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끝나고 영광고의 합숙 훈련도 끝이 났다.
이에 대호는 집에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자신의 방 거울 앞에 섰다.
“후우!”
깊게 한숨을 쉰 대호는 그동안 달려온 자신의 발자취를 되돌아보았다.
‘내가 홈런왕이라니…….’
그동안 회귀를 세 번이나 했지만, 뉴월드배에서 홈런왕을 탄 건 처음이었다.
애초에 준결승까지 올라간 것도 처음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아마 이번 생에서 명예의 전당 입성을 위해 진로 방향을 설정하며 힘에 치중하기로 한 결정이 큰 영향을 미친 듯했다.
‘어디, 어떻게 변했는지 한번 확인이나…….’
<상태창>
이름 : 정대호(18)
국적 : 대한민국(ROK)
성별 : 남
투타 : 투(우) 타(우)
레벨 : 33
힘 28
민첩 26
체력 25
지능 30
정신 40
순발력 30
컨택 38
내구력 10
보너스 포인트 : 22
퀘스트 : 일일 퀘스트(1)
재능 : 평원을 달리는 전령, 목인방의 통과자
“어?”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한 대호는 깜짝 놀랐다.
지난번 재능 획득 이후 처음 열어 보는 상태창이었는데, 엄청난 성장을 거둔 상태였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확인할걸.”
대회에 집중하느라 상태창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무려 33레벨에 남은 보너스 포인트는 22개.
만약 대회 기간 중에 이 사실을 깨달아 보너스 스탯을 부족하다고 느낀 곳에 투자했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 텐데 이런 후회감이 약간 들었다.
“…이 정도로 성장한 것도 전생에서는 없었던 일인데,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써야겠다.”
예전에는 수시로 상태창을 열던 때도 있었지만, 경험치와 레벨이라는 게 쉽게 오르는 것이 아니다 보니, 대호도 인내심을 갖게 되었다.
중요한 시리즈가 끝난 뒤에 여는 식으로 말이다.
이번에는 그게 안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셈이었다.
대호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아깝다. 잘하면 우리가 우승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닌가? 어차피 다른 팀들은 날 견재했을 테니까 별 영향 없었을 거야. 젠장.”
후회는 아무리 일찍 한다고 해도 늦은 법.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고 대호는 스탯창에 가득 차 있는 보너스 포인트로 눈길을 돌렸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스탯이나 올리자.’
어떤 스탯을 올릴지 확인하던 대호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까 스탯도 많이 올랐네?’
따로 스탯에 투자를 하지도 않았는데, 그간의 훈련과 대회에 나간 경험 때문일까.
엄청난 상승치를 보이고 있었다.
26이었던 힘은 28이 되었고, 체력은 22에서 25가 되었다.
민첩은 그대로였지만 평원을 달리는 전령이 있으니 사실상 31이나 마찬가지고, 기타 스탯들도 골고루 상승했다.
가장 많이 오른 정신은 무려 10이나 상승했다.
10레벨을 올려 얻는 보너스 포인트를 모두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수치.
대호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가지 않았다.
“일단 힘에 12포인트, 민첩에 4포인트 찍고… 또 뭘 올릴까?”
원래 28이던 힘 스탯에 12포인트를 더해 40으로 맞췄다.
원래는 30까지만 힘에 올 인할 생각이었지만, 보너스 포인트가 넘쳐나는 현 상황에서는 더 줘도 상관없을 듯했으니까.
그리고 민첩에 4를 준 이유는, 일단 30으로 맞추기 위해서였다.
“남은 포인트는 6. 어디다 찍어야 할까?”
그때, 대호의 눈에 38의 수치를 자랑하는 컨택이 들어왔다.
‘그래, 깔끔하게 일단 컨택에도 40을 주자.’
40이라는 숫자는 메이저리그 프로 선수의 입문에 속하는 수치로, 국내 프로야구라면 1군 선수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남은 건 그냥 민첩에다 밀어 넣었다.
<상태창>
이름 : 정대호(18)
국적 : 대한민국(ROK)
성별 : 남
투타 : 투(우) 타(우)
레벨 : 33
힘 40
민첩 34
체력 25
지능 30
정신 40
순발력 30
컨택 40
내구력 10
보너스 포인트 : 0
퀘스트 : 일일 퀘스트(1)
재능 : 평원을 달리는 전령, 목인방의 통과자
대호의 현재 최종적인 스탯이었다.
“참…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데? 큭큭.”
한참 동안 킥킥대던 대호는 40을 달성한 스탯이 세 개나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폭소를 터뜨렸다.
“아하하핫! 힘, 정신, 컨택이 40에 민첩도 34… 재능이 더해지면 39니까 사실상 40… 벌써 이 정도면 가을 청룡기나 대통령배쯤 되면 내구력을 빼고 올 스탯 40도 잘하면 가능하겠어.”
