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차는 명전이다
프롤로그
파티가 끝난 연회장을 본 적이 있는가?
대호는 멍하니 조금 전까지 사람으로 붐비던 연회장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젠장!’
화가 났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으로 들어차 있던 파티장이었지만, 한 가지 소식이 전해진 뒤 곧바로 폐장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파티가 열린 이유가 뭔가?
역사적인 순간.
바로 정대호 자신이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명예의 전당 멤버로 헌액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 소식을 들은 주위 인맥들이 축하를 해 주기 위해 자리를 만든 것이다.
첫 기회에 헌액된다는 게 얼마나 큰 영광인지 주변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갔고, 대신 다른 사람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항상 대호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며 비교되던 라이벌이 첫 턴에 명예의 전당에 올라갔기에 더욱 자괴감이 들었다.
‘아직 기회는 많이 남았어. 그렇지만…….’
분명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아직 꽤나 남아 있었다.
그러나 명예의 전당 후보로 꼽히고 첫 턴에 바로 들어갔다는 영광은 없으리라.
“저… 그만 정리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언제 다가왔는지 호텔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였다.
대호의 분위기 때문에 쉽게 다가오지 못하다 퇴근 시간이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총대를 메고 온 것이다.
‘하!’
기분을 망치는 매니저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 또한 자신의 일을 하려는 것뿐이니 화를 내 봐야 자신만 더 추레해질 뿐.
“미안하군.”
사과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호텔을 나온 대호는 정처 없이 거리를 걸었다.
어느새 그의 한 손에는 초록색 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제길, 내가 못한 게 뭐야! 뭐냐고!”
불만 가득한 그는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질러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간간히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1화
짹짹짹짹―
“으음…….”
창문 틈으로 아침의 햇살이 쏟아졌고, 이에 대호는 눈이 부셔 잠에서 깼다.
‘어? 뭐지?’
침대에서 눈을 뜬 대호는 낯설지만 익숙한 방의 풍경에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어젯밤, 잠들기 전 기분이 좋지 못해 진탕 술을 마시고 잠에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 뭔가 바뀌어 있었다.
‘설마… 이건?’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익숙한 기시감을 느꼈다.
짝!
양손으로 뺨을 한 번 치고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대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덜컹!
요란하게 화장실 문을 열고 세면대 위 거울을 본 대호는 자신의 예상대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하, 다시 돌아왔다!”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대호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침부터 무슨 소란이야!”
화장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소리를 지른 것 때문에 밖에서 어머니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의 대호에게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번에는 죽기 전이더니 이번에는…….’
사실 대호에게 이런 현상은 처음이 아니었다.
아니, 이번까지 포함하면 무려 세 번이나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놀랍기보단 기대감이 더 컸다.
첫 번째 회귀.
그것은 가정 형편으로 야구를 포기하게 된 것이 죽기 전 회한으로 남은 대호가 요양원 침대에 누워 창밖으로 떨어지던 별똥별에 소원을 빈 후 일어났다.
물론 정말 별똥별 때문이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고등학생 때, 정확히는 고2로 회귀를 한 뒤 두 번째 삶을 시작했다.
그는 회귀 전 비루했던 삶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그 결과, 프로야구 선수로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당연히 그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고, 정말이지 중간에 포기하고 싶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회귀를 했다고 대호의 가정 형편이 변한 것은 아니니, 야구를 계속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운동을 하는 데에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대호는 욕을 먹어 가면서도 악착같이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프로 구단에 입단을 할 수 있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
다행히 프로에 입단한 이후로는 승승장구 할 수 있었는데, 매년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연봉이 상승한 것은 물론이고, FA에서 대박을 터뜨려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성공적인 2회차 삶을 살 수 있던 것에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게임 시스템.
대호가 임의로 상태창이라 부르는 것의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훈련할 수 있으며 다양한 혜택까지 주는 상태창이 없었다면, 2회차에서 성공적인 야구 선수가 되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대호의 삶은 끝이 아니었다.
