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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7화 (17/209)

17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의 19세 이하 부 임원들은 8월 15일, 광복절 휴무에도 나와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휴무도 반납하고 회의를 하는 이유는 바로 한 달 뒤에 있을 세계청소년야구대회(18세 이하) 참가 선수 선발 때문이었다.

국가를 대표해 나가는 만큼 선발된 선수나 학교에게는 큰 영광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개개인에게는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국가 대표가 되어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나가는 그 시기, 고교 야구계에서 또 다른 대회가 있기 때문이다.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후반기의 왕중왕전으로 꼽히며, 고교 야구계에서 가장 큰 대회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나 전통의 강호들은 절대 이 대회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주요 선수들이 차출되어 나간다면, 이 청룡기에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그 때문에 이 시기가 되면 고교 야구팀 감독은 물론이고, KBSA도 골치가 아파지는 것이다.

잡음 없이 선수 선발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또 오래된 라이벌인 일본보다 성적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임원들의 머리에 스트레스성 탈모가 생길 지경이었다.

“최 상무님, 선수 선발은 모두 끝났습니까?”

KBSA회장인 이상협은 최태원 상무를 보며 물었다.

“예, 여러 위원들의 추천을 받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요?”

이상협은 곧장 대답하는 최태원 상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제 노파심 때문에 한 번 물어보는 건데, 혹시나 청탁을 받으시진 않겠죠?”

이상협 회장은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출전한 선수 중, 학교의 청탁을 받아 선발 명단에 오른 사람이 있어 낭패를 본 경험이 있었다.

질문을 던지자마자 최태원 상무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본 이상협 회장의 마음속에도 긴장감이 맴돌았다.

“…청탁은 아닙니다. 다만, 몇몇 학교에서 과도한 선수 빼 가기라는 항의가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상협 협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청탁은 아니지만, 선수 선발 과정에서 뭔가 잡음이 일고 있음을 느껴졌다.

“광주상고와 부산정보고, 서울의 휘성고 등등 선수 차출이 심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

“하지만 작년 대회 성적을 생각하면, 올해는 조금 무리한 선수 선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최태원 상무는 얼굴을 찌푸렸다.

작년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일본이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들이 받았던 비난을 생각하면, 각 학교의 관계자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황금 세대를 내세워 야구의 종주국인 최강 미국을 꺾고 대회 우승을 차지한 일본.

반면 대한민국 대표 팀은 그런 일본에게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11:0이라는 스코어로 콜드 패를 당했다.

KBSA에 엄청난 여론의 질타가 쏟아진 것도 당연지사.

그래서 올해는 작년의 굴욕을 만회하기 위해 최강의 전력을 선발한 뒤 내보내기로 고등학교와 합의한 상태였다.

그런데 막상 대회가 가까워지니, 조금씩 불만의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학교에서 그럽니까?”

작년의 굴욕을 잊지 않고 있던 이상협 협회장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광주상고입니다.”

“광주상고요? 거기서 왜?”

“이번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광주상고의 투수 김경제와 포수 최태경, 그리고 외야수 김우리를 차출했는데, 그곳 감독은 이들 세 명을 차출하는 것은 자신들의 전력 절반을 빼 가는 일이라며 거부하고 있습니다.”

최태원 상무의 이야기를 들은 이상협 협회장은 더욱 표정이 구겨졌다.

국가와 협회의 자존심을 찾기 위한 차원에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이해하자고 했던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그런데 벌써 이렇게 자신들의 이득을 따지는 광주상고의 목소리에 화가 났다.

“광주상고 감독은 벌써 작년의 그 굴욕을 잊은 거란 말입니까?”

화가 난 이상협 협회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광주상고 출신 임원이 얼른 변명을 내놓았다.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면요?”

“외야수인 김우리보다 더 좋은 전력이 있는데도 광주상고의 전력을 꺾기 위해 위원들이 무리한 차출을 했기 때문입니다.”

