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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1화 (11/209)

11화

똑똑똑!

영광고 야구부 감독인 조금산은 내일 상대할 성남고에 대한 작전을 구상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느닷없이 노크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어 소리쳤다.

“누구야!”

“감독님, 저 대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조금산 감독은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대호 때문에 깜짝 놀라 몇 시인지 확인했다.

‘9시… 꽤 늦은 시간인데 어쩐 일이지?’

시간을 확인한 조금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일 시합을 생각해서 자유 시간을 줬는데, 굳이 자신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들어와!”

드르륵.

대호가 들어서자, 조금산은 나름대로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호를 맞이했다.

“그래, 대호. 무슨 일로 날 찾아왔지?”

평소 같으면 시합 전날 선수를 들이지 않았겠지만, 한 수 위인 성남고에 대한 구상을 하느라 복잡한 머리를 쉴 겸 순순히 들여보냈다.

“예. 제가 내일 시합에서 조금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왔습니다.”

“도움?”

조금산은 대호의 당당한 태도를 보며 살짝 의아함이 들었다.

‘대호 이놈이 이런 캐릭터였나?’

그래도 2년간 봐왔던 녀석인데, 갑자기 실력이 늘고 나서부터는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그게 아마 지난번 겨울 합숙 훈련 이후였지…….’

“그래. 무슨 이야긴데?”

감독의 허락이 떨어지자, 대호는 전생에 알고 있던 성남고 에이스 강보석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대호 네 말은 강보석의 내구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지 못하다, 그 말이냐?”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조금산은 핵심을 정리해 대호에게 되물었다.

“예. 70개 정도 던지면 구속이 10㎞ 정도 확 줄어듭니다. 제구력도 마찬가지고요.”

“공도 가운데로 몰린다. 그 말이지?”

“예.”

대호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이어지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 말이지?”

조금산은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공 70개… 구속 10㎞ 하락…….”

조금산은 작전 구상을 하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대호는 끼어들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감독에게 말을 걸었다.

“감독님. 그래서 말인데, 경기 초반에는 점수를 내려고 억지로 공격하기 보다는 강보석의 투구 수를 늘리는데 힘쓰는 건 어떻겠습니까?”

“투구 수 늘리기?”

“예.”

‘음, 괜찮긴 한데… 우리 애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조금산은 괜찮은 작전이라고 생각했지만, 영광고 야구부의 실력을 과신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대호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물론 구속 150㎞인 강보석을 상대로 안타를 치긴 힘들겠죠. 하지만 커트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한 명당 5~6구 정도만 던지게 만들어도…….”

씨익.

그렇게 말을 흐리며 웃는 대호를 보며 조금산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대호는 계획대로만 된다면, 강보석을 5회 안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에이스만 끌어내린다면, 나머지 성남고의 투수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비록 성남고가 자신이 있는 영광고에 비해 한 수 위라고는 하지만, 강보석을 제외하면 완전히 압도당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일 선발만 잘 넘긴다면 경기에서 이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흠, 대호 네 말에도 일리는 있어. 하지만 강보석을 끌어내린다 해도, 그전에 우리 선발인 진호가 먼저 무너지면 소용이 없지 않겠냐?”

“…….”

홍진호는 그냥 평범한 고교 야구의 투수일 뿐이었다.

즉, 영광고에서 강보석을 상대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진호의 공을 치는 게 더 쉽다는 뜻.

“뭐, 그래도 좋은 작전이다.”

조금산이 그렇게 말하자 대호도 다시 한번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 그 부분은 저희들이 어떻게든 적은 점수로 막아 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호는 내일 수비 범위를 조금 늘리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외야를 잘 방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 어차피 성남고 타자들의 수준이나, 우리들 수비력이나… 해 볼만 하지. 하하하!”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 것인지 조금산은 느닷없이 호탕하게 웃어 댔다.

* * *

딱!

“파울!”

딱!

“파울!”

