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22화 (22/209)

22화

6회 말, 2아웃 상황.

이대로 아웃 카운트가 하나 더 올라간다면, 경기는 이대로 한국의 콜드게임으로 끝이 난다.

‘으… 제길.’

대만의 4번 타자 위앙레이는 속으로 계속해서 화를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그는 대만의 4번 타자로서 제대로 된 활약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타수 1안타.

그나마 1안타가 2루타로 점수를 올리는 득점타였기에 그나마 체면을 차릴 수 있었지만, 한국 팀 타자와 비교를 하면 전혀 면이 서지 않았다.

‘침착해!’

자꾸만 화가 나고, 또 한편으로는 한국 투수의 기세에 위축이 되는 듯한 느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팡!

“스트라이크!”

백 도어 슬라이더였다.

괜히 건드려도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는 공이라 그냥 지켜보았다.

팡!

“볼!”

아웃 카운트 하나면 게임이 끝나는 데도, 한국의 투수는 긴장을 놓지 않고 신중하게 공을 던지고 있다.

“파이팅!”

“점수 많다. 여유 있게 던져.”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 팀은 중간 계투로 나온 선수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응원을 보냈다.

휘익!

따악!

중간 계투는 몸 쪽 빠른 패스트볼을 던졌다.

상대의 의표를 찌른 몸 쪽 꽉 찬 스트라이크 존으로 던졌는데, 대만의 4번 타자인 위앙레이가 너무나 잘 받아쳤다.

타다다닷!

위앙레이의 타격음이 들림과 동시에 중견수인 대호는 뛰기 시작했다.

위앙레이도 이를 악물고 쳐 낸 것인지 그의 타구는 외야 깊은 곳까지 날아왔다.

다만 탄도각이 조금 낮아 아슬아슬했다.

대호는 날아오는 공에 잠시 시선을 준 뒤, 그대로 뒤로 달렸다.

그러고 나서 마치 다람쥐가 담벼락을 밟고 오르듯, 펜스를 밟고 위로 뛰어올랐다.

파앗!

그러면서 대호는 관중석에 있던 관중과 살짝 눈이 마주치자 웃어 주었다.

묘기와 같은 플레이를 보여 주는 대호의 모습에, 대만과 한국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야구팬들이 환호했다.

터억!

펜스 위를 넘어갈 것 같던 타구는 정확한 타이밍에 뛰어오른 대호의 글러브에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아웃! 게임 셋!”

그 장면을 지켜보던 주심은 그대로 아웃 콜을 불렀다.

6회 말, 대만의 마지막 타자가 아웃되면서 경기는 한국의 18:3 콜드게임 승으로 끝이 났다.

“으아아아! 또 이겼다!”

그리고 심판의 선언이 나오는 순간, 한국 청소년 대표 팀은 일제히 그라운드로 몰려 나와 승리를 만끽했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은 공을 가지고 천천히 마운드로 걸어오던 대호는 1루 더그아웃 뒤에 앉아 있는 일본 팀을 쳐다보았다.

3회차때 일본은 이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했었다.

그러니 오늘 오후에 있는 캐나다와의 시합에서 승리할 것이 분명했다.

‘내일은 좋은 승부가 되겠군.’

대호는 이곳 플로리다에 오던 첫날, 일본 팀과 있었던 트러블을 떠올리며 차갑게 눈빛을 반짝였다.

* * *

일본 청소년 야구 대표 팀 코칭스태프들은 난리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내일 있을 3라운드 준결승의 상대가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해 같았으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이번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출전한 한국의 대표 팀은 예년과는 달랐다.

“곤도! 한국의 자료는 다 모았나?”

토미야스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수석 코치인 곤도 다이스케를 불러 물었다.

“하이! 감독님, 여기 있습니다.”

촤라락.

곤도 다이스케 코치가 건넨 자료집을 빼앗듯이 넘겨받은 토미야스 감독은 신경질적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무언가를 찾았다.

“이거… 정확한 정보 맞나?”

한국 대표 팀의 자료집을 확인하던 토미야스 감독이 짜증이 잔뜩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상대 팀의 주축 타자인 정대호의 정보가 너무나 부족한 것도 있지만, 그나마 있는 내용도 너무 믿기 어려운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전혀 활약이 없다.

그런데 느닷없이 3학년이 된 올해 초부터 갑자기 각성이라도 한 것인지 엄청난 활약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거기에 한국의 전국 대회 세 개에 출전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은 물론이고, 세 번 모두 홈런왕까지 차지한 것이다.

그중 가장 최근에 열린 대회에선 대회 최우수 선수상까지 거머쥐었다.

보통 고교 야구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받는 대부분 투수였다.

그 이유는 아마 야구의 성격상, 타자의 활약보다는 투수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1번 타자이자 자신들과 트러블이 있었던 정대호는 홈런을 가장 많이 친 것도 친 것이지만, 중하위권 팀을 우승까지 만들어냈다.