광주상고 출신 임원인 이현상은 회의실에 있는 위원들을 노려보며 대답하였다.

올해 광주상고는 두 차례나 우승을 하며, 고교 야구 명가의 이름을 다시 한번 알렸다.

반면 고교 야구 명문이라 불리던 다른 학교들은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번 청룡기만이라도 성적을 내기 위해, 두 번이나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우승한 광주상고의 전력을 확 빼 버리자고 담합을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력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초고교급 투수인 김경제와 포수 최태경, 그리고 외야수인 김우리를 적극 추천한 것이었다.

“막말로 올해 고교 홈런왕이라 불리는 영광고의 정대호만 해도 당장 프로에 데려다 놨을 때 3, 4, 5번 중심 타선 중 한 자리를 꿰찰 수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그런 선수는 배제하고 김우리를 선발했으니 당연히 말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현상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 정대호!”

대호의 이름이 나오자 이상협 협회장도 탄성을 질렀다.

“그러고 보니 대통령배 결승이 정대호 선수가 있는 영광고와 성남고였던가요?”

이상협 협회장은 정대호의 이름을 들어 보았는지 탄성을 지르며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을 언급했다.

“네, 조금 전 영광고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래요? 그럼 정대호 선수 성적은 어떻습니까?”

이상협 협회장이 대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3월에 열린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 팀도 아닌 4강 팀에서 홈런왕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의 뇌리에 정대호라는 이름이 각인되었는데, 이어지는 황금사자기에서도 홈런왕과 준우승을 차지했고, 이번 대통령배에서도 많은 홈런을 때려냈기에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진 이름이었다.

“정대호 선수는 이번에도 홈런왕을 차지한 것은 물론이고, 영광고가 우승을 거두며 최우수선수상까지 받았습니다.”

“하하하! 대단하군요.”

이현상 위원의 이야기에 감탄을 하는 협회장과는 다르게 담합을 했던 위원들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국가와 협회의 명예보단 자신들의 출신 학교의 명예를 더 생각했던 이들이었기에 부끄럽다는 감정이 든 것이다.

* * *

“예예, 알겠습니다.”

느닷없이 KBSA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 영광고 조금산 감독은 깜짝 놀라며 전화기에 대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허어! 내 대에서 국가 대표를 내보내다니…….’

전화를 건 사람은 KBSA에서 19세 이하 부, 즉 고교야구를 전담하는 부서장인 최태원 상무였다.

이번 대통령배 우승 전까지 아무런 커리어도 없던 조금산으로서는 전화상임에도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 인물에게서 이번 대회 우승에 대한 축하와 9월에 있을 세계청소년야구대회의 국가 대표로 선수 선발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대표 선수는 예상대로 정대호였다.

하기야 영광고에서 태극 마크를 달 만한 선수는 대호뿐이었기에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예, 그럼 그렇게 알고 그곳으로 보내겠습니다.”

탁!

통화를 마친 조금산 감독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껄껄 웃었다.

“으하하핫!”

그동안 그는 많은 야구선수를 가르쳤다.

개중 몇몇은 프로 구단에 입단시키기도 했지만, 국가 대표를 배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같은 고교 야구 감독들을 만날 때면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자신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거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뭐…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겉으로 보기엔 어쨌든 우리 영광고 야구부 출신이지 흐흐.’

지금에 와서는 조금산 역시 그동안 다른 감독들이 잘난 체 했던 것 역시 선수가 잘나서 그런 것이니, 자신과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역시 정대호, 그놈이 뭔가 해낼 줄은 알았지만, 벌써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줄이야.’

조금산은 작년 겨울부터 변하기 시작한 대호를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하였다.

뭔가를 깨우친 것인지, 녀석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행동을 보였다.

야구부 회비조차 내지 못해 항상 자신과 코치의 눈치를 보며 기가 죽어 있던 게 언제인지 생각도 안 날 정도로 겨울 합숙을 들어가며 적극적으로 변했다.

