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겨울동안 긴 잠에 빠졌던 야구 시즌이 돌아왔다.
메이저리그가 4월 1일 개막전을 치르고, 이에 맞춰 산하 마이너리그도 개막하였다.
당연히 대호가 소속된 하이 싱글A 팀인 랜싱 러그너츠도 개막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랜싱 러그너츠는 개막전을 원정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개막전에서 맞붙을 팀은 오하이오 데이튼 드래곤스.
오하이오 데이튼 드래곤스는 신시내티 레드스 산하 하이 싱글A 구단이었는데, 랜싱 러그너츠와는 전력상 비슷하다고 평가받는 구단이었다.
선발보단 불펜이 좋고, 또 마운드보단 타격이 좋은 팀이다.
랜싱 러그너츠도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타격보다 야수들의 수비가 좋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비슷하면서 또 다른 두 팀은 서로 라이벌 의식이 있는 팀이기도 했다.
“작년 마지막 경기처럼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놈은 바로 교체해 버릴 거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해. 알겠어!”
필립 폴 감독의 경고는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듯, 조금 전 언급한 작년 마지막 경기에서 실수했던 패트릭 맥콜을 노려보았다.
필립 감독은 그날만 생각하면 속으로 열불이 치솟았다.
‘기껏해야 유격수 앞으로 굴러온 평범한 땅볼이었는데.’
하지만 마지막 경기란 것 때문인지, 아니면 퇴근 본능이 일찍 깨어난 것인지, 패트릭 맥콜은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의 앞으로 굴러오는 공을 뒤로 빠뜨려 버렸다.
평범한 더블 플레이가 되었어야 할 공이 유격수 에러로 인해 뒤로 빠지는 바람에 3루 주자는 홈으로 들어가 득점을 하고, 아웃이 되었어야 할 1루 주자와 타자가 살았다.
그리고 실책 하나가 스노우 볼처럼 굴러가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찾아오게 된 1, 3루 위기 상황.
뿐만 아니라 끝났어야 할 게임이 계속되었고, 수비가 불안하다 보니 투수 역시 자신이 게임을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투구에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데이튼 드래곤스의 마지막 타자한테 쓰리런을 맞았지…….’
게임 결과는 8:7.
야구광이었던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케네디가 가장 재미있는 야구 스코어라고 말한 점수대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자신들의 안방인 잭슨 필드에서 말이다.
팬들 앞에서, 그것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역전패를 당한 것 때문에 랜싱 러그너츠 감독인 필립 폴은 한동안 외부 활동을 멈췄다.
메이저리그만은 못 하지만 마이너리그 팬들도 극성맞긴 마찬가지였으니까.
이러한 기억 때문인지 선수들을 노려보는 필립 폴 감독의 눈빛은 차갑게 번뜩였다.
“이만 나가 봐!”
자신의 할 말이 끝나자 냅다 고함을 지르는 필립 감독의 행태에 대호는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안기준이 생각나는 사람이네. 보면 볼수록…….’
선수들에게 기합을 넣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자신의 기분을 풀기 위해 선수들을 윽박지르며 고함을 치는 감독에게서 대호는 영광고 야구부 코치인 안기준을 떠올렸다.
지금이야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지만, 사실 재작년까지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아니, 회귀를 하기 전 첫 번째 삶에서는 정말이지 자신을 야구부에서 쫓아내기 위해 존재하는 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내가 안기준한테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이미 2회차에 복수를 한 번 했기 때문일까.’
대호는 KBO 프로구단에 입단하고 당당히 성공을 거둔 뒤, 고등학교 야구부 시절 안기준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폭로를 했다.
대호가 학생 시절 수석 코치였던 안기준은 조금산 감독의 은퇴 이후 막 영광고 야구부 감독의 자리에 오른 상태였다.
그러나 대호의 폭로로 인해 안기준의 과거가 탈탈 털리자, 야구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했다.
또한 학부형들로부터 청탁을 받은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벌금은 물론이고, 부인에게 이혼당하고 자식들과의 인연까지 완전히 끊겨 버렸다.
‘확실히 밟아 줬으니까 그 이후로는 그냥 넘어가 준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매번 복수를 했을 거야.’
그런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을 목표로 하는 대호의 앞에 안기준 코치와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필립 폴 감독이 나타나자,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해 기분이 좋지 못했다.
‘확실히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야.’
필 잭슨이 나름대로 그에 대한 변호를 했었지만, 한 번 첫인상이 좋지 못하게 박힌 이상, 대호에게는 모든 것이 나쁘게만 비춰졌다.
* * *
데이튼 드래곤스의 선발 오스틴 킨스는 자신의 특기인 95마일 패스트볼을 가지고 랜싱 러그너츠의 1번 타자인 로랜스 버틀러를 상대했다.
