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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49화 (49/209)
  • 49화

    미들랜드 락하운즈와 샌안토니오 미션스의 경기는 1회 말부터 싱겁게 끝나 버렸다.

    감정에 치우쳐 제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미션스의 선발 시몬 카스트로에게 3점을 뽑아내고, 또한 이어 받은 릴리프 벨 야브로에게 4점(2점은 시몬이 내보낸 주자)을 포함해 1회 만에 10점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2회에도 3점을 뽑고 매 회 거듭할수록 더더욱 점수를 낼 수 있었다.

    결국 샌안토니오 미션스는 야구 경기에서 나온 점수라고 믿기 힘든 31실점을 기록하며 팀 사상 가장 많은 점수를 내주며 대패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날 선두 타자로 나온 대호는 5타석 5안타 3홈런으로 11타점을 기록했다.

    8회에는 다른 선수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교체되었지만, 이날의 MVP에 뽑히며 마이너리그 선수로서는 이례적으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 * *

    웅성웅성!

    경기가 끝났음에도 경기장에는 많은 야구팬들이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미들랜드 트리뷴의 한나 포커스입니다.”

    마이크를 든 한나 포커스는 카메라를 보며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하였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대호에게 말을 건넸다.

    “옆자리에는 오늘 경기의 MVP인 대호 정 선수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정대호입니다.”

    아름다운 금발 미녀인 한나 포커스의 인상에 대호도 밝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를 하였다.

    “와! 대호 선수, 오늘 경기 MVP에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와, 정말 더블A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선수라고는 믿기 힘들 성적이에요.”

    한나 포커스는 3홈런 11타점을 올린 대호의 성적에 축하를 보냈다.

    “하하, 아닙니다. 저만 잘한 것도 아니고, 오늘은 저희 락하운즈 역사에 남을 정도로 대승인걸요.”

    “흐음… 겸손하시네요.”

    한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대호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인생 4회차에 돌입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하, 벌써 네 번째 사는 인생인데 이렇게 예쁜 사람과 같이 있을 땐 긴장된다니까.’

    잠시 딴 생각을 하던 사이, 한나 포커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번 시즌의 루키인 대호 선수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는 게 사실인가요?”

    씨익.

    “네, 맞습니다. 아직 생일이 안 지났으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19살 10개월째네요. 정확히 말하면 성인이 되기에도 아직 조금 남았다고 할 수 있죠.”

    “와아!”

    아나운서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대호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놀랍네요. 저도 선수들 인터뷰를 많이 해 봤지만, 피지컬적으로는 완전히 성인 남성인데요.”

    지금 대호의 키는 6피트 4인치, 195㎝였다.

    큰 키에 딱 벌어진 어깨, 그리고 운동을 하느라 살짝 탄 구릿빛 피부까지.

    한국식 나이로는 스무살이 넘은 만큼, 완전히 성숙해 있었다.

    그러면서도 웃을 때면 아직 살짝 어린 모습이 드러나는데,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소였다.

    대호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정신 차리세요.”

    “아아!”

    대호의 정신을 차리라는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온 한나는 그제야 제대로 된 인터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늘, 8회 말에 교체되기 전까지 5타석에 들어가 홈런 세 개를 포함해 안타 다섯 개를 쳐 냈는데, 어떠셨습니까?”

    그야말로 최고의 하루를 보낸 대호를 보며 한나는 그 심정을 물었다.

    아무리 마이너리그라고는 하지만, 5타수 5안타에 3홈런이라는 기록은 메이저리거가 내려와도 쉽지 않은 기록이었다.

    더욱이 대호는 공격에서만 능력이 출중했던 것이 아니라, 수비에서도 활약을 돋보이며 경기를 지배했다.

    4회 초 미션스의 공격이 있을 때, 락하운즈의 선발 체스터 코헨의 공에 익숙해진 미션스 3번 타자 데릭 로사리오가 친 타구가 펜스를 넘어가는 것을 훔쳤다.

    뿐만 아니라 7회에도 우익수 방향으로 치우친 깊은 타구를 잡아내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위기를 막아 냈다.

    이렇듯 공수 양 방면에서 활약을 하면서 락하운즈가 미션스를 상대로 31:6의 엄청난 스코어 차이로 승리를 하는데 기여했다.

    ‘정말 스무 살도 안 된 게 사실일까? 솔직히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본 입장에서는 전혀 못 믿겠던데…….’

    오늘 미친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선수들 덕분에 락하운즈는 굳이 주전들을 피곤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후보 선수들을 테스트하기 위해 중간에 투입했다.

    그 덕분에 미션스도 6점을 얻어 낸 것이고.

    한나는 그 중심에 서 있던 대호의 심정이 너무나도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뭐, 경기야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오늘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리포터로써 뭔가 기삿거리를 찾는 한나를 보며, 대호는 다른 경기와 다르지 않았다고 담담히 대답을 하였다.

