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대일과 헤어지고 이틀 뒤, 대호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협상을 벌였다.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의 성적 때문인지 여러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대호를 찾아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구단에서 대호에게 제시한 계약금은 300만 달러 안팎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대호의 예상을 벗어나 대박 계약금을 제시한 구단이 있었다.
바로 학기 초부터 대호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던 오클랜드였다.
‘…700만 달러라고? 오클랜드 다음으로 많이 제시한 곳이 뉴욕 킹덤즈의 350만 달런데… 두 배나 되잖아?’
대호 역시 오클랜드가 적극적으로 나오리란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1~200만 달러 정도가 아니라 뉴욕 킹덤즈의 두 배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했기에 적잖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야 히데오 소이치로처럼 받고 싶었지. 그렇지만 작년처럼 보스턴 같은 경쟁 구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500만 달러만 받아도 이득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호 자신조차 첫 계약금으로 상상하기 힘든 금액에 곧바로 되물었다.
“조나단, 정말로 700만 달러를 제시한 겁니까?”
“저희는 돈으로 장난을 치지 않습니다. 보시는 대로 700만 달러. 정대호 선수와의 계약금입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아시아 지부장인 조나단 샌더스는 계약서에 적혀 있는 계약금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작년의 쓰라린 경험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자존심 문제 때문에라도 거짓으로 계약서를 꾸미고 싶지도 않았고.
“그 어떤 함정 문구도 없습니다. 만약 의심이 된다면 변호사를 불러 확인해도 상관없습니다.”
대놓고 변호사를 불러도 좋다고 할 만큼 자신감 있는 태도.
그런 조나단의 모습에 대호는 계약서가 깨끗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자신이 계약 조항을 읽어 봐도 함정이 될 만한 문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믿음이 갔다.
사실 오클랜드에서 대호에게 계약금으로 700만 달러를 적어 낸 것에는 며칠 전 대호와 대일이 가졌던 미팅이 큰 역할을 차지했다.
당시 대호는 대일에게 히데오 소이치로를 언급하며 자신과 그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말미에 오클랜드에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 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이 모든 것이 대호의 작전이었다.
비록 히데오 소이치로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런 꼼수를 쓴 것이다.
그런데 일은 대호의 생각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를 전달한 대일이 대호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부풀려서 전달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할 때, 들은 그대로 전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이야기를 한다.
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주관과 사실을 섞어 더 과장되게 부풀려 전달하는 것이 보다 더 확실한 정보를 주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분명 작년의 히데오 소이치로와 현재 정대호의 가치는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비슷한 포지션, 그리고 비슷한 성적이 둘을 같은 선상에 올리도록 만들었다.
또한 국제 유망주 중 톱을 달리는 대호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오클랜드의 상황이 대호로서도 ‘얘네 무리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가질 금액을 주게 되는데 큰 영향을 끼쳤고 말이다.
‘뭐, 나로서는 나쁠 건 전혀 없지. 솔직히 이렇게까지 제대로 들어맞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는데.’
솔직히 대호는 작년에 오클랜드가 제시한 500만 달러…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적은 금액이라도 계약했을 것이었다.
올해는 오클랜드만이 자신에게 열렬히 구애하고 있는 상황이고,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남은 돈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역대급 성적을 거뒀음에도 예년보다 조금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데 그쳤으니까.
설마 이 정도로 엄청난 금액을 제시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대호는 조나단이 내민 가계약 서류에 기분 좋게 사인했다.
법이 개정되면서 계약을 할 수 있는 성인의 나이가 만 17세로 낮춰졌기에 보호자가 없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스스슥! 스슥!
사인을 마치고 계약서를 조나단에게 넘기자, 그 또한 계약서에 사인하였다.
그렇게 가계약 사인이 마무리되었다.
“우리 오클랜드 슬랙스와 정식 계약은 2주 뒤 오클랜드 단장실에서 이뤄질 겁니다.”
조나단은 가계약이 된 계약서를 품에 넣고 앞으로 있을 정식 계약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네, 알겠습니다.”
짝짝짝짝!
두 사람이 계약을 끝내고 악수를 하자, 처음부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대일이 박수를 쳤다.
비록 가계약이기는 하지만, 이 시간부터 법적 효력이 발휘되는 것이었다.
* * *
메이저리그 계약을 하기 위해 미국 오클랜드로 떠나기로 한 날, 대호네 집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여권 챙겼니?”
