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현재 볼카운트는 1B 1S. 메트 하디 선수, 3구째를 던집니다.]
60인치 대형 TV 모니터에서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 결승전이 송출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악의 제국이란 악의적인 별칭으로 불리는 뉴욕 킹덤즈의 단장실.
킹덤즈의 단장 존 하비에르는 담담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 선수… 자네가 추천한 선수지?”
하비에르는 미국 팀 마무리로 나온 메트 하디를 보며 물었다.
“예. 세인트 존스 하이스쿨 출신으로 2라운드 일곱 번째 픽을 받았습니다.”
존 하비에르에게 보고를 하는 사람은 뉴욕 킹덤즈의 수석 스카우터인 티모시 매케인이었다.
메트 하디를 언급한 그의 눈에는 작은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메트 하디는 비록 고졸로 드래프트에 나온 선수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 재능을 인정받아 2라운드 7번 픽을 받은 유망주였으니까.
주로 대졸을 선호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의 성향을 보면, 그 재능이 얼마나 대단할지 알 만했다.
2라운드, 그것도 한 자릿수에서 픽을 받았으니까.
“좋군!”
세계청소년야구대회의 결승전에서 마무리로 나온 투수가 자신이 운영하는 구단이 스카우트한 선수란 사실이 마음에 든 하비에르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따악!
하지만 미소를 지었던 것도 잠시, 화면에 나온 상대 타자가 메트 하디가 던진 세 번째 공을 제대로 받아치는 모습이 보였다.
“흠!”
하비에르는 2루타를 허용하는 메트 하디의 모습에 작은 실망감을 내비쳤다.
오늘 한국 팀의 경기력이 어땠는지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승까지 올라오면서 힘을 많이 소진한 것인지 완벽하게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선수, 좋군!”
그런 실망과는 별개로, 타자의 대응이 매우 훌륭했기에 하비에르는 칭찬을 내뱉었다.
“이번 대회에서 MVP와 홈런왕을 동시에 가져갈 것이 유력시되는 선수입니다.”
티모시 매케인은 메트 하디가 2루타를 허용한 것을 보며 혹시나 단장인 존 하비에르가 실망할 것을 저어했다.
그래서 TV 화면 속에서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타자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뭐? MVP와 홈런왕 후보라고?”
TV로 보는 것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미국인인 하비에르가 보기에는 저 타자는 그리 큰 덩치를 가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회 MVP는 물론이고 홈런왕까지 같이 받을 게 유력하다는 말에 더욱 깜짝 놀랐다.
단장인 존 하비에르가 관심을 보이는 듯하자, 티모시는 조금 전 2루타를 친 선수의 정보를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국적은 한국이고, 내년 하이스쿨 졸업 예정자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홈런을 무려 여섯 개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돼!’
티모시로부터 설명을 들은 하비에르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세계청소년야구대회는 경기 방식이 토너먼트로 바뀌면서 경기 숫자가 확 줄어들었다.
이는 대회에 참가하는 나라가 적은 것도 있지만, 그동안 어린 선수들을 혹사한다는 여론이 매우 강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선수들의 피로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지만, 반대급부로 경기에서 기록하는 성적도 확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대회 홈런왕이니, 골든 글러브니 하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많아야 네 경기를 치르는 대회에서 홈런이 여섯 개나 나왔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9회까지 모두 치르는 방식도 아니고, 1~2라운드는 콜드게임이 가능했기 때문에 여섯 개의 홈런을 치려면 매 경기 한 개 이상을 기록해야만 했다.
그러니 존 하비에르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잠깐. 저 선수 1번 타자잖아?’
하비에르는 다음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가 두 번째라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
현대 야구에서 갈수록 테이블 세터가 중요해지고는 있지만, 클린업트리오가 아닌 1번 타자가 폭발적인 공격력을 보여 준 것이다.
하비에르는 곧바로 매케인을 시켜 자세한 자료를 가져오게 했다.
‘하… 놀랍군.’
기록되어 있는 정보는 대단했다.
이번 대회에서 폭발적인 타격만 보여 준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출루율도 좋았고, 주루 능력과 수비력 역시 매우 뛰어났던 것이다.
“혹시 저 선수, 다른 곳과 계약되었나?”
당첨이 확실한 복권을 그냥 내버려 둘 정도로 하비에르는 바보가 아니었다.
“템퍼링 때문에 아직까지 그와 접촉한 곳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세계청소년야구대회가 끝나면 템퍼링 제한이 해제되니, 아마 다르지 않을까요?”
