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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4화 (14/209)
  • 14화

    시합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광고의 입장이고, 상대인 성남고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날벼락 같은 일이 있을 수는 없었으리라.

    “하하하…….”

    성남고 감독 최덕만은 경기 상황을 지켜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분명 그가 세운 계획에서 이번 2라운드 상대인 영광고 따위는 그저 통과 지점에 불과했다.

    1라운드는 3학년인 이기호가 나가고, 2라운드에는 보다 상대하기 쉬운 영광고였기에 2학년이면서 차기 성남고의 에이스로 점찍은 강보석을 내세워 경험치를 먹여 준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경험치는 영광고가 아닌 자신들이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물론 상대 분석에 소홀했다는 점은 그도 인정한다.

    그러나 성남고의 타자까지 무력하게 물러나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자신이 이끌고 있는 성남고가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라 평가받고 있는 영광고에 2:0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선발 강보석은 2회에도 네 타자에 무려 스물네 개나 되는 공을 소모했다.

    애초에 초고교급이라는 별명을 붙여 준 이유가 뭔가?

    그의 구위를 감당할 타자가 거의 없기 때문일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악착같이 따라붙는 영광고 타자들에게 계속해서 많은 공을 던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에 안타를 두 개 내줬지만, 더블플레이가 나오면서 점수는 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괜찮아! 괜찮아!”

    점수를 내주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할 때쯤, 영광고 응원석에서 괜찮다는 응원 구호가 나왔다.

    ‘끄응!’

    저벅저벅.

    “더 던질 수 있겠냐?”

    공수가 바뀌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강보석에게 최덕만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움찔.

    평소 같으면 자신있게 괜찮다는 말을 했을 녀석이, 이번에는 왠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감독은 왜 그런지 금방 알아챘다.

    정대호.

    다음 번에 상대해야 할 타자가 바로 솔로 홈런을 날린 그 녀석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대답을 들은 최덕만은 잠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강보석의 정수리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알았다. 아이싱 해라!”

    비록 선발로서의 역할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기대주인 강보석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 평소 최덕만 감독의 지도 스타일대로 지금 윽박질러 봐야 오히려 역효과일게 분명했다.

    기가 꺾인 선수에게 호통 쳤다가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1회에 뼈저리게 경험했으니까.

    물론 1회 채 코치의 마운드 방문 이후, 미리 불펜에 연락을 해 놨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기도 했다.

    * * *

    “조금만 더 흔들었으면 충분히 점수를 낼 수 있었을 텐데요.”

    안기준은 수비를 하러 나가는 영광고 선수들을 보며 감독에게 이야기했다.

    “아니, 괜찮았어,”

    “네? 괜찮다니요? 만약 강보석이 이번 회를 무실점으로 막아 내면서 정신 차리기라도 한다면 힘들어질 것 아닙니까?”

    안타를 두 개나 쳤지만, 점수가 나지 않았기에 안기준은 아직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산 감독의 판단에 강보석의 각성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그럴 일이 없다니요? 비록 강보석이 체력적으로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1~2회 정도는 더 던질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엔 다음 회엔 다른 선수가 나올 것 같다.”

    “다른 선수요? 누구?”

    안기준이 생각하기에는 아무리 흔들린다고는 해도, 성남고에서 강보석보다 나은 투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어떤 선수가 다음 순서로 나올지 깊은 의문을 품은 것이다.

    “우리 팀도 아닌데 누가 나올지 내가 어떻게 알아? 다른 투수 중에 컨디션이 좋은 녀석이 나오겠지. 하지만…….”

    조금산은 질문하는 안기준 코치의 궁금증을 풀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말끝을 흐렸다.

    ‘어차피 누가 나오든 이번 시합, 우리가 이겼을 테니까.’

    그런 말을 속으로 삼키면서 말이다.

    한편, 2회에는 무득점으로 공수 교대를 했지만, 대호와 다른 영광고 선수들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분명 1사 1, 3루에서 더블플레이 때문에 아웃되는 건 아쉬운 일이었다.

    만약 접전의 상황이라면 쌍욕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고.

    하지만 애초의 계획보다 좋은 흐름이었기에 쉽게 아쉬움을 떨쳐 낼 수 있었다.

    ‘음… 아무래도 다음 회에는 투수가 바뀌겠네.’

    대호는 공수 교대를 하면서 1루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강보석의 표정을 보았기에 그런 판단을 내렸다.

    그러면서 성남고 불펜 쪽을 잠시 쳐다보았다.

    팡! 팡!