죽기 직전,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고 안전한 국내를 선택했던 것에 대한 미련이 그를 3회차로 이끌었다.
이번에는 전 회차보다 더욱 쉬웠다.
이미 2회차에 게임 시스템을 활용하는 법을 터득한 대호에게 있어서는 메이저리그의 생활이라고 해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솔직히 그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활약한 것만으로도 만족했다고 생각했다.
명예의 전당 입성에 실패하고, 자기 대신 라이벌이 올라간 그날 이전까지는.
‘히데오 소이치로…….’
보스턴 블루삭스의 중견수로 16년을 주전으로 활약하였으며, 16년간 480개의 홈런과 통산 타율 0.301의 성적을 거뒀다.
반면 대호는 보스턴 블루삭스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 킹덤스 소속이었지만, 포지션은 히데오 소이치로와 마찬가지로 중견수를 맡았다.
성적은 10년간 401개의 홈런과 2,002개의 안타.
일본인인 히데오 소이치로와 한국인인 대호는 많은 부분에서 비교되었다.
대호 역시 팀이나 국적 때문에 히데오 소이치로에게 라이벌 의식을 품게 되었는데, 어쩌면 필연일지도 몰랐다.
메이저리그를 은퇴한 뒤로도 자주 비교가 되었기에 더더욱.
그런데 사무국으로부터 당신은 입성이 가능하다라는 소식까지 들었음에도 정작 호명된 것은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것이다.
‘젠장,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그 녀석이 나보다 먼저?’
대호는 이런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발표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물론 라이벌인 히데오 소이치로의 성적 또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장에 헌액되기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세운 기록보다 더 훌륭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히데오 소이치로를 선정하였다.
‘나랑 히데오 소이치로의 차이가 뭘까?’
대호는 화장실에서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활동 기간. 그것 말고는 없어.’
16년간 메이저리그 생활을 한 히데오 소이치로와 고작 10년, 딱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을 갖출 수 있는 기간 동안 활동한 자신.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판단에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할 요소는 이것 말고는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통산 타율과 세부 스탯이 훨씬 높은데, 히데오가 명예의 전장에 먼저 입성할 수 있을 리가.
물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스타의 선정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주관이지만, 회귀한 이상 패배의 원인을 분석해야만 했다.
“빅스, 지금이 며칠이지?”
화장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 대호는 휴대폰 인공지능에게 날짜를 물어보았다.
― 오늘의 날짜와 시간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2028년 11월 21일 AM 07:00입니다. 날씨도 알려 드릴까요?
“아니, 그만하면 됐어.”
인공지능 빅스의 알림에 대호는 그만하면 되었다는 말을 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28년 11월 21일이면… 2학년 때네. 여러 번 회귀해도 이건 바뀌지 않는구나.”
연도와 날짜가 동일하다는 걸 깨닫자, 대호는 곧바로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상태창!”
게임 시스템, 2회차와 3회차에 자신을 도와준 1등 공신.
그게 이번 4회차에도 유지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띠링!
<상태창>
이름 : 정대호(18)
국적 : 대한민국(ROK)
…….
‘있다!’
대호가 메이저리그를 은퇴하고 사라졌던 상태창이 다시 나타났다.
2회차에서도, 그리고 3회차에서도 대호가 프로 생활을 은퇴하자 게임 시스템은 사라졌다.
하지만 고2로 돌아온 지금, 4회차에도 게임 시스템이 따라온 것이다.
‘게임 시스템이 있다면, 할 수 있다.’
대호는 라이벌, 히데오 소이치로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속으로 소리쳤다.
자신의 소망을 이룩해 주었던 게임 시스템과 함께라면 이번에도 목표를 이룰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이번 4회차에는 메이저리그의 경험도 있지 않은가.
