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메이저리그 구단 오클랜드 슬랙스가 스프링 캠프를 차린 미국 애리조나 주의 메사.
보통 무척이나 더운 기후를 보여 주는데, 그 때문인지 겨울에는 운동하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아침 최저 기온은 8°C 정도이고, 낮 최고 기온은 21°C.
탁탁탁탁!
“후욱! 후욱!”
이른 아침, 그 좋은 날씨에서 달리기를 하고 온 대호는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골랐다.
“대호! 벌써 달리기를 마친 거야?”
가빠진 숨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아, 젠슨! 이제 나온 거야?”
대호에게 말을 건 사람은 오클랜드 슬랙스 산하 AAA구단인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 소속된 투수 가브리엘 젠슨이었다.
그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으로, 5년 전인 2026년에 국제 유망주 계약으로 오클랜드에 왔고, 최근 40인 확장 로스터로 메이저리그에 진입한 유망주였다.
올해는 40인 확장 로스터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시즌 초부터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스프링 캠프인 2월 15일 보다 일찍 이곳 메사에 캠프를 꾸려 훈련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와 비슷한 이유로 미리 이곳에 와 적응 훈련을 하는 대호와 빠르게 가까워졌다.
“대호,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이 정도 가지고 무슨 무리야?”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젠슨의 질문에 대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스트레칭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본격적으로 스프링 캠프가 시작되는데, 그렇게 오래 달리는 건 좋지 않아.”
젠슨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대호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대호도 이미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다.
물론 젠슨이 나쁜 의도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저 한번 씨익 웃어 보이고는 계속해서 스트레칭을 했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젠슨은 작게 중얼거리고는 역시나 대호의 옆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동양인이란 쓸데없이 성실하다니까!”
비록 혼자 하는 작은 중얼거림이었지만, 귀가 밝은 대호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투덜거리는 이야기였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긍정적인 말이었기에 그냥 흘려들었다.
퍽! 퍽!
몸을 푼 대호와 젠슨은 가볍게 숏 토스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젠슨, 오클랜드의 스프링 캠프 분위기는 어때?”
3회차에 메이저리거가 되면서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를 경험하기는 했지만, 각 구단마다 분위기가 다르기에 대호는 오클랜드의 스프링 캠프 분위기를 물었다.
“뭐… 살벌하지.”
젠슨의 대답은 별것 없었다.
그저 마이너리거인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짧고 굵게 들려줄 뿐.
그는 마이너리거들 간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말했다.
심지어 메이저리거들도 확실한 붙박이 주전이 아닌 이상 감독과 코치의 눈에 띄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도 알려 주었다.
“고등학생 때를 생각하면 큰일 날 거야. 대호, 너도 유망주 계약을 했으니 고교 야구에서 특별한 실력자였겠지만 여기는 다르다고.”
살짝 겁을 주기까지 했지만, 대호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별거 없군.’
젠슨의 대답을 들은 대호는 자신이 3회차에 경험을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에 어느 정도 안심을 했다.
지난번에 포스팅 제도를 사용해 메이저리그로 진출했을 때와 지금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그러나 대호는 자신에게 지금이 더 유리하다고 느껴졌다.
‘애초에 내가 왜 국제 유망주로 진출했겠어. 처음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는 건 친한 메이저리거들이 더 늘어난다는 소리지. 인맥은 쌓을수록 이득이니까.’
“그런데 대호!”
“응? 뭐 물어볼 거라도 있어?”
대호는 느닷없이 자신을 부르는 젠슨에게 공을 던져 주며 물었다.
그러자 젠슨은 받은 공을 토스해 주며 궁금증을 물어보았다.
“너 제리&맥콰이어 소속이라며?”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계약한 에이전트 말이야!”
“어? 아, 조나단 소개로 거기랑 계약했지.”
대호는 별것 아닌 질문이라고 여겨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럼 존 밀러도 봤어?”
투수인 젠슨이 무엇 때문에 타자 전문 인스트럭터인 존 밀러에 관해 물어보는지 알 수 없었지만, 대호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응, 내 인스트럭터였어. 비록 3개월 동안만이긴 했지만 말이야.”
대호는 그에게 작년 10월부터 12월 중순까지 3개월간 지도를 받았다.
그 뒤로는 존 밀러가 짜 준 훈련 프로그램을 가지고 혼자 훈련을 해 왔다.
물론 옆에서 봐준 사람이 없진 않았지만, 대부분 대호 혼자 카메라를 켜고 훈련하는 모습을 녹화한 뒤 돌려 보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고 나서 영상을 메일로 보내 주고, 원격으로 부족한 점과 틀린 점을 지도 받곤 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무리 대호가 엄청난 유망주라고는 해도, 존 밀러의 인기가 너무나 드높았기 때문에 독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대호가 3개월간 존 밀러를 독점한 것이 특이한 일이었다.
