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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24화 (24/209)

24화

한국과 일본의 3라운드 경기는 무척이나 치열했다.

벌써 한 명이 공에 맞아 교체가 되었는데, 이는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1회 초 선취 득점을 하였지만, 5번 타자로 출전을 한 주전 포수 최태경이 교체로 들어온 일본의 투수가 던진 안쪽 직구에 팔꿈치를 맞아 교체된 것이다.

당연히 일본의 투수 역시 또다시 빈볼을 던진 것 때문에 퇴장 당했다.

일본의 경우 선발에 이어 1회 초에 무려 두 번이나 투수 교체를 하게 된 상황이었지만, 주전 포수가 부상을 퇴장 당한 한국이 더욱 불리해진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 팀 또한 경기 운영이 거칠어졌다.

당했으니 갚아 줘야 한다는 생각이 선수들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 때문에 일본 팀 뿐만 아니라 한국 팀 내에서도 상대에 대한 빈볼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심이 어떻게든 말리려 했지만, 감정적으로 과열된 두 나라를 막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악!

오랜만에 일본 팀에서 잘 맞은 타구가 나왔다.

타다다닷!

2루수의 키를 훌쩍 넘기는 꽤 큼지막한 타구였다.

대호는 시원한 배트 소리가 들리자마자 곧바로 달려서 공을 쫓았다.

2루수와 유격수 역시 타구를 쫓았지만, 두 사람이 잡기에는 거리가 조금 애매했다.

“마이 볼!”

대호의 콜을 들은 것인지, 공을 쫓아 달리던 김일권과 나연호는 공을 쫓던 것을 멈추고 좌우로 비켜섰다.

텁!

쭉 뻗은 대호의 글러브 웹에 공이 빨려 들어왔다.

“빽!”

3루 선상에 있던 일본인 코치는 급히 홈으로 달리던 선수에게 돌아오라는 콜을 하였다.

타자가 친 공은 누가 봐도 잘 맞은 안타로 보였기에 당연히 3루 주자가 홈으로 달렸는데, 중견수의 호수비로 인해서 잡혔기 때문이다.

그러자 주자 홈으로 달리던 주자 역시 곧바로 3루로 돌아와야만 했다.

‘좋았어!’

대호는 공을 잡자마자 곧바로 3루를 향해 힘차게 송구했다.

퍽! 쿠당탕탕!

중견수인 대호의 공을 전달받은 3루수는 베이스를 밟아 3루 주자를 아웃시켰다.

하지만 원체 경기가 거칠어지다 보니, 정상적으로 아웃을 시키지 못하고 저돌적으로 달려오던 일본인 주자와 부딪혔다.

“아웃!”

심판의 콜은 아웃이었지만, 부딪혀 엉킨 주자와 3루수는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뭐야!”

주자와 수비수가 엉켜 쓰러지자, 더그아웃과 그라운드에 있던 선수들이 또다시 모여들었다.

찌릿!

“이 새끼들…….”

무섭게 달려들던 주자와 부딪힌 동료를 본 한국 팀 선수들이 도끼눈을 뜨며 일본 대표들을 노려보았다.

이런 한국 대표 팀을 본 일본 대표들 또한 자신의 팀원이 뒤엉켜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며 고함을 질렀다.

“ばか野郎!(바보 새끼들!)”

일본어를 아는 선수는 대호 외에 거의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카야로라는 말은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한국 선수들의 행동이 더욱 거칠어졌다.

“뭐 이 새끼야!”

“스탑! 스탑!”

거칠어지는 양 팀의 모습에 다급히 뛰어온 심판들이 선수들을 말렸다.

벌써 두 번째 벤치 클리어링이었다.

아마 야구에선 좀처럼 나오기 힘든 장면이 또 다시 경기 초반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심판을 보던 미국 주심은 조금 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엄중한 판정을 내렸다.

“주자 퇴장!”

선수들을 떼어 낸 주심은 바로 쓰러져 있는 주자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다.

그러고 나서 일본 팀 감독인 토미야스에게 엄중한 경고를 전달했다.

“일본 팀, 마지막 경고입니다. 또다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다면 내 직권을 모두 사용해서라도 몰수 게임을 선언할 것이오. 그리고 WBSC에 비매너 행위에 대해 추가 징계를 건의할 것입니다.”

정중한 말이었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주심을 맡고 있는 시합에서 이처럼 난잡한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무척이나 화가 나 있던 주심은 표정을 굳히며 경고하였다.

장내가 정리가 되고 공수 교대를 이뤄졌다.

일본 팀 선수가 또 한 명 퇴장되었지만, 한국 팀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팀 선수 두 명이 반칙으로 인한 퇴장이었다면, 한국 팀은 퇴장은 없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주전 포수와 3루수가 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덜컹!

더그아웃 출입문이 열리며 신인호 코치가 들어왔다.

