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9화 (9/209)

9화

모든 훈련이 끝나고 영광고 야구부는 감독의 집합 명령에 따라 모였다.

“한 달간의 합숙을 마친다.”

“예.”

“내일은 오전에 간단한 몸풀기로 훈련을 대신한다.”

모레면 올해 고교 야구의 시작을 알리는 뉴월드배 고교야구대회가 개최되기에, 조금산 감독은 한 달간의 합숙을 마무리 지었다.

이에 영광고 야구부원들은 하나같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합숙은 지난겨울 합숙 훈련 이상으로 고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조금산 감독도 이 정도로 선수들을 굴릴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호 녀석, 분명히 지난겨울 합숙 때부터 실력이 부쩍 늘었지? 그럼 이번에도…….’

그런 생각을 감독이 하고 있으니, 아래에 있는 불쌍한 야구부원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야구부원들도 힘들어진 합숙의 이유를 알지만, 대호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이번 훈련을 통해 다들 실력이 많이 늘었으니까.

“흠흠! 이제 뉴월드배 고교야구대회 선발을 발표하겠다.”

조금 웅성거렸던 분위기는 곧바로 싸늘하게 변했고, 조금산 감독은 담담한 목소리로 선발 선수를 발표했다.

1번 : 박지호(3학년), 2루수

2번 : 김재환(3학년), 유격수

3번 : 정대호(3학년), 중견수

4번 : 박재홍(3학년), 1루수

5번 : 최수호(3학년), 3루수

6번 : 이강(2학년), 우익수

7번 : 송대익(2학년), 좌익수

8번 : 이송호(3학년), 포수

9번 : 김주성(3학년), 투수

9번의 경우 투수인 김주성보다 타격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많아 김주성이 투타 겸업을 하게 되었다.

지명타자를 넣기에는 그만한 선수가 없어 억지로 넣게 된 것이다.

감독의 선발 선수 발표가 끝나자, 영광고 야구부원들 사이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1학년이야 신입이라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2학년들은 달랐다.

그중에서 가장 표정이 어두워진 이가 있었는데, 바로 작년에 주전이 빠질 때마다 후보로 출전한 2학년 안정준이었다.

사실 지난 친선경기에 대호가 얻은 7번 타자의 원래 주인도 그였다.

안정준은 자신이 2학년이 되면 영광고에서 주전 중견수가 되리라 자신했다.

그런데 광영고와의 연습 경기 이후, 영광고의 주전 중견수 자리는 3학년인 대호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불만도 낼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자신보다는 엄청나게 야구 실력이 발전한 대호를 주전으로 쓰는 게 맞으니까.

타격이면 타격, 수비면 수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았다.

빠른 발을 이용한 수비 범위는 물론이고, 가장 중요한 타격 능력에서 정준은 대호를 따라가지 못했다.

‘나도 여기서 타격 능력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지만, 대호 선배하고 비교하면…….’

영광고 내에서 평균 정도는 되지만, 대호와 비교하면 반딧불과 보름달만큼 차이가 났으니까.

자체 연습 경기에서도 대호의 타구는 쳤다 하면 2루타였다.

플루크 식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모두 깊숙한 외야 안타.

그러다 보니 감독은 물론이고 다른 야구부원들도 모두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대호 선배가 부상이라도 당하지 않는 이상 내겐 기회가 안 오겠네.’

돈 봉투라도 찔러 주고 싶었지만, 너무 실력 차이가 크다 보니 그냥 돈 낭비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다른 포지션으로 간다 해도 그의 입장에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견수와 좌, 우익수는 같은 외야지만 조금씩 수비 방식이 다르니까.

틈틈이 연습했지만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선발진에 포함되지 못했다고 너무 낙심하지 말고, 또 선발이 되었다고 자만하지 마라!”

조금산 감독은 뉴월드배 고교야구대회의 선발진을 발표하며, 경고를 날렸다.

“주전으로 뽑혔다고 자만해서 연습을 게을리하거나, 혹은 정신이 해이해진 사람이 발견될 시 곧바로 후보와 교체할 것이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뭐, 대호 녀석을 보고 다들 이 악물고 훈련하는 와중에 그런 놈을 없을 것 같지만.’

