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3화 (13/209)

13화

뜨거운 승부가 펼쳐지고 있는 경기장.

“영광고 파이팅!”

“강보석 힘내라! 성남고 파이팅!”

뉴월드배 고교야구대회 2라운드, 성남고와 영광고.

시합을 참관하고 있던 관중들은 정대호의 기가 막힌 홈런 타구에 열광했다.

비록 참관하고 있는 관중들이라고는 두 학교 야구부원들의 학부형과 가족들, 다음 시합을 기다리는 선수들, 그리고 프로야구 및 대학 야구 팀의 스카우터 뿐이었지만 말이다.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도 좌중간 상단 스탠드를 맞추는 대형 홈런은 그만한 힘이 충분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야구의 꽃은 홈런이니만큼, 지켜보는 야구팬들을 흥분시키는 묘한 힘을 가졌다.

하지만 관중들과 달리, 조금 전 대호가 친 홈런을 보면서 전혀 흥분하지 않는 이가 한 명 있었다.

바로 성남고 감독 최덕만이었다.

그는 방금 전 대호에게 두들겨 맞은 홈런을 지켜보면서, 뭔가 일이 잘못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2번 타자까지는 잘 잡았다.

물론 투구 수가 많은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루상에 아무도 내보내지 않았으니까.

1라운드에서 무려 4연타석 홈런을 친 놈이 3번에 포진해 있는 만큼, 그 정도만 해도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그리고 이미 선발 강보석에게 땅볼이나 뜬공 유도를 하라고 지시를 내린 만큼, 잘 먹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15구가 되며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거르라고 할 것을…….’

이미 뒤늦은 후회였다.

최덕만은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대호를 보며 입술을 짓이겼다.

저놈은 지난 경기에서의 활약이 단순한 우연이라 행운이 아니라 실력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었다.

‘설마… 그 파울 홈런도 보석이의 투구 수를 늘리기 위한 작전이었나?’

그제야 무언가 실마리가 짜 맞춰지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시작부터 이상했다.

평소 보석이의 실력을 생각해 봤을 때, 1회 초에 사용되는 투구 수는 많아야 열다섯 개.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투 아웃을 잡았지만, 1, 2번 타자를 상대로 무려 열일곱 개나 되는 공을 던진 상황.

또 3번 타자를 상대로는 15구를 던졌지만 결과적으로 홈런을 얻어맞았고.

‘안타도 아니고 홈런이라니… 최악이군.’

그때, 최덕만의 눈에 15구에 이르는 승부 끝에 홈런을 얻어맞고 넋이 나간 강보석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제 겨우 1회인데 벌써 눈이 풀리면 어쩌자는 거야!’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대호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강보석을 보며 최덕만은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채 코치!”

“예, 감독님.”

“아무래도 보석이가 충격이 큰 것 같으니까 좀 나가 봐!”

코치에게 지시를 하면서도 최덕만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제길, 설마 보석이의 약점을 영광고가 알고 있었을 줄이야.’

체력과 내구력이 약한 강보석은 투구 수가 70개 정도 되면, 구위가 확 낮아져 버리는 약점이 있었다.

그동안 그 사실을 알기에 빠른 승부를 가져갔는데, 영광고를 상대로는 그러지 못했다.

투 아웃을 잡은 것에 눈이 돌아가 투구 수가 예상 보다 많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다만 아직 한계까지 절반 정도 남아 있었기에 강보석이 이겨 내기를 바랐는데, 한순간에 무너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타임!”

성남고의 타임 요청에 주심을 보고 있던 심판이 타임 선언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 마운드로 올라간 채도원은 얼른 포수를 불러 함께 마운드에 올랐다.

“보석아, 정신 차려!”

“예? 네!”

“홈런을 맞긴 했지만 겨우 1점이야! 그리고 아직 시합은 많이 남았어.”

“네네.”

대답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강보석의 눈에는 초점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하… 이 새끼, 겨우 홈런 한 방에 맛이 가 버렸네.’

채동원은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고 있는 강보석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딱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투수를 교체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채동원은 다음 타자를 상대하기 전까지 강보석이 정신을 차리기를 기원했다.

물론 힘들어 보였지만.

‘제길,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채동원은 주심이 부르기 전에 포수와 함께 마운드를 내려왔다.

괜히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주심에게 밉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좀 어때?”

“그게…….”

