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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97화 (197/200)

197화

0.01초 소드마스터 197화

털썩.

목이 날아간 라할의 몸뚱이가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빠져나오는 황금빛 영혼이 내게 말했다.

[아슬란. 네가 지금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아느냐? 너는 지금 이 세계를 유지하는 근간을 흔들고 있다.]

“그건 짐이 알 바가 아니다. 네가 정말 이 세계의 근간이었다면 진작에 잘라 버렸어야 했다.”

나는 그 영혼이 어디로 빠져 나가지 못하게 칼로 놈을 붙잡았다.

[아슬란.]

놈은 사라지기 전 내게 말했다.

[바깥세상으로 나가봤자, 이곳이 훨씬 낫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무슨 뜻이지?”

[지금 바깥세상은 지옥보다 더 끔찍한······.]

놈은 말을 다 끝맺지 못 하고 소멸되었다.

라할이 드디어 죽었다.

콰르르릉-!!

그래서일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치고 천지가 요동쳤다.

항상 내게 정보를 알려 주던 시스템 창도 온갖 오류 메시지가 다 튀어 나왔다.

결국 내게 정보를 주던 시스템 창도 라할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건가.

나는 라할의 몸뚱이에서 나온 황금색 구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그것이 새로운 주인을 찾은 듯, 내 안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왔다.

[새로운 관리자]

[관리자 권한을 얻으셨습니다.]

“관리자 권한?”

그래서 이걸 어떻게 쓰는 건데?

그에 대한 설명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이리 저리 힘을 써보려고 했으나, 딱히 무엇 하나 되는 것이 없어 보였다.

바로 그때.

치직-! 치지직-!

노이즈.

그래. 분명 노이즈였다.

이 세계에서는 들어볼 수 없는 노이즈가 내 귀에 명확하게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V. 무슨 일이라도 있나? 네 신호가 끊긴 것 같은데.]

[V? 갑자기 왜 신호가 끊겼지?]

[관리자의 신호가 끊기다니. 이상한 일이군.]

수많은 화면들이었다.

그 화면 속에서 나타나는 이들의 생김새는 모두 비슷했다.

내가 방금 죽였던 라할과 말이다.

[잠깐. 넌 뭐야?]

[넌 아슬란이잖아. 네가 어떻게 이 채널에 있는 거지?]

그들은 내 얼굴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다 금방 사태를 파악했다.

[이럴 수가. 새로운 관리자라니.]

[V를 저놈이 죽였다고? 대체 어떻게?]

[말도 안 돼. 관리자가 죽을 수도 있었어? 그것도 캐릭터한테?!]

[저건 일반 캐릭터가 아니야. 플레이어라고!]

놈들은 웅성 거리며 혼란에 빠졌다.

나는 수백 개가 넘는 화면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이들이 관리자.

이 병신 같은 게임 속에 사람들을 강제로 집어 넣는 놈들인가.

“너희들이구나.”

나는 진심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놈들에게 속아 이 지옥 같은 게임을 하게 되었을까.

“감히 인간을 속이는 가짜 신들.”

그 말에 놈들이 언성을 높였다.

[닥쳐라! 대체 네놈이 어떻게 V를 죽인 거지?]

[플레이어가 관리자를 죽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걸 어떻게 하지? 무슨 조치를 취해야 돼!]

[우리가 직접 가서 놈을 제거해야 하는 거 아니야?]

놈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나는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저기 파란 머리 색깔을 하고 있는 라할이 말했다.

우리가 직접 가서 놈을 제거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벌레보다 못 한 놈들이 감히 혀를 나불대는구나.”

[뭐야?!]

[당장 저놈을 죽여!]

[기다려 봐. 내가 한번 가볼 테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포탈 하나가 내 앞으로 열렸다.

파란 머리의 라할이 그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난 순간 심장이 철렁였다.

내가 아까 라할을 이길 수 있었던 건, 놈이 어둠의 권능을 가지고 있던 덕분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비참하게 놈의 손에 맞아 죽었을 터.

그리고 상대는 그 라할과 똑같은 힘을 가진 놈이다.

