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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36화 (36/209)

36화

오클랜드 슬랙스의 스프링 캠프 첫날 훈련이 끝났다.

선수들의 훈련은 끝났지만, 코칭스태프들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두 저녁 맛있게 먹었나?”

저녁을 먹고 방에 모인 오클랜드의 코치들을 보며 마이클 케세이 감독이 물었다.

씨익.

‘오늘 감독님, 기분이 꽤나 좋아 보이시는군.’

만면에 가득한 미소를 보며 코치들은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가벼운 인사말이 오가며 밝았던 것도 잠시,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코지들의 표정 역시 점점 진지해졌다.

그러던 와중, 폭탄이 터졌다.

“참, 미셀 가르시아는 내일부터 미들랜드에 있는 스프링 캠프에 참가할 테니, 다들 알아 두도록!”

마이크의 말에 순간 회의장 안은 정적이 흘렀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언급한 미들랜드는 오클랜드 슬랙스 산하 AA구단인 락하운즈가 있는 곳이었다.

즉, 미셀 가르시아가 마이너리그 스프링 캠프로 쫓겨났다는 뜻이었으니까.

웅성웅성.

코칭스태프들이 마이크의 단호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을 때였다.

“아주 내려간 겁니까?”

혼자 평온을 유지하고 있던 수석 코치인 그렉 헥슬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맞아. 음, 아마도 스프링 캠프가 끝나기 전에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 되거나 웨이버 공시를 할 거야!”

이번에는 그렉 헥슬러 수석 코치조차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스프링 캠프 중에 문제를 일으켰고, 또 시즌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지만, 메이저리거인 미셀 가르시아를 곧바로 웨이버 공시 했다간 자칫 선수 협회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좀…….”

이곳에 있는 코치들도 모두 메이저리그 선수 출신들이었기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음을 언급했다.

하지만 감독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건 프런트에서 해결할 문제지.”

심각한 표정의 코치들과 다르게 마이크 케세이 감독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아마 골칫거리인 미셀 가르시아를 처리할 방도가 생겼기 때문임이 분명하리라.

― 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혹시 찍어 둔 훈련 동영상 같은 건 없나?

마이크는 조엘 헌트 단장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사실 미셀 가르시아는 야구를 직업으로써 삼는 프로의 태도를 전혀 보여 주지 못했다.

스프링 캠프 대비도 되어 있지 않고, 더군다나 워크에식도 부족했으니까.

‘사실 조엘의 입장에서 조금 무리한 일일지도 몰랐는데… 메일로 보내 주자마자 답을 주다니, 깜짝 놀랐어.’

― 하아… 이놈은 작년에 그런 꼴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군. 마이크, 걱정 마. 이런 일을 처리하라고 프런트가 있는 거 아니겠어?

썩은 사과를 과일 바구니 안에 담고 있으면, 주변에 있는 것들까지 한 번에 썩어 버리는 건 당연지사.

그러니 최선은 그를 다른 구단에 팔아 버리는 것이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마이너리그로 보내 버려야 한다.

‘하지만 저놈이 마이너리그에 내려가서 끼칠 해악을 생각하면 솔직히 그것도 차선이 아니야.’

단장인 조엘 헌트는 그렇기에 프로 선수에게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웨이버 공시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는 구단에서 해당 선수에 대한 권한을 포기하는 것으로, 이때는 트레이드 비용 없이 다른 구단에서 선수를 데려갈 수 있다.

한 마디로 구단으로써는 큰 손실을 떠안고 선수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다는 소리였다.

‘…그렇지만 멀쩡한 선수를 왜 웨이버 공시 처리했을까에 대한 소문은 다른 구단에도 퍼질 테고, 미셀 가르시아 그놈도 제대로 된 팀을 구하긴 힘들겠지.’

그렇더라도 작년 시즌 전반기에 충분한 몫을 했던 선수이기에 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데려가는 팀은 나올 수 있었다.

물론 그 대우는 지금보다 훨씬 못 하겠지만.

“미셀 가르시아에 관한 것은 이쯤으로 마무리하고… 오늘, 어땠나?”

그렇게 불성실한 선수에 대한 처리를 마무리한 마이크와 코칭스태프들은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아연한 표정이 되었던 그렉 헥슬러 수석 코치와 나머지 인원들도 자신들이 오늘 지켜본 선수의 상태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 * *

대호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깐 소화를 시키기 위해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정해진 루틴을 따라 훈련을 시작했다.

위잉! 위잉!

빈 허공에 배트를 휘두르고 있지만, 만약 투수가 이걸 지켜보고 있다면 감히 자신 있게 공을 던질 수 없을 정도로 매서운 스윙이었다.