‘…이거 이대로 둔다면 위험해질 수도 있겠는데.’

토미야스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활약 중인 대호를 어떻게 처리하지 않는 이상, 한국 팀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을 내렸다.

2경기 9타석 7타수 6안타 4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대호의 성적은 표본이 적어 실력을 100% 반영하지 않는다 해도, 어마어마한 기록이었다.

특히나 선두 타자이면서 선구안도 무척이나 좋아 투수가 상대하기 무척 까다로운 상대였다.

‘갑자기 어디서 이런 놈이 튀어나와선…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토미야스 감독은 갑자기 자신도 이런 선수를 데리고 있었던 적이 있음을 깨달았다.

‘아! 히데오 소이치로와 무척이나 닮았어!’

한국의 1번 타자인 정대호를 떠올릴 때면, 왠지 데자뷔를 보는 듯 꺼려지는 느낌이 있었다.

이를 골똘히 생각해 보니 일본의 차세대 영웅인 히데오 소이치로가 생각났다.

토미야스 감독 자신과는 잘 맞지 않는 타입의 선수였지만, 누가 뭐래도 히데오 소이치로는 일본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스즈키 타로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니, 아마추어 시절 퍼포먼스를 떠올리면 상위 호환이란 표현이 맞을 것이다.

모든 지표에서 히데오 소이치로가 더 높았기 때문에 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히데오 소이치로를 떠올리게 만드는 선수가 나타났다.

작년, 그러니까 2029년 세계 청소년야구대회에서 히데오 소이치로가 활약하면서 일본이 대회에서 우승을 거뒀을 당시, 많은 언론에서 그와 같은 선수는 앞으로 100년 내에 또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칭찬했었다.

그런데 단 1년 만에 그에 비견되는 선수가 나타났다.

그것도 일본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말이다.

“위험해! 위험해!”

토미야스 감독은 대호의 자료를 보면서 연신 위험하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 * *

일본의 코칭스태프가 전부 모여 내일 있을 한국전 대비를 하고 있을 때, 한국 팀의 코칭스태프 역시 한데 모여 일본전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 코치, 일본을 상대로 누굴 내보내는 것이 좋겠어?”

추인수 감독은 내일 상대할 일본 청소년 대표를 두고 누굴 선발로 내보낼 것인지 고민했다.

“감독님, 이번에는 좀 다르게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감독의 물음에 지목을 당한 신인호 코치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상과 다르게 호주전이나 대만전을 5회, 6회 콜드게임으로 이기면서 뜻하지 않은 일이 좀 생겼습니다. 선발진이나 계투 요원은 확실히 실전 감각을 보여 주었는데, 그에 반해 마무리로 돌린 강보석이 좀 걱정됩니다.”

“음…….”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내일 선발로 보석이를 내보내는 건 어떻겠습니까?”

신인호 코치는 청소년 대표팀 내에서 투수 활용에 관해 논의를 하다, 체력이 약한 강보석을 대표팀의 마무리로 낙점했었다.

호주전이나 대만전이 접전이 될 것이라 예상을 하고, 강보석을 마무리 보직에 넣으면서 대표팀 투수진의 로스터를 돌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한국 청소년 대표 팀의 전력이 너무 우수해, 두 나라를 상대로 5회와 6회 콜드게임 승을 거둔 것이다.

그 때문에 한국 청소년 대표팀은 투수 운영에 조금 문제가 생겼다.

투수를 많이 허비하지 않은 것은 좋았지만, 마무리 투수인 강보석의 실전 경기 감각에 조금 문제가 생겨 버렸다.

연습 투구야 매일 하고 있지만, 연습 투구와 실제 경기에서의 투구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오랜 휴식은 투수에게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신인호 코치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하지만 강보석은 선발로 내보내기엔 내구력이 너무 약한데…….”

무슨 생각으로 그런 제안을 한 것인지 물론 알지만, 추인수 감독이 생각하기에 강보석은 선발감이 아니었다.

좀더 체력과 내구력을 기르면 모를까, 지금의 상태로는 많이 부족했다.

“제 말은 선발이 아니라 1~2회 정도만 오르는 오프너 역할을 주면 어떨까 하는 겁니다.”

“오프너?”

“예, 좌완 파이어볼러인 강보석을 오프너로 1~2회 정도 활용하고, 그 뒤로 우완인 김경제를 내보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신인호 코치의 이야기를 듣던 추인수는 감탄성을 질렀다.

광주상고의 에이스인 김경제는 좋은 투수이긴 하지만, 초반 스타트가 조금 불안한 투수다.

그러니 경기 초반은 스타트가 빠른 강보석을 내보내 초반을 책임지게 하고, 3회부터 김경제를 내보내 상대작으로 약한 후위 타자를 상대하게 하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린다는 작전이었다.