팡!
“스트라이크!”
초구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93마일이 기록된 초구 패스트볼을 보자 로랜스 버틀러는 이를 악물었다.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아 제대로 배트를 휘두르지 않은 걸 후회했기 때문이다.
탁탁!
‘젠장, 저쪽도 아직 몸이 덜 풀렸군. 좋은 공을 놓쳤어.’
로랜스는 헬멧을 툭툭 치고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부웅!
팡!
“스트라이크!”
다시 한번 스트라이크가 선언되었다.
두 번째 공이 같은 코스로 날아오자, 로랜스는 이를 끝까지 보지 않고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투수가 던진 볼은 처음 던진 것처럼 패스트볼이 아니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슬라이더였다.
각은 크지 않았지만, 초구 패스트볼과는 8마일이나 차이가 나는 85마일짜리 슬라이더였기에 로랜스는 이를 맞추지 못하고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뿌득.
볼카운트는 순식간에 투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노 볼 투 스트라이크가 되어 버렸다.
“로랜스, 침착해!”
1번 타자인 로랜스 버틀러와 친한 선수들이 그를 응원해 봤지만, 뒤에 앉아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대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1번 타자가 저렇게 성격이 급하다니, 그래서 고작 하이 싱글A인건가?’
이곳 랜싱 러그너츠가 하이 싱글A라고 하지만 대호는 싱글A와 하이 싱글A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랜싱 러그너츠의 1번 타자인 로랜스 버틀러는 설마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다시 패스트볼을 던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방금 전처럼 유인구가 날아올 거라고 예상해 기다렸다.
하지만 데이튼 드래곤스의 선발 오스틴은 공격적으로 안쪽 패스트볼을 꽂아 넣었다.
자신의 최고 구속인 95마일을 기록하며 시작부터 공격적으로 피칭을 하였다.
“와아아아!”
이곳 데이튼 드래곤스의 팬들은 상대 선두 타자가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삼구 삼진을 당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자 크게 환호했다.
경기 시작부터 선두타자가 삼구삼진을 당하고 돌아오자, 경기 전 굳어 있던 필립 폴 감독의 표정은 더욱 차갑게 굳었다.
그 때문에 랜싱 러그너츠의 더그아웃 분위기는 장례식장처럼 조용해졌다.
“아웃! 공수 교대.”
삼구 삼진을 당한 선두 타자부터 3번 타자인 브렛 헤리스까지 아웃을 당하기까지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았다.
1번 타자 로랜스 버틀러가 삼진으로 물러나고 2번 타자인 질렌 그리어가 2구째에 유격수 앞 땅볼로 아웃되며 순식간에 상황은 투 아웃.
1회 초 마지막 타자로 들어선 브렛 해리스는 신중하게 데이튼 드래곤스의 선발 오스틴의 공을 끝까지 지켜보며 승부를 했지만, 그 역시 아직 몸이 덜 풀리고 오스틴의 공에 익숙해지지 못한 것인지 스윙에 힘이 100% 실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브렛이 친 타구는 워닝 트랙을 지나 펜스 앞에서 잡히고 말았다.
너무도 아까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랜싱 러그너츠의 1회 초 공격은 삼자범퇴로 끝나고 공수가 교대되었다.
랜싱 러그너츠의 선발은 개럿 액튼이었다.
93마일의 포심 패스트볼과 81마일의 커브를 가지고 있는 투 피치 투수다.
빠른 공과 느린 변화구의 이상적인 속도를 가진 투수이기는 하지만, 그의 약점은 투 피치라는 것이다.
여기에 횡으로 변하는 변화구만 하나 더 있다면 지금 보다 상위 리그에서 공을 던질 수 있겠지만, 투 피치만으로는 하이 싱글A 보다 위로 올라가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팡!
“스트라이크!”
개럿 액튼이 선택한 초구는 포심 패스트볼로, 타자의 안쪽에 파고들었다.
오늘의 주심은 스트라이크 존이 후한 것인지, 반 개 정도 벗어난 공이었음에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려 주었다.
따악!
첫 번째 공이 안쪽 스트라이크가 되자, 개럿은 이번에는 바깥족 패스트볼을 던졌다.
하지만 이를 기다렸다는 듯 데이튼 드래곤스의 선두 타자는 그대로 밀어져 1루수 키를 넘겨 버렸다.
선두 타자부터 안타를 쳐내며 진루에 성공한 데이튼 드래곤스, 그들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연속해서 안타를 치고 나갔다.
“와아아! 랜싱 따위는 밟아 버려!”
