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대호와 미셀 가르시아가 트러블을 일으킬 때, 이를 주시하는 시선이 있었다.
그 시선의 주인은 바로 오클랜드 슬랙스의 감독인 마이크 케세이와 수석 코치인 그렉 헥슬러였다.
“미셀과 트러블을 일으킨 게 누군지 알겠나?”
마이크는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다 일어난 사고에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현재 스프링 캠프 분위기를 흐리고 있는 미셀 가르시아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이미 수뇌부와 프런트에서 결정이 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트러블이 발생한 이에 관해 알아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할 수 있기에, 수석 코치인 그렉 헥슬러에게 물어본 것이다.
“음, 그는 이번에 스프링 캠프 초청 선수로 작년 국제 유망주 계약으로 입단한 선수입니다.”
“국제 유망주 계약이라… 뭐, 딱 봐도 아시안이군.”
뭔가 불만이 있는 듯한 마이크의 말에 그렉 헥슬러가 바로 보충 설명을 하였다.
“아시안이긴 하지만, 우리 오클랜드 역사상 가장 비싼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초특급 유망주입니다.”
“?”
국제 유망주, 그것도 남미나 쿠바의 유망주도 아닌 아시안을 역대 최고가에 입단 계약을 했다니 마이크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정말인가?”
“예, 감독님도 듣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들었다고?”
“예. 작년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시카고 그리즐리와 계약한 저스틴 다운튼에게 2루타를 포함한 홈런 두 방을 쳤던…….”
“아!”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대호를 떠올린 마이크는 눈을 반짝였다.
스프링 캠프에서 트러블을 일으킨 뉴비를 고깝게 생각하던 그의 눈인 반전된 것이다.
어차피 미셀 가르시아야 다른 곳으로 쫓아낼 계획이니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쫓겨날 이라도 베테랑은 베테랑.
뉴비가 스프링 캠프에서 베테랑과 트러블을 일으킨다는 건 팀워크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또한 아무리 미셀이 개차반이라도 날려 버리면 스프링 캠프 분위기가 엉망이 될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겸사겸사 기강 잡기로 신입을 혼내려고 했는데… 그 계획을 뒤집었다.
“수비 훈련 뒤에 타격 훈련이 있지?”
그는 뭔가 계획이 있는 듯 타격 훈련을 언급했다.
“예!”
“그럼 타격 훈련은 베테랑이 아닌 마이너에서 온 녀석들부터 하는 것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마이크는 트러블을 보면서 프런트가 준비해 준 최고 수준의 국제 유망주, 정대호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세계청소년야구대회는 토너먼트 방식의 짧은 대회다.
혹시나 구단이 계약한 국제 유망주가 플루크로 대회에서 그런 성적을 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정확한 야구 실력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뭐, 조엘이 바보가 아니니 당연히 전체 성적을 확인했을 테지만, 정말 세계청소년야구대회급 실력을 낼 지는 미지수니까.’
사실 수석 코치 크렉 헥슬러 또한 대호의 정확할 실력을 알고 싶어 하던 마음은 똑같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기대는 굳이 타격 훈련까지 갈 필요도 없이 충족되었다.
작은 소란이 끝나고 대호가 수비 훈련, 즉 펑고를 받을 때 엄청난 실력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 * *
따아악!
펑고 배트에 잘 맞은 타구가 빠르게 외야를 향해 날아갔다.
공이 배트에 맞는 타격음을 들은 대호는 빠르게 펜스까지 달려갔다.
대호는 타격음을 듣고, 탄도각을 확인한 순간 타구가 펜스를 살짝 넘어가는 홈런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홈런성 타구라 해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잡을 가능성이 있었다.
깊숙한 홈런은 아니었으니까.
다다다다!
넓게 퍼진 잔디가 끝나고 모래가 밟히는 워닝 트랙을 넘어 계속 달렸다.
‘이쯤인가?’
위닝 트랙이 나오자 대호는 한 번 더 타구의 방향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랐다.
‘맞군!’
대호는 자신의 판단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펜스를 밟으며 뛰었다.
파앗!
터업.
대호가 커다란 타구를 힘차게 잡아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를 보냈다.
이 순간만큼은 대호가 자신들의 경쟁자란 사실도 잊고 멋진 슈퍼 플레이를 감상하는데 더 큰 관심을 둔 것이다.
사실 실제 경기가 아닌 지금과 같은 수비 훈련 중에는, 굳이 무리해서 홈런성 타구를 잡을 필요가 없었다.
이는 부상 방지 차원에서 선수에게 무리를 시키지 않으려는 방침 때문인데, 합당한 조치였다.
