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0.01초 소드마스터 196화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었다.
대체 라할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체 이 게임은 무엇일까.
게임이 사람을 삼켜 그 속에 강제로 살게 만드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일을 이 게임은 실제로 해냈고, 라할이란 존재는 이 게임의 관리자인 것마냥 행동했다.
게임 속에 갇힌 사람을 감시하고, 방관하며 마지막에 나타나 선택을 강요하는, 바로 그런 존재였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존재를 만들었으며, 누가 이 게임을 만들었는가.
라할은 나 말고도 수많은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 갇혔다고 말했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그에 대한 해답은,
“널 죽이면 알게 되겠지.”
모든 의문의 해답은 저 라할이 갖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놈이 순순히 말해 줄 것 같진 않다.
그럼 놈과 싸워 답을 얻어내는 수밖에.
“잘못된 선택을 하려고 하시는군요. 당신은 절 죽일 수 없습니다. 아니. 제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그건 두고 봐야 아는 거 아닌가?”
나는 망설이지 않고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촤아아악-!!
그와 동시에 검강이 땅을 가르며 나아갔다.
콰아아앙-!!
이제까지 그 누구도 내 검강을 온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그 레메게톤조차도 내 검강에 몸이 잘려 나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참 귀여운 발악이군요.”
라할은 내 검강을 맨손으로 막아냈다.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호기심이 넘친다고 해도 알아야 할 것이 있고, 알지 말아야 할 것이 있지요. 당신은 그 선을 넘으려 하고 있어요.”
“그래. 짐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순식간에 라할 앞으로 도달했다.
“그 선을 네가 정할 순 없다.”
콰아아앙-!!
라할은 이번에도 내 일격을 막아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안타깝지만, 당신의 목숨을 제 손으로 거두는 수밖에.”
그가 손을 뻗자, 그 손가락 끝에서 검은 마기가 비명을 지르며 모여들었다.
이윽고 그것이 일직선으로 내게 날아왔다.
콰아아아-!!
나는 방어막을 펼쳐 공격을 막아내려 했으나,
“······!”
이제까지 수호의 방패를 펼치면 그 어떤 공격이라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으로 내 몸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많이 당황하신 모양입니다. 하긴. 지금까지 잘만 통했던 최강의 공격 기술과 최강의 방어 기술이 통하지 않는 것 같으니, 당황할 수밖에요.”
“아니.”
그렇다고 해서 주눅이 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겁이 났지만, 내 허세가 그 공포보다 더 크고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에서야 짐이 처음으로 힘 조절을 하지 않고 마음껏 날뛸 수가 있겠구나. 부디 끝까지 버텨 주길 바란다.”
“하하. 이 순간에도 허세를 부리는 겁니까? 정말이지 그 특성은 제가 봐도 참 특이하고 신기하군요.”
“짐이 허세를 부리는 것 같은가?”
나는 검을 들어 모든 힘을 끌어모았다.
하늘에서는 블랙 메테오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차마 눈으로 좇을 수 없는 빠른 검무가 수십, 수백 개의 검강을 생성해냈다.
그것들이 일제히 라할을 향해 쏟아졌다.
“짐의 눈에는 네가 허세를 부리는 것 같은데?”
여유만만하고 태평해 보였던 라할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 * *
“아슬란 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그분께서는 대륙을 구원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시는 전능한 분이시다!”
“아슬란 폐하께서는 우리의 창조주시다!”
온 대륙이 아슬란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었다.
라할이란 이름을 완전히 없애고, 그것에 대한 기록을 전부 삭제한 뒤, 대륙의 사람들은 아슬란을 신으로 추앙해 그를 창조주로 여기며 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아슬란은 악마와의 전쟁으로 인해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다시 되살렸으며, 무너진 성을 재건하고 그 위에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냈다.
쿠웅-!
[아슬란 님의 무궁한 영광과 명예를 위하여.]
그의 능력으로 창조된 수호자들.
거대한 석상에 생명을 불어넣으면서 탄생한 수호자들은 각 도시에 배치되어 그곳에 있는 백성들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륙 곳곳에 있던 드래곤들도 아슬란에게 복종하며 그의 명령만을 따르면서 한때는 파괴의 제왕이었으나, 지금은 대륙을 수호하는 종족이 되었다.
이런 아슬란의 업적에 모두가 그를 따르며 찬양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렇게 대륙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축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됐다.
방금 전까지는 말이다.
콰르르릉-!!
콰콰콰콱-!!
하늘이 요동치며 그에 따라 땅도 흔들렸다.
“지, 지진이다!”
“꺄아아아!”
성벽에 균열이 가다 못해 갈라질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이건 성 하나에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온 대륙에 큰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하늘은 검게 물들어 가면서 붉은 뇌격을 떨어뜨렸다.
“이건······.”
호레스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와 똑같은 현상이다.
이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졌을 때도 지금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던가.
그 찬란했던 하늘이 다시 한번 검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폐하······.”
대체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 *
콰직-!!
수호의 방패에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은 점점 커져 결국 수호의 방패가 깨져 버렸고,
촤아악-!!
라할의 검이 그대로 내 몸을 꿰뚫으며 지나갔다.
“······!”
그러나 내 몸에 상처는 없었다.
내 몸에 걸려 있는 신성한 보호가 라할의 공격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아쉽군요. 그 몸을 두 동강 내드릴 수 있었는데.”
나는 빠르게 수호의 방패를 켰다.
“당신의 방어막을 깨뜨려도 그 몸을 보호하고 있는 신성한 보호가 있으니 벨 수가 없고, 또 깨진 방어막은 다시 살아난다라- 참 상대하기 까다로운 능력들만 가지고 있군요.”
