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0.01초 소드마스터 199화
황태영은 크롤러였다.
등급이 중간 정도 되는 헌터로, 폐허가 된 도시를 몰래 돌아다니며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그런 헌터였다.
오늘 같은 경우는 기업에서 주기적으로 주는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폐허가 된 도시를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러던 중 수상한 민간인을 발견했고, 갑작스러운 비상음이 울리면서 무려 S급 몬스터가 나타났다.
‘여기서 뒤지는구나.’
각 구역마다 나타나는 몬스터들이 있다.
그리고 여긴 상위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구역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눈으로 직접 보기도 힘들고 잡는 건 더더욱 힘들다는 S급 악마가 뜬금 없이 이곳에 나타났다.
그 아찔한 존재를 마주했을 때, 황태영은 삶을 포기했다.
어차피 도망쳐도 소용 없다는 것을 알기에, 도망칠 의지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자포자기 하고 있을 때였다.
촤아아아-!!
섬광처럼 번쩍이며 나아가는 검강이 순식간에 저 S급 대악마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
대악마는 외마디 비명조차 질러 보지 못한 채, 그대로 양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쿠콰콰쾅-!!
그 빌딩 만한 몸뚱이가 무너져 내리면서 땅이 요동쳤다.
“이, 이게 무슨!”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S급 대악마를 일격에 죽이다니.
대격변 이후, S급을 수많은 헌터들이 힘을 합쳐 사냥하는 일은 있어도, 단신으로 잡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심지어 일격에 대악마를 죽였다고 하면 누구도 믿지 못하리라.
‘바, 방금 거, 녹화 된 거겠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헌터들은 늘 고글에 녹화 기능을 켜둔다.
그래야 몬스터들의 동선이나 폐허가 된 도시들의 상황을 보고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방금 전 상황은······.
‘완전 대박 영상이잖아!’
이걸 인터넷 영상 사이트에 올리면 어떻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그런데-.
‘저 사람은 대체 누구지?’
중후한 외모에 중세시대에서나 볼 법한 갑옷과 붉은 망토를 휘날리고 있는 남자.
아까 그 민간인은 어디 가고······?
* * *
‘분명 내 이름을 알고 있었어.’
대악마 느낌이 풀풀 나는 놈이 마기를 흘리며 아슬란이라고 또박또박 말했었다.
그렇다는 건 놈이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며, 애초에 나를 노리고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뜻이리라.
그럼 혹시 그놈도 게임 속에 등장하는 대악마 중 하나라는 것일까.
하지만 이제까지 그렇게 생긴 놈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데.
‘응?’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내 몸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방금 전까지 위풍당당하게 붉은 망토를 펄럭이던 아슬란의 몸은 온데 간데 없었다.
‘이건 또 뭐야?’
나는 내 의지대로 아슬란의 모습을 꺼내려고 했으나, 아무리 힘을 줘 봐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그냥 괄약근이 땡기는 정도?
대체 뭘 어떻게 해야만 아슬란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저, 저기······.”
처음 나를 구해 주고 여기까지 데려와 준 남자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바, 방금 그건 헌터님의 능력이신 겁니까?”
“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셔서 저 S급 대악마를 일격에 잡으셨잖아요! 이제까지 누구도 S급 대악마를 일격에 잡지 못했는데. 대체 누구시죠? 이런 엄청나신 분을 제가 모르고 있었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남자는 머리가 바닥에 닿을 것처럼 허리를 숙였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아마 곧 있으면 대응팀이 올 겁니다. S급 대악마가 나타난 건 큰 사건이니까요. 아! 마침 저기 오네요.”
이 남자 말대로 여러 헬기와 더불어 혼자서 비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거 나타났다.
그중 이들의 대장격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우리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거기 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줄래요?”
그녀의 물음에 황태영이 말했다.
“아! 이사님. 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KC 소속에 C급 헌터 황태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네. 관등성명은 댈 필요 없어요. 어떤 상황인지 설명부터 해주시겠어요?”
“그건······ 길게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여기 계신 헌터님이 S급 대악마를 일격에 잡았으니까요.”
“······네?”
그녀를 비롯해 그 뒤에서 험악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던 남자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S급 대악마를 일격에 죽였다고요?”
“네! 여기 고글에 영상도 저장이 되어 있습니다.”
“······?”
다들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녀는 황태영의 고글에 들어 있는 영상을 받아 홀로그램으로 영상을 띄웠다.
