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1초 소드마스터-195화 (195/200)

195화

0.01초 소드마스터 195화

나도 알고 있다.

이 세계는 가짜라는 것을.

그리고 이 세계에서 사는 모두가 가짜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알아도 다 죽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

하늘을 뒤엎은 어둠을 나는 베고 또 베어 버리며 이 세계에 드리웠던 종말의 그림자를 없애 버렸다.

어차피 게임에 불과한 곳이다.

세이브 파일을 삭제해 버리면 한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그런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병신 같게도 이들을 버릴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

콰콰콰콰쾅-!!

이들이 어쩌면 현실 세계보다 더 현실적인 사람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냥 어디가 모자른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난 선택했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이곳에 남아 이들을 살리는 것을 말이다.

“후우-”

검은 하늘이 사라지고 검게 물들었던 태양 역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 대륙을 파괴하려 했던 아포칼립스가 끝난 것이었다.

‘진짜가 아닌, 가짜를 선택하다니. 당신은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될 겁니다.’

라할이 내게 했던 말이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지.

아니.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 살겠다고 이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들면, 그 찝찝함을 평생 안고 살아야 되잖아.

“그럴 바엔 차라리 안 돌아가고 말지.”

내가 지상으로 내려오자 사방에서 신하들과 기사들, 그리고 백성들이 몰려왔다.

“폐, 폐하.”

“폐하!”

“폐하께서 또 한 번 저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은 제자리에 엎드려 내게 절을 올렸다.

그들이 내게 존경을 표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래서일까.

“별 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 떨지 말거라.”

이놈의 허세가 펄떡이며 아직 자신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성으로 돌아간다.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성으로 돌아가 이번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자들이 묻혀 있는 무덤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수많은 기사가 잠들어 있었다.

아론과 하리엘도 이곳에 묻혀 있다.

“폐하. 이곳은 왜······.”

내 명령으로 이렇게 큰 공동묘지를 만들게 됐다.

바로 오늘을 위해서 말이다.

“짐은 오늘 이들을 전부 되살릴 것이다.”

“예?”

“그게 무슨······.”

신하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보였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건 그 어떤 마법과 기적으로도 행할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가능하다.

“그것이 약속이니까.”

나는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내 손을 타고 은은한 생명의 기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

그 강렬하고 찬란한 생명의 기운은 무덤 문을 강제로 열었고, 그 안에 묻혀 있던 자들의 몸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썩어 가던 그들의 시체는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멈춰 있던 그들의 숨결이 격한 기침과 함께 돌아왔다.

“이, 이럴 수가! 죽은 자들이 살아나다니!”

“기, 기적이다! 이건 기적이야!”

“오직 창조주만이 쓸 수 있다는 부활의 힘이다!”

“그렇다는 건 폐하께서는······!”

“아아-”

그들은 내 앞에 한 번 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 무엇보다 위대하다는 부활의 힘.

오직 창조주만이 다룰 수 있다는 그 힘을 이들이 이곳에서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 이게 도대체······.”

무덤에서 일어난 자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바로 아론이었다.

“폐하!!”

아론은 내 앞에 달려와 예를 차렸다.

“아론.”

“감히 폐하의 곁을 오랫동안 떠나 있었습니다. 부디 이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죽은 이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의 순간.

당연히 감동적이고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나올 법도 했지만, 허세 속에 불타고 있던 나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번 더 짐의 허락도 없이 죽어 버린다면 그땐 용서하지 않겠다.”

“황송하옵니다, 폐하!”

그리고 하리엘도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폐, 폐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어떻게 우리가 다시 살아날 수가······.”

“하리엘.”

나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던 하리엘을 부르며 말했다.

“너도 아론과 마찬가지다. 짐의 명령 없이 다시는 곁을 떠나지 말거라.”

“······.”

하리엘은 말 없이 날 보고 있다 갑자기 내 쪽으로 달려와 안겼다.

“저, 저런!”

“헙!”

화들짝 놀란 기사들이 하리엘을 떼어 내려고 했으나, 호레스가 그들을 제지했다.

“놔두거라. 참 보기 좋은 장면이 아니더냐.”

흐뭇하게 웃고 있는 호레스 덕에 하리엘은 아주 편안하게 내 품에 안기며 얼굴을 비벼댔다.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으나, 이 허세는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떨어져라.”

“앗! 죄, 죄송해요. 제가 잠깐 미쳤었나 봐요.”

퍼뜩 정신을 차린 하리엘은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폐하께서 모든 이를 살리셨다!!”

“우와아아아-!!”

분위기가 어색해지려고 했지만, 누군가의 외침에 이어진 함성 소리가 성 전체를 울렸다.

“이들을 데려가라. 아직 혼란스러울 터이니, 호레스가 책임지고 도와 주거라.”

“예, 폐하. 헌데 폐하께서는 어디를 또 가시려는 겁니까?”

“짐의 허락도 없이 먼저 떠나가 버린 그리운 자들을 깨워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바로 엘프들이 있는 곳이었다.

빛의 기둥과 함께 내가 나타나자 엘프들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슬란 폐하?”

이들은 엘티히 여왕의 무덤에 모두 모여 있었다.

검은 하늘이 대륙 전체를 뒤엎었을 때, 이들은 마지막 최후를 여왕과 함께 하려 모여 있었던 것 같았다.

“폐하. 여긴 어쩐 일로······.”

“약속을 지키러 왔다.”

“예?”

난 어둠의 권능을 바치는 대가로 얻은 부활의 힘을 엘티히에게 사용했다.

그 힘이 뻗어 나가자 엘티히를 품고 있던 수정 무덤이 강한 빛을 발했다.

