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깡!
잘 맞은 타구가 중견수 방향으로 날아갔다.
타다다다!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대호는 빠르게 공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달렸다.
잘 맞은 타구이긴 하지만, 각도가 그리 크지 않아 깊은 타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통이라면 평범하게 중견수 앞 안타가 되어야 하는 타구, 하지만 대호는 그렇게 평범하게 타구를 처리할 생각이 없었다.
기울어진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무언가 시도를 해야 할 때였다.
광영고에 2점을 내준 상황에서 또 안타를 맞아 점수를 내주게 되면, 대호가 속한 영광고는 그대로 무너져 버리고 말 테니까.
“마이!”
대호는 달리면서 주춤거리는 유격수와 2루수를 향해 콜사인을 보냈다.
그런데 대호가 콜사인을 보냈음에도 이를 듣지 못한 것인지, 2루수와 유격수는 계속해서 타구를 쫓고 있었다.
‘이러다 또 사고 나겠는데!’
이전 삶에서도 이때 사고가 났었다.
“비켜!”
이번에는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대호는 다시 한번 크게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이번에는 소리를 들었는지, 공을 쫓던 두 사람의 시선이 대호에게 향했다.
텁!
대호는 자신을 보느라 멈춘 2루수와 유격수는 상관하지 않고, 타구를 향해 몸을 던져 잡아냈다.
그러고 나서 벌떡 일어나 유격수에게 공을 던져 주었다.
“돌아가!”
3루 선상에 있던 광영고 코치가 3루로 달려오던 주자에게 크게 신호를 보내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빠르게 스타트를 끊은 2루 주자는 재빨리 귀루하기 시작했다.
“2루로!”
대호의 공을 받은 유격수는 급히 2루를 커버하기 위해 들어온 투수에게 공을 던졌고, 덕분에 2루 주자를 아웃시킬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2루 주자가 당연히 안타성 타구라고 생각하고 뛰었던 것처럼, 1루 주자 역시 스타트를 끊은 상황.
턱!
“아웃!”
2루심을 보고 있던 심판은 그 자리에서 두 번의 아웃을 선언했다.
결국 공을 친 타자와 귀루에 실패한 2루 주자, 그리고 2루에 가까이 온 1루 주자까지 모두 아웃된 것이다.
“와아!”
프로에서도 보기 힘든 삼중살이 고교 친선경기에서 나왔다.
얼마 되지 않는 관중석과 더그아웃에서 함성이 터졌다.
“와 씨! 소름.”
방금 전 대호가 던진 공을 받아 투수에게 연결을 했던 2루수, 김주성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얼떨결에 대호가 던진 공을 받아 2루로 들어오는 투수 홍진호를 보고 공을 던진 것뿐인데, 노아웃 1, 2루 상황에서 바로 쓰리 아웃으로 공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고맙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던 중, 대호의 곁에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진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뭘, 뒤는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던져.”
대호는 별것 아니란 듯 고마워하는 진호를 향해 그렇게 말을 건넸다.
한편, 공수 교대를 하고 영광고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되려는 때, 코치인 안기준이 선수들을 불러 모아 한마디 하였다.
하지만 그는 호수비로 분위기가 끓어 오른 영광고의 흐름을 바로 차갑게 가라앉혀 버렸다.
“정신 안 차려! 이제 1회인데 2점이나 내주다니… 똑바로 해라!”
“…….”
호수비에 대한 격려를 해 줘도 초고교급이라 불리는 광영고 에이스 최윤열의 투구를 칠까 말까 한 영광고 타자들인데, 완전히 초를 쳐 버렸다.
‘제길, 코치란 사람이 기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망치네.’
“와아!”
하지만 영광고 더그아웃의 분위기가 어떻든, 방금 전 영광고의 호수비를 구경한 스탠드의 관객들은 영광고 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아니, 어떻게 고교 야구에서 프로에서도 보기 힘든 삼중살이 나온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조금 전 영광고의 수비는 정말이지 너무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사실 안기준 역시 완벽한 수비를 보여 준 선수들에게 칭찬을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 삼중살의 주역이 그가 가장 싫어하는 대호였기에 화를 내고 만 것이다.