내가 없는 사이, 뭔가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 같다.
촤아아아-!!
영상 화질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저 거대한 대악마가 날아오는 검강을 맞고 반으로 갈라져 쓰러지는 것을 말이다.
“!?”
“저, 저런 게 가능하단 거야?”
그러나 거기서 이들도 이상한 점을 금방 파악했다.
“근데······ 당신은 영상 속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거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그때 그녀의 옆에 있던 남자가 무언가를 보여 주며 말했다.
“이사님. 방금 이 남자의 신상을 조회해 봤는데, 15년 전에 실종 처리가 된 사람입니다.”
“15년 전에요?”
“예. 대격변이 일어난 직후에 사라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연하지.
그때 내가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니까.
잠깐만.
그럼 내가 게임 안에 들어가자마자 대격변인가 뭔가 하는 게 벌어져서 이 난리가 났다는 건가?
“좋아요.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세한 건 본부로 돌아가서 듣도록 하죠. 아! 그전에 자기소개부터 하죠. 저는 KC 그룹의 이사, 하채린이라고 해요.”
그녀는 나와 짧게 악수를 나눈 뒤, 뒤에 있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다른 기업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여기 상황부터 정리해 주세요. 그리고 나머지는 여기 계신 분과 함께 회사로 돌아가도록 하죠.”
“예.”
하채린은 내렸던 헬기에 다시 몸을 실으며 내게 말했다.
“같이 가시죠. 이런 곳에 계속 있는 것보다는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아슬란으로 변하는 방법도 모르는데, 이런 곳에 있다가 또 악마들이 나타나면 꼼짝 없이 개죽음을 당해야 하지 않는가.
나는 그녀를 따라 헬기에 몸을 실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한 건지 알고 싶었다.
* * *
S급 헌터이자, KC 그룹의 후계자이기도 한 하채린은 갑자기 나타난 이 정체불명의 남성을 물끄러미 살펴보았다.
이번에 S급 대악마가 뜬금 없이 나타났던 것도 이 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15년 전, 대격변이 일어난 직후 실종된 사람들은 많았다.
당연하다.
사방에서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들이 튀어 나왔으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헌터라고 불리는 능력자들도 함께 등장하면서 인류는 반격의 기회를 마련했다.
그리고 거기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실종됐던 자리에서 실종자들이 다시 나타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
날짜는 다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하루 만에, 또 누군가는 몇 주, 혹은 몇 달 만에.
“그리고 5년 동안 실종되었다가 다시 나타난 사례가 최장 기록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당신이 그 기록을 깼네요. 15년 만에 나타났으니.”
15년 만에 나타난 케이스는 처음이었다.
최장 기록 경신.
하지만 하채린이 궁금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저도 실종된지 1년 만에 다시 돌아왔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세상은 부활자들이라고 해요. 그리고 왜 실종이 됐던 건지, 실종이 된 기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누구도 시원하게 설명을 못하고 있죠. 왜냐하면 실종자들은 모두 그 기간 동안의 일을 모두 잊었으니까.”
하채린 역시 1년 동안 실종이 됐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땐,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자신이 실종된 기간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어렴풋이 다른 세상에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고, 원래 세상으로 돌아오면서 신기한 능력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실종됐다가 돌아왔던 사람 중에 한 가지 강렬하고 특별하게 기억하는 것이 있어요.”
그건 바로,
“붉은 망토.”
모두가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부활자들은 붉은 망토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멸망의 의미로, 또 누군가는 구원의 의미로 말이다.
“그래서 신성한 예언자들이 그런 말을 남겼죠. 언젠가 붉은 망토를 휘날리는 한 남자가 세상을 바꿔 놓을 거라고. 물론, 그것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인지, 구원시킨다는 것인지는 정확히 말하지 않았지만요.”
그렇기에 붉은 망토를 매고 나와 자신이 구원자인 것마냥 떠드는 사기꾼들이 판을 치고 있었으며, 붉은 망토를 신성시 하는 종교가 나오기도 했다.
“분명 영상 속에서 당신은 붉은 망토를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일격에 S급 대악마를 죽였죠. 이게 과연 우연인지, 아닌지 저는 확인을 하고 싶네요. 당신의 능력을 한번 보여 주시겠어요?”
“······.”
김도한이란 이름으로 실종자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남자.
그는 묵묵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도한 씨?”
“······제가 왜 그래야 돼죠?”
