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미들랜드 트래뷴과 인터뷰를 하면서 터뜨린 대호의 폭탄선언으로 인해 대호에 대한 도핑 의혹 루머는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인터뷰 이전에는 대호가 불법 약물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측과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약물 반응이 없다고 했고, 또 현재 대호가 소속된 락하운즈의 모구단이라 할 수 있는 오클랜드 슬랙스 프런트도 매주 두 차례나 약물검사를 하고 있지만,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고 발표한 것을 믿는 이들이 팽팽히 대치하고 있었다.
다만 비율을 따지자면 52:48 정도의 수치로 의심하는 측이 좀 더 우세했다.
그러나 대호가 관찰 카메라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이후로 판세가 뒤집혀 38:62 정도로 이전보다 대호를 믿는 쪽이 1.6배 정도 더 많아졌다.
그리고 그런 추세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대호가 말로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미국인들의 마음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 * *
제리&맥콰이어에서 나온 마크 맥콰이어는 대호를 보며 조금 우려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로 그 관찰 카메라를 할 생각입니까?”
비록 자신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어린 대호였지만, 고객이기에 마크는 정중하게 물었다.
그는 한순간의 치기로 대호가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을 수 있는 일을 결정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보내고 있었다.
“일단 절 의심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이를 말끔히 해소하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자신의 목표인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을 위해서, 대호는 한 치의 의혹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불법 약물 사용 의혹은 대호의 목표로 가는 길에 절대로 남겨 둬선 안 될 오점이었으니.
하지만 이번 의혹만 완벽하게 해결된다면 대호의 입장에서 이보다 좋은 일이 없기도 했는데, 루머로 인해 대호는 마이너리거면서도 미국 전역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는 의외의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정말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네.’
대호는 마크를 보며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목표는 명예의 전당입니다. 그러니 그를 위해선 확실하게 제가 100% 내추럴하다는 것을 팬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음…….”
대호의 이야기를 들은 마크는 작게 침음을 삼켰다.
‘그 말이 맞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발생할 관심을 이 어린 선수가 감당할 수 있을까?’
에이전시인 마크의 걱정은 바로 그것이었다.
의혹을 해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칫 사람들의 많은 관심이 이 재능 넘치는 루키를 망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더 크게 들었다.
지구에는 많은 스포츠가 있고, 또 그곳에서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 유망주들은 무척이나 많았다.
그러나 그중 자기 재능을 꽃피워 진정한 하늘의 별이 된 이는 사실 그렇게 많은 수가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실패한 유망주들이 전부 팬들의 과도한 관심 때문에 일찍 저문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었다.
솔직히 마크는 대호의 무죄를 확신하는 만큼,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이 따로 있었다.
‘대호가 혹시 이번 관찰 카메라를 통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나면 자만하진 않을까? 아니면 자신의 재능에 취해서 나태해지지는 않을까?’
그러나 마크는 알지 못했다.
대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장년에 들어선 그의 삶보다 더 치열하고, 또 숙성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대호도 마크의 눈빛을 보며 대강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챘다.
‘하하, 역시 마크라니까. 잔걱정은 조금 그렇지만, 다 나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
회귀를 세 번이나 하면서 인생의 황혼 역시 세 번 경험했다.
그 속에는 영광된 경험도 있고, 또 반대로 나락을 경험한 적도 있었다.
시스템의 도움이 있더라도 예기치 못한 부상 때문에 절망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지만, 그것들을 극복한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삶에서 야구 선수로서의 최고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에 목숨을 건 것이었다.
“마크, 무엇을 우려하는지는 알겠어요. 그렇지만 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야기를 하는 대호의 얼굴 표정은 결코 자만이나 나태하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목표를 강하게 세우고, 굳은 의지로 나아가는 진취적인 사내에 가까웠다.
“……!”
대호의 표정에서 그러한 것을 읽은 마크 맥콰이어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제 겨우 열아홉 살의 어린 유망주가 이렇게나 자신의 목표 의식이 투철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드문 일이었으니까.
‘이거… 생각보다 더 대단하잖아?’
대호가 재능이 있다는 것은 오클랜드 프런트에서 소개를 받았을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어린 유망주가 재능뿐만 아니라 이런 워크에식과 목표가 뚜렷하다니, 솔직히 감탄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선수들이 대성하고 역사에 남는 레전드가 되기 마련이.
‘이거, 내가 미래의 레전드를 보는 것이 아닐까?’
마크 본인도 대호를 많이 접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소개한 존 밀러로부터 대호의 훈련 과정을 전해 들었다.
― 대호가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브래이스 해터나 마이크 토르를 능가할 레전드가 될 거야!
제리&맥콰이어 소속 인스트럭터였던 존 밀러는 대호를 가르치면서 그런 평가를 내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마크는 대호가 하는 이야기를 곱씹으며 존 밀러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
* * *
에이전시와의 대화도 잘 끝났고, 또 오클랜드 프런트 역시 루머를 잠재우기 위해 24시간 따라다니는 관찰 카메라를 찍겠다는 대호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오클랜드 프런트 입장에서도 아무리 해명을 해도 믿지 않는 타 구단 팬들의 생각을 어떻게든 돌리기 위해선 24시간 관찰 카메라가 가장 효과적일거란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사실 일주일에 두 번이나 하는 약물검사만으로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야구팬들이라면 이를 수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1% 정도의 성향을 지닌 이들까지 고려해 이런 충격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정대호가 최고 수준의 유망주라는 건 알겠지만, 지금 일은 조금 과하군.’
‘자기가 한다는데 굳이 막을 필요는 없지만, 락하운즈의 다른 선수들은 무슨 죄야?’