사실 40이라는 게 프로의 시작점이기는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들도 각자 가진 능력이 다들 다른 만큼, 모든 부분에서 40점의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즉, 지금 대호의 스탯 정도면 프로에 데려다 놔도 충분히 기본은 할 수 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체력이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대호의 나이를 생각하면 충분히 감안 가능한 부분이었다.
이대로만 있어도 국내 드래프트에서 무조건 1라운드 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대호가 레벨을 올릴 시합은 전국 대회만 세어 봐도 앞으로 세 개나 남았다.
거기에 더해 경험을 쌓을 주말 리그도 여럿 있으니, 프로로 진출하는 드래프트가 있을 가을까지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생각을 한 대호의 입가엔 저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 * *
따악!
“홈런! 정대호 선수, 홈런입니다!”
“2040년 아마 야구의 시작을 알리는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의 홈런왕이란 이름에 걸맞은 홈런이 나왔습니다.”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끝나고 시작된 고교 주말 리그의 전반기 왕중왕전인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대호는 결정적 홈런을 쳤다.
둥둥둥둥!
“이로써 이번 황금사자기의 홈런왕 타이틀은 정대호 선수가 가져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조금 전 정대호 선수의 홈런으로 역전이 되었잖아요? 이대로 시합이 끝나면, 결승전에서 영광고가 맞이할 상대는 광주상고가 됩니다. 하하하, 지난 뉴월드배에서 패전의 고배를 마시게 한 팀이죠.”
“하하하, 그렇게 된다면… 이거, 경기가 재미있게 되겠군요?”
“맞습니다. 영광고에게는 설욕전이 되겠고, 광주상고에게는 다시 한번 피 말리는 시합이 될 것입니다.”
“그건 무슨 소리죠?”
“뉴월드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광주상고가 우승한 뒤, 감독이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경기로 준결승에서 만난 영광고를 꼽았거든요.”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맞습니다. 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공수 교대가 되었군요.”
* * *
“4타수 3안타 1홈런을 친 고교 최강 홈런왕 정대호 선수 타석에 들어섭니다.”
황금사자기 결선, 9회 초.
대호는 자신의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다.
펑!
“볼!”
초구 볼이 들어왔다.
앞선 타석에서 홈런을 쳐서 그런지 광주상고의 마무리 투수는 좀처럼 좋은 공을 주지 않으려는 듯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두 개 정도 빠지게 던졌다.
거의 고의사구에 준하는 볼이었다.
팡!
“볼!”
이번에는 홈 플레이트에 바운드되는 볼이었다.
초구 바깥쪽 빠지는 패스트볼에 이은 바운드 되는 커브.
구종은 달랐지만, 딱 봐도 투수가 타자와 승부를 하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제길.’
볼 두 개를 얻어 냈으니 타자에게 유리한 스코어였지만, 대호의 마음속은 답답했다.
3:5.
영광고가 2점 차로 밀리고 있는 중인데, 광주상고 투수는 자신과 승부를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팡!
“볼!”
팡!
“볼!”
볼넷이 되었다.
만루 상황에서 어떻게든 안타를 쳐 동점 내지는 역전을 시키고 싶었지만, 광주상고는 밀어 내기로 1점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대호와의 승부를 피해 버렸다.
스코어는 4:5.
1점을 냈지만, 아직 뒤지고 있었다.
퍼엉!
“아웃! 게임 셋!”
1루에 있던 대호는 자신의 뒤를 이어 타석에 들어선 박재홍이 삼구 삼진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주장인 재홍이 못했다기 보단, 상대 투수가 너무도 잘 던진 결과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 이번에는 가능할 것 같았는데. 역시나…….’
시합을 할수록 대호의 레벨은 빠르게 올랐다.
그러했기에 이번 황금사자기에서는 광주상고에 설욕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실력이 오른 것처럼 광주상고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빨리 활약한 게 처음이다 보니, 객관적으로 실력을 측정하는 것이 꽤나 어려웠다.
분명 대호 자신은 물론이고 영광고 야구부원 역시 뉴월드배 이후로 실력을 향상시켰지만, 그 이상으로 광주상고 선수들이 일취월장했던 것이다.
‘다음에는 안 진다.’
* * *
쨍쨍!
뜨거운 햇빛이 내리 찌는 8월.
전국고교야구대회 중 하나인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이 치러지고 있었다.
올해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선은 전통의 강호들이 대거 탈락하는 이변이 나오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영광고등학교.
전통의 강호는 아니지만 모두 그 실력을 인정하는 학교로, 한 해 고교야구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뉴월드배에서 준결승까지 올랐고, 또 전반기 왕중왕전이라 할 수 있는 황금사자기에서 준우승을 한 곳이다.