투수의 상태를 물어보는 감독의 말에 채동원은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보이는 것처럼 강보석의 멘탈은 이미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다음 던질 투수를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강보석이 누구인가?

바로 자신이 차세대 에이스로 점찍은 투수다.

중학교 시절에도 140㎞ 중반의 공을 던졌고, 고등학교로 오면서 신체 조건이 더욱 성장해 작년에는 프로에서도 강속구로 통하는 150㎞를 기록했다.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내년에 더욱 기량을 다듬어 고교 야구에서는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강속구 투수가 탄생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이 꼴이라고?’

고작 영광고를 상대로 단 1회 만에 털려 버렸다.

비록 아직은 고작 1실점에 불과하지만, 최덕만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경기의 향방을.

이런 상황은 최덕만이 이번 뉴월드배를 준비하면서 가정해 본 여러 시나리오 중에서 전혀 들어 있지 않던 결과다.

현재 자신이 이끌고 있는 성남고의 전력이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작 뉴월드배 고교야구대회, 그것도 2라운드에서 이런 고비를 맞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기존 전력인 3학년과 2학년이 된 강보석만 있으면 최소한 준결승까진 진출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놓이자 최덕만은 현실 도피를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건 성남고교 야구부 전원이 같은 생각이었다.

‘아니, 아니지. 내가 너무 자만했어.’

최덕만은 이를 꽉 깨물었다.

지금 사태는 1라운드를 17:0으로 이긴 영광고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생긴 것이었다.

물론 4홈런을 친 타자인 정대호는 경계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지난번 활약이 운으로 이뤄진 것일 수도 있다고 여겼고, 다른 선수들이나 작전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반면 영광고는 어떤가?

지금 강보석의 상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구력이 약해 오래 투구를 하지 못하는 약점을 파고들어 투구 수 테러를 하지 않았는가.

이제 1회 투 아웃이지만, 강보석은 이미 한계 투구인 70구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33구를 던져 버렸다.

이대로 삼구 삼진을 잡는다고 해도 36구를 던지는 셈.

따악!

그런데 불행하게도 영광고의 4번 타자는 최덕만을 비롯한 성남고의 모두가 바라는 삼진이 아니라 안타를 치고 2루까지 가 버렸다.

멘탈이 나간 것은 비단 공을 던진 강보석만이 아니었다.

수비가 길어지면서 수비수들의 집중력 역시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 때문에 단타로 막을 수 있던 타구를 송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나와 베이스 하나를 더 헌납하고 말았다.

“뭐 하는 거야!”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에러로 인해 또다시 실점 위기에 놓이자, 최덕만은 크게 화를 냈다.

믿었던 선발이 조기에 무너졌지만, 영광고의 투수 전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이번 위기만 막아 내면 역전도 가능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무너진 것은 투수만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라고 호통을 쳤는데, 결과적으로 성남고 선수들은 더욱 위축되었고, 강보석은 다시 한번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따악!

“달려!”

5번 타자로 나선 최수호는 타석에 들어서기 무섭게 투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대호가 해 주었던 조언을 상기하고는 투수가 던진 초구를 노려 쳤다.

대호의 예측대로 몸 쪽 스트라이크 존으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촤아악!

성남고의 3루수가 슬라이딩을 하며 캐치하려 했지만, 공은 글러브를 지나가며 3루 라인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갔다.

통. 통.

좌익수가 재빨리 달려갔지만,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그래, 달려! 1점 더 달아나는 거야!”

더그아웃의 응원을 들은 것일까?

2루에 있던 재홍은 공이 배트에 맞는 소리를 듣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3루 베이스를 돌아 홈으로 뛰었다.

“세이프!”

그제야 재홍은 뒤를 돌아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의 눈에 최수호가 방금 전까지 자신이 서 있던 2루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빌어먹을.’

성남고 좌익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2루로 송구하면서 상대편을 아웃시킬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3루로 가지 못하게 견제 목적으로 던졌을 뿐.

최수호가 친 좌익수 쪽 깊은 안타로 인해 영광고는 다시 한 점을 추가해 1회에 2점을 뽑아냈다.

이는 생각지도 못한 득점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1회에 점수를 낼 생각 따위는 없었으니까.

타자가 일순 되고, 강보석이 지칠 것을 감안하다면 빠르면 3회, 늦으면 4회부터 공격을 시작해야 했다.

