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오클랜드 슬랙스 단장인 조엘 헌트는 선수들과의 연봉 협상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가을 야구에 진출하지 못해서 팬들의 악플에 시달리면서도 내년 구단 운영은 해야 했으니까.
가장 먼저 진행할 것이 연봉 협상이었다.
선수단 구성도 어서 해야 스프링 캠프도 진행하지 않겠는가.
“으!”
언제나 이 시기만 되면,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칼이 빠지고, 신경성 위염까지 겪는 조엘이었다.
그럴 때면 내가 이 일을 왜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조엘 헌트는 올해도, 그리고 내년에도 이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똑똑!
“들어와!”
그는 노크 소리에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었기에 겸사겸사 머리를 식히기로 하였다.
“조나단의 보고입니다.”
“응? 조나단?”
한국에 있는 조나단이 보고서를 올렸다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린 조엘은 뭔가를 떠올리고 깜짝 놀랐다.
‘혹시 미스터 정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겠지?’
동아시아 담당인 조나단이 이 시기에 올릴 보고라면 공들여 계약을 한 대호에 관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서 줘 봐!”
그는 급한 마음에 보고서를 들고 서 있는 비서를 재촉했다.
“여기…….”
“음!”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받아든 조엘은 급히 보고서를 읽어 나갔다.
“응? 허허…….”
처음 비서의 말에 심각해졌던 조엘의 표정은 금방 밝게 바뀌었다.
느닷없는 조나단의 보고라는 소리에 놀랐던 것도 잠시, 보고서에는 올해 오클랜드가 한 최고의 계약자인 대호가 어떻게 내년 일정을 준비하고 있는지 자세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이렇게 몸을 만들고 있다니, 거참.”
보고서를 읽으면서 조엘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무슨 내용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비서는 심각했던 단장의 표정이 급히 풀리며 중얼거리는 말 속에 흥분이 느껴져 물었다.
“우리의 귀염둥이가 벌써 내년을 준비 중이라는군.”
“네? 그게 무슨?”
평소와 다른 조엘의 태도에 비서 크리스 마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지한 유태인인 조엘 헌트가 누군가를 귀염둥이 따위의 표현을 쓰며 부르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 왜 있잖나, 우리 오클랜드 최고의 유망주!”
“아! 사우스 코리아의 대호 정 선수 말씀이시군요?”
“맞아! 그 친구가 벌써 몸만들기에 들어갔다는 군.”
“정말입니까?”
“그 뿐만이 아니야! 에이전트에 인스트럭터를 요청했는데, 그게 누구인 줄 아나? 존 밀러라는 군, 존 밀러!”
조엘은 대호의 인스트럭터인 존 밀러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존 밀러요? 존 밀러라면 애리조나에서 2년, 시애틀에서 3년간 뛰었던 선수 아닙니까?”
크리스 마틴 역시 존 밀러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존 밀러.
험난한 마이너리그를 넘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으니, 당연히 어느 정도의 재능은 있던 선수.
그러나 그가 5년 동안 기록한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은퇴하고 인스트럭터가 된 뒤로 그의 이름은 현역 시절보다 더욱 높아졌다.
존 밀러는 야구 선수로서 은퇴를 한 이후 4년간 대학에서 스포츠 의학과 야구 인스트럭터 공부를 하였다.
그 뒤로 지도자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3년간 애리조나에서 타격 코치로 활동을 하다, 제리&맥콰이어 스포츠 에이전트에 들어가 인스트럭터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에이전트에 들어간 뒤로 존 밀러는 많은 선수를 키웠는데,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입성한 이들의 숫자가 꽤 많았다.
그중 최고의 성공작이 애리조나의 최고 거포 타자 제이슨 슐츠였다.
이전 해 타율 0.233, 통산 홈런은 스물일곱 개에 불과하던 제이슨 슐츠를 존 밀러는 전담 인스트럭터로 간지 불과 3개월 만에 타율 0.312에 홈런 쉰한 개를 치는 헐크로 바꿔 놓았다.
타율도 타율이지만 홈런 개수 51개는 엄청난 변화였다.
그 때문에 존 밀러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약물을 사용해 그러한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의심이었다.