    너무 평범해서 지켜보던 관중들과 한나가 살짝 아쉬움을 느끼려는 찰나, 대호가 입을 열었다.

    “잠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것을 지금 말해도 될까요?”

    인터뷰를 하고 또 작정을 하기는 했지만, 언론을 상대로 함부로 떠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요?”

    진지한 대호의 표정에 한나 포커스는 눈을 반짝였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태도를 보면 벌써 메이저에 진출해서 십 년은 머무른 베테랑 같아!’

    한나 포커스는 리포터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왔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과 인터뷰를 했었다.

    그러다 보니 말하는 억양이나 인터뷰를 하는 태도만 봐도 그 사람의 성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앞에 서 있는 사내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연하임에도 불구하고, 옆에 서 있으면 마치 자신보다 한참이나 연상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억지로 어른스러운 척하는 것도 아니라 그저 옆에 있기만 해도 든든하다는 느낌이었다.

    “요즘 저에 관해 많은 루머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러한 모든 소문은 모두 거짓입니다. 제 목표는 단순히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대호는 살짝 침을 삼켰다.

    지금 할 말은 아무리 심지 굳은 대호라고 해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니까.

    누군가는 좋게 보고, 또 누군가는 너무 건방지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노릇.

    “바로 저 위에 있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거죠.”

    “아!”

    한나 포커스는 방금 대호가 자신의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누군가에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많은 야구 꿈나무들의 목표는 메이저리그였다.

    이는 야구를 시작하는 아마추어나 뛰어난 성적으로 마이너리그 계약을 한 선수 대부분이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옆에서 자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대호는 그 이상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듣고는 너무도 놀랐다.

    ‘그냥 단순히 야구를 잘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저런 퍼포먼스를 보여 줄 수 있었던 거구나.’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이란 목표를 가지고 있는 대호였기에, 한나는 항간에 떠도는 불법 약물 의혹이 얼마나 허황된 말인지 깨달았다.

    과거에는 약물을 복용하고도 명예의 전당 후보, 또 후보를 넘어 입성하는 일이 발생하며 많은 질타를 받았고, 사무국 차원에서도 권위의 손상을 입었다.

    이제는 명예의 전당의 규정이 엄격해지면서 불법 약물 복용이 확인된 선수는 후보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경우에 따라선 제명까지 되기에 규칙이 개정된 뒤로는 불법 약물을 사용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호 선수의 엄청난 기록을 의심하는 이들은…….”

    한나 포커스는 말을 하다 말고 끝을 흐렸다.

    아무리 대호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을 목표로 한다고 해도 불법 약물 사용 의심을 하는 이는 계속해서 그를 의심할 것이란 말을 멈춘 것이다.

    “구단에서도 발표를 했지만, 전 지금까지 마이너리그 경기를 치르면서 무려 여덟 차례나 사무국의 약물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클랜드 슬랙스 프런트가 발표한 것을 그대로 이야기를 하였다.

    자신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여덟 차례나 약물검사를 받았으며, 구단에서 내려온 조사원들에게도 매주 두 차례씩 검사를 받고 있다고.

    “물론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일은 아닙니다. 올해 시즌 초, 저희 락하운즈에서 세 명의 선수가 불법 약물 복용으로 퇴출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들과 저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들이 약물을 복용했다고 지금까지 한 번도 양성 반응이 나오지 않은 저에게 계속해서 이상한 루머를 퍼뜨리는 건… 선수로서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조금 치욕스럽네요.”

    거기까지 말하자 대호는 점점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껴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렇게 철저히 약물검사를 받고 있는 저에게 도핑 의혹을 아직도 제기하고 있는 분들이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던 대호는 급기야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정 그렇게 의심이 된다면, 제 일상을 관찰 카메라에 담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느닷없이 관찰 카메라를 언급하는 대호의 말에 한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방금 드린 말 그대로입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처럼 제가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촬영해서 보여드릴 수도 있다는 거죠.”

    “……!”

    관찰 카메라의 최초 등장은 다큐멘터리였지만, 이제는 그 영역이 확장되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스타의 일상이나 스케줄을 담아 보여 주는 방송도 매우 많았다.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인기도 많았고.

    스포츠 스타들도 연예인만큼이나 인기가 많았기에, 가끔 예능 등지에서 이벤트로 촬영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의혹을 풀기 위해 관찰 카메라를 찍겠다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나 포커스가 놀랄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정말로 아무런 약물의 도움 없이 이런 기록이 가능한 건가?’

    사실 한나 포커스도 대호의 약물 의혹을 품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대호가 보여 준 기록들은 성인이 되지 못한 10대가 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속한 미들랜드 트래뷴이 아무리 미들랜드 락하운즈에 우호적인 방송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의혹을 받는 본인이 직접 관찰 카메라를 언급하며 의심할 테면 해 보라는 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녀의 생각 역시 급격히 대호에게 우호적인 편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대호의 작전이 잘 들어맞은 셈이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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