오히려 빠른 판단으로 부상을 방지하는 것도 프로가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하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대호는 이런 것을 무시하고 슈퍼 플레이로 홈런성 타구를 잡아낸 것은 물론이고, 안정적으로 착지까지 하면서 방금 전 플레이가 무리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또한 멀리서 지켜보던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조금 전 대호의 수비를 지켜보면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다른 중견수 포지션을 가지고 있던 선수들과 다르게 3m정도 더 앞쪽에서 자리를 잡고 수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
즉, 다른 선수보다 수비 범위가 아주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직 타격은 보지 못했으니 공격 능력은 알 수 없지만, 방금 전 보여 준 수비만 봐도 대수비 주자로 메이저리그에 데려다 놔도 되겠는데?’
조금 전 대호의 수비를 본 케세이 감독은 자신의 생각보다도 이 국제 유망주 선수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보통 선수들보다 3m나 더 앞에서 수비를 하고, 홈런이 되는 타구를 쫓아가 훔쳐 냈으니까.
“그렉!”
“예?”
“미구엘에게 좌우로 흔들어 보라고 해 봐!”
“좌우로 말씀이십니까?”
“그래. 발이 빠른 것 같으니, 우익수와 좌익수하고 겹치는 부분으로 깊숙이 넣으라 그래.”
“알겠습니다.”
수석 코치에게 지시를 내린 마이크는 팔짱을 끼며 깊은 눈빛으로 저 멀리 외야에 있는 대호를 쳐다보았다.
한편, 홈런성 타구를 잡아낸 대호는 슈퍼 플레이를 펼치고 나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후우! 좋네. 역시 야구는 단체로 해야 제맛이지.’
홈런이 될 뻔한 타구를 잡아낸 대호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듯한 희열감에 휩싸였다.
그동안 개인 훈련만 하다 이렇게 여러 명이 모여 야구를 하게 되니 평소보다 더욱 기뻤다.
더군다나 자신이 국제 유망주로서 첫 선을 보이는 자리에 이런 모습을 보여 주니 짜릿한 흥분감이 온몸에 감돌았다.
하지만 아직 훈련이 끝난 건 아니었다.
‘집중! 집중하자.’
대호는 흥분으로 잠시 흐트러지려는 정신에 집중을 강조하며 자기 최면을 걸었다.
따악!
이번에는 조금 전과 다르게 우측으로 흘러가는 타구가 날아왔다.
딱 보기에도 중견수인 자신과 좌익수의 수비 범위가 겹치는 부분이었다.
보통 이런 타구는 먼저 콜을 하는 쪽이 우선이지만, 현재 펑고를 받고 있는 것은 자신이었기에 좌익수 수비를 무시하고 타구를 향해 달려갔다.
“마이!”
일단 정석대로 콜을 하고 달려가 타구를 안정적으로 잡았다.
발이 빠른 대호였기에 무리한 다이빙 캐치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와, 얼마나 빠른 거야?’
‘저 친구 정말 빠른데!’
조금 전 홈런성 타구를 잡아낸 것도 놀라운데, 이번 좌익수와 수비 범위가 겹치는 깊은 타구까지 손쉽게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 주자, 사람들 사이에서 감탄성이 일었다.
대호와 비슷한 정도의 수비 능력을 보여 준 선수는 몇 명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대호는 그 위치가 달랐다.
조금 전 대호와 같은 수비를 보여 준 이는 현재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전 외야수 중 중견수 자리에 유력한 시몬 몬데스와 좌익수인 앤디 가르시아 뿐이었다.
즉, 대호의 현재 수비 능력이 오클랜드의 주전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좌중에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한 명 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와! 수비 범위 뭐냐?’
처음 대호가 홈런성 타구를 잡아낼 때까지만 해도 시몬 몬데스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컨디션이 좋을 때면 자신도 경기 중 그런 수비를 선보일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훈련이 계속될수록 대호의 움직임이 점점 정교해지면서 안정적으로 펑고를 받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곳 애리조나가 기후가 좋아 운동을 하기 좋다고 하지만, 겨우내 실내 운동만 하다 보니 몸이 정상 컨디션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창 몸이 달아오르는 5~6월 정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대호를 보며 긴장이 되었다.
‘괴물이 들어왔군!’
대호를 보며 막 속으로 그를 괴물이라 말하며 엄청난 경쟁자가 나타났다 긴장을 할 때, 그 옆에서 앤디 가르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괴물이 들어왔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란 시몬 몬데스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앤디 가르시아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대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따악! 따악!
시몬 몬데스가 대호를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고, 앤디 가르시아도 그와 비슷 눈으로 대호를 지켜보고 있는 중에도 펑고는 계속 되었다.
‘그런데 앤디 녀석, 포지션도 다른데 저 정도로 경계할 필요가 있나? 아, 하긴 당연하군. 저 정도의 실력이 있다면 포변 시켜서 자기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르니까.’
