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25화 (25/209)
  • 25화

    따아아악!

    “우와아앗! 저 선수 대체 뭐야?”

    경쾌한 타격음, 관중석의 환호와 함께 타구는 쭉쭉 뻗어 나갔다.

    공을 쫓아 달리던 외야수는 워닝 트랙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아도 결과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정확하게 배트의 정중앙에 맞은 공은 펜스 너머 2층 상단을 때렸다.

    초대형 홈런이었다.

    툭! 툭! 툭! 툭!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대호는 평소와 다르게 마치 조깅하듯 베이스를 밟고 다이아몬드를 돌아 홈으로 들어왔다.

    스윽!

    홈으로 들어온 대호는 그냥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지 않고, 홈베이스 뒤에 서서 창백하게 굳어 있는 일본의 포수를 스윽 쳐다보았다.

    움찔!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일본인 포수는 어느새 또 한차례 바뀌어 있었다.

    일본의 두 번째 포수였던 야마노는 대호가 친 파울 팁에 다섯 차례나 맞아 결국 교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 번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같은 일이 반복이 된다면 의심을 해 봐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다섯 차례나 계속 된다면 그건 노렸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그렇지만 일본 팀은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항의할 수가 없었다.

    야구에서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지 증명을 할 길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선적으로 자신들이 먼저 한국 선수들에게 고의 사구(死球)를 던지고, 또 더티 플레이로 부상자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로 일본은 세 번째 마지막 포수를 교체로 내보내면서 속으로 공포를 느꼈다.

    주전 포수인 아키야마에 이서 백업 포수인 야마노까지 부상으로 인해 교체가 되면서 이제 남은 포수가 없었다.

    그러니 마지막 포수인 스즈키가 9회가 끝날 때까지 홈 플레이트를 막아야만 했다.

    이 때문에 조금 전 대호가 그를 쳐다봤을 때 창백히 굳은 것이다.

    자신의 앞에 있던 주전 포수와 백업 포수가 어떻게 부상을 당해 교체가 된 것인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 팀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건 간에 대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포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자신의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퍽퍽!

    동료들이 머리와 등을 두들기는 걸 맞아 주던 대호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벌써 두 개째 홈런이네? 축하한다.”

    언제 돌아왔는지 부상을 당해 교체되었던 최태경이 치료를 마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냐?”

    대호는 왼쪽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최태경을 보며 물었다.

    “괜찮아. 인대가 좀 늘어난 것뿐이래.”

    질문을 받은 최태경은 손을 들어 보이며 별것 아니란 듯 대답을 하였다.

    “그나저나… 너, 쟤들 아작 냈다며?”

    그러면서 누구에게 들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뭐, 별것도 아닌 것들이 신성한 야구를 더럽히잖아? 그래서 똑같이 갚아 줬지.”

    대호 역시 마주 웃어 주며 가볍게 대답했다.

    “우와 씨! 만약 한국에서 우리가 더티 플레이를 벌였으면 거기서도…….”

    광주상고는 올해 대호가 있는 영광고와 두 차례나 격전을 벌였다.

    그때마다 접전 끝에 광주상고가 이기긴 했지만, 만약 대호가 조금 전처럼 포수를 겨냥해 파울 팁을 만들어 맞췄다면… 최태경은 머릿속에 그런 그림이 그려지자, 저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다른 부위도 아니고 남자의 중요 부위에 충격을 주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당했다면, 아마 자신은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야구를 포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번 세계 청소년야구대회를 계기로 일본의 두 번째 포수였던 야마노 곤스케는 트라우마를 얻어 야구를 포기하게 된다.

    무려 다섯 번이나 얻어맞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튼 대호의 기괴한 짓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전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팡! 팡!

    “아웃!”

    간간히 안타가 나오긴 했지만, 한국의 타자들은 일본의 투수들을 공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일본의 타자들 또한 마찬가지로 안타를 만들어 내 한국의 투수를 괴롭힐 뿐, 결정적인 한 방을 내지 못해 점수를 얻을 수 없었다.

    “한국 팀 투수 교체!”

    현재 스코어는 4:0.

    한국 팀은 우세한 상황에서 또 한번 투수 교체를 하였다.

    “준수야. 미안한데 네가 타자 두 명만 막아 줘야겠다.”

    9회말 1아웃에 주자 2, 3루 상황이다.

    더욱이 타순도 일본에 유리하게 진행이 되었다.

    추인수 감독은 마운드에서 교체된 차준수의 등을 두드리며 미안함이 담긴 목소리로 부탁했다.