존 밀러는 대호와 같은 유망주를 교육하기보단 주로 슬럼프에 빠진 메이저리거를 상대하는 고급 인력이었기 때문이다.
오클랜드에서도 주목하고 있으며, 애초에 제리&맥콰이어를 소개해 준 것도 아시아 스카우터인 조나단이었기에 에이전트에서도 신경을 써서 존 밀러를 붙여 줬던 것이다.
‘확실히 전생에서도 유명한 만큼 효과가 정말 뛰어나긴 해. 나하고도 잘 맞고.’
하지만 대호는 이번 생의 첫 인스트럭터로 존 밀러를 만난 만큼, 그저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젠슨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뭐? 그 존 밀러에게 3개월이나 가르침을 받았다고?”
토스를 하다 말고 갑자기 급발진을 해서 자신에게 후다닥 달려오는 젠슨을 보며 대호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엇, 왜 그래?”
젠슨은 완전히 유명 스타를 만난 것처럼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와아! 대호 너,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유망주였구나!”
‘무슨 일이지? 아니, 존 밀러가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젠슨도 나름 유망주 출신인데 저렇게 놀랄 만한 사람인가?’
더군다나 대호가 아는 존 밀러는 타자 인스트럭터가 아닌가.
입에 거품을 물고 마구 떠드는 젠슨을 이해하기 힘든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호의 착각이 하나 섞여 있었다.
분명 존 밀러는 현역 시절 포지션이 야수였고, 그의 아래에서 공부한 대표적인 선수가 제이슨 슐츠였기에 타자 전문 인스트럭터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가 공부한 것은 스포츠 의학.
즉, 익숙한 타자를 좀 더 잘 가르치긴 했지만, 타자만 가르치지는 않는다는 소리였다.
젠슨이 존 밀러를 알고 있는 이유도 거기서 기인했다.
그가 손댄 투수들 역시 예전과는 다른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나도 존 밀러 인스트럭터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내 연봉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음.”
아무리 트리플 A에 속한 젠슨이라고는 해도, 아직 완전한 메이저리거가 아니기에 수입에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존 밀러와 같이 수업료가 비싼 A급 인스트럭터를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국제 유망주 계약을 따낸 대호가 다른 사람도 아닌 A+급 인스트럭터 존 밀러에게서 무려 3개월이나 가르침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자 질투심이 조금씩 일었다.
‘역시 에이전트가 중요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젠슨은 계약한 에이전트에 생각이 미쳤다.
대호의 에이전트가 제리&맥콰이어이고, 또 존 밀러 역시 제리&맥콰이어 소속이었으니까.
그러니 다른 에이전트나 메이저리그 구단이 존 밀러를 부르는 것과 조건이 달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젠슨, 이제 그만 훈련에 집중하자.”
대호는 자기에게 다가와 멍하게 서 있던 젠슨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 미안!”
대호의 목소리를 들은 젠슨은 사과를 했다.
지금은 엄연히 훈련 도중이니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 * *
2031년 스프링 캠프, 오클랜드 슬랙스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시기였다.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이 스프링 캠프가 중요하겠지만 오클랜드 슬랙스에게는 그 의미가 달랐는데, 그 이유는 오클랜드가 메이저리그에서 알아주는 스몰 마켓 구단이기 때문이었다.
오클랜드의 감독 마이크 케세이는 속으로 구단주를 욕했다.
‘존 피셔 주니어… 아버지인 존 J 피셔보다도 몇 배나 더한 짠돌이지. 빌어먹을, 그 따위로 투자하면서 성적을 내라니. 내가 무슨 신인가?’
당연히 짠돌이 구단주에 맞춰 오클랜드의 사장 빌리 진, 부사장 데이비드 카빌, 단장 조엘 헌트도 짠물 운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노력은 대게 우수한 유망주를 싼값에 계약하고, 잘 키워서 괜찮은 성적을 거둘 때 돈이 많은 구단에 팔아넘겨 그 차액으로 구단을 운영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존 피셔 주니어 때문에 빌리 진이 단장 시절에 억지로 개발해 낸 방법이었는데, 다른 스몰 마켓 구단들도 벤치마킹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나름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지만, 감독 마이크는 물론이고 프런트 역시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그런데 올해 완전히 다른 선수가 하나 들어왔지.’
사실 재작년 히데오 소이치로라는 거물을 영입하겠다는 단장 조엘 헌트의 말에 나름대로 기대했던 그였다.