중견수와 좌익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역할이 다르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현대 야구에서 그 정도 차이는 사실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니, 오히려 중요도로 따지면 중견수가 수비 범위가 좀 더 넓기에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좌익수와 우익수가 중견수를 보기는 힘들지만, 원래 수비 범위가 넓던 중견수가 다른 외야 포지션을 맡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그렇기에 이곳 오클랜드에 시몬 몬데스가 중견수 포지션으로 자리를 잡으면, 몇 년 뒤 대호가 콜업이 되었을 때 그와 경쟁을 시키기보단 보직 변경을 통해 좌익수나 우익수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아직 몇 년 후의 미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앤디 가르시아의 눈에 그 미래는 그리 머지 않은 듯했다.
“그만, 수비 훈련을 마친다.”
대호를 마지막으로 힘든 펑고 훈련이 끝나고, 타격 코치인 미구엘 코치가 선수들을 모아 놓고 수비 훈련이 끝났음을 알렸다.
“30분 휴식 후, 타격 훈련을 할 것이다.”
웅성웅성!
펑고로 인해 몸이 무거워진 상태에서 타격 훈련을 한다는 소리에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구엘 코치는 조금 전 수석 코치로부터 전달된 사항을 선수들에게 전달을 하였다.
“타격훈련은 펑고의 역순으로 한다.”
웅성웅성!
펑고의 역순으로 타격 훈련을 한다는 소리에 먼저 펑고를 받았던 메이저리거나 AAA에 속한 마이너리거들은 한결 편한 표정이 되었다.
그에 반해, 펑고를 끝낸지 얼마 되지 않은 초청 선수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스프링 캠프 초청 선수로 온 A+나 AA 출신들이 긴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대호는 먼저 타격을 한다는 것에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솔직히 타격 훈련이야 한국에 있을 때도 빼먹지 않고 한 것이니 별로 다를 게 없지만, 체감되는 기분은 그때와 아주 달랐다.
‘하핫, 이거 기대되는데?’
대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대호를 멀리서 지켜보는 마이크 케세이 감독과 그렉 헥슬러 수석 코치 등 코칭스태프는 기대, 혹은 이상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호! 자신이 있다는 것인가?’
마이크는 대호의 자신감 가득한 모습을 보고 호기심을 드러냈다.
‘너무 긴장감이 부족한 것 아닌가?’
반면, 그렉 헥슬러는 이제 메이저리그… 아니, 프로 리그에 처음 올라오는 뉴비가 너무 긴장감이 없고 조금 건방지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타격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지켜보기로 하지.’
감독과 수석 코치가 각각 다른 것을 보고 있을 때, 타격 코치인 미구엘은 드디어 자기 차례가 왔음을 직감했다.
과연 조금 전 펑고에서 보여 준 뛰어난 수비 능력만큼이나 공격력, 즉 타격 능력도 뛰어날 것인가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수비 뿐만이라면 결국 반쪽짜리 선수일 테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그의 기대는 완전히 충족되었다.
스프링 캠프에 모인 이들은 쉬는 시간동안 생리 현상을 해결하거나 수분을 보충했다.
스프링 캠프의 모든 훈련은 마이너리거가 아닌 메이저리거의 컨디션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번 타격훈련은 감독인 마이클 케세이가 대호의 타격 능력을 보기 위해 꾸린 것이기에, 대호가 속한 초청 선수와 마이너리거,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거 순으로 꾸려졌다.
위이잉!
덜컹!
선수들의 타격 훈련은 투수들이 던지는 라이브 볼이 아닌 배팅 머신으로 치러졌다.
따악!
초구는 패스트 볼이었다.
이에 대호는 양발을 타석에 고정하고 가볍게 받아쳤다.
아무리 애리조나의 날씨가 좋다고 하지만, 스프링 캠프 초반부터 선수들에게 무리하게 훈련을 시킬 수는 없는 법.
그렇기에 배팅 머신의 속도는 92마일로 세팅되었다.
그런데 대호는 이런 빠른 공을 너무도 가볍게 쳐냈다.
하기야 CB베이스볼파크에서 훈련을 할 때, 대호는 시속 160㎞로 배팅 머신을 세팅하고 훈련을 했었다.
그런데 92마일이라니.
시속 150㎞도 되지 않았고, 고작 148㎞에 불과했다.
대호에게는 너무도 느린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첫 훈련부터 무슨…….’
아직 겨울인 2월이었다.
선수들의 몸은 아직 야구를 하기 위해 깨어나고 있는 준비 단계다.
그렇기에 코칭스태프들도 무리하게 훈련을 시키지 않고,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의 수준으로 훈련을을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힘들어 하고 있는데, 이들 중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대호는 마치 메이저리거처럼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으니까.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