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노 아웃 만루 상황에서 득점 없이 위기를 극복한 랜싱 러그너츠는 위기 뒤 찬스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1회 초에 힘도 써 보지 못하고 삼자범퇴로 물러난 것과는 다르게 선두 타자로 나간 4번 타자 마이클 골드버그가 데이튼 드래곤스의 선발 오스틴 킨스가 던진 4구 인코스 포심 패스트볼을 당겨 쳐 2루타를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 타자로 나온 5번 타자 패트릭 맥콜이 안타를 치면서 2루에 있던 마이클 골드버그를 3루로 진루시키고 본인도 1루에 안착을 하였다.
랜싱 러그너츠가 1회 말에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반대로 데이튼 드래곤스가 2회 초 무사 1, 3루의 위기에 처했다.
이에 데이튼 드래곤스의 포수 제임스 프리가 타임을 요청하고 마운드로 올랐다.
“오스틴, 침착해! 네 공은 위력적이야!”
“알았어, 내가 조금 긴장을 풀었나 봐.”
제임스 프리의 위로에 오스틴 킨스는 심호흡을 한차례 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였다.
그런 투수의 반응에 제임스 프리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솔직히 오늘 선발로 나온 오스틴 킨스는 자기애가 너무 강해 이런 상황에서는 조금 불안했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한 만큼, 좀처럼 주변의 조언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런 위기 상황에서까지 자신의 말을 무시하지는 않는 듯해 안심되었다.
팡!
“스트라이크!”
포수의 타임 요청이 적절했는지, 초구는 요청한 대로 잘 제구되어 날아왔다.
부웅!
퍽!
“스윙! 스트라이크!”
오스틴 킨스가 던진 두 번째 볼은 초구와 같은 코스의 체인지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랜싱 러그너츠의 6번 타자 셰인 셀먼은 이를 포심 패스트볼로 착각해 스윙을 했다.
하지만 포심 패스트볼과는 10마일이나 차이가 나는 체인지업으로 인해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외야 플라이만 쳐도 3루에 있는 마이클을 홈으로 불러들일 수 있어.’
그러다 보니 셰인 셀먼의 스윙 동작은 커져 있었다.
데이튼 드래곤스의 포수 제임스 프리는 이런 셰인의 심리를 깨닫고 이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몸 쪽 하이 패스트볼!’
눈높이로 오는 하이 패스트볼이라면 타구에 욕심이 많은 셰인 셀먼의 배트를 꺼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임스의 전략은 적중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임스 프리의 사인대로 오스틴이 몸 쪽 하이 패스트볼을 던지자, 셰인 셀먼이 힘차게 배트를 휘두른 것이었다.
완벽히 들어간 제구와 하이 패스트볼의 조합은 위력적이었다.
부웅!
펑!
“아웃!”
헛스윙을 한 뒤 자신이 데이튼 드래곤스 배터리에게 속았음을 깨달은 셰인 셀먼은 자신의 헬멧을 두드리며 반성을 하였다.
이런 모습을 대기 타석에서 지켜보던 대호는 눈을 반짝였다.
‘오호? 제법?’
오늘 선발로 나온 데이튼 드래곤스의 선발이 던지는 패스트볼의 타이밍을 잡던 대호는 흔들리던 투수를 적절한 타임 요청으로 바로잡는 포수의 모습에 흥미를 가졌다.
그리고 방금 전 타자를 속이는 투구를 하게 만든 모습을 지켜보며 데이튼 드래곤스의 포수가 재능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적이지만 잘하는데……?’
지금 마운드에 있는 데이튼 드래곤스의 투수보단 포수를 신경 써서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대호는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한편, 4번 타자와 5번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가자 랜싱 러그너츠의 더그아웃 분위기는 이전과 다르게 한껏 달아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노 아웃에 득점권 주자가 나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타순도 중심 타자인 6번 타자가 배터 박스로 들어선 상황.
랜싱 러그너츠의 6번 타자 셰인 셀먼은 득점권 찬스에 강한 타자다.
그라면 충분히 3루에 있는 마이클을 홈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헛스윙 삼진 아웃이었다.
이에 필립 폴 감독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기대를 했던 셰인 셀먼이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아웃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다음은 저 아시안이군.’
아시안에 대한 편견이 있는 필립 폴 감독으로서는, 득점권 기회에 기대했던 타자가 아웃이 되어 돌아오고 그 자리에 의심스러운 아시안(대호)이 타석에 들어가자 못내 불안했다.
