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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23화 (23/209)

23화

일본의 선발투수인 사카모토 무사시는 긴장감에 식은땀이 이마를 적셨다.

― 무사시, 우리 대일본이 이기기 위해선 네 희생이 필요하다.

어젯밤 잠들기 전, 자신을 불러 지시를 내리던 토미야스 감독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울렸다.

‘벌써 8구째인데 더럽게 안 맞네.’

토미야스 감독은 오늘 선발인 사카모토 무사시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원래 사카모토의 실력은 선발급에는 많이 부족했다.

중간 계투나 패전 처리 정도가 알맞았는데, 오늘 한국을 상대로 급하게 선발투수로 낙점된 것이다.

― 한국의 1번 타자인 정대호와 4번 타자인 최태경을 경기 초반에 아웃시켜라! 그 둘이 한국의 전력 절반에 해당한다. 그러니…….

야구 감독으로서… 아니, 인간이라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지시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에게 내린 것이다.

그런데 그 감독에 그 선수라 그런지 사카모토 무사시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토미야스 감독의 지시를 승낙했다.

그래서 볼 컨트롤이 좋은 그였지만, 마치 제구가 잡히지 않은 것처럼 타석에 있는 대호를 향해 공을 던졌다.

하지만 사카모토의 공은 타석에 있는 대호를 맞추지 못했다.

상대방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살짝살짝 그것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파울 타구를 만들어 포수인 아키야마를 맞추거나, 타구를 3루 쪽 더그아웃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다 보니 사카모토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젠장… 감독 지시가 제대로 안 먹히네. 아키야마하고 우리 더그아웃에 있는 동료들만 괜히 고생하잖아?’

자연스럽게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한편 아직도 타석에 있는 대호는 눈빛을 차갑게 치켜뜨며 투수를 노려보았다.

처음과 다르게 긴장하는 듯 보였지만, 아직도 풍기는 기운이 싸늘한 것이 여전히 작전을 수행할 모양이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군.’

이미 8구나 소비한 만큼 이 정도면 알아서 작전을 변경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본인 투수는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 일본인들은…….’

속으로 혀를 차며 대호는 다음 투구를 기다렸다.

팟!

“볼.”

이번에도 날아온 볼의 궤적이 좋지 못했다.

몸 쪽 낮은 볼에 대호는 살짝 점프하며 바운드되어 날아오는 공을 피했다.

대호는 피식거리며 1루로 걸어 나갔다.

“이봐, 너희 선발. 몸 쪽 제구가 저래서 되겠냐? 다른 투수 없어?”

1루에 도착한 대호는 1루수에게 비아냥거리며 상대를 도발했다.

“말 걸지 마!”

코이나타 마루는 선발투수를 비난하는 대호에게 짜증 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미 대회 개막 전, 호텔 로비에서 트러블이 있었던 상대란 것을 알기에 그의 말은 거칠었다.

“뭐야, 이놈도 참 이상한 놈이네? 저런 컨트롤을 가진 투수가 정말로 너희 일본 청소년 야구 대표 맞아?”

사실 대호가 일방적으로 무시할 정도로 사카모토가 실력 없는 선수는 아니었다.

애초에 이번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뽑힌 만큼, 에이스감은 아니지만 일본 고교 야구계에서 괜찮은 실력을 보여 주었으니까.

‘제길, 사카모토 저 녀석 대체 왜 저래? 저런 이상한 공이나 던져서 이 자식한테 괜한 소리나 듣고…….’

코이나타는 대호의 도발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어젯밤 감독에게 불려간 뒤 모종의 지시를 받은 듯했다.

그것 말고는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에이, 작년 우승팀이라고 해서 긴장했는데, 일본도 별것 아니군.”

타다다닷!

자신에게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코이타나의 속을 조금 더 긁은 대호는 사카모토 무사시가 투구 모션을 취하는 순간, 곧바로 2루로 뛰쳐나갔다.

대호는 이미 추인수 감독에게 언제든지 뛰어도 된다는 그린 나이트를 허가 받은 이후였다.

대회에서도 몇 차례 도루를 시도해 성공을 거뒀기에 언제든지 기회가 되면 망설이지 말고 뛰라는 허가가 떨어졌다.

“런!”

대호가 뛰자, 1루수인 코이나타는 곧바로 투수에게 도루했다는 것을 알렸다.

하지만 그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감독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정신적으로 몰려 있던 사카모토는 주자가 도루를 한다는 소리에 투구 폼이 흔들렸다.