고교 선수 보호 조항인 템퍼링 때문에 아직까지 대호의 소속은 영광고등학교 야구부였다.
즉, 프로야구단과 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라는 뜻이었다.
물론 템퍼링 제도가 있다고 해서 접촉이 없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호가 각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할 때마다 국내 프로 구단은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구단 중 하나인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접근하지 않았는가.
그중 오클랜드는 대호의 관심을 가장 끌고 있는 구단이기도 했다.
“그래? 흠, 매케인. 그런데 지금 우리 국제 유망주 계약에 쓸 수 있는 남은 자금이 어떻게 되지?”
대호에게 깊은 흥미를 품게 된 하비에르는 킹덤즈에 남아 있는 국제 유망주 계약 자금에 대해서 물었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였다.
“그게… 자금을 모두 소모해 남은 건 150만 달러뿐입니다.”
150만 달러.
분명 그 돈은 적은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 국제 유망주 시세를 보면 결코 많은 금액도 아니었다.
쓸 만한 유망주를 구하는데 150만 달러의 예산은 그저 명함 한 번 들이밀 정도의 금액에 불과했다.
‘음!’
하비에르는 욕심이 생겼지만, 남은 예산이 너무 부족했다.
‘아쉽군.’
존 하비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그렇지만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기존에 메이저리그 소속 선수라면 사치세를 물어서라도 데려왔을 테지만, 유망주 계약은 아무리 그가 악의 제국을 다스리는 단장이라 해도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뉴욕 킹덤즈의 수석 스카우터인 티모시 매케인이 가져온 자료와 설명에 의하면 분명 정대호라는 선수의 가치는 적어도 300만 달러 이상으로 확정.
그는 이룰 수 없는 일에 계속 매달려 있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지금은 못 데려와. 하지만… 정대호, 이 선수가 진짜라면 분명 메이저리그에서도 활약하겠지. 그럼 그때…….’
하비에르는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는 존 하비에르 뿐만이 아니었다.
* * *
“저, 저…….”
오클랜드 슬랙스 구단 단장실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단장인 조엘 헌트는 9회 초, 한국의 마지막 공격에서 대호가 미국 팀 마무리 선수인 메트 하디에게 2루타를 치고 나가는 것을 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분명 이번 경기로 인해 다른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정대호에게 관심을 가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오래 숨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튀는 자리에서 선보일 거라고도 생각 못했는데.’
정대호는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홈런 여섯 개에 14타수 12안타를 쳤으며, OPS는 무려 2.708을 기록했다.
어떤 이들은 고작 네 경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플루크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었지만, 조엘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리라 확신했다.
특히나 주목할 것은 다른 기록보다 OPS다.
아무리 아마 야구라고는 하지만, 2.7이 넘어가는 이 무지막지한 기록을 단기전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었다.
물론 스몰 샘플인 만큼, 미국 팀의 경우에도 뛰어난 OPS를 기록한 선수도 있기는 하지만, 정대호를 능가하는 선수는 없었다.
아니, 미국 팀에서 가장 좋은 기록을 가진 선수가 1.277인 것을 생각하면 버금가는 선수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정대호와의 기록 차이는 무려 0.431.
그런 것을 종합해 보면, 앞으로의 일은 불 보듯 뻔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지금쯤 다른 구단들이 국제 유망주에 쓸 수 있는 예산이 많지 않을 거라는 점이야.’
오클랜드는 작년의 실패 이후로 열심히 준비를 해 왔기에 다행히 넉넉한 상태였다.
또한 연초부터 정대호라는 대어를 발견하기도 했고.
조엘은 살짝 미소를 짓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이봐, 제이슨! 다른 팀의 국제 유망주 계약 예산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나?”
이윽고 조엘 헌트의 비서 크리스 마틴이 들어와 보고를 시작했다.
“우선 저희와 같은 서부 지구 구단들부터 말하자면…….”
크리스 마틴은 자신이 속한 오클랜드 슬랙스와 같은 지구에 있는 아메리칸 리그 구단들의 상황부터 보고하였다.
“음. 아메리칸 리그는 그 정도고, 그럼 내셔널 리그 쪽은 어때?”
“내셔널 리그 구단들 중 저희와 정대호 선수를 두고 경쟁을 할 수 있는 구단은 세 군데 정도입니다.”
단장인 조엘의 물음에 크리스는 차분하게 대답하였다.