만약 저놈에게 어둠의 권능이 없다면 이번에도 나는······.

“쯧. V 이 자식이 온갖 민폐는 다 끼치는군. 관리자가 플레이어한테 죽다니. 이게 무슨 쪽팔린 상황이야?”

놈은 머리를 긁적이다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와 팔을 휘둘렀다.

콰아앙-!!

묵직한 일격.

하지만,

‘생각보다 버틸만 한데?’

아니. 버틸만한 정도가 아니다.

그냥 간지러운 수준이었다.

나와 싸웠던 라할은 일격 하나 하나가 위협적이고 수호의 방패가 비명을 지르며 깨져 나갔다.

그런데 이놈은 왜 이렇게 약한 거 같지?

나와 싸웠던 라할, 그놈이 터무니 없이 강했던 건가?

아니면······.

‘내가 강해진 건가?’

라할의 힘을 흡수하고 나 역시 새로운 관리자가 되면서 힘이 강해진 것은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방어적인 자세를 버리고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르릉-!

그런 뒤 이 파란 머리 라할에게 휘둘렀다.

“어어······. 어어어!”

콰아아앙-!!

내가 날린 검은 검강을 막아내며 저 뒤까지 밀려난 놈은 콜록 콜록 기침을 토해내며 뿌연 연기 속에서 튀어 나왔다.

“이, 이게 대체······.”

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놈의 눈동자에서 당혹감이 이는 것이 보였다.

“벌레 같은 놈이, 역시 벌레보다 못 한 힘을 지녔구나.”

“마, 말도 안 돼. 이게 정말 플레이어라고? 아무리 플레이어라도 이런 힘을 가질 수 없어!”

“시끄럽다.”

콰직-!!

나는 놈이 펼친 방어막을 부숴 버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놈의 심부를 칼로 찔렀다.

“커헉!”

파란 머리의 라할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듯 무릎을 꿇었다.

“이, 이럴 수는······. 어, 어떻게 플레이어가······.”

“오만하구나, 가짜 신이여. 감히 짐의 힘을 네놈의 알량한 생각으로 판단하다니.”

난 놈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세게 힘을 주자 놈의 머리가 도자기처럼 깨져 버렸다.

“으아아악!”

그것으로 놈은 빛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

[!?]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관리자들은 할 말을 잊은 듯 보였다.

나는 그들이 있는 곳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난 놈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놈들 뒤에 보이는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야,

“이런 곳에 숨어 있었구나. 쥐새끼 같은 놈.”

놈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으니까.

뭐, 뭣?! 여, 여길 대체 어떻게 온 거지?”

빛의 기둥이 떨어진 뒤 내가 나타나자 놈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반응했다.

다른 화면 속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관리자들도 까무러치게 놀랐다.

[저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야?!]

[누, 누가 좀 제발 나서서 막아 봐!]

[방금 K가 죽은 거 못 봤어? 우리 관리자의 힘이 통하지 않는 놈이라고!]

[그래도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한꺼번에 공격한다면······.]

[너나 그렇게 해. 난 빠질 거니까.]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놈들은 서로 싸우기 바빴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내 허세는 가만있지 않고 미쳐 날뛰었다.

“결정했다.”

[······?]

“너희는 존재 자체가 악이다. 그러니 너희를 모두 찾아내 없앨 것이다.”

[우, 웃기는 소리! 우리가 호락호락하게 당할 거 같은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짐은 너희의 얼굴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너희가 어디에 있는지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감히 누구도 짐에게서 벗어날 순 없다. 바로 여기 있는 놈처럼 말이다.”

스걱-!

나는 내 앞에 얼어붙어 있던 노란 머리 라할의 머리를 그대로 쳐버렸다.

떨어진 놈의 머리통이 바닥을 뒹굴었다.

난 저 화면 속에서 겁먹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검은 머리 라할에게 말했다.

“다음은 네놈인가?”

놈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며 화면을 꺼버렸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놈이 어디에 있는지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 * *

“으으-”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일까.

나는 수많은 라할들을 만나고 그들을 죽이며, 그 세계를 경험했다.