팟!

“뛰어!”

타석에 있던 나연호는 홈 플레이트를 맞고 바운드된 공이 포수의 뒤로 빠지는 것을 보며 계속 뛰라는 손짓을 하며 크게 외쳤다.

이에 대호는 곧바로 3루까지 달렸다.

촤아악!

“세이프!”

팡!

포수가 뒤로 흘러나간 공을 찾아 급히 3루로 공을 던져 봤지만, 주자가 먼저 3루 베이스에 도착을 하면서 세이프가 되었다.

“와아아!”

경기가 시작된 지 불과 5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득점 기회가 찾아오자, 한국을 응원하는 관중들이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대부분 플로리다의 교민들로 구성된 한국 관중들은 일본 팀을 응원하는 관객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적었지만, 목소리만큼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또한 한국의 선두 타자가 8구에 이르는 접전 끝에 볼넷을 얻어 진루를 하더니, 기습 도루까지 성공했기에 더더욱 큰 소리로 응원했다.

안타 하나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무사 3루가 되니, 한국 팀을 응원하는 관중은 물론이고, 더그아웃도 고양되었다.

‘하아, 바보 같은!’

사카모토는 자신의 실수를 절감했다.

겨우 도루를 하는 것에 놀라 와일드 피치를 하고 말았다.

물론 와일드 피치를 전적으로 투수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조금 전 일어난 상황은 포수의 수비 범위 내에서 일어난 것이라 잘잘못을 따진다면 포수 쪽이 좀 더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카모토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주자를 내보낸 것도 자신이고, 또 주자가 뛰는 것에 놀라 폭투를 던진 것도 자신이었다.

일본에서였다면 이렇게까지 당황하지 않았을 텐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것에 사카모토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갔다.

따악!

나연호는 방금 전 대호의 도루 때문에 투수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타격 폼을 바꿔 번트를 댔다.

데구르르르!

타구는 1루 라인을 타고 천천히 굴러갔다.

다다다다!

공이 굴러가는 것을 보면서 나연호는 빠르게 1루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대호 또한 나연호가 기습 번트를 대는 것을 보며, 빠르게 스타트를 끊고 홈으로 뛰었다.

“윽!”

한편, 나연호의 기습 번트에 먼저 반응한 것은 포수인 아키야마였다.

하지만 그는 방금 전 대호가 친 파울 타구에 맞았던 낭심에서 갑자기 통증이 올라오며, 1루를 향해 굴러가는 공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러자 코히나타가 뒤늦게 자신의 앞으로 굴러오는 공을 주웠지만, 이미 나연호는 1루 베이스를 밟고 지나간 후였다.

‘또 내가…….’

사카모토는 다시 한번 자신이 본 헤드 플레이를 펼쳤음에 절망했다.

원칙적으로 1루수가 번트 타구를 잡기 위해 대시를 하면, 투구를 마친 투수는 수비수가 되어 1루 커버로 들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사카모토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깊이 잠식된 상태였기에 나연호의 기습 번트에 대한 반응이 늦었다.

그 때문에 홈 커버도 하지 못하고, 1루 베이스를 커버하기 위해 들어가는 행동도 보이지 않고 그저 멍하니 타구를 지켜본 것이었다.

이번 기습 번트의 파장은 상당히 컸다.

노 아웃 1, 3루.

희생플라이 하나만 나와도 선취점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이다.

“멋지다!”

한국 청소년 대표 팀은 올해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의 최대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우세할 것이라 평가받던 1라운드 상대였던 호주 팀을 5회 콜드게임으로 이기고, 또 3번 시드를 받은 대만도 6회 콜드게임으로 승리를 따냈다.

그런 상태에서 작년 우승팀이자 이번 대회 1번 시드에 있던 일본을 상대로 초반부터 기가 막힌 작전으로 선취점을 가져왔다.

그러다 보니 이를 지켜본 야구팬들이 한국 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짝짝짝!

홈으로 쇄도해 득점을 올린 대호는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며, 팀 동료들과 하이 파이브를 하였다.

“타임!”

일본의 더그아웃에서 급히 타임 요청이 들어왔다.

“투수 교체!”

일본의 더그아웃에서 투수 교체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팡! 팡!

교체된 일본 투수가 마운드로 올라와 공을 던졌는데, 사카모토보다 확연히 구위가 뛰어났다.

‘저 자식들… 처음부터 선발을 버림패로 썼구나.’