‘잘할 수 있을까?’
아무리 오클랜드가 700만 달러나 주고 계약한 국제 유망주라고 하지만, 필립 폴은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았다.
물론 훈련 내내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시안은 태생적으로 백인이나 흑인 또는 히스패닉보다 내구력이 약해 언제 탈이 날지 몰랐다.
따아악!
대호가 타석에 들어가는 모습을 불안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을 때, 그라운드를 울리는 경쾌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벌떡!
필립 감독은 저도 모르게 일어났다.
타격음만 들으면 이건 의심할 것 없는 홈런이었다.
다른 생각을 하다 공을 때리는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 필립 폴 감독은 대호가 때린 타구를 눈으로 쫓았다.
“하!”
데이튼 드래곤스의 홈구장인 데이 에어볼파크의 구장 크기는 좌우측 폴대까지 길이가 98m고, 중앙 센터가 122m로 그렇게 크지 않은 구장이다.
그렇다고 하지만 방금 전 대호의 타구는 122m 중앙 담장을 훌쩍 넘긴 142m짜리 대형 홈런이었다.
대호의 대형 홈런으로 분위기는 급격하게 랜싱 러그너츠로 넘어왔다.
짝짝짝짝!
먼저 홈으로 들어온 마이클 골드버그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기를 하고, 또 뒤이어 들어온 패트릭 맥콜 역시 홈베이스를 밟고 옆에 섰다.
한편,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아 홈으로 들어온 대호는 자신을 환영하는 마이클과 패트릭의 모습을 보며 그들이 뻗은 손에 하이파이브를 했다.
짝! 짝!
“마이클! 그런데 사일런트 트리트먼트 안 하나요?”
자신의 홈런을 함께 기뻐하는 마이클 골드버그를 보며 물었다.
메이저리그의 오랜 전통인 침묵 환영은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마이너리그에서도 행해지고 있는 전통이었다.
신인의 데뷔 첫 홈런을 침묵으로 환영을 해주는 의식 같은 행위다.
하지만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데이튼 드래곤스를 상대로 친 개막전 첫 홈런이다 보니 이를 잊고 대호를 환영한 것이다.
“아차! 대호는 오늘이 데뷔지?”
훈련 중 팀 내 연습 경기에서 너무도 뛰어난 활약을 했던 대호다 보니, 마이클이나 패트릭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던 것이었다.
“뭐 어때? 이로써 우리가 3점 앞서간다!”
대호의 쓰리런 홈런으로 라이벌인 데이튼 드래곤스에 3점 앞서간다는 것 자체가 기쁜 패트릭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런 영향은 더그아웃에 있던 다른 랜싱의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와아아아!”
또한 오하이오까지 따라온 랜싱 러그너츠의 열성적인 팬들은 신인이 데뷔에서 홈런을 친 것에 열광을 하였다.
“대호는 데뷔 타석에서도 장난 없네요.”
타격 코치인 돈 슐츠는 조금 전 대호의 대형 홈런을 보며 필립 폴 감독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감독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없었다.
아시안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필립 폴 감독은 조금 전 대호가 친 대형 홈런에 놀라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대호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연이야!’
대호의 홈런을 우연의 산물이라 평가절하 하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 * *
오클랜드 슬랙스 단장실은 긴장감으로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개막전의 상대는 오랜 라이벌 중 하나인 LA데블스였기 때문이다.
오클랜드 슬랙스와는 같은 지구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어떻게 되고 있지?”
단장 조엘 헌트는 비서인 크리스 마틴에게 물었다.
“8회 말 원 아웃이고, 스코어는 3:3입니다.”
지금은 8회 말, 공격을 하고 있는 쪽은 홈팀인 오클랜드였다.
그런데 개막전이다 보니 오클랜드나 LA데블스 모두 1선발을 내보냈다.
하지만 양 팀 모두 선발은 6회까지 던지고 마운드를 불펜에 넘긴 상태다.
“흠, 잘하고 있군.”
크리스의 보고를 들은 조엘은 작게 중얼거렸다.
동점인 가운데 이를 잘하고 있다고 말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개관적으로 전력이 오클랜드가 라이벌인 LA데블스 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투수진이나 야수들 모두 LA데블스가 더 좋았다.
이는 작년 선수들 성적에서 알 수 있는데, 선발진은 자신들이나 LA데블스 모두 엇비슷하다.
하지만 마운드의 차이는 모두 불펜과 마무리에서 벌어졌다.