    “감독님, 맡겨 주세요. 꼭 막아 내겠습니다.”

    사실 이번 세계청소년야구대회를 치르면서 차준수는 제대로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팀 내에서 마무리 보직을 받아 이번 대회에 참석했는데, 1, 2라운드가 모두 콜드게임 승으로 끝나면서 그가 활약할 무대가 조기 종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오랜 라이벌 국가인 일본전에서 말이다.

    물론 세이브 상황도 아닌 만큼 조금 맥이 풀리기는 했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긴장하지 말자. 4점이나 차이 나잖아?’

    차준수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마운드에 올라왔다.

    “차준수 파이팅!”

    외야에서 교체된 차준수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늘 시합의 MVP나 다름없는 대호였다.

    다른 타자들이 일본인 투수들을 상대로 근근이 안타나 HBP로 출루를 할 때, 4타석 2타수 2안타 1홈런 2볼넷 3타점을 거둬 오늘 모든 점수에 관여한 주인공이었다.

    그런 대호가 자신을 응원해 주자, 차준수는 저도 모르게 두근거리던 심장이 차분해졌다.

    ‘후우!’

    한국 팀은 겉으로 보기에는 임시 주장을 맡은 광주상고의 최태경을 중심으로 뭉친 듯 보였지만, 경기가 계속되면서 모든 선수들은 대호를 은근히 주장처럼 따랐다.

    이는 주장인 최태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비록 팀 내에서 4번 타자를 맡고 있기는 하지만, 공격의 중심에 언제나 대호가 있다고 여겼다.

    한국 팀의 공격의 포문을 열어 상대의 민낯을 명명백백히 까발려 주니, 타자들은 상대 투수를 상대하기 너무도 편했다.

    또 수비는 어떤가?

    위기가 있을 때마다 폭넓은 수비 범위를 이용해 투수들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 주었고, 시의적절한 어시스트로 위기를 극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처럼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을 하는 대호가 자신을 위해 파이팅을 외쳐 주니 너무도 고마웠다.

    ‘후우!’

    심호흡을 한 차준수는 1사 2, 3루의 위기 상황이지만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고 평안한 분위기에서 투구를 하였다.

    펑!

    “스트라이크!”

    경기의 끝인 9회 말이 되자, 주심도 빨리 퇴근을 하고 싶은 것인지 존에서 살짝 벗어난 공임에도 스트라이크 콜을 불렀다.

    펑!

    “스트라이크!”

    처음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을 때 고개를 갸웃거리던 타자는 두 번째 공도 살짝 벗어난 위치를 스트라이크라고 판정하자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별다른 항의는 보여 주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판정은 심판의 고유 영역이기에 항의를 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카운트는 노 볼 2S.

    ‘하나만 더!’

    휘익!

    팡!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포수가 조금 전과 비슷한 코스로 공 반개 정도를 더 빼는 볼을 요구했고, 차준수도 그에 호응해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게 던졌다.

    하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 타자가 똑같은 코스의 공이라 판단하고 스윙을 한 것이다.

    “이제 한 명 남았다!”

    투 아웃이 되자 대호는 큰 목소리로 아웃 카운트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음을 모든 선수들에게 인지시켰다.

    딱!

    타석에 들어선 일본의 3번 타자는 굳은 표정으로 조금 전 아웃된 2번 타자에게서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정보를 듣고, 비슷하다 싶은 코스로 공이 날아오자 바로 배트를 휘둘렀다.

    그러나 정확한 타이밍에 배트를 휘둘러 공을 맞추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공의 밑에 부분을 때리고 말았다.

    ‘아!’

    공을 때린 3번 타자 우야노는 고개를 푹 숙이고 1루로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었다.

    그리고 2, 3루에 있던 주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2아웃 상황이기에 앞뒤 잴 것 없이 뛰었다.

    “마이!”

    높이 뜬 타구가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것을 본 대호는 큰 목소리로 콜을 하고는 낙하 지점에서 팔을 높이 들었다.

    퍽!

    “아웃! 게임 셋!”

    높이 뜬 공의 낙하 지점에서 안정적으로 포구를 한 대호가 글러브를 낀 왼손을 높이 들자, 심판의 아웃 콜과 함께 게임 종료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아아아!”

    주심의 게임 셋이란 콜에 1루에 있던 한국 팀 코칭스태프들과 선수들이 일제히 그라운드로 뛰쳐나왔다.

    10년 가까이 한국은 그 동안 일본에 기를 펴지 못했다.