“어떻게 됐어?”

부상을 당한 3루수 김상호를 따라갔던 그에게 추인수 감독이 물었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쓰러지면서 손목 인대가 늘어나 이기더라도 다음 결승전엔 출전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경기장에 배치되어 있던 닥터의 소견을 그대로 전달한 신인호 코치의 말에 추인수 감독과 선수들 모두 인상을 찡그렸다.

벌써 두 명 째 부상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3루수인 김상호도 포수인 최태경처럼 부상으로 결승에 나가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빠드득.

‘이것들이 계속 봐주니까… 안 되겠군.’

대호 역시 이를 갈았다.

이미 경기 시작하자마자 자신을 위협하던 일본에 경고를 한차례 날린 그였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자신의 동료가 벌써 두 명이나 상대방의 거친 플레이 때문에 아웃되었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대호는 더 이상 정상적으로 일본 팀을 상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너희가 내 안의 악마를 깨운다면, 좋아! 악마가 되어 주지.’

세 차례의 회귀를 경험한 대호는 더 이상 순진한 야구 소년이 아니었다.

노회한 고인물 야구선수가 된 대호는 프로에서 활약을 보일 때마다 수많은 반칙과 견제를 받았다.

그중에는 대호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힌 반칙도 있었고, 보통 사구(死球), 혹은 데드볼이라고 불리는 힛 바이 피치(hit by pitch)도 여러 차례 있었다.

처음에는 그럴 때마다 거칠게 항의를 하거나 마운드로 올라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사구를 던진 투수나 반칙을 한 선수보다 더한 징계.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심판의 눈을 피해 보복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참… 시스템이란 정말 대단하단 말이야. 솔직히 그런 기술들은 좀 야비하다고 할 수도 있는 건데 다 가능하게 만들어 줬으니까.’

레벨이 오르고 재능 타이틀이 늘어나면서 대호는 야구에 관해선 초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편파 판정을 내리는 심판이나, 반칙을 하는 포수를 비롯한 수비수, 혹은 HBP를 던지는 투수에게 되갚아 주었다.

사실 1회 초 일본인 포수인 아키야마가 빗맞은 볼에 낭심을 맞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선구안과 배트 컨트롤이 좋은 대호가 일부러 노려 친 파울 팁이었다.

만약 지금이 프로 경기였다면, 대호는 아마도 자신에게 위협구를 던진 투수를 향해 타구가 날아가도록 컨트롤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공을 받는 포수에게 보복하였다.

이는 비록 투수가 그러한 위협구를 던지긴 했지만, 투수 본인의 선택보다는 감독이나 코칭스태프의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어찌 됐건 본인이 받아들인 작전이고 짜증 나긴 했지만, 더그아웃에서 내린 작전에 불복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코칭스태프만 한국 팀에게 악의를 품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방금 전 3루 주자와 3루수 간의 충돌, 그러고 나서 벤치 클리어링 직전에 발생한 욕설까지.

이제 대호는 일본 팀 전체를 한통속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행동을 보여 주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퍽! 퍽!

“아웃!”

“아웃!”

“공수 교대!”

그러나 그렇게 보복을 결심한 것도 무색하게,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타자들이 진루를 해야 빠르게 타선에 들어설 텐데, 일본도 작정을 한 것인지 한국 팀 타자들을 상대로 아웃 카운트를 높여 빠르게 경기를 속행했다.

“아웃! 공수 교대!”

그리고 한국 또한 일본처럼 독기가 바짝 올라 그런지 아웃 카운트를 잡으며 빠르게 수비를 마쳤다.

그러다 보니 때 아닌 투수전이 펼쳐졌다.

하지만 갑자기 긴장감을 높이다 보니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퍽!

“볼!”

퍽!

“볼!”

바로 지난 회까지만 해도 상대를 손쉽게 상대하던 일본 팀 투수들이 투구에 난항을 겪기 시작한 것이다.

투수전이 펼쳐질 것 같던 경기가 급변했고, 볼넷이 남발되기 시작했다.

“타임!”

일본의 세 번째 투수는 갑자원 최우수 투수로 선정된 적 있는 미야모토 마사키.

그러나 그는 6회에 들어서며 갑자기 제구력 난조를 보이며 계속해서 볼넷을 던졌다.

자연히 일본 팀 더그아웃에서는 타임을 요청하였다.

“마사키! 무슨 일이냐?”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투수 코치의 물음에 마사키는 작게 말을 하다 말고 투구를 하던 왼손을 들어 보였다.

“아니……!”

마사키의 손을 확인한 코치는 당혹성을 터뜨렸다.

잘 던지던 마사키의 가운뎃손가락 손톱이 들려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투수의 손톱은 공을 밀어낼 때 회전수를 결정하고, 다양한 구종의 위력을 조절하는 중요한 무기였다.