솔직히 오클랜드의 프런트 대부분은 그렇게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의심을 받고 있는 선수가 직접 해명하겠다는데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 되었든 오클랜드 프런트 입장에선 나쁠 것이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녕하십니까? 미들랜드 트래뷴의 한나 포커스입니다.”
대호의 관찰 카메라의 리포터로는 한나 포커스가 낙점되었다.
미들랜드 트래뷴과 그곳의 리포터인 한나 포커스가 이를 맡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들랜드 트래뷴이 미들랜드 락하운즈가 있는 미들랜드 지방의 공용 방송이라는 점과, 락하운즈에 호감이 있는 방송국이면서 비교적 공정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컸다.
또 한나 포커스의 경우 아직은 마이너리그를 대상으로 리포터를 하고 있지만, 5피트 10인치(177㎝)의 늘씬한 키에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평판도 좋아 곧 메이저리그 담당이 될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렇기에 오클랜드 프런트… 아니, 단장인 조엘이 직접 나서 그녀를 섭외하였다.
한편, 대호가 며칠 전 샌안토니오 미션스와의 경기 MVP 인터뷰를 할 때 만났던 한나 포커스가 자신의 관찰 카메라의 메인 리포터가 되었다는 것을 듣게 된 건 어젯밤이었다.
“한나, 또 보네요.”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방송을 위해 대호는 그녀와 지금 막 재회한 것처럼 인사를 주고받았다.
“대호의 관찰 카메라를 제가 직접 촬영하게 되었네요. 호호호!”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인지, 이야기를 하는 내내 한나는 대호를 보며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하, 촬영하는 한 달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대호는 이미 방송국과 협의된 내용이 있기에 그렇게 인사를 하였다.
대호의 관찰 카메라는 총 30일간 촬영을 하기로 정했는데, 촬영 기간을 두고 처음에는 조금 언쟁이 있었다.
어찌어찌 촬영을 하는 것 까지는 동의했지만, 사실 시즌이 끝난 것도 아니고 이제 막 기세를 올리고 있는 때에 카메라와 사람을 붙이고 이동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카메라 촬영을 하는 본인은 물론이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락하운즈의 입장에서 촬영 기간을 최소한으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원래 취지인 대호의 불법 약물 사용 의혹을 해결하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해, 논의 끝에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촬영하는 것으로 합의를 본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전적으로 락하운즈의 선수들과 감독, 그리고 코치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락하운즈에 소속된 이들은 모두 대호에게 호의적이었다.
대호가 콜업 된 이후로 그에게 자극받은 선수들 모두 열심히 훈련하고, 또 경기에서도 놀라운 실력을 보여 주며 리그 우승권도 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올해 시즌 시작 전, 주전 선수 세 명이 불법 약물 때문에 빠진 팀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경기력이었고, 그 계기가 된 선수가 또 불법 약물 의혹에 빠졌다고 하니, 다들 협조적으로 나왔다.
또한 처음에는 의심의 눈길을 보이던 선수단 역시 이제는 다 함께 대호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한 달이라는 긴 관찰 카메라 기간도 받아들여 준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는 락하운즈 사람들에게 고마워해야겠네.’
그때, 한나 포커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화장실과 로커 룸도 카메라 설치해도 되나요?”
대호는 모두 대본에 있는 내용을 전혀 모른다는 듯이 연기하는 한나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대호 역시 뻔뻔하게 연기를 시작했다.
“예. 제 결백을 위해 구단과 동료들이 과감하게 양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선수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는 해 주시겠죠?”
“호호, 그건 당연하죠.”
미국은 소송의 나라라 불릴 정도로 별것 아닌 것으로 소송을 벌이기도 한다.
만약 미들랜드 트래뷴이 허락되지 않은 것을 방송에서 내보냈다가는 엄청난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할지도 몰랐다.
“자, 그러면 대호 선수를 따라 우선 로커 룸으로 가 볼까요?”
리포터인 한나는 자연스럽게 진행하며 복도를 지나, 락하운즈의 로커 룸으로 향하면서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여기도 하나…….”
대호가 지나간 자리에 뒤따라오던 기술자들이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관찰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촬영되면서 곳곳에 소형 카메라를 설치하였는데, 대호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기 위해 모든 카메라가 설치된 곳을 알려 주지는 않았다.
당연히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고를 대비해 다른 선수들에게는 이를 알릴 테지만, 의혹을 해명할 대호에게는 알리지 않을 방침이다.
그렇게 로커 룸에서 환복을 한 대호는 복도에서 기다리는 촬영 팀과 함께 그라운드로 나갔다.
그리고 대호가 락하운즈의 홈구장인 시큐리티 뱅크 볼파크에서 촬영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숙소에서는 또 다른 기술자들이 숙소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었다.
* * *
“헤이, 대호! 촬영 중이야?”
가장 먼저 운동장에 도착해 몸을 풀고 있을 때, 두 번째로 그라운드로 나온 아론 헤들러가 걸어 나오면서 물었다.
“응, 오늘부터 촬영 시작이야.”
아론의 질문에 대호는 가볍게 대답을 했다.
“하! 너도 참 힘들게 산다.”
자신에 관한 루머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무리하는 대호를 보며 아론은 자신의 소감을 떠들었다.
“하하, 어쩌겠어? 내 목표가 목표인 것을…….”
대호는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몸을 풀었다.
그런 대호를 보며 아론도 그 옆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먼 거리에서 미들랜드 트래뷴에서 파견된 촬영 팀이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락하운즈의 선수들이 하나둘 운동장에 나타나며 오전 운동이 시작되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