    19세 이하 청소년야구대회는 물론이고, 프로와 아마를 가릴 것 없이 국제대회에서 일본에 패배를 당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작년 우승팀인 일본을 꺾게 되었다.

    근 10년간 억눌린 한을 풀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편,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기쁨을 만끽하는 한국 팀을 보는 토미야스 감독의 눈빛이 착잡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환호하는 한국인들 속에 딱 한 사람에게 고정이 되었다.

    ‘저놈만 처리했으면…….’

    그의 눈동자에는 크게 기뻐하고 동료들과 웃고 있는 대호의 얼굴이 크게 들어왔다.

    그러는 한편 자신의 지시를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사카모토 무사시와 투수들에 대한 원망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 * *

    일본과의 준결승전을 이기고 돌아온 한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미 끝난 경기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다음 경기를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이었다.

    “내일 결승은 어떻게 해야 할까?”

    추인수 감독은 조금 전 일본전 승리로 기뻐했던 것이 무색하게 착잡한 표정으로 코치들을 보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일본을 상대로 선수들이 오버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몇 선수들은 탈진 증상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 때문에 내일 있을 미국과의 결승전이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힘들단 판단을 내린 상태다.

    잠시 침묵이 감돌던 가운데, 수석 코치인 신인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벌써부터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게 지도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

    신 코치의 대답에 추인수 감독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미국과의 경기는 솔직히 해 보나 마나한 경기였다.

    한국이 황금 세대를 배출한 것처럼, 미국도 최강의 멤버들만 뽑아서 이번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의 팀을 구성했다.

    15,000개 팀에 450,000명이나 되는 고교 야구 선수들 중 고르고 고른 최고의 유망주들을 뽑아 출전을 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실 미국이 이렇게 무지막지한 청소년 드림팀을 구성해서 출전한 것은 작년 2029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일본에 패배하고 준우승을 한 것이 컸다.

    더욱이 고교 최강 유망주에 미국이나 남미의 선수가 아닌 일본 선수가 뽑혔기 때문에 다시 한번 자존심이 상했고 말이다.

    겉으로는 평등한 듯 보여도 미국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는데, 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MLB를 목표로 하는 선수들이 주가 되었고, 또 그런 유망주를 보유한 에이전시들 또한 아마추어 야구 대회인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선수들을 보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나라도 아닌 아시아의 나라에 몇 차례나 우승을 넘겨주다 보니, 그들의 자존심에 금이 간 것이다.

    그래서 강력한 강제 규정을 만들어 WBSC가 주관하는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선수에게 불이익을 주기로 하였으며, 선수가 소속된 에이전시 또한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에이전시에서도 어쩔 수 없이 선수들을 WBSC가 주관하는 대회에는 선수를 내보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이번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역대 최강팀을 내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태경이와 상호는 부상으로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또 투수들 또한 남아 있는 애들이 없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과의 준결승전이 너무도 치열해 투수 자원이 목말랐다.

    “하아… 하는 수 없지. 여유가 있는 애들이 2~3회씩 책임지고 짧게 끊어 가야지.”

    현실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된 추인수 감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미국과의 결승전을 치를 전력이 남아 있지 않으니, 반포기 상태로 남은 자원을 이용해 결승전을 치르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미국과의 결승전.

    관중들은 핫 한 승부를 보여 준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너무나 싱겁게 끝이 나 버렸다.

    전력이 바닥난 상태의 한국을 상대로 미국은 초반에 대량 득점을 하고, 후반에는 쉬엄쉬엄 적당히 한국 타자들을 상대하며 경기를 마무리하였다.

    그럼에도 대호는 미국 팀 투수를 상대로 4타수 3안타 1홈런을 쳤다.

    미국의 선수들이 고교 최고 유망주라면 대호 또한 그들 못지않은 최고의 국제 유망주였으며, 그 수준 또한 상위 5% 안에 들어가는 최고의 유망주였다.

    그러다 보니 대회는 미국 팀의 우승으로 끝이 났지만,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선수는 대호가 되었다.

    미국 팀의 선수들이야 이미 많은 에이전시나 MLB 구단들이 관심을 두던 선수들이었다.

    그에 반해 대호의 경우 그들에게 크게 관심을 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홈런 여섯 개를 치고 타율도 14타수 12안타였으며, OPS는 무려 1.708이나 되는 타자가 나왔으니 이는 당연한 것이다.

    이 때문에 대호를 주시하고 있던 오클랜드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버린 신세가 되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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