    간간히 연습 투구 소리가 들렸지만, 그리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

    그나마 성남고에서 자신에게 위협될 만한 적수가 강보석 하나뿐이었는데, 이제 그 녀석도 처리했으니 당연히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좋았어.’

    대호는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고 있었다.

    뉴월드배 리그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또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 위해선 혼자 잘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혼자 잘하더라도 팀이 매번 지구 우승도 못하고, 월드 시리즈에도 올라가지 못한다면 과연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을까?

    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전보다는 많이 늘었지만… 이번 뉴월드배 야구 대회는 잘하면 4강까지 가겠네.’

    솔직히 영광고 야구부의 실력은 기껏해야 뉴월드배에서 2라운드 진출이 고작이었다.

    지난 2, 3회차에서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 4회차에서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작전을 세워 결과를 뒤집었다.

    ‘역시, 구기 종목은 혼자 잘해 봐야 소용이 없구나. 혼자만의 퍼포먼스로 잠시 주목을 받을 순 있지만… 결국 남는 건 우승이라는 기록이지.’

    대호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날고 긴다 해도 단합된 단체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상대의 약점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물고 늘어지니, 초고교급 강속구 투수라는 강보석도 겨우 2회 만에 맛이 가버렸다.

    원래라면 강보석의 150㎞에 이르는 강속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2라운드에서 광탈 했을 영광고였지만, 타선 전체가 파울 테러를 하니 투수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것을 깨닫고 대호는 지금부터 영광고 야구부를 시작으로 팀 스포츠를 위해 노력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따악!

    “마이!”

    영광고 선발인 진호의 볼이 가운데로 몰리면서 성남고 타자가 잘 받아쳤다.

    이에 대호는 자신 쪽으로 날아오는 타구를 보며 콜을 하고 뛰었다.

    평범한 외야수였다면 원 바운드로 처리하며 1루 단타로 막았을 타구였지만, 대호는 과감하게 달려가서 낙하지점에 글러브를 가져다 대며 슬라이딩을 했다.

    만약 타구가 비껴가게 되면 단타로 막을 것을 2루타나 3루타가 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대호는 자신감이 있었다.

    타자가 친 공은 그라운드에 바운드가 되기 전, 정확하게 대호가 가져다 댄 글러브 안으로 들어갔다.

    팟!

    “아웃!”

    잘 맞은 타구가 나오자 성남고 더그아웃과 응원석에서 기대감에 가득 차 소리를 질렀지만, 너무나 멋들어진 대호의 슈퍼 플레이에 그 기대감은 급격히 식어 버렸다.

    “아아!”

    기대가 크면 그게 실패했을 때 더 크게 낙담을 한다고 했던가?

    성남고의 더그아웃은 더욱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뒤로 그 분위기가 이어지는지 연속해서 아웃 콜이 쏟아졌다.

    “아웃!”

    “아웃! 체인지!”

    살짝 집중력이 흐려져 작은 실수를 했지만, 뒤에 받치고 있는 대호의 호수비로 위기를 막아낸 진호는 자신감을 회복해 연속 삼진으로 쓰리 아웃을 잡아내며 삼자범퇴로 2회를 막아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영광고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2회 초 수비를 마치고 진이 빠진 강보석을 대신해 3회 초 마운드에 오른 성남고의 중간 계투는 선두 타자로 재환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따악!

    시원한 2루타였다.

    ― 재환아, 초구. 알지?

    ‘그 정돈 나도 알아.’

    야구계에 내려오는 오랜 격언이 하나 있다.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라.

    이는 스트라이크 존의 확인을 위해 투수가 초구를 가운데에 집어넣는 경우가 많기에 나온 말이었다.

    성남고의 중간 계투 역시 이런 징크스 아닌 징크스는 잘 알고 있었기에, 바깥쪽 낮은 패스트볼을 던졌다.

    정확하게만 던진다면 타자가 치기 가장 어려운 곳이 바로 그곳이다.

    하지만 고교 야구 선수가 컨트롤을 해 봐야 얼마나 정확하겠는가?

    나름대로 낮은 패스트볼을 던진다고 바깥쪽에 던졌지만, 가운데로 몰린 채 날아왔다.

    이는 조금 전 영광고가 수비를 할 때, 홍진호가 실수한 그 코스였다.

    재환은 이런 투수의 실투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밀어 쳐 2루수 키를 넘겨 버렸다.

    우익수가 느리게 굴러가는 공 때문에 뒤늦게 달려왔고, 발이 빠른 재환은 2루에 안정적으로 들어갔다.

    ‘하… 첫 타자부터 이게 뭐냐. 아, 씨. 강보석은 왜 나한테 이런 걸 떠넘긴거야.’