‘그뿐만이 아니지. 뭐, 내가 암묵적으로 허용해 주긴 했지만, 나나 코치 허락도 안 받고 부원들의 타격 폼 같은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기도 했고. 옛날의 녀석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

그 결과, 영광고는 서울 내에서 중하 정도의 전력을 가진 학교로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상중 정도로 실력이 확 올라갔다.

3월에 있었던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4강에 오르고, 주말 리그에서도 탁월한 성적을 거두면서 왕중왕전인 황금사자기에 진출을 한 것은 물론이고 대회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이는 영광고에서 야구부가 창단된 이후 가장 높은 성적이었다.

출전하면 할수록 영광고의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었다.

하지만 돌풍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이번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그렇게 염원하던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비록 뉴월드배와 황금사자기에서 두 차례나 영광고의 앞길을 막은 광주상고와의 결승전은 아니었지만, 성남고를 물리치고 우승을 하였다.

이는 참으로 감격해 마지않는 성적이었다.

“이봐, 안 코치!”

“예!”

“대호 좀 불러 줘!”

“정대호요?”

“그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안기준은 느닷없는 감독의 지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호가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대표로 차출됐다.”

“네? 국가 대표요?”

“그래. 방금 전 전화, 바로 KBSA의 최태원 상무한테서 온 거야.”

“아!”

KBSA의 최태원 상무의 전화였다는 조금산 감독의 말에 안기준은 깜짝 놀라 탄성을 질렀다.

“알겠습니다.”

놀란 것은 놀란 것이고, 감독의 지시를 받은 안기준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야구부실에 있을 대호를 찾아 나섰다.

* * *

오후 훈련을 마치고 먼저 야구부실로 들어온 대호는 빠르게 씻고 홀로 구석에 앉아 상태창을 확인했다.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마치고 밀려온 피로를 풀기 위해 한동안 상태창을 보지 않았다.

이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상태창>

이름 : 정대호(18)

국적 : 대한민국(ROK)

성별 : 남

투타 : 투(우) 타(우)

레벨 : 55

힘 50

민첩 45

체력 39

지능 40

정신 43

순발력 47

컨택 48

내구력 10

보너스 포인트 : 1

퀘스트 : 일일 퀘스트(1)

재능 : 평원을 달리는 전령, 목인방의 통과자

“음!”

이번 대통령배를 통해 다시 한번 레벨 업을 경험했다.

대호는 지난번 보너스 포인트를 남겨 둔 일 때문에 레벨이 오르고 나면 재깍재깍 스탯을 올렸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스탯이 어느덧 프로 레벨인 40을 넘어선 상태였다.

‘체력에 1만 더 투자하면 40이네?’

그렇게 체력에 1을 투자해서 40을 만든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띠링!

‘뭐지?’

[모든 스탯이 40 이상이 되면서 프로 레벨에 들어섰습니다. 시스템이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업그레이드 완료까지는 12시간이 소요됩니다.]

12:00:00.

11:59:59.

‘아!’

대호는 조금씩 줄어드는 시간을 보고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챘다.

2회차와 3회차에서 프로 구단과 계약을 하고 난 이후 생기는 일이었다.

시스템 업그레이드.

‘내구력은 아직 40에 한참 못 미치는데… 이 스탯 자체가 업그레이드 이후에 생기는 거라 포함을 안 시킨 건가?’

대호는 벌써 4회차임에도 아직 시스템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한다는 말은, 내 실력이 프로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뜻이겠지.’

대호도 어느 정도 감으로 자신의 실력이 프로에 통할 거라고 짐작은 했다.

게다가 지금 시스템이 이렇게 확답해 준 것이나 다름없으니,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이 가득해졌다.

“대호야, 축하한다.”

그때, 언제 다가왔는지 안기준 코치가 대호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네?”

“네가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한국 대표로 선출되었다고 하네.”

“아!”

그 말을 듣자마자 대호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떠올랐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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