“그거 좋은데!”

추인수 감독이 생각하기에도 두 선수의 역량을 잘 파악한 좋은 선택 같았다.

* * *

퍽!

대호는 자신의 상체로 날아오는 공을 보며 황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꽈당!

‘이 X끼들 이거…….’

분명 보았다.

공을 던지기 전 마운드에 있는 일본 투수가 포수의 미트가 아닌 자신의 얼굴을 쳐다본 것을 말이다.

그러자 뭔가 낌새가 좋지 않다고 판단한 대호는 몸의 중심을 살짝 뒤로 물렸다.

아니나 다를까.

투수가 던진 공은 포수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한참을 벗어나 몸을 일으켜 잡아야 할 정도로 높게 빠지면서 날아왔다.

만약 대호가 이를 인지하고 피하지 못했다면, 분명 어깨를 맞거나, 재수 없었다면 헤드 샷이 되었을지도 모를 위험한 투구였다.

“볼!”

볼이 선언되었다.

심판을 보고 있는 주심은 조금 전 공을 위협구가 아닌 실투로 본 것이다.

팡!

폴짝!

이번에는 무릎 쪽으로 날아오는 낮은 볼이었다.

대호는 이를 악물며 점프해서 피해 냈다.

“볼!”

이번에도 주심의 판결은 그냥 단순한 볼이었다.

연속해서 위협적인 공이 날아왔지만, 설마 경기 시작부터 상대에게 위협구를 던진다고 생각하기에는 쉽지 않았기에 심판은 투수에게 경고를 주지 않았다.

‘이것 봐라!’

물론 투수가 정말 컨디션이 좋지 않고 몸이 풀리지 않았을 때 연속으로 두 번 실투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이 정도의 공을 던졌다면, 미안해서 사과를 보내는 게 맞았다.

자칫하면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일본의 투수는 그저 대호의 눈을 피할 뿐, 아무런 사과를 보내지 않았다.

아무리 한국과 일본이 앙숙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의 태도는 선을 넘은 것이었다.

‘너희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너희를 똑같이 취급해 주지.’

눈치를 보니 단순히 한두 번 위협구를 던지고 끝낼 것 같지도 않았고.

대호는 무언가 크게 결심한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팡!

“볼!”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이었다.

연속해서 몸 쪽으로 던졌다가는 심판이 눈치챌 수도 있다고 판단했는지 3구는 저렇게 던진 듯했다.

아마 제구력이 불안하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았다.

팡!

“스트라이크!”

4구째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바깥쪽 살짝 높은 공이었지만, 가만히 지켜보았다.

3B 1S로 아직은 타자인 대호가 유리한 카운트였다.

휘익! 탁!

“윽!”

털썩.

대호는 몸 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당겨 쳤다.

배트를 살짝 스친 공은 홈베이스의 땅에 맞고 튀어올랐다.

그러고 나서 바운드된 공은 안타깝게도 일본인 포수의 낭심에 직격하고 말았다.

느닷없이 날아든 공을 제대로 포구하지 못한 일본인 포수는 엄청난 충격이 낭심으로부터 전해지자 눈앞이 번쩍함을 느꼈다.

바닥을 구르는 포수 때문에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다.

자신이 친 공에 맞아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그를 내려다보는 대호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

마치 무생물을 보는 듯한 느낌.

그 때문에 더욱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괜찮나?”

“아키야마! 괜찮아?”

낭심에 충격을 받은 포수가 괜찮은지 일본의 코칭스태프가 달려와서 물어보았다.

“으… 괜찮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포수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괜찮나?”

주심이 포수의 안색을 살피며 다시 한번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시합 재개하지.”

심판은 선수가 괜찮다고 이야기를 하자 다시 시합을 시작했다.

웅성웅성!

느닷없는 사고에 장내가 잠시 술렁이기는 했지만, 시합이 재개되며 다시금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현재 볼카운트는 3B 2S 풀카운트.

휘익!

‘이것 봐라?’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인지, 투수가 던진 공이 배터 박스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피한다면 포볼이 되고, 피하지 못하면 데드볼이 되는 공이었다.

자신을 처리한다면 1루 정도 내준다고 해도 손해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인지, 계속해서 위험한 공을 던지는 듯했다.

피식.

‘어디 너희들 생각대로 되는지 해보자.’

따악!

대호는 자신의 몸 쪽으로 날아드는 공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배트를 휘둘렀다.

짧게 끊어 친 공은 3루 라인을 벗어난 파울이 되었다.

휘이잉!

다만 파울이 된 공은 빠르게 바운드되며, 일본 팀 더그아웃인 3루 쪽으로 날아갔다.

우당탕!

갑자기 날아든 타구에 의해 일본 팀 더그아웃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날아든 타구에 어느 누구도 맞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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