그러나 완전히 배신당한 상황이었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 이상, 마이크는 구단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
그러나… 단장 조엘 헌트의 필사적인 설득 때문에 정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희망을 걸기로 했다.
[마이크, 1년만 더 참아 줘! 이번에 계약한 유망주는 우리 오클랜드가 메이저리그에 족적을 남긴 이후 가장 재능이 있는 유망주야!]
사실 마이크는 프런트에서 아무리 효율적으로 구단을 운영한다고 해도, 질적으로는 계속해서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오클랜드는 자신이 요구한 것처럼 최고의 자질을 가진 유망주를 비싼 값에 계약하기는커녕 적당한 재능의 유망주를 싼값에 계약해 왔으니까.
우수한 유망주는 비싸다.
대신 성공할 가능성도 적당한 재능의 유망주보다 크다.
또한 오클랜드 같은 운영 방식으로는 선수가 구단에 애정을 가지기도 힘들었다.
정말 백에 하나, 만에 하나 적당한 재능의 소유자인 유망주가 갑자기 폭발해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고 치자.
어차피 팔아넘길 텐데 충성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전혀 아니었다.
‘이번에도 결국 다른 팀으로 이적하긴 하겠지. …그래도 정말 조엘이 역대급 재능의 소유자라고 했으니 좀 더 낫겠지.’
결국 마이크는 그 선수가 메이저로 올라올 때까지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어찌 됐건 비싼 유망주를 데려와 달라는 자신의 의견은 지켜 줬으니까.
그는 자신을 보고 있는 코칭스태프들을 돌아보았다.
“타자들은 좀 어때?”
오클랜드 슬랙스 타격 코치 미구엘 조나스는 곧장 대답했다.
“기존 메이저리거들은 겨울 휴식 기간 동안 몸을 잘 만들어 왔습니다.”
“그래? 가르시아는?”
타격 코치 미구엘의 대답을 들은 케세이 감독은 누군가에 대해 물었다.
“음… 미셀 가르시아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미구엘 코치는 대답을 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 감독이 언급한 미셀 가르시아는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중견수를 보고 있는 선수였지만 재능에 비해 노력하지 않는 선수였으니까.
그는 작년 타율, 타점 홈런 등 클래식 스탯도 우수했고, OPS 등 세이버 매트릭스 상의 타격 지표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중심 타자 중 한 명이었다.
그의 고질적인 병인 게으름만 고친다면 더더욱 클 가능성이 높았다.
“하아, 또 그렇다고?”
“…….”
미구엘은 입을 열지 못했다.
만일 작년에 미셀이 초반에 보여 주던 퍼포먼스를 끝까지 유지했다면 오클랜드가 가을 야구에 진출하는 것도 꿈이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8월부터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확장 로스터가 있는 9월에 완전히 퍼져 버려 제대로 경기에 임하지 못했다.
당연히 마이크 감독 역시 그를 트리플 A로 내렸지만, 달라진 게 없었던 것이다.
분명 징계성 DL이었기에 10일이 아니라 60일로 내렸다.
즉, 미셀의 시즌을 완전히 끝내 버린 것이었다.
보통 감독이 이렇게까지 했으면 선수가 굽힐 만도 했다.
뭐, 그 조치에 반발해 그대로 은퇴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두 가지 반응을 다 보이지 않았다.
고작 일주일.
그가 마이너리그에서 훈련에 열심히 임하던 기간이었다.
‘술, 여자, 클럽… 그림에 그린 망나니 같은 놈이지. 더 큰일인 건 그놈을 제칠 선수가 우리 오클랜드에 없었다는 거고.’
팬들 역시 자신이 응원하던 중심 타자가 마이너리그로 강등된 후 일탈을 즐기고 있으니 마구 욕을 퍼부었다.
그래도 올해 스프링 캠프에서는 다르겠지… 그런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던 마이크와 코칭스태프는 결국 다시 한번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되었다.
“그렇단 말이지…….”
작게 중얼거린 케세이 감독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 트레이드 1순위로 미셀 가르시아의 이름이 올랐다.
아무리 중심 타선에 있는 선수이고, 또 팀 내에서 타격 재능이 가장 뛰어난 이라고 해도 이제는 더 두고 볼 수 없었다.
팀 분위기를 흐리고 다른 선수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선수는 빨리 쫓아내는 게 팀에 도움 된다고 믿는 마이크였기에 한 치의 망설입도 없었다.
“이봐! 조르디. 단장에게…….”
결심이 선 케세이 감독은 망설임 없이 구장 한쪽에 있는 스태프를 불러 자신의 말을 단장인 조엘에게 전달하라 이야기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