당연히 평소에도 투수들은 손톱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즉, 만약 손톱에 문제가 생긴다면 투수가 볼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투수 코치는 침통한 얼굴로 더그아웃을 돌아보며 X자를 표시했다.

더 이상 투수가 투구를 할 수 없음을 알린 것이다.

그렇게 일본 팀 더그아웃은 때 아닌 비상이 걸렸다.

잘 던지던 투수가 부상을 당해 교체를 해야 할 상황이기 찾아왔으니까.

‘호! 투수에게 문제가 발생한 모양이군!’

한국 팀 더그아웃에서는 이런 일본 팀의 분주한 모습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상대의 불행은 자신들에게는 행운이기 때문이다.

“대호야, 부탁한다.”

일본 팀의 타임이 길어지자, 대기 타석으로 나와 있던 대호에게 다가간 추인수 감독이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였다.

대호는 조심스런 부탁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감독님, 걱정하지 마세요.”

작지만 단호하게 대답한 대호는 마운드가 정리되고 새로운 투수가 올라와 연습 투구를 하자 타석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라? 훗! 아니지.’

대호는 야구의 격언을 떠올리며 속으로 웃었다.

‘원론적이지만 좋은 얘기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아니야.’

아직 예열되지 않은 일본 팀 투수를 끝까지 괴롭히고 완전히 무너뜨릴 작정이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일본인 선수들을 괴롭히는 것은 덤이었고 말이다.

틱!

퍽!

“윽!”

초구는 구속 140㎞ 대의 직구.

평소라면 바로 직격하여 홈런을 만들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주자가 두 명이나 나가 있었지만, 대호의 뜻은 강경했다.

이런 대호의 분위기가 너무도 무거워 1, 2루에 나가 있던 주자들은 좀처럼 주루를 시도하지 못하고 베이스 가까이에서 타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1회 초에 한 번 당했던 아키야마는 또다시 대호의 타석에서 같은 부위를 파울 볼에 얻어맞자 앞으로 고꾸라졌다.

“괜찮나?”

포수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지자 주심은 그를 보며 안부를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뒤에서 지켜보던 주심이 듣기에도 상당히 커다란 소리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선수는 1회에도 같은 부위에 공을 얻어맞지 않았던가.

주전 포수 아키야마가 파울 볼에 맞아 고꾸라지자 이번에도 일본팀에서 타임을 걸고 사태를 수습했다.

결과적으로 두 차례나 낭심에 공을 맞은 아키야마는 더 이상 포수 글러브를 끼고 시합을 속행할 수 없게 되어 교체가 되었다.

일본 팀에서 최초로 부상으로 교체되는 선수가 나왔다.

“하하! 꼴좋다. 아까 전부터 계속 우리 팀한테 막무가내로 덤비더니.”

“으… 그래도 좀 불쌍하긴 한데? 아무래도 맞은 데가 좀 저렇다 보니…….”

한국을 응원하던 응원단 속에서 환호와 비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일본 팀이 보여 준 더티 플레이 때문인지 관객들도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공에 맞아 교체된 아키야마를 대신해 야마노 곤스케가 포수 마스크를 썼다.

현재 스코어는 노 볼 1S.

틱!

퍽!

“윽!”

“와하하하! 또 저러네!”

또다시 파울 팁이 나왔고, 여지없이 포수의 낭심에 맞았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도 이상했다.

주전 포수에 이어 바뀐 백업 포수도 바운드된 파울 타구에 낭심을 맞았기 때문이다.

“しっかりしろ!(똑바로 해!)”

쓰러진 포수를 일으켜 주는 척하며 가까이 다가간 대호는 쓰러져 있는 야마노 곤스케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再び脅威や汚い行為をしては放っておかないだろう.(또다시 위협구나 더러운 행위를 했다가는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너무도 작은 목소리였기에 주심은 대호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지만, 쓰러져 있던 야마노 곤스케는 똑똑히 들었다.

‘…지금 저 말은 방금 그게 우연이 아니라 노려서 친 거라는 얘긴가?’

이런 생각이 떠오른 야마노는 순간 두려워졌다.

다른 곳도 아닌 남자의 중요 부위를 맞았다.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기에 큰 부상은 당하지 않겠지만, 그 고통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타자의 존재에 공포가 밀려왔다.

이런 생각이 들자 야마노는 저도 모르게 더그아웃을 쳐다보았다.

출장하기 전, 야마노는 코치에게서 지시를 받은 것이 있었다.

1회 선발인 사카모토 무사시가 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라는 것이었다.

즉, 투수에게 빈볼을 던지게 사인을 보내라는 것이었고, 한국 팀 구심점인 대호를 부상으로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란 지시였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그런 지시를 따라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면 감독의 지시를 따라야 하지만, 그러자니 자신의 남자로서의 안녕이 무사할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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