이윽고,

콰아아앙-!!

엘티히가 무덤 문을 박차고······. 아니. 아예 박살을 내고 밖으로 나왔다.

“!?”

“이, 이럴 수가!”

엘프들은 놀란 눈으로 엘티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

“시, 신이시여!!”

“전지전능한 분이시여!!”

얼굴을 땅바닥에 파묻고 있던 엘프들.

엘티히는 나를 떨리는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아슬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그녀는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을 믿지 못 하는 것 같았다.

“분명 난 테르카나 손에 죽었을 터인데. 네가 날 살린 것이냐, 아슬란?”

“그래. 짐의 허락도 없이 죽으려 하지 마라, 엘티히.”

“······.”

“짐은 이만 가보겠다. 너 말고도 살려야 할 자들이 많아서.”

내가 몸을 돌리자 엘티히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아슬란.”

“······?”

내가 슬쩍 돌아보자 엘티히가 이제껏 본적 없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맙다.”

나도 옅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 * *

“폐하!!”

“역시 폐하는 신이십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시여!!”

엘티히 다음으로 살린 사람은 바로 엘버스테인이었다.

자신의 왕궁에 묻혀 있던 그였지만, 지금은 무덤 문을 열고 나와 멀쩡한 상태가 되었다.

“폐하.”

녀석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엘버스테인.”

“예, 폐하.”

“너는 이 왕국의 왕이다. 함부로 눈물을 보이지 마라.”

“크흡! 아, 알겠습니다!”

애써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엘버스테인은 끅끅 소리를 냈다.

“앞으로 짐의 허락 없이 죽지 마라.”

“예!!”

엘버스테인과 그곳 왕국에서 억울하게 죽은 백성들을 모두 살려낸 뒤, 내가 도착한 곳은 바로 이곳.

“이제 너만 남았구나.”

레드 드래곤의 둥지였다.

드래곤은 참 신기하게도 죽으면 얼마 안 있어 뼈만 남기고 가죽과 살이 전부 불에 타 사라져 버린다.

레드 드래곤, 플레임 역시 마찬가지였다.

녀석의 시체를 둥지에 옮겨 놓은 뒤에 얼마 안 있어 녀석은 앙상하게 뼈만 남았다.

“일어나라. 플레임.”

나는 그 뼈 위로 생명의 힘을 내렸다.

그러자,

쿠구구구-!!

둥지 전체가 흔들리면서 그 안으로 붉게 타오르는 불꽃이 치솟았다.

그리고 앙상하게 남아 있던 뼈에 살점이 붙고, 생기가 생겨나면서 드래곤의 시뻘건 눈동자가 번뜩였다.

[크롸라라라라-!!]

이제 막 깨어나서 그런 건가, 아니면 기억이 초기화라도 된 것일까.

플레임은 성난 눈동자와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한 입에 물어 뜯으려 들었다.

“······.”

나는 폭주하고 있는 플레임을 바라보며 짧게 말했다.

“꿇어라.”

콰앙-!!

그러자 펄럭이던 놈의 날개가 꺾이면서 플레임은 바닥에 처박혔다.

난 놈의 머리 위로 발을 올렸다.

“네가 요즘 안 맞아서 정신 줄을 놔버린 모양이구나, 플레임.”

그게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미, 미안.]

플레임은 곧바로 사과부터 했다.

“한번만 더 버릇 없이 짐에게 이빨을 드러내면 그땐 그것들을 모조리 뽑아 주겠다.”

[넵.]

내가 발을 치우자 플레임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근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다시 살아나다니.]

“짐의 허락도 없이 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나는 앞장서서 먼저 둥지 밖을 나섰다.

“이제 돌아가자.”

[응?]

“집으로 말이다.”

집.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비록 가짜인 세상이지만, 이곳이 나의 집이라고 말이다.

* * *

“어리석은-”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라할은 당연히 아슬란이 이 세상을 빠져나갈 거라 생각했다.

그에 따라 계획도 다 세워 놓았거늘.

설마 저렇게 한 점도 망설임 없이 이 세상에 남게 될 줄이야.

“분명 그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강할 텐데.”

이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라할이기에, 그는 아슬란의 마음 역시 알 수 있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이 세상에서 나가 자유를 얻고 싶어 한다.

더 이상 이 게임 안에서 목숨이 오고 가는 짓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는 살고 싶어 한다.

그의 강렬한 생존 본능과 갈망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무조건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제대로 뒤통수를 맞아 버렸다.

“하긴. 그가 여기까지 올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지.”

라할과 똑같이 다른 게임 속 세상을 관리하고 있는 관리자들 모두 아슬란의 생존 확률을 0%로 측정했었다.

그건 라할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그는 단 0.0001%도 없는 생존 확률을 뚫고 이 세계 최강자, 아니. 신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 내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라할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슬란은 역시 아직도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라할의 앞에 빛의 기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직 여기 있었군.”

그리고 그곳을 걸어 나오는 사람은 바로 아슬란이었다.

“이곳을 다시 오시다니. 무슨 일이십니까?”

“줄곧 생각했었다. 모두를 살리면서 짐은 계속 생각했었다.”

아슬란의 안광이 번뜩이며 라할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너의 정체는 무엇인지. 왜 나를 이 게임 속에 집어넣은 것인지. 대체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 건지 말이다.”

“죄송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상관없다.”

한 가지 더 라할이 계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아슬란은 생존자이며,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뜻을 이룬다는 것을.

“너를 베어 버리고, 그 힘을 내가 갖는다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그것이 설령 신을 베어 내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