그저 그런 타자에 불과했던 제이슨 슐츠를 한 해에 쉰 개가 넘는 홈런을 치는 강타자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그러나 약물 검사에서 제이슨 슐츠가 결백함이 밝혀졌고, 그의 폭발적인 성장의 이면에 존 밀러라는 인스트럭터의 가르침이 있었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러한 뉴스가 메이저리그 전반에 알려지면서 존 밀러의 가치는 순식간에 확 올라갔다.
그 때문에 존 밀러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선 많은 돈을 써야 했는데, 자신들과 계약을 한 대호가 훈련하는데 전혀 돈을 아끼지 않고 내년을 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조엘 헌트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정대호 역시 메이저리그, 그리고 오클랜드에 진심이라는 뜻이었으니까.
‘정대호, 그리고 제이슨 슐츠라… 확실히 정대호의 하드웨어도 나쁘지 않은 편이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몸무게가 제이슨 슐츠보다 조금 날씬하고 슬림한 느낌을 주지만, 대호의 포지션이 외야수인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았다.
제이슨 슐츠는 타격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주로 배치되는 1루수를 맡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정대호는 타격 이외에도 주력과 수비에서도 많은 재능을 가진 선수지.’
쉽게 말해서 넓은 수비 범위와 뛰어난 판단력, 거기에 타격 능력까지 가진 5툴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도 모든 툴에서 상위 포지션을 차지할 정도로 높은 스케일을 가졌다.
한마디로 제이슨 슐츠가 타격과 컨택에 집중된 스탯을 가졌다면, 대호는 거의 모든 스탯에서 최상위에 놓여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대호가 제이슨 슐츠를 키워 낸 존 밀러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기쁜 소식.
우수한 자질을 가진 유망주가 최고의 선생을 맞아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이를 보유한 구단으로써는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다.
“하하핫! 게다가 존 밀러가 대호를 평가하길, 굳이 무언가를 더 얻으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군.”
마치 학교에서 100점짜리 시험지를 받아 온 자식에 대한 자랑을 하듯, 조엘 헌트는 연봉 협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밝게 웃으며 비서인 크리스 마틴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갑작스런 모습이었지만, 듣고 있던 크리스 또한 기쁜 표정은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직장이며 또 오클랜드의 오랜 팬인 크리스 마틴으로서는 구단과 계약한 유망주가 이렇듯 좋은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일찍 준비를 하는 모습이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 * *
저 멀리 미국 오클랜드에서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돌고 있을 때, 대호는 그런 사실 따윈 전혀 모르고 자신의 기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다.
“좋아! 조금만 더! 더! 더!”
인스트럭터인 존 밀러가 짜준 운동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영양사가 짜 준 식단까지 어느 것 하나 빼 놓지 않고 하나씩 클리어하는 중이었다.
“좋아, 5분간 휴식!”
존 밀러는 대호가 자신이 짜놓은 운동 프로그램 하나를 이수하자 그렇게 5분간 휴식을 명령했다.
“영양과 수분 보충 충분히 하는 것, 잊지 마라.”
휴식을 명하면서도 존 밀러는 훈련 중 소비된 영양과 수분 보충에 대해 엄중이 지시했다.
“하아… 알…겠습…니다.”
대호는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힘겹게 대답을 하였다.
“숨 고르면서 들어.”
숨을 헐떡이는 대호를 보며 존 밀러는 아직 할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말을 이어 갔다.
“그동안 네 훈련을 지켜봤는데,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좋아. 하지만… 뭔가 쫓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무슨 일 있나?”
존 밀러가 대호를 맡아 가르친지도 어느새 20여 일이 지나 있었다.
그동안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묵묵히 따라오는 대호의 모습에 매우 기꺼워했다.
그렇지만 때때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보이곤 했다.
‘야구 선수로서 매우 우수한 하드웨어, 그리고 지시를 이해하는 지능도 높지. 왜 이런 훈련을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알고 집중하는 모습은 인스트럭터로서는 최고의 선수라고 할 수 있어.’
그러나 인간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
아니, 기계라고 해도 대호처럼 휴식 없이 계속해서 돌아가면 언젠가 탈이 나기 마련이었다.
존 밀러는 이러한 점을 경계하였다.
