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0화 (10/209)

10화

따아악!

“와아아아!”

운동장에서 시합을 구경하는 관객이라고 해 봐야 고작 몇 백 명에 불과하지만, 시합의 열기는 마치 운동장의 전 객석을 뒤덮은 것만큼이나 뜨거웠다.

“햐아! 아무리 남성고 선발이 광영고 최윤열에 비해서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

영광고와 남성고의 시합을 보기 위해 경기장에 온 대일은 조금 전 대호의 세 번째 홈런포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대호뿐만 아니라, 영광고 선수들의 타격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분명 대일은 한 달 전 광영고와 영광고의 친선경기를 직접 보았다.

그리고 그때 영광고는 한 수 위인 광영고를 상대로 승리했고.

다만 광영고 에이스 최윤열을 상대로 뽑아낸 타점은 3점이 전부였고, 콜드게임으로 이길 수 있던 건 뒤이어 올라온 투수들에게서 점수를 얻었기 때문이다.

물론 최윤열이 내보낸 주자 때문에 더 점수가 난 것은 분명했지만, 그것도 대호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즉, 그때는 정대호 원 맨 팀에 가까운 게 영광고 야구부였다.

그런데 지금 영광고는 당시 최윤열을 상대하던 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공격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대체 한 달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1회부터 5점을 내며 남성고의 선발을 불러들이더니, 3회 현재 11:0이란 스코어를 만들어 냈다.

점수만 보면 국내 기준으로 콜드게임이 선언되어도 무방한 점수 차를 보여 주고 있었다.

다만, 아직 3회 말이었기에 콜드게임의 기준인 5회까지는 2회가 남아 있기는 했으니, 남성고에서도 남은 2회 동안 열심히 할 일말의 가능성도 있었지만…….

따악!

영광고에서 또다시 안타가 나왔다.

남성고 투수는 이미 시합을 포기한 것인지, 투구를 하는 동작에서 별다른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3타수 3안타 3홈런이라니, 역시 내가 제대로 봤어.”

대일은 방금 전 영광고 4번 타자인 박재홍이 안타를 친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전 3연속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간 대호만이 눈에 들어올 뿐.

“여보세요. 팀장님!”

대충 경기 결과가 예상된 대일은 자신의 상급자인 조나단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경기 결과에 대해 열심히 브리핑했다.

마치 누가 들으면 대일이 대호의 아버지라도 되는 듯한 열정적인 칭찬이었다.

* * *

“게임 셋! 영광고 콜드 승!”

영광고와 남성고의 시합은 주심의 콜드게임을 선언함으로써 영광고의 5회 콜드 승으로 끝났다.

5회, 최종 점수는 무려 17:0이었다.

그리고 오늘 4타수 4안타, 4홈런을 기록한 대호는 한 게임에 4연속 홈런이란 대기록을 만들어 냈다.

뿐만 아니라 혼자서 10타점을 만들어 내면서 뉴월드배 고교야구대회를 보러 온 야구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수고하셨습니다.”

공식적으로 경기가 끝나자, 영광고 야구부는 1루 더그아웃으로 다가가 응원을 온 학부형들을 향해 인사를 하였다.

짝짝짝짝!

“영광고, 최고다!”

“다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모든 인사가 끝나고 영광고 야구부는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비록 시합은 끝났지만, 이들의 시합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이들의 다음 상대는 서울 동부의 강자인 성남고.

전에 친선경기를 한 광영고 이상의 고교 야구 강자였다.

서울시 경기는 물론이고, 전국구 시합에서도 우승 경험이 있는 전통적인 강호.

작년 성적만 놓고 봐도 영광고와 성남고의 수준 차이는 뻔했다.

어떻게 보면 영광고 입장에서는 대진 운이 너무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더 환호하고 기뻐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다음 시합 상대를 알려 주겠다.”

학교 버스에 올라탄 야구부원들을 향해 조금산 감독이 말을 하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성고를 상대로 5회 콜드 승을 한 것에 대해 떠들던 선수들은 감독의 말에 주목했다.

“예상대로 2차전 상대는 성남고다.”

“아아!”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버스 안에서 낙담한 탄성이 작게 흘러나왔다.

예상이 빗나가지 않고 힘든 상대인 성남고가 2차전 상대로 올라온 것이다.

“물론 성남고가 우리보다 한 수 위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낙담할 것 없다.”