“오우! 대호, 벌써 야간 운동 시작이야?”

스프링 캠프 이전부터 함께 운동을 했던 젠슨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휘이잉!

하지만 스윙 연습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대호는 이를 듣지 못했다.

자신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집중해 스윙을 하고 있는 대호를 보며 젠슨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프링 캠프 첫날인데, 대호는 흥분도 되지 않나 보군.’

젠슨은 자신이 처음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에 초청 받아 이곳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동경하던 메이저리거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자 흥분해 정신이 없었다.

그 때문에 루틴도 잊어 먹고 훈련에 집중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너리그로 쫓겨났다.

그리고 그건 자신뿐만 아니라 스프링 캠프를 처음 접하는 초청 선수 대부분이 그러하였다.

‘맞아. 그렇지 않고 자신의 루틴을 지키고 꾸준한 노력을 했던 이들은 나처럼 뒤늦게 올라온 게 아니라 빠른 속도로 메이저리그에 콜업 되었지.’

젠슨은 과거 자신의 경험과, 또 비슷한 시기에 입단했지만 먼저 메이저리그에 올라간 선수들의 면면을 떠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분명 대호, 저 녀석은 빠른 시일 내에 메이저리그로 콜업 될 거야.’

대호가 한 번, 한 번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 매우 집중해서 훈련하는 것을 보자, 젠슨도 뭔가 느끼는 것이 있었다.

‘나도 올해는…….’

그동안 젠슨도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래서 계약 4년 차에 AAA가 되었고, 또 40인 확장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솔직히 40인 확장 로스터에 이름이 오른 뒤 부터는 조금 나태해지기도 했지.’

40인 로스터에 드니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이 계약한 곳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페이 롤이 작은 오클랜드 슬랙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비싼 선수는 잘 보유하지 않고,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를 시킨다.

한마디로 재능 있는 유망주를 키워 어느 정도 활용을 한 뒤, 부담이 되기 전 비싼 가격에 다른 구단에 팔아 그 차익으로 구단을 운영을 한다는 소리다.

그러니 젠슨과 같은 AAA를 초월한 실력이라고 불리는 선수나, 40인 확장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에게는 기회가 많은 구단이기도 했다.

‘반성해야겠군. 프로 무대에는 처음 서는 대호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가 뭐라고 그동안 놀았을까? 사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간 선수들은 다 나보다 배로 열심히 훈련할 텐데 말이야.’

젠슨은 대호 덕에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그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리라.

팡! 팡!

대호로 인해 자신을 뒤돌아본 젠슨은 집중해 스윙 연습을 하는 대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섀도 피칭을 하기 시작했다.

휘잉!

팡!

오클랜드 슬랙스 구단이 머무는 코스타 메사 호텔 옥상은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한 마이너리거들의 훈련 열기로 뜨거워졌다.

* * *

오클랜드 슬랙스의 코칭스태프가 스프링 캠프 장소인 애리조나 메사에서 훈련 스케줄을 논의하고 있을 때, 단장인 조엘 헌트는 점심 때 날아든 마이클 케세이 감독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들에 전화를 돌렸다.

감독이 요구한 것은 오클랜드의 주전 외야수 중 한 명인 미셀 가르시아에 대한 트레이드 요구.

솔직히 트레이드를 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다만 그 시기가 문제였다.

스프링 캠프가 시작되는 오늘, 곧바로 미셀 가르시아를 트레이드 시키라는 요구가 들어오자 조엘 헌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렇지만 감독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형편없는 워크에식을 가진데다가, 캠프 첫날 바로 사고를 친 미셀 가르시아는 어떻게 해서든 처리를 해야 하고, 분노한 마이크 역시 달래 줄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셀 가르시아와 정대호가 충돌을 했다고?’

다만 조엘이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두 사람의 충돌과 관련된 것이었다.

아무리 미셀 가르시아가 워크에식에 문제가 워크에식에 문제가 있는 미셀 가르시아라 하지만 그는 베테랑이었다.

그에 반해 대호는 그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유망주일 뿐이다.

즉, 두 사람은 전혀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뜻.

한마디로 문제를 일으킨 미셀 가르시아뿐만 아니라 베테랑과 싸운 대호에 관해서도 트레이드, 혹은 마이너리그로 쫓아낼 명분이 감독에게 있었다는 이야기다.

‘분명 그럴 텐데 마이크는 미셀 가르시아 하나만 처리하라고 했단 말이지.’

피식.

‘정대호가 내 생각보다도 더 감독의 마음에 든 모양이군. 사소한 트러블, 기강 잡기 따위는 무시할 정도로…….’