“이제 도망도 칠 기력이 없는 모양이지?”

그냥 깔끔하게 각 세계에 있는 라할을 만나 죽이면 될 일인데, 이놈들이 가만 있지 않고 나를 보자마자 도망부터 치는 바람에 각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대충 알게 되었다.

이 세계는 본래 스토리대로 알렉산더가 세상을 구하며 영웅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알렉산더는 타락했고, 보다시피 악마처럼 변하여 내 발아래 쓰러져 있었다.

저 라할이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타락한 알렉산더를 끌어들여 나를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알렉산더를 비롯한 수많은 악마가 몰려왔음에도 자신들의 신을 지키지 못했다.

“살고 싶나?”

놈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도 이 세계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한 일개 캐릭터에 불과했다.

“그럼 짐의 질문에 답해라. 짐이 어떻게 하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지? 이 게임 세상이 아니라 진짜 세상 말이다.”

“그, 그건······.”

벌써 수백 번도 더 물어본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놈도 말을 끄는 것을 보니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괜히 시간만 잡아먹었군.”

내가 칼을 높이 들자 놈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자, 잠깐만! 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개수작을 부리는 것이라면······.”

“아, 아닙니다. 진짜 알려 드리겠습니다!”

놈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우리 관리자들도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관리자로서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럼 죽여 달라는 얘기군.”

“자, 잠시만요. 당신은 가능할 겁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죽으면 자동으로 바깥세상에 이동이 되니까요.”

“그 말은 나더러 죽으라는 건가?”

“아니요. 당신은 플레이어이면서 동시에 관리자이니, 분명 관리자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겁니다.”

“관리자의 권한?”

그 말과 동시에 갑자기 내 앞에 수많은 정보창이 나타났다.

내가 원하는 캐릭터의 정보를 언제든 불러올 수 있고, 원한다면 해당 캐릭터의 위치를 비롯해 그 캐릭터가 가진 능력을 변경할 수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내가 원한다면 이 세계를 초기화시켜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옵션까지 있었다.

‘잠깐. 리셋이라고?’

리셋이 가능했단 말인가.

‘그럼 그놈은 대체 나한테 왜 죽었던 거지?’

내가 처음으로 죽인 라할.

놈은 세계를 리셋시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

만약 리셋을 시켰다면 날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 모든 능력을 빼앗을 수 있었을 텐데?

‘이놈들이야 리셋을 한다고 해서 내가 있는 세계가 아니니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지만, 대체 그놈은 왜 리셋을 안 했던 거지?’

의문점이 들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포탈을 여는 능력이 있으시지요. 그럼 원래 있던 세계를 떠올리며 포탈을 열어 보십시오. 예전에는 불가능했겠지만, 지금은 가능할 겁니다. 아마도······.”

“아마도?”

“그, 그게 저도 확신할 순 없어서······.”

“그렇군.”

내가 포탈을 열어 보려고 하자 놈이 갑자기 나를 막아 세웠다.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금 바깥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한 번도 바깥세상을 본 적이 없지만, 그곳은 지옥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 지옥 속에 빠진 인간들을 돕고 있는 것이었고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인간들을 도와? 너희는 그들을 강제로 납치했다. 아무런 고지도 없이 말이야. 그리고 수많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지. 죽어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도 사실 믿음이 안 가는군.”

“······.”

“짐이 믿는 건 오직 짐의 눈으로 본 것뿐이다.”

나는 내가 있었던 원래 세계를 떠올리며 포탈을 열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콰아아아-!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포탈이 열렸다.

“······.”

나는 그곳에 이끌리듯 발걸음을 옮기다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라할에게 물었다.

“내가 여길 들어가면······. 다시 돌아올 수 있나?”

“이쪽에서 문을 열어서 들어갈 수 있다면, 반대쪽에서도 분명 문을 열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렇군. 고맙다.”

“자, 잠깐!”

퍼억-!

나는 포탈을 열고 떠나기 전, 놈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마무리는 확실하게 하고 가야지.”

난 길게 심호흡하며 포탈을 넘어갔다.

드디어 진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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