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43화 (43/209)

43화

랜싱 러그너츠의 팬들은 야구시즌이 시작되면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이 응원하는 랜싱 러그너츠가 개막 이후 계속해서 연승 가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9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고 있었으며, 그중에는 라이벌 팀인 데이튼 드래곤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잭슨 필드에 모인 랜싱 러그너츠의 팬들은 오늘도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캬! 설마 우리가 벌써 9연승이나 할 줄이야.”

“말도 마. 솔직히 개막 3연전에서 위닝 시리즈만 가져왔어도 기뻤을 텐데… 작년 마지막에 그 꼴을 냈으니까.”

“그렇지? 데이튼 다음은 웨스트 미시간 화이트 캡스, 그 다음은 레이크 카운티 캡틴즈… 작년까진 상상도 못할 일이야.”

랜싱 러그너츠의 성적에 대해 떠들던 팬들은 과연 몇 연승까지 갈지에 대해 내기를 나누곤 했다.

이번 상대는 그레이트 레이크 룬스.

만약 오늘도 이기게 된다면 랜싱 러그너츠 사상 최초로 두 자릿수 연승을 하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기에, 홈 팬들의 기대는 하늘을 찢을 것만 같았다.

“오늘도 이기면…….”

“으하하핫! 10연승하면 내가 맥주 쏘지!”

경기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팬들은 마구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랜싱 러그너츠 파이팅!”

* * *

웅성웅성!

시끄러운 경기장과 마찬가지로 랜싱 러그너츠의 로커 룸은 밝은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고, 선수들의 대화로 시끌시끌했다.

분명 9연승을 달성하고, 구단 역사상 첫 두 자릿수 연승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뿜어져 나오는 게 분명하리라.

조금 뒤면 경기에 임해야 할 선수들이지만, 그 누구도 경기에 대한 부담감을 떠올리지 않고 있었다.

그야말로 상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대호는 그런 선수들을 한 번 휘익 둘러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상대를 깔보면 안 되지만, 지금껏 봐 온 경험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은 아냐.’

덜컹!

“분위기 좋군!”

그때, 문을 열고 로커 룸에 들어온 필립 폴 감독이 시끄러운 선수들을 보며 한마디 했다.

그러자 로커 룸 안은 그 즉시 조용해졌다.

선수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필립 감독은 이야기를 이어 갔다.

“오늘, 상대를 이기면 우린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필립 감독은 구단 사상 첫 두 자리 수 승리에 대한 갈망으로 선수들에게 이를 주지시켰다.

그러자 이를 들은 선수들은 조금 전 조금은 방만했던 상태에서 살짝 긴장감이 느껴졌다.

“오늘 상대는 그레이트 레이크 룬스다.”

이야기를 하면서 필립 감독은 선수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대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이 녀석을 의심했었지.’

그는 아시안이란 선입견에 사로잡혀 대호의 재능을 의심했다.

하지만 개막전에서의 활약, 그리고 그 뒤로 원정 여섯 경기와 홈에서의 세 경기에서 보여 준 대호의 성적은 어째서 오클랜드가 그에게 700만 달러+a 계약을 했는지 납득하게 만들었다.

‘정대호는 비록 아시안이긴 하지만,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선수들과는 완전히 달랐어. 내구력이든, 실력이든……,’

어떻게 보면 천부적으로 운동을 하도록 태어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던 흑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대호 역시 필립 감독이 어째서 자신에게는 오래 눈을 마주치고 있는지 눈치챘다.

‘그래 봤자 이젠 말짱 꽝이야, 이 사람아.’

대호의 기록은 9경기 36타석 28타수 25안타.

이 중, 홈런이 다섯 개, 장타라고 할 수 있는 2루타와 3루타가 열다섯 개였다.

아웃된 적이 고작 세 번이라는 건 선구안도 선구안이지만, 타구의 질 자체가 압도적이라는 뜻이었다.

솔직히 대호 자신이 생각해도 지금의 실력은 하이 싱글A 리그와 맞지 않는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36타석을 치르면서 볼넷을 여덟 개나 골라 나가는 바람에 출루율은 무려 0.91.

타율은 0.892이며 장타율은 2.214, 즉 OPS가 무려 3.124을 기록하고 있었다.

비록 표본이 적어 신뢰도가 조금 떨어지긴 해도 놀라운 것은 사실이다.

‘지금 내가 기록하고 있는 성적… 분명 오클랜드 슬랙스의 프런트까지 보고될 거야. 그렇다면…….’

대호와 필립 감독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분명 콜업 되겠군.’

아마 오늘 경기가 끝나자마자, 혹은 이번 그레이트 레이크 룬스와의 3연전이 끝나면 AA로 승격하게 되리라.