데이튼 드래곤스의 팬들은 개막 경기부터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 연속해서 안타를 치고 나가자 크게 환호했다.
1회 초 수비도 그렇고, 1회 말 공격에서도 데이튼 드래곤스 타자들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연속 안타를 치고 나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모두 단타라는 것뿐.
그렇기에 3연속 안타를 치고도 득점 없이 만루에 만족해야 했다.
‘…이거 좋지 않은데?’
대호는 1회의 진행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인지, 랜싱 러그너츠의 선발 개럿을 비롯한 내야 수비수들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러까지는 아니었지만, 조금만 침착하게 대응을 했다면 충분히 아웃을 잡아낼 수 있던 공조차 잡아내지 못했다.
“헤이, 개럿! 왜 그리 움츠려 있어요?”
보다 못한 대호가 큰 목소리로 선발인 개럿 액튼을 부르며 소리쳤다.
“개막전을 책임진 1선발이잖아요.”
개럿에게 당신이 랜싱 러그너츠의 1선발이라고 고함을 지른 대호는 자신의 가슴을 한 손으로 두드리면서 강한 액션을 취했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개럿 액튼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연속된 안타로 움츠려 있었던 그의 머릿속에 번쩍 번개가 쳤기 때문이다.
‘그래, 난 러그너츠의 1선발이야!’
마이너리그 1선발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마는, 그냥 선발투수와 1선발은 그 느낌부터 달랐다.
대호로부터 이러한 지적을 당한 개럿은 정신을 차리곤 집중해 공을 뿌리기 시작했다.
펑!
조금 전까지 타자들을 향해 던지던 공과는 상당히 차이가 나는 공이 포수의 미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개럿이 던진 공의 위력이 달라서였을까?
주심의 콜에 힘이 들어간 듯 선명하게 들렸다.
퍼엉!
“스트라이크!”
주자 만루 상황이다 보니, 다시 투구 폼이 바뀐 개럿의 공은 상당히 위력적으로 들어갔다.
정신을 차린 개럿 액튼의 공은 타자들이 치기에 꽤나 까다로웠다.
“아웃!”
공격적인 개럿의 투구에 타자는 유인구가 없다 판단하고 바로 스윙을 가져갔지만, 공은 배트를 피해 포수의 미트에 박혔다.
이제 겨우 원 아웃이 되었지만, 넘어갔던 분위기는 다시 균형을 이룬 듯 보였다.
팡!
“스트라이크!”
‘빌어먹을!’
데이튼의 5번 타자는 개럿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포심 패스트볼을 던진다는 사실을 알고 스윙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 스윙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다.
아니, 스윙이 성급한 것이 아니라 개럿의 재구가 그리 좋지 못했다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다.
인코스 무릎 높이로 날아들던 포심 패스트볼은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허리 높이로 왔다.
보더 라인을 공 하나 정도 벗어난 볼이었다.
그러나 스트라이크라고 판단한 타자가 스윙을 하는 바람에 초구 스트라이크를 따낼 수 있었다.
“후!”
그러나 개럿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2구를 바깥쪽으로 빠지는 유인구를 던지려 했지만, 횡으로 휘는 변화구가 없는 개럿은 느린 커브를 바깥쪽으로 던졌다.
그런데 바깥으로 빠져야 할 공이 안쪽으로 몰리면서 가운데 어중간한 커브 볼이 되고 말았다.
따악!
다행이라면 빗맞은 타구가 느리게 날아갔다는 점.
타다다닷!
중견수 위치에 있던 대호는 공이 맞는 소리를 듣고 바로 뛰기 시작했다.
‘내가 잡는다.’
타구는 내야를 살짝 넘어갔고, 소위 바가지 안타를 만들어 내는 코스였다.
수비를 하던 2루수 키를 넘긴 타구는 언제 달려온 것인지, 일찍 스타트를 끊은 대호의 글러브 안으로 들어갔다.
퍽!
허리를 깊이 숙여 최대한 그라운드와 수평을 이루며 공을 받아낸 대호는 달리던 그대로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 2루로 토스했다.
괜히 가까운 거리에서 송구를 했다가 2루수가 공을 놓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공을 잡기 위해 달리다 앞으로 달려오는 대호의 모습을 확인하고 사고가 날까 피한 로렌스 버틀러는 바로 자신의 수비 위치인 2루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런 로렌스의 판단은 너무도 정확했다.
“어?”
감탄도 잠시, 그는 재빨리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 1루로 던졌다.
팡!
“아웃!”
2루로 달리던 주자가 뒤늦게 귀루를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
“쓰리 아웃! 체인지.”
무사 만루에서 삼진과 보살이 연속해서 나오면서 점수를 주지 않고 공수 교대를 만들어 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