영광고의 2번 타자인 재환은 성남고 선발 강보석이 던진 공을 받아 쳐 연속해서 파울을 만들어 냈다.

스코어 카운트는 쓰리 볼 투 스트라이크.

풀카운트지만, 상대 투수 강보석은 이미 8구를 던진 상태였다.

― 오늘 경기, 초반에는 점수를 내기 보단 최대한 강보석이 공을 많이 던지게 만들어!

조금산은 그런 작전을 세웠고, 선수들 역시 납득했다.

조금 비겁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 약팀이 강팀에게 작전을 쓰는데 비겁한 게 어디 있겠는가.

그 결과, 1번 타자인 박지호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강보석에게서 여덟 개의 공을 던지게 만들었다.

뒤이어 2번 타자인 재환도 박지호가 했던 것처럼 유인구를 최대한 참으며 볼을 얻어 냈고,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존에 들어온 공을 어떻게든 받아 쳐 파울을 만들어 낸 것이다.

‘대호 녀석이랑 베팅 머신에서 훈련했던 게 아니었으면 내가 구속 150㎞을 쳐 낼 수 있었을까?’

재환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의 강보석을 노려봤다.

‘던져 봐! 이번에도……!’

아홉 번째 공을 던질 준비를 하는 상대를 보며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지면서 말이다.

한편, 타자를 상대로 투구를 준비하는 강보석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분명 한 수 아래였을 텐데, 영광고 타자들이 뭘 잘못 먹었는지 자신이 던진 공에 악착같이 반응하며 파울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젠장. 이놈들 대체 뭐야? 시합 전에 전력 분석 때는 이런 건 없었는데.’

아직 시합 초기라 강보석은 알지 못했다.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영광고 타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타석에 들어섰는지 말이다.

그가 아무리 초고교급 강속구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신체가 완전히 성장하지 않아 공을 많이 던지면 제구력과 구속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약점이 있었다.

당연히 강보석 자신도 알고 있었고, 빠르게 한 타자라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의 어깨는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었다.

딱!

“파울!”

1루수 앞에 떨어지는 타구였지만, 빠른 강습 타구는 1루 베이스 왼쪽으로 넘어가며 파울이 되었다.

‘아! 젠장!’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왔다면 1루수가 잡아 아웃 카운트를 만들어 냈을 텐데, 재수 없게 바깥쪽으로 바운드되며 파울이 되었다.

계속해서 땅볼 타구가 만들어져서인지, 성남고 배터리는 물론이고 더그아웃에서도 영광고의 작전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니, 이것은 성남고의 더그아웃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라도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아직 시합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뿐더러, 조금 전 재환의 타구처럼 1번 타자 박지호 역시 라인에서 조금 벗어나는 파울 타구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영광고 테이블 세터로 뛰고 있는 박지호나 김재환은 아직까지 타격 능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센스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나 작전을 세우면 상세한 지시를 받지 않아도 곧잘 명령을 수행하곤 했다.

펑!

“아웃!”

포수의 미트에 공이 꽂히며 아웃 선언이 나왔다.

10구.

재환이 뽑아낸 강보석의 투구 수였다.

더 이상 억지로 투구 수를 늘렸다간 금세 작전이 들킬 거라 생각한 재환은 과감히 승부를 보려고 했지만, 아직 150㎞를 상대로 제대로 된 공격을 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했다.

그래도 상대에게 10구나 던지게 만들었으니 작전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짝!

재환은 작전을 성공했다는 생각에 들떴다.

그래서 타석에서 물러나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면서 대기 타석에서 있던 대호와 하이 파이브를 했다.

자신은 성공했으니 너도 성공하라는 의미였다.

‘알았어.’

하이 파이브와 눈인사를 하면서 대호는 재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고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펑!

“볼!”