메이저리그… 아니, 메이저리그를 노리는 수많은 마이너리거들을 가르치며 그는 대호처럼 훈련에 미친 이들을 많이 봤고, 그들의 결말 또한 무수히 목격한 경험이 있었다.
‘쉬지 않고 하는 훈련, 좋지. 실력이 쑥쑥 늘어나고 상위 리그로 콜업 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는 콜업 이후에도 마이너리그 때처럼 앞만 보고 달리다가 결국 몸에 이상이 생겨 부상을 당하기 일쑤였다.
또한 무리한 훈련으로 부상을 당했으면서도 상위 리그에 머물기 위해 또다시 신체를 혹사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에는 야구를 그만 두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존 밀러는 이러한 유망주들의 망 테크를 곁에서 지켜보았기에 우수한 자질을 가진 대호 역시 같은 결말을 맞지 않을까 걱정되곤 했다.
그렇지만 그의 역할은 결국 인스트럭터.
‘뭐, 지금처럼 조언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선수의 자발적인 행동을 내가 막을 권리는 그 어디에도 없지. 전문적인 의사가 처방을 내려 주는 것이 아니고서야…….’
짜여진 훈련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하면, 남은 것은 선수 개개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 미국의 시스템이었다.
사실 이렇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은 것 역시 존 밀러에게는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하하, 전 아무런 문제없습니다. 다만, 제 목표가 크다 보니 조금 무리하게 되는 면이 있네요.”
“목표?”
“예, 제 목표는…….”
대호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말을 멈췄다.
“목표는 뭔데?”
그러자 존 밀러는 다음 말이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그러자 대호는 자신의 꿈이자 목표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비웃지 말고 들어줘요.”
“비웃다니? 그럴 일 없어. 그러니 목표를 이야기해 봐!”
확고한 다짐을 받은 대호는 자신의 인스트럭터 존 밀러를 보며 진지한 눈빛으로 최종 목표를 들려주었다.
“…제 목표는 최단 기간, 그러니까 첫 턴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거예요.”
“명예의 전당?”
“네. 그것도 최단 기간 입성 말입니다.”
“하!”
존 밀러는 대호의 목표를 듣고 할 말을 잃었다.
단순히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겠다가 아니라 명예의 전당 입성이라니.
그것도 최단 기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목표가 큰 선수였군.’
메이저리그 선수들이나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마이너리거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을 한다거나 월드시리즈 우승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쩌면 몇 명은 열 손가락 전부에 우승 반지를 끼고 싶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말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대호처럼 메이저는커녕 마이너에도 아직 가 보지 않은 뉴비가 명예의 전당을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명예의 전당을 언급이라도 해 보려면 적어도 FA를 논하는 베테랑이 되어야 하니까.
“넌 준비가 되어 있구나!”
어쩌면 건방지다고 말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대호가 어떻게 준비를 해 왔는지 알고 있는 존 밀러는 꿈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맹진하는 대호를 보며 감탄성을 내지를 뿐이었다.
그리고 대호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쫓기듯 훈련에 임하는 것인지도 깨달았다.
“그렇다면 내가 도와야겠군.”
그는 솔직히 지금껏 대호가 무언가에 쫓기듯 훈련에 임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기에 그동안 훈련 프로그램을 조절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어째서 그러는지 알게 되었으니, 굳이 그럴 필요성이 없었다.
이미 다양한 신체검사를 통해 대호의 신체와 운동 능력에 대해 모두 파악하고 있던 그였다.
이제 메이저리그를 넘어서서 명예의 전당이라는 장기 레이스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고객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원래는 1년 뒤에나 시작하려 했지만… 그냥 지금부터 하는 게 낫겠군.’
존 밀러가 중점적으로 강화하려는 것은 하체 근육과 허리, 그리고 코어 근육이었다.
하체는 어떤 운동을 하든 기반을 다지는 데 필수였다.
또한 허리와 코어 근육은 하드웨어를 강화해 대호가 좀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대호의 작전 수행 능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만 준비해도 충분한 기량을 뽐낼 수 있을 테니까.
‘할 일이 많아졌어!’
이렇게 존 밀러의 머릿속에는 대호의 앞날을 위해 가르쳐야 할 것들로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