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웅성웅성!
운동선수에게 어떤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느냐 물어본다면, 백이면 백, 운동을 끝내고 먹는 식사 시간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곳 오클랜드 슬랙스의 스프링 캠프에 온 선수들도 모두 마찬가지인 듯했다.
“대호, 오늘도 정말 대단했어!”
“젠슨, 너무 추켜세울 필요 없어.”
젠슨은 입에 스테이크 조각을 욱여넣으면서 대호를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비면 수비, 공격이면 공격,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대호의 활약을 보면 그 누구라도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젠슨은 평소보다 더욱 열렬히 칭찬을 했는데, 오늘 그가 7회와 8회에 마운드에 올라 대호의 덕을 봤기 때문이다.
7회는 삼진 하나, 유격수 앞 땅볼, 그리고 2루수 정면으로 온 공.
이렇게 삼자범퇴를 하며 좋은 출발을 거뒀지만, 8회에 1아웃을 잡고 나서 위기가 왔다.
‘피터 존스, 욘 헤그리드. 그 녀석들은 대호와 비교하면… 어휴.’
분명히 쉬운 타구였는데, 피터 존스는 헛손질을 해서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욘 헤그리드 또한 평범한 플라이를 제대로 받아 내지 못해 1, 3루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뭐, 그 두 번의 에러 때문에 멘탈이 흔들린 나도 잘한 건 없지만…….’
젠슨은 연속해서 평범한 타구에 에러가 발생하자, 순간 정 가운데로 실투를 던져 버렸고, 타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깡! 하는 소리가 들렸을 때만 해도 젠슨은 큰 걸 얻어맞았구나 하고 주저앉았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분명 홈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타구는 펜스를 밟고 뛴 대호의 글러브에 들어갔고, 거기에 멈추지 않고 곧바로 송구를 하는 게 아닌가.
그 덕에 더블플레이를 잡아낼 수 있었다.
“대호, 그런 말은 하지 마. 연습 경기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잖아? 솔직히 오늘 멘탈 흔들린 것도 코치진들은 마이너스 점수를 매겼겠지. 그렇지만 더 망가지지 않고 이닝을 마무리한 건 네 덕분이야.”
그러면서 젠슨은 한마디 덧붙였다.
“넌 분명 메이저로 금방 올라올 수 있을 거야. 오늘 그 타구 판단만 봐도 알 수 있어.”
대호는 쑥스러움에 머리를 긁적였다.
젠슨이 자신을 칭찬한 거야 몇 번 있던 일이지만, 이렇게 확신 넘치는 모습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좋은 녀석이네, 젠슨.’
예전에도 그랬지만,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는 은근히 약한 모습을 보여 주는 대호였다.
‘…상태창이나 한번 볼까?’
<상태창>
이름 : 정대호(18)
국적 : 대한민국(ROK)
성별 : 남
투타 : 투(우) 타(우)
레벨 : 62
힘 65
민첩 56
체력 53
지능 50
정신 59
순발력 55
컨택 52
내구력 40
보너스 포인트 : 2
퀘스트 : 일일 퀘스트(1)
재능 : 평원을 달리는 전령, 목인방의 통과자, 내가 홈런왕이다(Lv.3), 그라운드의 대도(Lv1)
작년 10월 중순부터 이번 스프링 캠프를 대비해 훈련을 한 결과 레벨은 2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스탯.
힘과 지능을 제외한 모든 스탯을 2~3포인트 정도 상승한 게 큰 성과였다.
‘지능은 따로 포인트를 투자하지 않거나 재능을 획득하는 게 아니면 올릴 수 없으니까 상관없는데, 힘이 안 오른 건 조금 거슬리네.’
지금껏 꾸준히 훈련을 했음에도 전혀 성장하지 않은 스탯을 보자 마음 한구석이 조금 심란했다.
‘…보너스 포인트로 올려야 하나?’
하지만 그러기에는 왠지 스탯 포인트가 아까웠다.