대호가 타석에 들어서고, 성남고 배터리가 선택한 초구는 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선 타자들에게 볼 테러를 당하긴 했지만, 영광고 3번 타자로 나온 대호는 이전 1라운드에서 남성고를 상대로 4타수 4안타 4홈런을 친 무시무시한 전력을 가진 강타자였다.

그렇기에 대호를 상대로 쉽게 투구를 가져갔다가는 한 방에 홈런을 맞아 점수를 내줄 수 있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유인구를 통해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 내거나, 땅볼이나 뜬공으로 처리하려는 의도를 가진 두 사람이었다.

“스트라이크!”

두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바깥쪽 낮은 속구였다.

하지만 대호는 그것을 보면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충분히 쳐낼 수 있는 공이었음에도 무시한 것이다.

강보석이 감독으로부터 어렵게 승부를 보라는 지시를 받은 것처럼, 대호 또한 조금산 감독에게서 볼 테러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니, 이 작전은 어젯밤 자신이 직접 감독을 찾아가 건의한 것이었다.

그러니 고작 2구째에 공을 타격할 이유가 없었다.

대호는 풀카운트가 되기 전까지는 공에 반응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펑!

“볼!”

스윽! 스윽!

3구째는 볼이었다.

볼을 골라낸 대호는 잠시 타격 자세를 풀고 배트를 가볍게 휘두르며 루틴을 취했다.

투구 수 테러를 하기 전, 이를 숨기기 위해서 하는 일종의 속임수 동작이었다.

따악!

4구째.

대호는 처음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공은 큰 포물선을 그리며 외야를 향해 날아갔다.

“와아아!”

커다란 타구에 영광고 응원석에서 큰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는 3루 쪽에 있는 영광고 더그아웃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비록 대호가 작전대로 투구 수 테러를 하진 않았지만, 외야로 날아가는 큼지막한 타구는 본능적으로 소리를 지르게 만들었다.

“파울!”

우익수 외야 폴 대를 벗어난 파울 홈런이었다.

“아아!”

커다란 타구가 폴 대를 벗어나는 모습이 잡히자, 여기저기서 아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후후, 아무도 모르는군.’

커다란 파울 홈런에 놀란 투수의 모습이나, 안도하는 성남고 더그아웃의 모습.

그리고 홈런이 아닌 파울 홈런으로 인해 아쉬워하는 영광고 더그아웃 반응을 보며 대호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 모든 것은 대호의 의도였다.

일부러 조금 늦은 타이밍에 배트를 휘둘러 우익수 왼쪽으로 타구를 보내 파울 홈런을 만든 것이다.

‘솔직히 방금 그 공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안쪽으로 들어오는 홈런을 만들 수도 있었어. 하지만 파울을 만들었지. 그래야 강보석이나 성남고 더그아웃의 의심을 사지 않고 더욱 신중히 공을 던지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펑!

“볼!”

이번에는 커다란 파울 홈런 때문인지 스트라이크 존에서 많이 벗어난 볼이었다.

볼카운트는 쓰리 볼 투 스트라이크, 풀카운트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어떤 공이 오더라도 배트를 휘둘러야 했다.

본격적인 투구 수 테러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딱! 딱! 딱!

파울 홈런을 의식한 듯, 대호는 커다란 스윙 폼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아슬아슬하게 라인을 벗어난 파울이나, 외야 라인을 벗어나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파울을 만들어 냈다.

그 때문에 아무도 1, 2번 타자에 이어 3번 타자인 대호마저 투수의 투구 수를 늘리기 위한 작전을 실행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파울!”

“파울!”

딱!

“파울!”

쓰리 볼 투 스트라이크.

볼카운트는 더 이상 변하지 않았지만, 투구 수는 벌써 열세 개가 되었다.

이 정도면 강보석이 다른 대회에서 한 회 타자를 상대하며 던진 투구 수보다 많은 공을 던진 셈이었다.

1회에만 벌써 서른한 개의 공을 던진 강보석의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힘들어!’

지금 강보석의 머릿속은 온통 힘들다는 울림만 가득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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