“네, 여기 챙겼어요.”
“양복은?”
대호의 엄마 미영은 아침 일찍 일어나 대호를 챙겼다.
드래프트에 참가한 적도 없던 대호였기에 이렇게 정식 계약을 하러 떠나는 날이라도 잘 챙겨 주고 싶은 게 그녀의 마음이었다.
“음, 그럼 뭐가 빠졌지…….”
“엄마, 빠진 것 없이 다 챙겼어요.”
“그래? 비행기 티켓은?”
“그건 조나단 씨가 가지고 오기로 했어요.”
“아! 그렇다고 했지? 나 참, 내 정신 좀 봐.”
부산스러운 집도 대강 정리가 되고 대호는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엄마, 저 이만 나가요.”
“응, 그래. 조심히 다녀와!”
“네, 그럼 사흘 뒤에 봐요.”
“응, 조심히…….”
“조금 전에 이야기 했잖아요. 그만 들어가요.”
“얘는… 알았어.”
엄마의 배웅을 받은 대호는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계약을 하기 위해 오클랜드까지 가게 되었는데, 대호의 동행으로는 조나단이 함께 가기로 했다.
사실 원래라면 조나단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유망주 한 명을 이렇게 케어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호의 가치를 매우 높게 잡고 있는 그로서는 자신의 스케줄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맡겨 버리고 대호와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오클랜드의 정보원에 불과했던 대일 역시 올해 국제 유망주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대호를 처음으로 발굴한 공을 인정받아 오클랜드 슬랙스의 정직원이 되어 아시아 지부의 스카우터에 자리하게 되었다.
‘근데 생각해 보면 대일 형은 3회차 땐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조금 궁금해지네.’
대호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걸어갔다.
빵빵!
차가 다니는 큰 길까지 나오니 저 멀리서 차가 빵빵거렸다.
조나단이 타고 있는 차량이었다.
“대호, 여깁니다.”
덜컹!
“조나단, 발음이 많이 좋아졌네요.”
대호는 차에 오르며 조나단에게 인사를 하였다.
“오우! 정말입니까?”
“네. 아직 영어식 억양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아주 좋아요.”
“하하하. 저, 마니 노력했습니다.”
차에 오른 대호는 조나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공항으로 갔다.
보통 신인이라면 자신을 스카우트한 스카우터와 단 둘이 차를 타고 갈 때 긴장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호는 여타 신인 선수와는 다르게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클랜드에 대해서 궁금한 점과 구단에 대해 요구할 사항을 물어보았다.
‘조나단은 아시아 지부 담당 스카우터. 승진해서 본사로 돌아오지 않는 이상 다시 만날 기회도 많이 없겠지. 이번 기회에 많이 물어보자.’
이런 대호의 태도를 보며 조나단은 기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지금껏 봐 온 한국 선수들은 대체로 체면이나 예의를 병적으로 챙기는 경향이 있었지. 하지만 정대호 선수는 아니야. 저것도 메이저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가 되겠지.’
조나단은 가끔 한국인들의 과도한 예의가 불편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 만큼 지금 대호의 태도가 더욱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조나단. 저 솔직히 계약서 받고 엄청 놀랐다고요. 어차피 이제 사인도 다 했으니까 하는 얘긴데, 진짜 히데오 소이치로랑 똑같은 금액으로 계약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흐흐, 대호! 우리 오클랜드가 비록 스몰 마켓이긴 하지만, 쓸 때는 화끈하게 쓴다고!”
“제가 잘하면 더 비싸게 팔 수 있으니까요?”
대호가 살짝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하하하하! 당연하지. 대호 너 덕분에 오클랜드가 월드 시리즈 우승이라도 하면 몸값이 훌쩍 뛸 테고, 그럼 다른 팀이 고액 FA로 데려갈 텐데 우리가 그 금액을 감당하긴 힘들어. 서로 윈―윈 이라고 하자.”
그런 말을 하던 조나단은 슬며시 음흉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혹시 알아? 그때 비싸게 팔게 되면 널 발굴한 내게도 뭔가 떨어지는 게 있을지?”
그 능글능글한 모습에는 대호도 못 견디고 웃음을 빵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대호에게 호감을 느낀 조나단은 그렇게 차 안에서도, 그리고 오클랜드를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한동안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이제 가는구나!’
오클랜드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대호는 조나단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