원래 투수 교체를 위해서는 바뀐 투수의 어깨가 예열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주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지금 일본 팀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이는 일본의 계획을 여실히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애초부터 일본은 오늘 선발로 나온 사카모토에게 1~2회 정도만 허락할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 팀 전력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대호와 최태경을 사고로 위장한 테러로 경기장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진인사 대천명이라 했던가?

그런 일본의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다.

심판이 모르게 사구를 던졌지만, 대호는 이를 잘 피해 냈음은 물론이고 포수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진루도 했으니까.

물론 일본 팀이 대호의 경고를 알아듣지는 못했기에 나연호의 기습 번트까지 당한 게 분명했다.

펑!

“스트라이크!”

3번 타자인 김일권은 바뀐 투수의 초구를 곧바로 노렸다.

하지만 바뀐 일본의 투수는 이전 선발인 사카모토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투수였다.

일본에 잘 보이지 않는 강속구 투수이다 보니 제구는 조금 떨어지지만, 구속은 무려 152㎞나 된 것이다.

김일권은 앞선 두 타석만 보다가 갑자기 150을 넘는 패스트볼이 나오니 헛스윙을 하게 되었고 말이다.

“일권아, 침착해!”

김일권이 스트라이크 존보다 훨씬 높은 볼에 배트를 휘두르는 모습을 본 대호가 더그아웃 펜스에 기대서 소리쳤다.

탁탁!

대호의 응원에 정신을 차린 것인지 김일권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 자신의 헬멧을 한 손으로 두들겼다.

노 아웃 1득점에 자신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나연호가 기습 번트로 진루하자 욕심이 생겨 버렸다.

그 때문에 스윙을 크게 가져가다 보니 높은 볼에 배트가 나간 것이다.

‘김일권, 정신 차리자!’

다행히 그는 대호의 응원에 곧바로 정신 차리고 반성하였다.

휘익!

“억!”

타석에서 공을 기다리던 김일권은 투구를 보고 배트를 휘두르려다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뺐다.

자신의 머리 쪽으로 공이 날아오자 몸을 피한 것인데, 머리 쪽으로 날아들던 공은 급격히 궤도가 꺾이며 들어왔다.

“볼!”

판정은 볼.

포수가 몸을 일으켜 잡아서 그런지 심판은 별다른 제재 없이 그냥 볼 판정만 내렸다.

“우우! 저게 뭐냐! 방금 전에도 그러더니!”

선두 타자인 대호를 상대로 위협구가 몇 차례 날아왔는데, 또다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자, 관중석에서 야유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투수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방금 전의 상황을 모를 리도 없을 텐데 같은 짓을 한 결과 관중들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投手、ちゃんと投げないのか?(투수, 똑바로 안 던지냐?)”

다른 곳도 아니고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는 머리 쪽으로 공을 던지자 대호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본어로 큰 고함을 질렀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수많은 관중들의 소음을 뚫고 마운드에 서 있던 투수는 물론이고 일본 팀 더그아웃에 있는 코칭스태프들까지 똑똑하게 들을 수 있었다.

흥분해 더그아웃 앞으로 나온 대호는 물론이고, 한국의 청소년 대표들 모두가 더그아웃 앞에 나와 투수를 노려보았다.

그런 한국 팀의 기세에 일본도 지지 않으려는 듯 떠들기 시작했다.

“無礼なジョーセンジン!(무례한 조센징!)”

조센징(조선인)이란 차별적 단어를 사용하며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떠드는 일본인들이었다.

원칙대로라면 차별적 단어를 사용했기에 일본팀에 징계가 있어야 하겠지만,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소음으로 인해 그들의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저들도 그것을 노리고 그런 것인지, 대호 혼자 지른 고함보다 더 작은 목소리였다.

다만, 오늘 경기의 주심을 보고 있던 마이클 케리 심판은 일본어를 알지는 못했지만, 억양이나 표정 등으로 대충 뭐라고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재팬, 단어에 주의하세요. 그리고 투수, 경고합니다. 또다시 조금 전과 같은 공을 던진다면 위협구로 간주하고 퇴장시킬 것입니다.”

분위기를 읽은 마이클 케리 주심은 일본 팀에 경고를 하였다.

그러고 나서 한국 팀에도 주의를 주었다.

“한국도 더 이상 상대를 자극하지 마세요. 알겠습니까?”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시작부터 과열되는 것 같자 주의를 준 것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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