그에 비해 상대로 오른 성남고는 예전에는 고교 야구의 강호 중 하나였지만, 언젠가부터 이름값이 점점 떨어지는 그런 학교였다.
그러다 보니 이번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야구 관계자들에게 새로운 고교 야구 스타가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김준수 위원님, 이번 결승을 어떻게 보십니까?”
“아무래도 성남고가 유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남고요? 아니, 무슨 이유로 위원님은 성남고가 유리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나운서인 이기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광고는 올해 돌풍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반면, 성남고는 오래 전부터 쌓아온 명성을 까먹고 있는 그런 학교였으니까.
비록 초고교급 투수를 포함해 탄탄한 투수력 덕분에 이번 대통령배 결승에 진출하긴 했지만, 이기성이 보기에는 영광고의 폭발적인 타선을 막기엔 무리라고 느껴졌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란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김준수 해설위원의 말에 이기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물론 들어는 봤습니다. 하지만…….”
“네. 영광고의 타선이 고교 야구계에서는 엄청난 강타자들이 즐비하다는 건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길 보시죠. 성남고의 투수진 역시 이번 대회에서 막강한 방어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김준수는 자신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이기성 아나운서를 보며 자신이 모은 성남고의 득점표를 보여 주었다.
결승에 오르기까지 성남고가 득점한 점수와 상대에게 빼앗긴 점수가 적힌 자료였다.
“아니… 어떻게 이런 점수를?”
이기성은 자료를 보며 깜짝 놀랐다.
“보셨던 것처럼 성남고는 막강한 투수력을 바탕으로 점수를 주지 않는 철벽 수비 야구를 하였습니다. 그에 반해 영광고는 강력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많은 점수를 뽑아냈지만, 투수력이 붕괴되면서 점수도 많이 내주었지요.”
김준수는 이번 대통령배에서 영광고의 투수진이 무너졌다고 판단을 내렸고, 수비력이 탄탄한 성남고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허어… 이대로라면 정말 창과 방패의 싸움이 되겠는데요?”
이기성 아나운서도 일목요연한 자료를 보자, 김준수의 설명을 납득했다.
하지만 결과는 김준수 해설 위원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대회에서 영광고의 투수진이 무너진 원인은 세대교체를 위해 조금산 감독이 기존의 투수들 대신 1, 2학년을 투입해서 실험했기 때문이었다.
즉, 기존 3학년은 여전히 쌩쌩하다는 뜻이었다.
더욱이 오늘은 결승전이었기에 1, 2학년 투수들이 던질 이유도 없었고 여유도 없는 건 당연했다.
펑!
“아웃!”
펑!
“아웃!”
경기는 팽팽한 투수전이 펼쳐졌다.
“자자, 이번 경기만 이기면 우리도 우승기를 가져갈 수 있어!”
대호는 야구부원들의 정신이 흐트러질 때쯤 되면, 그렇게 고함을 지르며 파이팅을 이끌었다.
“아자! 우승기!”
“우리도 우승기 하나는 들고 가자!”
“파이팅!”
야구부 창단 이래 영광고가 거둔 가장 좋은 성적이 바로 지난번 황금사자기에서의 준우승이었다.
그러니 방금 전 대호의 우승기 드립이 모든 야구부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따악!
다다다닷.
“뛰어! 정신 놓지 말고!”
따악!
반복되는 안타.
대호의 한마디에 정신을 차린 영광고 타자들은 성남고 에이스 강보석의 강속구를 손쉽게 쳐 내며 안타를 만들어 냈다.
‘반년 전하고는 완전히 다르다고!’
뉴월드배 때만 해도 영광고 타자들은 상대 투수의 강속구를 쳐 낼 자신이 없어 투구 수 테러라는 작전을 통해 적의 구위를 낮추고, 투수를 교체시키게 만드는 작전을 사용했다.
그런데 불과 반년 만에 강보석의 강속구를 쳐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따아악!
“홈런!”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뚜껑을 열자 너무도 싱겁게 끝나 버렸다.
초반에만 해도 투수전으로 팽팽하게 흘러갈 것 같던 흐름이 3회가 지나자마자 영광고 타자들의 갑작스런 각성으로 인해 균형이 깨진 것이다.
영광고는 마치 방망이에 불이 붙은 것처럼 맹렬하게 배트를 휘둘러 댔다.
11:3.
최종 스코어였다.
결승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차이.
물론 대호 역시 이번 결승전에서 두 개의 홈런을 포함한 세 개의 안타는 쳐 내면서 이번 대회에서도 홈런왕을 쟁취하였고, 겸사겸사 최우수선수상도 획득하였다.
“우승이다!”
“그래, 우리가 우승이라고!”
“엉엉엉! 우승…….”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불리자마자 자신들이 우승했다는 것에 감동한 영광고 야구부원들은 경기장으로 뛰쳐나가며 환호하고, 또 울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