사실 대호도 스탯이 60 포인트를 넘기 시작하면 단순한 훈련만으로는 쉽게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달성하지 못한 재능 타이틀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리자, 쉽게 힘 스탯에 손이 가지 않았다.
‘하… 초반에 힘에 집중하자는 전략이 잘 통했으니까 여기 있는 건데, 이제 와서 배부른 소리긴 하네.’
대호가 회귀하게 된 시점은 고등학교 2학년 말.
더군다나 만년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떨거지 신세였다.
그러다 보니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할 필요가 있었고, 레벨 업을 통해 얻은 보너스 포인트를 아낄 여유 따윈 없었다.
지금의 성과는 모두 그때 아낌없는 투자를 실천했기에 얻은 것이었지만, 막상 훈련으로 쉽게 성장할 수 없는 레벨이 되자 아까워지는 게 인간의 본성인 듯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
만약 대호가 미래를 대비한다는 생각으로 아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광영고와의 첫 시합에서 스카우터의 눈에도 띄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그 이후로도 관심을 계속해서 끌기 위해 보너스를 모으는 족족 재투자했으니 지금의 상황도 당연한 결과였다.
“어이, 대호?”
깊은 고민에 빠진 대호는 눈앞의 젠슨이 부르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스탯에 포인트를 분배해야 할까?’
대호는 보너스 포인트 2를 모두 민첩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힘은 분명 올릴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리라 믿고.
<상태창>
이름 : 정대호(18)
국적 : 대한민국(ROK)
성별 : 남
투타 : 투(우) 타(우)
레벨 : 62
힘 65
민첩 58
체력 53
지능 50
정신 59
순발력 55
컨택 52
내구력 40
보너스 포인트 : 0
퀘스트 : 일일 퀘스트(1)
재능 : 평원을 달리는 전령, 목인방의 통과자, 내가 홈런왕이다(Lv.3), 그라운드의 대도(Lv1)
공, 수, 주에 모든 영향을 미치는 스탯이 민첩이고, 다른 스탯과의 연계 또한 뛰어났기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아직도 메이저리그 평균보다는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일단 이 정도로도 변화는 생기겠지.’
“이봐, 대호!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툭툭.
젠슨은 밥을 먹다 말고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는 대호를 다시 한번 부르며 어깨를 툭툭 쳤다.
“응?”
그제야 밥을 먹다 말고 상태창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대호가 급히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 미안! 내가 좀 피곤했나 봐. 밥 먹다 말고 졸았네. 하하하!”
대호는 어물쩍거리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젠슨, 방금 혹시 뭐라고 했어?”
평소와는 다르게 너스레를 떠는 대호를 본 젠슨은 잠시 굳어 있다가 어깨를 들썩이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그렇게 한참을 웃던 젠슨은 식당 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렸음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너도 사람이었구나?”
“뭐? 사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넌 지금까지 날 뭐라고 생각했는데?”
대호는 갑작스런 젠슨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자신이 급하게 꾸며 낸 말에 돌아올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자신이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은 지금까지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얘기이니,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젠슨에게 듣고 나서 충격을 받은 대호였다.
“그렇잖아. 네가 지금까지 어땠는지 알아? 내가 보기엔 말야…….”
한참을 자신이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는 젠슨의 말을 듣던 대호는 깜짝 놀랐다.
‘와, 젠슨 입장에서는 이런 느낌이었구나? 내가 생각해도 사람이 아닌 것 같긴 하네.’
쉬지 않고 훈련을 한 건 물론이고, 그 강도 또한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 온 훈련 루틴을 바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목표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
대호는 전에 언급했던 목표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를 했다.
“어영부영. 애매하게 기회를 써 가면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건, 내 능력으로 받는 게 아니라 그냥 공로상 같은 느낌이야. 하지만!”
“하지만?”
“첫 턴. 첫 턴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날 명예의 전당에 헌액한다면 그땐 내가 정말로 야구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
“아!”
대호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젠슨은 너무 놀라 탄성을 질렀다.
‘전에도 들었지만 생각하는 거 자체가 나와는 달라!’
젠슨은 속으로 또 한 번 반성 했다.