그런데 필립 폴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오클랜드의 단장 조엘 헌트로부터 대호를 개막전부터 기용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는 아시안의 플루크에 속았다고만 판단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조만간 콜업이 될 대호를 좀 더 오래 데리고 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대호는 고작 9경기에 출전했지만, 그동안 팀 기여도는 팀 내 최고였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공수 양면에서 활약했으니까.

꼭 필요할 때 점수를 내고,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는 파이팅을 보여 주어 팀을 위기에서 구해 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선수를 어느 감독이 싫어할까?

필립 감독은 뒤늦게 자신의 편협함을 반성했다.

‘내가 먼저 저 재능을 알아 봤더라면…….’

뒤늦은 후회였지만, 필립 감독이 다시 한번 지도자로서 성장하는 계기가 될지도 몰랐다.

* * *

그레이트 레이크 룬스의 1회 초 공격은 삼자범퇴로 끝났다.

랜싱 러그너츠의 선수들은 계속된 연승으로 심리적으로 여유가 넘쳤다.

그러다 보니 강습 타구가 날아오거나, 외야 깊은 곳으로 날아드는 타구도 너무도 손쉽게 처리하였다.

그런 수비의 중심에는 또다시 대호가 있었다.

중견수로서 센터를 책임지는 대호 덕분에 수비 부담이 많이 줄어들다 보니, 좌, 우익수도 과감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헤이! 슈퍼 보이! 오늘도 하나 부탁해!”

타석에 들어서는 대호의 귀로 랜싱의 팬인 듯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8타수 25안타를 친 괴물 신인 정대호에게 랜싱 러그너츠의 팬들은 ‘슈퍼 보이’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팬들에게 이렇게 단시간에 별명을 불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잘할 때야 응원을 해도, 조금만 못하면 바로 악담을 퍼붓는 것이 팬이다.

그런데 대호는 매일같이 맹타를 휘두르고 수비에서는 어려운 타구를 너무도 쉽게 처리를 하니, 슈퍼 보이란 닉네임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

‘참 나…….’

대호는 그런 팬의 속성을 생각했지만,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팬 서비스라도 한 번 해 줄까?’

타석에 들어서기 전, 대호는 자신을 향해 소리친 팬이 있는 곳을 잠시 돌아보며 배트를 요란하게 돌렸다.

마치 무술가가 단봉을 돌리듯 기교를 부린 것이다.

“우와아아!”

대호의 그런 쇼를 본 홈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그만 들어서지.”

보다 못한 주심이 대호에게 경고를 하듯 단호하게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

주심의 부름에 대호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고심하는 주심과 괜히 척을 져 봐야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 대호였기에 재빨리 팬 서비스를 멈춘 것이었다.

‘계속 뻗대다가는 살짝살짝 불리한 판정을 내릴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이곳 잭슨필드가 랜싱의 홈구장이라고는 하지만, 주심의 기분이 상한다면 스트라이크 존이나 여러 부분에서 불이익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척!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자연스러운 자세로 배팅 포즈를 취했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아주 이상적인 자세였다.

팡!

“볼!”

초구는 바깥으로 공 한 개 반이나 빠진 볼이었다.

상대 투수 역시 이미 대호가 9경기 동안 어떤 활약을 했는지 전해들은 터라 쉬운 공을 던져 주지 않았다.

파앙!

“볼!”

그레이트 레이크 룬스의 투수는 두 번째 공도 좋은 공을 던지지 않았다.

철저하게 바깥쪽 승부를 보려고 하는 것인지, 안쪽으로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계속해서 바깥쪽으로 유인구만 던지네.’

이제 겨우 1회 말인데, 선두 타자로 나온 대호를 상대로 바깥쪽으로 빠지는 변화구만 두 개가 날아왔다.

대호는 이것을 그레이트 레이크 룬스의 배터리, 혹은 더그아웃에서 이렇게 던지라는 지시가 나온 것이라 판단했다.

휘이익!

팡!

“볼!”

방금 공은 조금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주심은 이를 볼로 판정을 내렸다.

‘이 정도도 볼이란 말이지…….’

보더 라인에서 공 반개 정도 떨어져 들어왔지만, 미국 주심들의 성향이 안쪽 인코스에는 인색하지만 바깥쪽 아웃코스의 볼에는 후한 판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기에 대호는 솔직히 눈에 보이는 보더 라인을 잘 믿지 않았다.

그저 타격을 하기 전 참고를 할 뿐이다.

조금씩 스트라이크 존으로 좁혀 오는 투수의 공이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과 어느 정도 비슷해진 것을 느낀 대호는 이번 네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패스트볼이 들어올 거라 예상했다.