조금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선수들에게 외쳤다.

“그럼 해산!”

“악!”

“악!”

* * *

3월 중순이었지만, 아직 차가운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았는지, 낮 최고 기온이 고작 영상 10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그렇지만 고교 야구계는 새로운 시즌을 알리는 첫 전국 대회를 맞아 흥분한 상태였다.

비록 고교 야구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아마 야구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둥둥둥둥!

큰북을 울리며 자신의 학교를 응원하는 응원단들이 시합 시작 전부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최강 남성! 강한 남성! 남성 야구부!”

“최강 남성! 강한 남성! 남성 야구부!”

응원단장의 선창에 맞춰 후창하는 응원단들.

하지만 남성고 응원단이 큰 목소리로 자기 학교의 야구부원을 응원하는 것과 다르게, 상대인 영광고 응원석에선 별다른 응원 구호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 응원단이라 할 수 있는 인원 자체가 없었다.

그저 학부형회에서 나온 스무 명 안팎의 인원만 보일 뿐.

그 때문에 시합도 하기 전에 분위기는 남성고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아니, 남성고는 무슨 1라운드부터 응원단을 동원하냐?”

1루 쪽 더그아웃에 앉아 있던 영광고 2번 타자, 김재환이 3루 쪽 남성고 응원석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다.”

“왜, 쫄려?”

지호와 재환이 남성고 응원석을 보며 떠들고 있을 때, 언제 다가왔는지 대호가 두 사람 사이로 다가가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부러워서.”

재환은 남성고가 무섭지는 않았지만, 1라운드부터 응원단을 동원한 건 부러웠다.

“하긴… 근데, 저런 대단한 응원단까지 동원한 상대를 콜드게임으로 이겨 버린다면 기분 째질 것 같지 않냐? 킥킥.”

마치 악당이라도 된 것 같은 대호의 웃음에 재환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지호의 눈까지 동그랗게 커졌다.

“그거 재미있겠는데?”

“맞아!”

대호의 은근한 부추김에 재환은 물론이고 지호까지 흥미를 보였다.

“연습한 대로만 하면 남성고 정도는 충분히 콜드게임으로 발라 버릴 수 있을 거야.”

대호는 자신들의 승리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 자신감 있는 목소리는 더그아웃에 있던 다른 야구부원들의 귀에도 정확히 전달되었다.

솔직히 더그아웃에 있던 영광고 야구부원 중 남성고의 화려한 응원단에 살짝 기가 죽어 있던 이들도 몇몇 있었다.

하지만 대호의 말을 듣자,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 벌써부터 이겼다는 듯이 잔치 분위기인 저놈들에게 날벼락을 선사해 주자.’

영광고 야구부원들은 대호의 말에 하나가 되었다.

“영광고, 남성고 정렬!”

본격적인 시합을 알리는 심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본격적인 시합의 시작인 것이다.

심판의 지시에 영광고와 남성고 야구부원들은 그라운드에 섰다.

“모두 예의를 지키고 페어플레이 하도록.”

심판의 소개와 덕담이 오고갔다.

“플레이 볼!”

주심의 시합 개시 선언이 크게 울렸다.

둥둥둥둥!

심판의 시합 계시가 선언이 되고 관람석에서는 큰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여기부터다. 내가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기 위한 업적의 시작이!’

대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수비 위치에 가서 섰다.

* * *

선공은 남성고가 먼저 시작하였다.

펑!

“스트라이크!”

영광고의 선발 김주성은 초구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김주성 파이팅!”

“주성아, 뒤에는 우리가 있으니까 마음 편하게 던져!”

2루수인 지호와 유격수인 재환이 선발투수인 주성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큰 소리를 질렀다.

남성고의 선두 타자는 주성이 던진 두 번째 공에 배트를 휘둘렀다.

딱!

2루수 정면으로 날아가는 내야 땅볼이었다.

‘이 정도야!’

박지호는 곧바로 공을 캐치해 1루에 던져 선두 타자를 아웃시켰다.

남성고의 1번 타자는 공 두 개 만에 아웃 된 셈이었다.

“아웃!”