조금산 감독은 포기한 듯한 야구부원들의 모습을 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했다.

“오늘 느꼈듯이 너희들의 실력은 예전보다 월등히 향상되었다.”

조금산의 태도 역시 예년과는 달랐다.

그는 야구부원들이 작년과 비교했을 때 어떻게 변했는지, 또 실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알려주며 분위기를 띄웠다.

“비록 성남고가 한 달 전에 상대했던 광영고보다 한 수 위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광영고와 싸워서 이겼지. 그리고 지금은…….”

씨익.

“더 해볼 만하지 않겠냐?”

어떤 일이든 우두머리, 즉 지도자가 중요한 법이다.

대호는 어떻게든 사기를 끌어올리려는 조금산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2회차나 3회차보다 각성 속도가 훨씬 빠르네. 역시 나 때문인가? 뭐, 솔직히 짜증 나는 인간이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감독 노릇하면 다른 애들한테는 이득이지.’

다행히 감독의 의도는 적중한 듯했다.

다른 때 같았다면 아무리 얘기해도 성남고의 명성에 주눅 들어 있겠지만, 오늘은 남성고를 상대로 콜드 승을 한 여운이 남아 있어 감독의 꾀에 넘어갔다.

그만큼 아이들도 자신들의 실력에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늘 야간 훈련은 몸풀기만 하고 끝내고, 내일은 성남고를 대비한 타격 훈련을 중점적으로 한다!”

“네!”

“알겠습니다.”

* * *

위이잉!

내일모레 시합할 성남고의 선발은 최고구속 150km, 평균 구속은 146km이다.

하지만 영광고 야구부는 배팅 머신의 구속을 153km으로 맞춰 타격 훈련을 하고 있었다.

조금산은 일전에 대호가 홈런 3개를 때려 낸 비결이 이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인간의 투구 위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속도에라도 익숙해지면 최소한 공이 눈에 들어올 테니까.

그렇기에 성남고 선발의 구속보다 3~5㎞정도 더 빠르게 맞춰 대비하고 있던 것이다.

텅! 텅!

배팅 머신이 공을 던졌지만, 타석에 선 타자는 곧바로 배트를 휘두르지는 않았다.

이는 빠른 구속에 적응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한다고 안타를 펑펑 뽑아내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일단 배트에 맞추는 게 제일 중요했으니, 우선 눈에 속도를 익숙하게 만든 것이다.

“좋아, 급하게 배트를 휘두를 생각하지 말고 먼저 눈에 익을 동안 공을 끝까지 봐!”

“알겠습니다.”

타석에서 구속 153㎞의 빠른 볼을 쳐다보는 훈련을 한차례 하고, 본격적인 타격 훈련에 들어갔다.

틱!

휘잉!

영광고 타자들은 아직까지 153㎞이라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번번이 헛스윙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를 보면서도 조금산 감독이나 코치, 어느 누구 하나 선수들을 타박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해야 고등학생.

지금껏 하던 훈련과 완전히 결이 다른데, 갑작스레 독촉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따아악! 따악!

다른 야구부원들과 다르게 진즉부터 준비를 하고 있던 대호는, 배팅 머신의 공을 시원시원하게 쳤다.

“역시 정대호. 우리랑은 종자가 다른가?”

“야, 작년까지를 생각해 봐. 종자는 똑같지. 근데 진짜 왜 저렇게 실력이 늘었을까?”

너무도 가볍게 153㎞의 공을 받아넘기는 대호의 모습에, 이를 지켜보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감독과 코치까지 질리게 만들었다.

‘조금 미안하네. 뭐, 난 4회차니까 익숙한 건데.’

대호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배트를 휘둘렀다.

얼마나 배트를 휘둘렀을까.

“그만, 대호 나오고 수호 들어가라!”

대호의 순서가 끝나고 영광고 5번 타자인 최수호가 타격 훈련을 하기 위해 타석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대호가 나오자, 아직 타격 훈련을 마치지 않고 대기하고 있던 송대익이 슬그머니 대호의 곁으로 접근했다.

“대호야!”

“응? 왜?”

느닷없이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대익의 모습에 대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공을 칠 수 있는 거냐?”

그런 질문을 하면서도 송대익은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분명 작년 말까지만 해도 대호는 자신보다 야구를 잘하지 못했다.

수비면 수비, 타격이면 타격.