3회차에는 불확실한 성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이너리그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국내 프로야구를 선택한 뒤, 포스팅 시스템을 이용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꾀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미 국내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 모두 경험을 하지 않았는가?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대호는 그런 확신을 가지고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바로 메이저리그에 도전을 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 대호는 남은 1년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자신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계획을 짜 보았다.
‘메이저리그로 바로 가기 위해선 빠른 시일 내에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끌어야 해.’
고교 졸업과 함께 바로 메이저리그로 진출을 하기 위해선 당연히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터의 시선을 끌어야 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의 대호는 완전히 무명 상태나 마찬가지.
최고의 유망주도 아닌데, 한국의 고교생에게 메이저리그 스카우터가 관심을 가질 리가 만무했다.
또 대호에게 불리한 게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포지션이었다.
국내 프로야구도 그렇고,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 역시 가장 관심을 가지는 포지션은 투수였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야수 포지션이다.
즉, 외야수인 대호가 메이저리그 스카우터의 눈에 띄기 위해선 아주 특별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다.
“어떻게 해야 스카우터의 눈에 뜨일 수 있을까?”
평범한 모습으로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터의 눈에 띄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 대호는 어떻게 하면 그들의 눈에 뜨일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 선택을 했다.
“그래. 일단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장거리 타자가 되어야 해.”
대호는 국내 프로야구를 거쳐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3회차와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전에는 확실하게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장타력보다는 타율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래서 힘보단 컨택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스탯도 찍은 것이다.
어차피 뛰어난 컨택 능력으로 성적을 올리다 보면 힘을 비롯한 다른 스탯도 충분히 올릴 수 있을 거라고 내린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정확히 적중해서 3회차에 대호를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비록 타율을 조금 손해 보더라도 메이저리그는 호쾌한 장타를 선호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컨택 능력 보단 힘에 좀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 굳이 컨택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있었다.
시스템의 능력을 힘에 올 인하더라도 이미 국내 프로야구 경력이 두 번, 메이저리그 경험이 한 번 있는 만큼 선구안에는 자신이 있었다.
또 대호는 3회차에 자신이 가진 게임 시스템의 이스터 에그를 하나 발견했는데, 바로 이전 삶의 경험을 회귀해도 어느 정도 가지고 온다는 것이었다.
과연 메이저리그의 경험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남겼을지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켰다.
<상태창>
이름 : 정대호(18)
국적 : 대한민국(ROK)
성별 : 남
투타 : 투(우) 타(우)
레벨 : 1
힘 16
민첩 20
체력 20
지능 30
정신 35
순발력 18
컨택 30(↓)
퀘스트 : 일일 퀘스트(1)
‘역시!’
방금 전 화장실에서는 상태창의 존재만 확인했고, 자세한 내용은 보지 않았다.
예상대로 스탯은 3회차와도 달랐다.
대호는 지난번 회귀에서 육체적 능력은 고2의 몸을 따라가지만, 정신적 능력은 회귀 직전에 가졌던 스탯에 영향을 받아 소폭 상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힘과 민첩, 그리고 순발력과 체력은 예전과 같은데, 정신과 지능, 컨택의 수치가 5에서 10 정도 높았다.
‘컨택 스탯이 30이나 되네? 이 정도면 거의 포스팅 직전에 찍었던 거 하고 비슷한데…….’
더욱이 컨택 스탯의 경우 줄어든 표식이 떠 있는 상태인데도 무려 30이나 되었다.
이는 대호의 예상보다 높은 수치였다.
그 뜻은, 레벨 업을 할 때 주어지는 스탯 포인트를 원래 계획대로 육체적 능력에 집중해도 무방하다는 것이었다.
“좋았어!”
예상보다 높은 스탯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대호는 저도 모르게 환호하였다.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것만 같았다.
짝!
“이제부터 시작이다.”
결심을 한 대호는 그렇게 자신의 뺨을 한 번 치며 각오를 다졌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