“LA 다윈스가 350만 달러의 여유가 있고, 중부 지구의 시카고 캡스가 300만 달러, 동부 지구의 워싱턴 내셔널이 250만 달러의 국제 유망주 계약 예산이 남아 있습니다.”
“음…….”
보고를 받은 조엘 헌트는 낮은 탄성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있는 오클랜드가 800만 달러의 여유 자금을 남겨 두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구단들의 사정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계약을 놓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450만 달러 이상의 자금 차이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몇 가지 합의를 통해 다른 것을 포기하고 국제 유망주 계약 예산을 당겨 온다면 자신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으니 방심할 수 없었다.
실제로 작년에 보스턴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일본의 유망주인 히데오 소이치로를 채 갈 때 사용한 방법이기도 했다.
보스턴이 마이너 유망주를 넘겨주며 각 구단들은 남겨 두고 있던 국제 유망주 계약 예산을 보스턴에 양도했고, 보스턴은 그걸 사용해서 특급 유망주 히데오 소이치로와 계약하는 데 성공했다.
뭐, 보스턴은 비단 마이너의 유망주뿐만이 아니라 지명권까지 포기했지만.
‘처음에는 조나단한테 쓴소리를 마구 내뱉었지만, 보스턴이 잘한 건 맞아.’
지명권은 메이저리그 구단이 가지는 가장 큰 권한 중 하나인데 이를 다른 구단에 넘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칫하면 외국의 유망주를 위해 미래를 팔아넘겼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으니까.
그만큼 보스턴이 지출한 것들이 많았다는 얘기였다.
‘분명 팬들도 반발했었고, 그것 때문에 보스턴이 홍보에도 많은 돈을 썼지. 하지만 지금 결과는 어떻지? 보스턴은 아주 만족스러울 거야.’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마이너리그에서 보여준 히데오 소이치로의 활약이 예상보다도 더욱 뛰어났기 때문이다.
데뷔 초만 해도 조금 헤매는 듯 했지만, 히데오 소이치로는 4월 중반이 되자마자 수비는 물론이고 공격에서도 맹활약을 보이며 마이너리그를 초토화시켰다.
싱글A에서 시작하여 두 달 만에 하이 싱글A를 거쳐 AA리그로 승격을 하더니,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있는 7월 말을 넘겨 8월에는 트리플A로 승격했다.
그러고 나서 9월, 25인 로스터가 40인으로 늘어나는 순간, 이 확장 로스터에 합류했다.
지금은 정규 시즌 혹사로 인해 무너진 보스턴의 외야 한 자리를 보조하면서 이름을 더욱 알리는 중이었다.
‘저런 히데오 소이치로와 비슷한… 아니, 어쩌면 더 뛰어날 수도 있는 정대호의 능력은 어떨까? 또 계약금은?’
오클랜드는 대호에 대해 더욱 각별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아무리 한국 고교 야구의 환경이 자신들보다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정대호 만큼은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한 정대호 역시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를 통해 그 기대를 완벽히 입증한 셈이 되었고 말이다.
그러니 조엘 헌트의 걱정이 마냥 막연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곳이 어디지?”
마지막 순간에 주저한 것 때문에 작년 국제 유망주 중 최고의 대어를 놓쳤던 오클랜드다.
조엘 헌트는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텍사스 레이더스가 아닐까 쉽습니다.”
크리스 마틴은 자신들 오클랜드와 같은 지구에 있는 구단인 텍사스 레이더스를 언급했다.
고만고만한 아메리칸 리그 서부 지구 구단 중 가장 자본금이 짱짱한 구단을 찾는다면, 단연 텍사스 레이더스를 꼽을 수 있으리라.
메이저리그 구단 중에서도 뉴욕 킹덤즈나 LA 다윈스 등과 함께 빅 마켓 구단으로 불리는 텍사스 레이더스였는데, 매번 많은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도 월드 시리즈 우승은 고사하고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도 2011년이 마지막이었다.
지구 우승이야 간간히 하기는 하지만, 이는 쏟아부은 돈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성적이다.
그렇기에 텍사스 레이더스는 유망주 드래프트는 물론이고, 국제 유망주 계약과 국제 포스팅, FA계약에도 적극 관여를 하고 있다.
그러니 오클랜드의 입장에서 메이저리그 구단 중 텍사스의 행보를 마냥 바라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텍사스라…….”
조엘 헌트는 그 대답을 듣고 가만히 텍사스 레이더스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