모두 자신보다 한 수 밑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역전된 것은 작년 겨울 합숙 훈련 때부터다.

회비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봉투도 찔러 주지 못해 주눅 들어 매사 소극적이던 녀석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하더니, 수비는 물론이고 타격도 일취월장했으니까.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이에 가장 먼저 반응한 이가 바로 영광고 테이블 세터인 박지호와 김재환이었다.

이 둘은 광영고와 친선경기가 끝난 직후부터 대호와 붙어 다니며 조언을 들었다.

그 결과, 이전보다 타격 능력이 늘었다.

또, 감독님도 예전과 다르게 대호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작년 같았으면 우리끼리 멋대로 타격 폼을 바꾸고 얘기를 나눴으면 진짜 지랄했을 텐데, 대호 녀석은 터치를 안 해.’

조금산의 스타일상, 못된 버릇 생긴다고 할 짓인데 터치를 하지 않으니, 이제 막히는 게 있으면 대놓고 대호를 가서 묻는 실정이었다.

더 이상 밀렸다간 대익 역시 위험하다고 느껴, 대호의 타격을 보고 조언을 듣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어떻게?”

느닷없는 대익의 질문에 대호는 잠시 고민했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하나……?’

자신의 타격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니, 순간 말문이 막힌 것이다.

지금 송대익이 묻는 건 단순히 타격 폼 수정 같은 게 아니라 어떻게 너처럼 잘 칠 수 있냐, 이거니까.

하지만 자신과 대익은 모든 조건이 달랐다.

더군다나 자신은 벌써 세 번째 경험하는 것이지 않나.

즉, 모든 방면에서 대익과 자신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났다.

그래도 대익이 무슨 이유로 질문을 던진 것인지는 잘 알기에, 그냥 녀석에게 맞게 조언을 해 주기로 결정했다.

“그건 모르겠고, 네가 150㎞의 공을 잘 치고 싶으면…….”

대호는 아직 150km/h란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헛스윙이나 빗맞은 타구를 만들어 내는 대익에게 적절한 조언을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배트를 짧게 잡고 불필요한 동작이 없게 콤팩트한 스윙을 하라는 것이었다.

부원들은 모르겠지만, 익숙하지 않은 빠른 공 때문에 한 달간 몸에 익힌 스윙을 잊고 타격 폼이 예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때문에 제대로 타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점을 상기시킨 대호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대익에게 이를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배트를 짧게 잡고, 스윙을 간결하게 가져가란 말이지?”

“맞아, 일단은 그렇게 하고, 빠른 볼에 적응되면 배트를 조금씩 길게 잡아. 그렇게 스윙하면 금방 적응할거야.”

“고맙다.”

“고맙긴.”

자신이 작은 조언을 해 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대익을 본 대호는 마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편, 대호와 대익의 대화를 뒤에서 듣고 있던 다른 야구부원들도 조금 전 대익에게 한 대호의 조언을 머릿속에 숙지했다.

‘배트는 짧게 잡고 스윙은 콤팩트하게.’

타격에 헤매는 아이들을 위해 조언을 하려던 안기준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야구선수 중, 빠른 볼에 적응을 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

그리고 적응을 한 선수들 가운데서도 자신이 알아낸 것을 다른 선수에게 알려주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다른 경쟁자를 줄이고 싶은 게 아니라, 보통 몸으로 알아낸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도자가 되고 이론적으로 배운 뒤에야 자신이 몸으로 느꼈던 것에 대한 설명을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호는 같은 또래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에 주저하지도 않고, 그저 말로 직접적인 설명을 해 주었다.

그렇기에 안기준이 놀란 것이다.

‘감독님 말마따나 보통 놈이 아니네!’

그동안 안기준은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호를 어떻게든 떨쳐 낼 존재로만 인식했다.

그랬기에 아주 작은 꼬투리만 잡혀도 그렇게 갈군 것 아닌가.

또, 최근 들어 대호의 야구 실력이 늘어난 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자신이 너무 편협하게만 생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저놈이 프로에 지명되는 건 아닐까?’

지금까지 보여 준 실력이 거품이 아니고, 후반기까지 유지한다면 생각보다 이르게 지명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라고 주장하는 이까지 찾아오지 않았던가.

‘좀 더 두고 보자.’

안기준은 더 이상 대호를 밀어내기보단 좀 더 지켜보기로 하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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