‘온다.’

그레이트 레이크 룬스의 투수가 공을 던지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느릿하게 보였다.

75° 각도로 팔이 어깨로부터 굽혀지는 것도 보였고, 손에서 공이 떨어지는 것까지, 그 모든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안쪽 포심 패스트볼.’

예상대로 상대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처음에는 바깥쪽으로 던진 뒤, 점점 안쪽으로 좁힌다는 로케이션대로 이번에 승부를 보기로 작정한 듯했다.

그것도 가장 구속이 빠를 구종을 선택해서.

하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공, 예상하고 있던 코스였다.

휘익!

따아아악!

날아오던 공이 배트에 맞는 타격음이 마치 메아리를 울리는 것처럼 아주 맑고 길게 귓가를 울렸다.

“와아아아!”

빠르게 날아오던 포심 패스트볼을 대호는 작정하고 당겨 쳤다.

그러다 보니 짧은 잭슨 필드 담벼락을 훌쩍 넘어가는 대형 장외 홈런이 되었다.

“으아아! 해냈어! 슈퍼 보이가 해냈다고!”

조금 전 타석에 들어서던 대호를 불러 오늘도 홈런을 치라고 응원했던 팬은 엄청나게 흥분해서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 있던 팬들 중 뭐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팬들도 모두 그와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호는 이렇게 서른일곱 번째 타석에서 또 하나의 홈런을 만들어 냈다.

한편 시작부터 선두 타자에게 홈런, 그것도 경기장을 넘어가는 장외 홈런을 맞은 그레이트 레이크 룬스의 투수는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냥 홈런도 아니고 구장을 벗어나는 장외 홈런이다 보니 기가 확 풀려 버린 것이었다.

짝!

홈베이스를 밟고 들어오는 대호를 맞아, 대기 타석에 있던 로랜스 버틀러가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그러고 나서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대호의 앞에 랜싱의 선수들이 모두 나와 손을 내밀고 그를 환영해 주었다.

다다다다!

“윽! 누구야!”

대호의 대형 홈런에 환호하던 랜싱의 선수들 중 누군가 손바닥이 아닌 주먹으로 그의 헬멧을 두드려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호도 장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고.

따악!

그 순간, 대호의 장외 홈런으로 기가 눌린 투수의 공을 2번 타자인 로랜스가 기다리지 않고 받아쳤다.

2루수 키를 넘기고 우익수 앞으로 굴러가는 안타가 나왔다.

로랜스는 공을 치고 빠르게 스타트를 끊었다.

원래는 랜싱의 선두 타자였지만, 대호의 활약으로 이제 2번의 자리로 타순이 밀린 상황.

그러나 로랜스 역시 1번 타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지는 않은 선수였다.

즉, 타격 능력은 물론이고 발도 빠르다는 뜻.

촤아악!

“세이프!”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과 동시에 로랜스는 2루에서 세이프를 얻어 냈다.

물론 아슬아슬한 경합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대호의 홈런에 뒤이어 2번 타자가 2루타를 치며 또다시 득점권에 주자가 나간 상황으로 변했다.

노 아웃에 2루의 상황.

아직 선두 타자에게 홈런을 맞은 데미지가 회복되지 않은 투수, 이를 상대하는 타자는 한창 공격력이 살아나고 있는 브렛 헤리스였다.

0.412의 타율에 홈런도 2개나 때려낸 강타자다.

괴물 같은 기록을 보여 주고 있는 대호만은 못해도, 시즌 초반 4할을 치고 있는 브렛은 그레이트 레이크 룬스의 입장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타자였다.

그저 대호의 타율이나 OPS 등 세부 성적이 미친 것뿐.

‘할 수 있다. 로랜스도 득점권에 있어.’

속으로 자기 최면을 걸며 3번 타자 브렛 헤리스가 타석에 들어서자, 야수들의 움직임이 조금 변하는 게 포착되었다.

기존 수비 위치에서 조금 더 뒤로 물러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공을 던지는 투수가 이미 맛이 간 상태라는 것이 문제였다.

따아악!

투수가 던진 초구를 작정하고 배트를 휘두른 브렛 헤리스.

그가 휘두른 배트 중심에 맞은 공은 맑은 타격음을 울리며 그라운드 상공을 날아올랐다.

“와아! 또 홈런이야!”

딱 봐도 브렛의 타구는 홈런이었다.

백투백 홈런은 아니었지만, 랜싱 러그너츠는 1회 말 공격에서 3점을 먼저 획득했다.

더욱이 아직까지 아웃 카운트 하나 없는 노 아웃이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