오클랜드 불펜의 평균 자책점은 3.84다.
그에 반해 LA데블스의 불펜 평균 자책점은 3.12로 오클랜드 보다 무려 0.72나 낮았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불펜에서 불을 지르지 않고 있었다.
“참! 랜싱에 있는 미스터 정이 마이너리그 데뷔 홈런을 쳤다고 합니다.”
“응? 누구?”
갑자기 마이너리그에 있는 선수가 데뷔 홈런을 쳤다는 소리에 조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게 누구냐고 물었다.
“벌써 잊으셨습니까? 700만 달러짜리 보너스 베이비 말입니다.”
“아, 정대호!”
700만 달러 보너스 베이비란 크리스 마틴의 말에 대호의 이름을 떠올린 조엘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오클랜드 역사상 국제 유망주 계약에서 최고 금액으로 계약한 선수를 잊고 있었다는 것에 조엘은 반성을 하며 눈을 반짝였다.
“데뷔 홈런을 쳤다고?”
야구 선수가 경기에서 홈런을 치는 게 특별한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면 얘기가 다르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조엘은 눈을 반짝이며 다음 이야기를 하라고 재촉하였다.
“아, 그래. 지금 정대호가 하이 싱글A인 랜싱 러그너츠에 있지?”
자신의 지시로 싱글A가 아닌 그보다 한 단계 높은 하이 싱글A로 보냈다.
그러니 대호의 성적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 없었다.
“조금 전에 경기가 끝났는데, 오늘 성적이 4타석 3타수 3안타 1홈런 이라고 합니다.”
크리스 마틴의 보고를 들은 조엘은 다시 한번 놀랐다.
첫 경기에 100% 출루율을 기록한 것이다.
그것도 홈런 한 개를 포함한 3안타를 치고, 볼넷까지 하나 걸러 내면서 네 번 타석에 들어서 모두 출루를 하였다는 말에 조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하이 싱글A도 대호에게는 너무 쉬운 리그인 것 같습니다.”
100% 출루율에 홈런과 안타를 뽑아낸 대호의 타격 능력을 보고하던 크리스 마틴은 자신의 생각을 상급자인 조엘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런 크리스의 의견에 조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크 케세이 감독도 대호의 재능이라면 당장 메이저리그에 가져다 놔도 0.270은 칠 것이라 하더군.”
“아! 케세이 감독이 그렇게 말했습니까?”
“그렇다니까! 나도 그 깐깐한 감독이 대호를 그렇게 평가할진 몰랐어.”
오클랜드 슬랙스의 감독 마이크 케세이는 스프링 캠프 기간 중 대호를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내면서 단장인 조엘에게 국제 유망주의 성과에 대해 보고하였다.
우선 수비 능력만 놓고 보면 현역 중앙 수비수 중 상위권에 속하고, 수비 범위는 최고라 했다.
뿐만 아니라 대호의 타격 능력 역시 지금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데려다 놔도 2할 후반 대 타율을 기록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야구를 가장 잘하는 이들이 모인 메이저리그에서 2할 후반이라면, 타자의 스타일에 따라 충분히 좋은 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넓은 수비 범위와 펜스를 살짝 넘는 홈런을 훔칠 수 있는 능력까지 감안한다면 당장 전력으로 써도 무방하리라.
그럼에도 대호를 마이너로 내려 보낸 것은, 선수의 보호와 대호의 기량을 좀 더 갈고닦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굳이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틴에이저를 무리하게 메이저리그로 끌어 올렸다가 그 재능이 빛도 발하기 전에 죽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크리스, 난 대호가 그저 그런 선수가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야. 다이아몬드… 보석 중에서도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거지. 그래서 마이너에서 좀 더 다듬길 원했던 건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시위하는 듯하군.”
“솔직히 저도 곧바로 데뷔 홈런을 칠 줄은 몰랐습니다. 마이크 감독의 말도 그렇고 이번엔 진짜배기인 것 같군요.”
“그래. 내 기대가 틀리지 않았어…….”
조엘 헌트는 크리스가 가져온 대호의 성적을 보며 웃음 지었다.
첫 데뷔 경기에서 4타석 3타수 3안타 1홈런.
그 뿐만이 아니라, 수비에서도 흔들리는 선발을 다독이는가 하면, 어려운 타구를 잡아 보살을 기록하며 부담을 덜어 주었다.
LA데블스와의 경기라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던 단장실이 유망주의 훈훈한 소식으로 인해 부드러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