“크리스! 잠시 와 봐!”

한참을 궁리하던 조엘은 자신의 비서인 크리스 마틴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보스.”

메이저리그가 경기를 하지 않는 이 시기, 바로 프런트가 가장 바쁠 때였다.

새로운 시즌 준비도 해야 하고, 또 코칭스태프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줘야 하는 시기였기에 그러했다.

“연락 온 곳 있나?”

다른 것을 물어보기 전, 조엘은 미셀 가르시아의 트레이드에 응한 구단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직 연락 온 곳은 없습니다.”

크리스 마틴은 오후에 감독의 연락을 받은 단장 조엘의 지시로 각 구단에 미셀 가르시아에 대한 트레이드 의향을 전달했다.

가장 우선시해서 연락한 곳은 작년 2030시즌에 중견수 포지션이 무너진 콜로라도 락키즈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연락한 곳은 콜로라도와 비슷하게 외야가 무너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스.

이 두 구단은 오클랜드처럼 후반기 동안 외야 포지션에 구멍이 생겼는데, 오클랜드에선 시몬 몬데스란 새로운 선수가 등장하면서 자리를 잘 메운 것과 다르게 마이너리그에서 콜업 한 대체 선수가 자리를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

그렇다고 시즌 후반기에 비싼 값을 지불하고 구멍 난 포지션을 땜빵하기 위해 트레이드를 감행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그래서 조엘은 우선해서 콜로라도와 애리조나 구단에 연락을 넣은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 구단 모두 연락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구단에 연락을 돌리기는 뭔가 손해를 보는 것 같아 일단 생각은 뒤로 미루었다.

“크리스, 자네 생각은 어때?”

“네? 뭐 말씀이십니까?”

느닷없는 상급자의 질문에 크리스는 눈만 깜박거리며 물었다.

“미셀 가르시아 말이야!”

“아… 그놈 말이군요.”

크리스 마틴은 단장인 조엘의 말에 대답을 하기 전 한숨을 쉬었다.

“뭐야?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또 있었나?”

질문에 대답을 하기 전 한숨부터 쉬는 크리스 마틴의 모습에 조엘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그 새끼, 그렇게 사고 쳤는데도 정신 못 차리고 클럽으로 달려갔답니다.”

“뭐!”

크리스 마틴의 대답을 들은 조엘은 깜짝 놀랐다.

프로가 스프링 캠프 첫날에 사고를 쳤는데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진짜 미쳤나 그놈? 감독에게 핀잔 한 번 들었다고 훈련장을 빠져나가 곧바로 술집에 직행했다고? 어처구니가 없군.’

사실 조엘은 처음 감독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땐 사고뭉치 하나를 제거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비서인 크리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상세하게 파악하자, 단순히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 느긋하게 기다리며 트레이드를 할 상황이 아니군.’

미셀 가르시아가 이미 폐급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조엘은 이런 사실이 다른 구단에 알려지기 전 그를 트레이드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웨이버 공시를 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트레이드가 실패를 한다면 웨이버 공시도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잠시 미셀 가르시아에 대한 트레이드 구상을 하던 조엘은 최악의 순간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면서 손익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음, 그렇다면 괜히 조그만 이득을 탐하다가 큰 손실을 입기 전에 이번 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겠군.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트레이드를 해야겠어.”

“맞습니다. 이번 일은 빨리 처리하는 것이 우리 오클랜드에 이득일 겁니다.”

“그럼 자네 생각에 콜로라도가 좋을까? 아니면 애리조나가 좋겠나?”

조엘은 마셀 가르시아를 트레이드 시키는 것에 두 구단 중 어느 쪽이 괜찮을지 크리스의 의견을 물었다.

크리스 마틴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콜로라도보단 그래도 애리조나가 낫지 않겠습니까?”

“응? 그건 무슨 이유로?”

“어차피 콜로라도나 애리조나 모두 내셔널 리그이긴 하지만, 둘 다 서부 지구 아닙니까? 그 말은…….”

즉, 크리스의 말은 이러했다.

다른 리그이지만 자신들과 자주 만날 서부 지구 소속이니, 혹시라도 미셀 가르시아가 정신을 차릴 일말의 가능성도 없애 버리기 위해 애리조나로 보내란 뜻.

애리조나 또한 오클랜드와 비교하면 시골이지만, 콜로라도보다는 유흥이 발달한 도시이니까.

“하하, 자네도 좀…….”

“제가 뭐요. 다 우리 오클랜드 슬랙스를 위한 생각만 하고 있는데.”

“하하하!”

자신의 비서인 크리스의 대답에 조엘은 조금 전까지 심각했던 것도 잊고 호탕하게 웃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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