가난해서 야구부 회비를 제때 내지도 못하고, 또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하지도 않은 대호였기에 안기준은 깊은 적대심을 품고 있었다.
교육자로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옹졸한 태도였지만, 그게 안기준이라는 사람의 한계였다.
그런 대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번 플레이였기에 안기준은 칭찬 대신 실점을 한 것에 대한 질책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곧바로 나타났다.
“아웃!”
“아웃!”
“아웃!”
길었던 광영고의 1회 초 공격과는 다르게, 영광고의 1회 말 공격은 삼자범퇴로 너무도 허무하게 끝났다.
‘확실히 최윤열이 잘 던지기는 하네.’
벌써 4회차로 네 번째 경험하는 것이지만, 광영고 에이스 최윤열의 공은 지금 당장 프로에 갖다 놔도 통할 정도였다.
“야! 니들 똑바로 안 해!”
대호가 최윤열의 공에 감탄하고 있던 중, 옆에서 안기준 코치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젠장, 기껏 호수비로 끓어올랐던 분위기를 망친 게 누군데.’
정말이지 영광고 야구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위인이었다.
삼진을 당하고 들어오던 김재환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코치인 안기준에게 그러한 불만을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영광고의 공격이 허무하게 끝나든 말든, 경기는 계속해서 2회로 이어졌다.
“와아! 힘내라!”
선수들이 터덜터덜 수비를 하러 나가려는 때, 구경을 하고 있던 영광고 스탠드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비록 공격은 시원치 않았지만, 조금 전 1회 초 수비에서 기막힌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아직 기대감이 가득했다.
기분이 다운되었던 선수들은 고개를 돌려 스탠드에 앉아 자신들을 응원하는 친구들과 교직원들을 잠시 응시했다.
“파이팅!”
대호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
“파이팅!”
이에 벤치에 앉아 있던 영광고 선수들도 호응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코치의 질타에 기죽어 있던 선수들이 연달아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에 대호의 눈이 반짝였다.
‘눈빛이 돌아왔네. 역시 아직 어리다 보니 금방 분위기를 타.’
파이팅 구호를 외치고 난 영광고 선수들의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본 대호는 뭔가 재미난 것이 떠올랐다.
아마 야구의 묘미가 아닐 수 없었다.
프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고교 야구에서는 종종 전력이 약한 학교가 보다 강팀을 이기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전적으로 아직은 덜 여문 어린 선수들이 쉽게 흥분하고 쉽게 가라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즉, 자신이 조금만 도와주면 아무리 초고교급이라고 불리는 최윤열의 공이라도 한 번 정도는 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을 내린 대호였다.
그때, 귓가에 시원한 타격음이 들렸다.
딱!
광영고의 2회 초 공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광영고의 선두 타자는 진호가 던진 몸 쪽 패스트볼을 잘 받아쳐 진루에 성공했다.
하지만 진호의 위기는 그게 시작이었다.
딱!
딱!
어느새 세 명의 타자가 루상에 나가 1사 만루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진호야!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편하게 던져!”
대호는 연속해서 안타를 맞고 의기소침해진 투수를 향해 소리쳤다.
1회 초, 호수비에 밝아졌던 진호의 표정은 2회가 되면서 연속해서 주자를 허용하자 다시 흐려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대호가 던진 응원의 목소리를 듣고 조금은 안정되었는지, 이번 공은 포수의 미트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진호는 2구를 던졌다.
하지만 욕심이 지나쳤을까, 너무 힘이 들어간 공은 정 가운데로 몰려 버렸다.
딱!
진호는 공을 던지자마자 실투했음을 깨닫고 낯빛이 굳었다.