라할은 웃으며 들고 있던 칼을 빙빙 돌렸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한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쿨타임이 없다고 해서 당신의 기력이 무한인 건 아닙니다. 거기다 저는 당신의 스텟이 형편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결국 시간 싸움인 겁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벌써 몇 시간째인지 모르겠다.
체력이 한계에 달하면서 칼을 든 손이 벌벌 떨고 있었고, 땀도 쉼 없이 흘러 더는 나올 게 없을 정도로 말라 버렸다.
그야말로 이제는 정신력 하나로 버티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방법은······.
“이제 끝을 내드리겠습니다.”
콰콱-!
라할이 만들어낸 수백 개의 칼이 내 방어막을 난도질했다.
마치 믹서기에 갇힌 것처럼 그 날카로운 칼날들이 수호의 방패를 깨뜨렸고, 그중 일부가 내 몸을 도려내려 했다.
촤아아-!!
신성한 보호가 그것들의 공격을 막아냈으나,
스걱-!!
그 가운데를 파고 드는 섬광 같은 라할의 일격은 끝내 막아내지 못했다.
“······!”
위로 붉은 피가 솟구쳤다.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랄 맞은 허세는 감히 몸을 비틀거리거나, 쓰러지는 걸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매섭게 상대를 노려볼 뿐.
“궁금하군요. 당신이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라할의 모습이 한 차례 또 사라졌다.
스걱-!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등 뒤로 나타났다.
그로 인해 내 몸은 그가 휘두른 칼에 의해 베여 피를 토해냈다.
“······.”
정신이 아늑해지고 당장이라도 쓰러져 눈을 감고 싶었지만, 난 꼿꼿하게 서 있었다.
끝까지 검을 놓치지 않았으며, 매섭게 뜬 눈 또한 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라할은 감탄을 터트렸다.
“대단합니다. 당신의 정신력에 박수를 보내지요.”
박수는 지랄.
이렇게 서 있는 것도 죽을 거 같은데.
그나마 다행인 건 생명의 힘으로 내 몸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상처를 치료했어도 다 떨어져 나간 기력까지 회복시킬 수는 없다는 것.
채앵-!!
나는 간신히 칼을 들어 치달아 오는 라할의 검을 막아 세웠다.
“하지만 이제 한계인 것 같군요.”
“······.”
이를 악물고 버텼다.
두 다리가 후들거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으나, 그래도 끝까지 자세를 유지했다.
“제가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알려 드릴까요?”
푸욱-!
“!?”
라할의 검은 그대로 내 배를 뚫고 등 뒤까지 관통했다.
입으로 피를 토하고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신음을 토해내진 않았다.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
“당신은 이곳에서 죽으면 영원히 이곳에 갇히게 될 거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죽으면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랬던 거였나.
왠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만.
“그러나 당신은 특별히 이곳에서 죽여 드리지요. 원래 세계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당신의 영혼은 이 게임에 묶이는 겁니다.”
뭐라고?
“크흐흐. 당신도 여기에 남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당신의 선택이니, 그 결말도 당신의 몫입니다.”
라할의 얼굴이 검게 물들어 악마처럼 변해 갔다.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 계획을 망쳤습니다. 늘 제 예상을 벗어나 일을 저질렀지요. 이제 그것도 모두 끝입니다. 당신에게 어울리는 마지막을 선사해 드리지요.”
내 몸은 아슬란이 아닌, 원래의 나, 평범한 20대의 몸으로 돌아왔다.
라할이 검에 힘을 불어넣어 내 몸을 터트리기 전, 나는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날 죽이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자. 그 정도는 대답해 줄 수 있잖아?”
“말씀해 보시지요.”
“대체 너희 정체는 뭐지? 왜 사람들을 게임 속에 처넣는 거야?”
“후후. 왜일까요? 왜 당신들을 게임 속에 넣었을까요? 대체 무슨 이유로?”
라할의 입가가 기괴할 정도로 찢어지며 그 끝이 귀에 닿았다.
“그건 죽어서 알아봐라, 이 병신아.”
그리고 검에 힘을 불어넣어 나를 터트리려는 순간.
“······?”
라할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이게 왜······.”
난 힐끗 웃으며 놈에게 말했다.
“왜 그러지? 얼른 날 죽여 봐라.”
라할은 한 번 더 힘을 발휘하려 했으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난 라할을 쳐다보았다.
놈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힘이 안 들어가나 보지?”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이긴. 네 힘을 빼앗은 거지.”
“뭐!?”
나는 한쪽 손을 펼쳐 그 위로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저건!”
“그래. 내가 너한테 넘겼던 어둠의 권능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나의 것이 되었지. 그리고 네가 가졌던 힘 전부가 지금 내 손아귀에 있다.”
라할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띠었다.
“원래의 너였다면 내가 힘을 빼앗지 못했겠지만, 넌 내게서 어둠의 권능을 받아 너도 모르는 사이에 마기가 네 힘과 섞여 버렸다.”
나는 라할의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을 보여주었다.
“마침 내 능력 중 하나가 마기 포식자라서 말이야.”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라할은 그제서야 자신의 힘이 전부 내게 흘러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게 생각을 잘했어야지. 대체 누가 누굴 병신이라고 하는 건지.”
나는 내 몸에 박혀있던 검을 뽑았다.
그러자 내 몸이 다시 아슬란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감히-”
그 위엄 넘치는 허세가 머리끝까지 끓어 올랐다.
“짐을 모욕한 죄를 묻겠다, 가짜 신이여.”
“자, 잠깐만! 물어보는 건 뭐든 답하겠다!”
난 라할의 목을 치려던 검을 멈췄다.
“그래?”
라할이 연신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필요 없다.”
스걱-!
그런 놈의 목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