“네?”
“제가 왜 당신들에게 제 능력을 보여줘야 하냐는 묻는 겁니다.”
“그거야······ 당신이 정말 예언자들이 말한 그 존재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전 예언이고 뭐고 알고 싶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고요. 그저 제가 없는 동안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었던 것일 뿐. 당신들에게 제 능력을 보여 줄 의무는 없는 것 같은데요?”
하채린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남자가 지금 정신이 나간 건가?
뭐, 듣고 보니 틀린 말을 한 건 아니긴 하다만.
“이사님.”
처음부터 저 남자를 못 마땅하게 여기던 임우영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2m가 넘는 그 육중한 몸이 일어나자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이놈이 정말 S급 대악마를 잡았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쇼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는 쿵쿵 발소리를 내며 김도한에게 다가갔다.
“어이. 솔직히 말해 봐. 그거 네가 한 거 아니지? 어디서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딱 봐도 비실해 보이는 네놈 혼자서 대악마를 잡았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원래부터 다혈질로 유명한 임우영이지 않은가.
분명 한번쯤 사고를 칠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그렇기에 하채린은 임우영 팀장을 딱히 말리지 않았다.
저 남자가 협조를 하지 않겠다면 힘으로라도 협조를 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말해 봐. 가만히 입 다물고 쳐다만 보지 말고, 이 새끼야.”
급기야 임우영 팀장이 상대의 목을 붙잡았다.
바로 그때였다.
“감히-.”
서걱-!!
섬뜩한 절삭음과 함께 임우영 팀장의 팔이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무엇이 자신의 팔을 잘랐는지도 모른 채, 임우영 팀장은 멍하니 떨어져 나간 팔을 바라보다,
“으, 으아아악!”
사무실이 떠나갈 정도로 비명을 질러댔다.
“그 버러지 같은 손으로 짐의 몸에 손을 대다니.”
그리고 상대는 영상 속에 나오던 그 붉은 망토의 남성으로 변해 있었다.
‘어떻게 벤 거지?’
임우영의 몸은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더 단단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것이 그의 특별한 능력이었으며, 그것으로 무려 S급 헌터라는 자격을 얻었다.
그런데 저 남자가 임우영의 팔을 진흙처럼 잘라냈다.
문제는 칼을 뽑는 동작조차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이 새끼가!!”
임우영은 우악스럽게 소리를 치며 상대에게 달려 들었다.
그러나,
“꿇어라.”
쿠웅-!!
저 육중한 몸이 상대의 말 한 마디에 그대로 무릎이 꺾이면서 바닥에 엎어졌다.
“크, 크으읍-.”
“벌레만도 못 한 놈이 감히 짐에게 반항을 하는 것이냐?”
붉은 망토의 남성이 임우영의 뒤통수를 발로 짓밟았다.
그로 인해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저, 저런!”
“제압해!”
같은 회의실에 있던 요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저 남성을 제압하려 들었다.
하지만,
“누가 짐의 허락도 없이 움직이라고 했지?”
그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위압감에 그들은 숨도 쉴 수 없었다.
“크헉-!”
“우욱-!”
벌써 몇몇은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해 버렸고, 소란을 듣고 회의실 문을 박차며 들어온 요원들 역시 거품을 물며 혼절했다.
그나마 하채린을 비롯해 등급이 높은 헌터들은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지만,
‘이, 이게 무슨 무지막지한 힘이야?’
그들 역시 간신히 정신줄만 붙잡고 있을 뿐, 하채린도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는 것만 같았다.
“감히 짐의 경고를 무시하는 것에 모자라 짐을 능멸하다니.”
숨 막히는 살기가 휘날리는 붉은 망토를 타고 진하게 퍼져 나갔다.
“모두 이 자리에서 죽여 주마.”
그가 주먹을 쥐려는 순간.
위기감을 느낀 하채린이 젖 먹던 힘까지 모아 소리쳤다.
“사, 살려 주세요!”
“······?”
“어, 어떤 것이든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사, 살려 주세요.”
그 말에 남자는 힘을 거두어 들였다.
그제서야 그들은 참았던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짐이 너희에게 물어볼 것이 많다.”
그는 망토를 화려하게 펄럭이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은 마치 위엄이 넘쳐 흐르는 군왕을 보는 듯했다.
“성실하게 답한다면 살려 주지.”
하채린은 벌벌 떨리는 몸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