다만 대호는 무조건적으로 감독의 계획을 따르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했기에 이런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잘한다, 박재홍!”

“잘생겼다. 최수호!”

대호의 홈런과 박재홍, 최수호의 연속 안타로 인해 2점을 냈고, 아직도 주자는 득점권인 2루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영광고 응원석에서는 열렬한 응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것 봐라?’

영광고 응원석 한쪽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대일은 경기가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인지했다.

대호에게서 흥미를 느껴 자주 영광고를 찾던 그였다.

그렇기에 대일은 영광고의 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클랜드의 아시아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만큼, 성남고의 전력과 초고교급 투수 강보석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고교 2학년이 시속 150㎞를 던지고 있으니, 당연히 메이저리그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아까 전에 1, 2번 타자도 그렇고… 갑자기 전력이 급상승했네?’

두 학교의 시합을 지켜보던 대일은 정말 흥미로웠다.

처음 1, 2번을 평가했을 때는 ‘제법이다’ 이런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조금 더 진지하게 선수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초고교급 강속구 투수인 강보석이 영광고 타자를 상대하며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강보석의 컨디션이 나쁘다거나 제구가 제대로 안 되는 날도 아니었다.

즉, 처음에는 멀쩡한 상태의 강보석을 상대로 승부를 여기까지 끌고 오게 만든 것이다.

분명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영광고 타자들이 말이다.

‘성남고 강보석. 멘탈이 약함, 커맨드 부족…….’

2학년이긴 하지만 150km/h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였기에 내년을 위해서라도 자료를 꼼꼼히 작성해야 했다.

하지만 대일이 작성하는 성남고 선발 강보석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다.

그에 반해 기존 영광고 타자들에 대한 정보는 조금 상향 평가로 바꾸었다.

‘아직까지 메이저에 통할 것 같은 선수는 대호가 유일하군.’

작년까지의 데이터만 해도 메이저에 가까운 사람은 대호가 아니라, 지금 마운드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강보석이었다.

그런데 이번 2라운드에 들어서면서 그것이 역전이 되어버렸다.

펑! 펑! 펑!

“스트라이크! 아웃!”

6번 타자로 나온 이강은 원래 작전대로 투 스트라이크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공에 대해 쳐 내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강이 강보석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였는지, 5구만에 아웃이 되었다.

드디어 길었던 1회 초 영광고의 공격이 끝나고 공수 교대가 이루어졌다.

타다다닷!

공수 교대를 하며 외야로 달려가는 대호는 머릿속으로 이번 1회 초 공격은 대성공이라고 판단했다.

이제 남은 것은 수비에서 성남고에 점수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

“영광, 파이팅!”

자신의 위치에 선 대호는 큰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

“파이팅!”

느닷없는 대호의 선창에 자세를 잡던 영광고 선수들은 파이팅을 복창했다.

등 뒤에서 대호의 파이팅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자, 오늘 선발 투수인 진호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좋아!’

긴장하고 있던 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분명 어제 잠들기 전… 아니, 지금 마운드에 올라오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오늘 선발이란 것에 무척이나 부담을 받았었다.

그러나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던 투구 수 테러가 손쉽게 성공하고, 대호를 포함해서 여럿이 점수를 뽑아냈다.

그러고 나서 홈런을 친 대호가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자 조금 전까지 심장을 옥죄던 부담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펑!

“스트라이크!”

주심의 힘찬 스트라이크 콜이 들려왔다.

‘143㎞… 나쁘지 않다.’

진호는 주심의 뒤로 보드 판에 적힌 구속을 읽으며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비록 자신의 최고 구속은 아니었지만, 초구로써는 괜찮았으니까.

휘익!

“스트라이크!”

헛스윙.

살짝 밋밋한 공이었는데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며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하나 더 쌓을 수 있었다.

‘후우. 왠지 운까지 따르는 것 같네.’

손에서 공이 살짝 빠져 제대로 컨트롤이 되지 않은 공까지 스트라이크가 되자 진호의 멘탈은 더욱 굳건해졌다.

펑!

“스트라이크! 아웃!”

심리전에서 진호가 이겼다.

성남고의 타자는 투 스트라이크이니 투수가 유인구를 던질 거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공에 자신감이 붙은 진호는 굳이 투구 수를 낭비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과감하게 가운데 패스트볼을 던졌다.

삼구 삼진.

타자에게는 굴욕적인 기록이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