    성남고의 중간 계투는 속으로 계속해서 욕을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재환 다음 순번은 이번 경기에서 가장 핫한 선수인 대호였으니까.

    5타수 5안타 5홈런을 친 강타자.

    게다가 5번째 홈런은 초고교급 투수를 상대로 만들어 낸 대형 홈런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기에 성남고 두 번째 투수는 저도 모르게 1루 더그아웃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해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투수의 눈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걸러!’

    감독의 지시를 받은 코치는 투수와 눈이 마주치자 그렇게 사인을 보냈다.

    ‘휴!’

    더그아웃에서 코치로부터 거르라는 지시를 받은 중간 계투는 속으로 안도하였다.

    안타 하나만 맞아도 1실점이 확실한 이때, 타석에 들어선 상대가 무려 5홈런을 친 홈런 타자였으니까.

    다행히 감독과 코치 역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 저런 선수와 맞대결을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볼!”

    고의사구였다.

    포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투수의 공을 받았다.

    영광고에서 야유가 나올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니, 영광고조차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영광고가 저런 상황에 놓이더라도 당연히 저렇게 하리라는 것을.

    더욱이 지금 상황은 노 아웃에 주자 1, 2루.

    솔직히 다음 타자인 재홍도 만만한 선수는 아니었다.

    이번 뉴월드배 고교야구대회에서 5홈런을 치고 있는 대호 때문에 상대적으로 묻히고 있는 거지, 지금 재홍의 성적은 객관적으로 봐도 꽤나 괜찮았다.

    5타수 4안타, 홈런 1개로 현재까지 타율 8할의 강타자니까.

    그렇기에 더그아웃에서도 대호의 고의사구에도 별다른 동요를 하지 않은 것이다.

    따악!

    역시나 영광고의 4번 타자는 괜히 4번 타자가 아님을 보여 주었다.

    재홍은 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로 들어오자마자 맹렬히 배트를 휘둘렀다.

    3루 선상에 나가 있던 안기준 코치는 팔을 맹렬히 휘둘렀다.

    “달려!”

    2루에 있던 재환이 달려오자, 곧바로 홈으로 뛸 것을 지시했다.

    그런데 3루를 지나친 재환이 아직 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눈앞으로 다가오는 대호가 보였다.

    2루를 거쳐 3루 베이스로 뛴 것이다.

    ‘어?’

    안기준은 순간적으로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대호를 보고 당황했다.

    정석대로라면 여기서 멈추게 해야 하겠지만, 성남고 우익수가 이제 막 공을 잡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순간 망설인 것이다.

    그러나 대호의 판단은 빨랐다.

    파파팍!

    ‘어!’

    대호는 온몸의 근육에서 힘을 끌어올리며 달렸다.

    ‘가능해!’

    다른 사람이었다면 홈에서 아웃될 타이밍이겠지만, 자신에게는 주력을 높여 주는 재능이 있으니까.

    ‘믿는다.’

    파파파팍!

    지난 광영고와의 경기에서 특별 퀘스트를 완료하고 얻은 재능.

    이것들은 기본 스탯에 더해 여러 가지 능력치를 부여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 대호가 믿고 있는 것은 바로 민첩 스탯을 상승시켜 주는 ‘평원을 달리는 전령’이었다.

    스탯 5 상승.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무려 레벨 업을 다섯 번이라 해야 얻을 수 있는 수치였다.

    또한 그것을 온전히 민첩에 몰아넣어야 하고.

    파파파팟!

    힘찬 땅을 밟는 소리를 내며 달리는 대호의 모습은 흡사 먹이를 향해 달리는 맹호의 모습과 흡사했다.

    홈 플레이트를 훔치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느껴지는 무서운 돌진이었다.

    “홈!”

    성남고도 대호가 3루를 돌아 홈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외쳤다.

    휘잉!

    우익수는 굴러간 공을 잡자마자 빠르게 홈을 향해 던졌다.

    중간에 1루수가 잡아 송구하며 아슬아슬한 상황이 펼쳐졌다.

    파밧!

    “세이프!”

    달리던 중, 홈으로 공이 중계되는 것을 확인한 대호는 포수의 왼쪽으로 크게 돌아 슬라이딩했다.

    그러면서도 포수와 최대한 거리를 벌리기 위해 왼팔을 접고 오른팔을 뻗어 홈 플레이트를 짚었다.

    살짝 먼지가 휘날리긴 했지만, 주심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기에 정확히 확인하고 세이프 콜을 했다.

    성남고 포수도 최선을 다해 공을 받자마자 대호를 아웃시키기 위해 몸을 틀어 보았지만, 멀리 돌아가는 대호를 터치하지 못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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