2번 타자 역시 성급하게 승부를 보려다 유격수 땅볼로 아웃.

경기 시작 후 불과 2분도 지나지 않아 투 아웃이 되었다.

‘…오늘 왠지 잘 긁히는데? 공이 좋아.’

쉬이익!

잠깐 방심해서일까, 잡생각을 하던 주성은 그만 실투를 던지고 말았다.

“엇!”

스트라이크 존 경계에 걸치는 직구를 던진다는 게 그만 한가운데로 몰린 배팅 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따악!

비록 남성고가 전통의 강호는 아니지만, 이런 공을 놓칠 정도도 아니었다.

게다가 클린업 트리오인 3번이니 더욱 더 그렇고.

잘 맞은 타구는 중견수와 우익수 중간 지점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타다다닷!

“마이!”

대호는 달려오는 우익수 이강을 향해 콜을 했다.

촤아아악!

“아웃!”

대호는 슬라이딩하며 글러브 끝으로 공을 받아냈다.

“아아~”

잘 맞은 타구가 대호의 호수비에 막혀 아웃되자, 남성고 응원석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울려 퍼졌다.

“나이스!”

반대로 영광고의 더그아웃과 몇 없는 응원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졌고.

1회 말.

위기 뒤에 행운이 따라 온다고 했던가?

영광고의 테이블 세터인 박지호와 김재환이 순식간에 남성고 선발투수의 공을 받아 쳐 내 안타를 치고 나갔다.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한 상태로 순식간에 무사 1, 2루.

저벅저벅.

대기 타석에 있던 대호는 2번 타자인 재환이 안타를 치고 나가자, 차분하게 타석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대호는 타석에 들어서며 주심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타격 자세를 잡았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대호의 자세에 주심은 속으로 감탄했다.

‘고교 야구 선수 중에 이런 녀석이 있었나?’

비단 주심만이 아니었다.

‘이놈은 누구지?’

배트를 들고 자세를 잡은 대호의 폼을 본 남성고 포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거… 잘못하면 위험하겠는데.’

대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뭔가 풍겨 오는 분위기가 여간내기가 아님을 짐작한 포수는 저도 모르게 3루 쪽 더그아웃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그는 감독이나 코치에게 의견을 물어보듯 더그아웃을 봤지만, 더그아웃에서는 별다른 조치가 내려오지 않았다.

이에 다시 고개를 돌린 포수는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신중하게 가자.’

대호의 폼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포수는 투수에게 반응을 한 번 보자는 뜻으로 바깥쪽 낮은 볼을 주문했다.

펑!

“볼!”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하나정도 빠졌는데, 이를 지켜본 대호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퍼엉!

“볼!”

투수가 던진 두 번째 공도 조금 전보다 안쪽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비슷한 코스로 들어오다 보니 주심은 이번에도 볼을 선언했다.

한편, 공을 돌려받은 투수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싶었는데, 포수 사인 때문에 볼 카운트가 불리해지자 조금씩 짜증이 난 것이다.

‘야, 저놈은 움직이지도 않는데 그냥 승부하자.’

남성고 투수는 별거 없어 보이는 타자를 보며 포수에게 그렇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미동도 없는 타자한테 계속 볼을 주다가 볼넷으로 출루시키면 무사 만루인 상황.

포수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 스트라이크를 던지도록 했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못했다.

따아악!

2구째까지만 해도 망부석처럼 꼼짝 않던 타자가 벼락처럼 배트를 휘둘렀다.

‘이거다!’

대호는 풋내기 고등학생들의 생각쯤이야 쉽게 읽어 낼 수 있었다.

자신은 이제 공식 경기에 첫 출전하는 타자, 그러니 처음에 견제를 하더라도 금세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할 테지.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갔고, 배트에 맞은 공은 이상적인 탄도각을 이루며 외야로 날아갔다.

대호는 휘두른 순간 홈런임을 직감했다.

휙!

가볍게 배트 플립을 하고 베이스를 돌았다.

“야, 정대호! 너 진짜 저번부터 미쳤나?!”

홈으로 들어오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자, 동료들은 대호의 등을 두드리며 격한 환영을 해 주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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