물론 그는 이전에도 대호의 목표를 듣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저 목표만 듣는 게 아니라,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알게 되자 자신과 대호 간의 목표 의식 자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 있었구나?”
대화를 나누고 있던 대호와 젠슨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코치님, 어서 오십시오.”
대호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 사람은 수석 코치인 그렉 헥슬러였다.
“그래, 음식은 마음에 드나?”
수석 코치인 그렉은 가벼운 질문을 건넸다.
“예. 스테이크에 기름기가 좀 많기는 하지만, 야채와 함께 먹고 있으니 먹을 만 합니다.”
메이저리거들이 먹는 스테이크는 최고급 고기로만 준비되어 조리된다.
하지만 아무리 최고 등급의 미국 소고기라고는 해도, 한국인인 대호의 입맛에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버터를 이용해 부족한 지방질을 채우다 보니, 소고기 자체의 풍미가 그렇게까지 좋다고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하, 그런가?”
“예,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한우를 대접하고 싶네요. 1++ 등급으로…….”
“아, 한우! 나 그거 들어 봤어. 그쪽 소고기가 그렇게나 맛있다며?”
트리플A 리그에서 함께 생활하다가 느닷없이 한국 프로야구 리그인 KBO로 가 버린 친구의 말이 떠오른 젠슨이 끼어들었다.
“그럼. 이건 내가 확실하게 말해 줄 수 있어. 소고기 중 최고는 한국의 한우야!”
대호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보는 젠슨에게 그런 말을 해 주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나도 어떻게 안 될까?”
젠슨은 옛 친구가 말한 한우를 맛볼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말을 건넸다.
‘허, 참. 젠슨은 아직 눈치 못 챘나 보군.’
그렉 헥슬러는 방금 전 대호의 말이 인사치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역시 KBO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우가 맛있다고는 해도 그건 한국에서 사 먹었을 때의 얘기, 이곳 미국까지 냉동되어 오는 동안 특유의 마블링 맛은 대부분 사라지리라.
“하핫, 알았어. 젠슨 너도 기회가 되면 먹게 해 줄게.”
대호는 인사치레를 곧이곧대로 듣는 젠슨이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는 진심으로 말을 건넸다.
“그런데 코치님, 무슨 일로 절 찾으셨나요?”
두근!
그렉 헥슬러 수석 코치가 자신을 찾아온 것이 그렇게 좋은 의미는 아님을 알고 있다.
3회차에 스프링 캠프에서 코칭스태프가 훈련 시간이 아닌 때에 찾아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감독님께서 저녁 식사 끝나고 좀 보자고 하신다.”
“아!”
한참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던 젠슨도 이 말에 짧게 탄성을 지르고 입을 닫았다.
“알겠습니다.”
대호 또한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하고 손을 내렸다.
사실 대호는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수석 코치인 그렉 헥슬러가 쓸데없이 선수들이 쉬는 시간에 찾아올 이유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투수나 포수였다면 상황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클랜드의 마운드는 그렇게 단단하지 못하다.
그렇기에 스프링 캠프에 초청된 마이너리거라도 특별한 실수나 준비가 덜 되지 않은 이상 3월 시범경기까지 데려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야수는 달랐다.
야수의 티오는 정해져 있고, 대부분 기존 25인 로스터를 중심으로 메이저리그에 가까운 40인 확장 로스터, 그리고 다음 순위로 마이너 유망주를 살핀다.
그러다 보니 대호와 같이 처음 스프링 캠프에 초청된 유망주가 가장 먼저 스프링 캠프를 떠난다.
‘조금만 더 있었다면 레벨을 하나 더 올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대호는 그렉 헥슬러 수석 코치가 온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다만 메이저리거나 AAA에 속한 상위 리거들을 보다 많이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또 하나는 앞으로 레벨을 쉽게 올리기 힘들어질 거라는 점.
“몇 시까지 가면 됩니까?”
대호는 저녁 식사 후라는 말에 정확한 시간을 물어보았다.
“8시까지 가면 될 거다.”
“8시까지, 알겠습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