랜드 : 내가 처음부터 말했지? 우리 선수가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하하, 지금 정대호가 있는 락하운즈에서 있었던 일은 그럼 뭐야?

⤷그놈들은 퇴출됐고! 그 이후에 올라온 정대호가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는 소리지. 그리고 관찰 카메라 못 봤어? 정대호의 일상이 어땠는지 이제 우리는 다 알잖아.

⤷그건… 사실이지. 게다가 이런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엄청난 성적을 거두고 있으니…….

대호는 더블A에 올라오며 잠시 주춤하던 홈런과 타율이 다시금 상승 추세에 있었다.

메이저리그 팬들은 지금까지의 성적이 적응이 끝나기 전이었음을 깨닫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 * *

오클랜드 슬랙스 프런트는 오늘도 무척이나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단장님.”

“왜?”

“하비에르가 뉴욕에서 연락을 했습니다.”

크리스 마틴은 조엘에게 뉴욕 킹덤스의 단장 하비에르에게서 연락이 왔음을 알렸다.

“무슨 일로?”

조엘은 반사적으로 무슨 용건인지 물어봤지만, 곧바로 인상을 썼다.

하비에르가 지금 전화할 만한 일이 몇 가지 없었으니까.

“혹시라도 대호에 관해 물어보는 거라면, 당장 꺼지라고 전해!”

조엘은 오클랜드에 굴러들어 온 복덩이 정대호를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크리스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스터 정에 대해서 물어보기에 그 선수에 대해서는 어떤 제안도 절대 불가능이라고 통보했습니다.”

“그럼 됐지. 혹시 뭐라고 덧붙인 말이라도 있어?”

조엘은 자신의 비서가 전한 대답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현재 더블A에 있는 대호는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절대 트레이드가 불가능한 카드로 묶어 두었다.

물론 어디에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오클랜드가 정한 커트라인을 오버 하는 것이 아니라면 현재 대호는 절대 트레이드 불가였다.

“하비에르가 미쳤는지, 저희 유격수인 오토 헨슨과 백업 우익수 마이크 헤론, 그리고 더블A에 있는 정을 포함한 3:2 트레이드를 하자고 합니다.”

“3:2 트레이드?”

“예!”

“참 나. 오토 헨슨과 마이크 헤론, 그리고 정대호를 주면 뭐 에이스인 빌리 존스하고 2선발인 데이브 맨들이라도 준대?”

조엘은 크리스의 말을 듣고 빈정거렸다.

뉴욕 킹덤즈의 에이스 빌리 존스는 6월 현재 11경기 출전해 6승 2패를 거두고 있으며 평균 자책점 1.84를 기록하고 있는 명실공히 에이스 중의 에이스였다.

다만 선발 출전한 경기 수에 비해 승이 부족한 것은 타선의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

또한 2선발인 데이브 맨들 역시 에이스인 빌리 존스에 뒤지지 않는 성적을 보이고 있는데, 그의 성적은 11경기 7승3패 평균 자책점 2.13으로 빌리만 없었다면 능히 에이스를 차지했을 인재였다.

크리스는 코웃음을 치는 조엘을 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 정도는 아닌데, 하비에르가 뉴욕의 4선발인 사사키 지로와 2루수와 유격수 멀티 자원인 데릭 마틴을 이야기했습니다.”

“뭐?”

비서인 크리스 마틴의 대답을 들은 조엘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뉴욕 킹덤즈의 제1선발과 2선발인 빌리와 데이브만큼은 아니지만 4선발인 사사키 지로도 5승 2패 평균 자책점 3.38로 4선발치고는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는 투수였다.

또한 데릭 마틴은 제2의 코어4가 될 수도 있는 후보로 꼽힐 만큼 우수한 자원이었다.

물론 아직 수비가 조금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2루수와 유격수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라는 장점이 단점을 상쇄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의 연봉만 해도 하비에르가 자신들에게 요구한 세 사람이 받는 연봉의 합보다 무려 천만 달러 이상 높았다.

즉, 언뜻 볼 때는 오클랜드에 무척이나 유리한 트레이드 제안이라는 뜻.

‘하, 하비에르 놈… 역시 보는 눈은 좋아. 오토 헨슨과 마이크 헤론이라는 카드로 눈을 흐리게 만든 다음 거기에 정말로 원하는 유망주인 정대호를 끼워 넣는다라…….’

조엘은 곧바로 하비에르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는 분명 천만 달러 이상의 손해를 보더라도 불안한 외야를 채우고 싶어 하는 게 분명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군!”

조엘은 단호하게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오클랜드에 유리한 트레이드였지만, 조엘이 생각하기에 이는 오클랜드가 손해인 트레이드였다.

물론 하비에르가 언급한 사사키와 데릭이 좋은 선수인 것은 맞다.

하지만 대호가 자신의 예상대로만 성장한다면… 아니, 이대로만 성장해 줘도 대호 한 명이 사사키와 데릭, 두 사람의 가치를 합한 것보다 높은 선수가 되리라.

스몰 마켓 팀인 오클랜드의 사정상, 이대로 대호가 성장한다면 다음 계약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조엘은 그전에 이익을 뽑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뉴욕 킹덤스와 트레이드를 하는 건 미친 짓이지. 당장 메이저에 올려도 일인분은 할 수 있는 정대호가 킹덤스에 간다면… 외야가 안정될 테고, 그러면 완성된 팀이 되겠지.’

혹시 빅리그 적응이 느려서 타격에서 제 몫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수비 능력을 생각하면 결코 마이너스가 아니었다.

또한 뉴욕 킹덤스 정도의 강타선이라면 한 명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범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외야는 킹덤스만 불안한 게 아니었다.

오클랜드 역시 외야가 불안한 상황이었으니 대호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카드였다.

“다른 곳에서 알아보라고 해!”

트레이드 카드에 대호의 이름이 끼여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엘은 이번 하비에르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정했다.

“알겠습니다.”

사실 크리스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상사인 조엘의 판단이 옳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대답하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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