광영고의 타자가 얼마나 잘하는지는 1회 초 공격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했기에 보지 않아도 장타가 되었으리라는 건 뻔했다.
그는 홈런만 아니기를 빌었다.
한편, 광영고 1번 타자의 타격음을 들은 대호는 장타긴 하지만, 홈런은 아닐 거란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빠르게 3루에 있는 주자를 한 번 보았다.
‘뛰겠군.’
솔직히 저 정도 장타면 잡혀도 희생플라이 정도는 만들 수 있으니, 주자는 반드시 뛰리라.
다만 대호는 3루 주자를 아웃시킬 수 있을지 아닌지를 가늠해 본 것이다.
‘할 수 있다!’
텁!
타자가 친 공이 대호의 글러브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광영고 3루 주자는 코치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홈으로 냅다 달렸다.
“홈! 홈!”
스탠드에서 구경을 하던 학생들은 상대 학교 선수가 홈으로 달리는 것을 보고 크게 소리쳤다.
25의 힘 스탯.
대호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홈으로 송구했다.
쉬이이익!
달려가던 광영고 3루 주자 역시 죽을힘을 다해 뛰며 슬라이딩했다.
펑!
“아웃!”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졌다.
심판의 아웃 선언이 떨어지고 스탠드에 구경을 하고 있던 구경꾼이나 더그아웃에 있던 양 팀 선수들은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건 공을 받아 홈에서 광영고의 주자를 아웃시킨 영광고 포수와 광영고 주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굉장하다!”
“외야 어시스트라니.”
“와, 외야 펜스 가까이에서 다이렉트로 송구를 해서 잡았어.”
“완전 레이저네 레이저.”
웬만한 강견이 아니고서야 프로에서도 보기 힘든 것이 외야에서의 보살, 즉 어시스트였다.
고교 레벨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수비에 구경꾼들은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다시 한번 대호의 슈퍼 플레이로 1사 만루의 위기를 극복한 셈이었다.
‘저놈, 대체 어디서 나온 놈이야?’
광영고 야구부 감독인 채문열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대호의 모습을 주시하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영광고에 저런 선수가 있다는 정보를 들은 적이 없었기에 당연한 태도였다.
“최 코치. 쟤, 누군지 알아?”
그는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던 코치를 보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잘…….”
사실 광영고 코치인 최민욱도 대호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감독님, 쟤, 만년 후보 선수였다는데요.”
감독의 질문에 대답을 한 것은 조금 전 1루에 있던 장대원이었다.
1회 초에 이어 이번 2회 초 공격에서도 엄청난 수비를 선보인 대호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대원은, 1루 수비를 보고 있던 재홍에게 물어본 것이다.
“뭐? 후보?”
“예. 실력은 있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코치에게 찍혀 그랬다는 것 같습니다.”
“아!”
단편적인 정보였지만 채문열은 조금 알 것 같았다.
고교 야구계에 영광고 감독인 조금산과 코치 안기준에 대한 소문은 잘 알려져 있었다.
* * *
‘아니! 쟤는 누구야?’
오클랜드 슬랙스의 조사원인 정대일은 영광고의 1회 초 수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실 원래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초고교급이라 불리는 광영고의 선발, 최윤열을 보기 위해서였지만, 어느새 영광고의 중견수 정대호를 보고 있었다.
1회 초, 연속해서 안타가 나오면서 광영고는 2점을 냈고 또다시 만루의 찬스를 이어 가고 있었다.
‘분명 살 수 있다고 봤는데, 그걸 잡네?’
무사 만루의 위기를 순식간에 삼중살로 마무리해 버렸다.
광영고의 6번 타자가 친 타구는 살짝 빗맞긴 했어도 코스가 좋아 대일이 판단하기에는 안타였다.
하지만 결과는 아웃.
게다가 당연히 안타일 것이라고 판단한 주자들 또한 영광고의 수비 연계로 인해 순식간에 아웃되면서 프로에서도 보기 힘든 삼중살이 나온 것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