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0.01초 소드마스터 193화
지옥이 사라지면서 마기도 함께 사라졌다.
물론 악마의 잔당과 그 흔적들이 대륙 곳곳에 남아 있긴 했지만, 그들도 지옥이 사라지고 마기의 근원이 파괴되면서 제대로 된 마기를 뿜어내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아······. 아아.”
콰콰콰콰쾅-!!
이곳 천국에 사라졌던 지옥이 부활을 하고 있었다.
“라할의 이름으로!!”
“놈을 막아라!!”
천사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날개를 열심히 움직이며 아슬란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그들이 아슬란에게 닿기도 전에 두 날개가 검은 불길에 녹아내렸고, 빛으로 가득했던 그들의 몸도 검게 물들었다.
“으, 으아아아악!”
“타락이다! 내, 내가 악에 타락하고 있어!”
천사들은 공포에 빠졌다.
압도적인 힘 앞에 느껴지는 이 무력감.
그 어떤 종족보다 위에 있다는 그들의 우월감이 지금 철저히 짓밟히고 있었다.
“미, 미카엘님. 도저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상 이곳 천계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던 미카엘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았다.
자욱한 화산재가 빠르게 지면을 휩쓸어 버리는 것처럼, 아슬란이 불러일으킨 마기가 천사들의 몸을 불태워 먼지로 만들어 버렸다.
“대체 왜······.”
미카엘은 지옥의 화신이 되어 천계에 강림한 아슬란을 향해 소리쳤다.
“대체 왜 우리한테 이러는 것이냐!!”
그런 그의 목소리가 살겁을 일으키고 있던 아슬란의 귀에 들어갔던 것일까.
순식간에 아슬란이 미카엘 앞에 나타났다.
“헉!”
미카엘은 화들짝 놀라 뒤로 엉덩이를 찧었다.
“그동안 너희는 악마들이 대륙을 집어삼키든 말든 방관하기만 했다. 또한 너희의 신이라는 작자도 온 대륙 백성들의 목소리를 거부했다.”
“웃기는 놈이구나. 감히 전능하신 라할의 화신인 척을 하며 백성들을 꼬임에 넘어가게 한 것을 내가 모를 줄 알고?”
“어리석구나. 아직도 모르겠느냐?”
“뭐?”
“라할이 그들을 버렸기에, 내가 그들의 라할이 되어 준 것이었다. 그들의 희망이 되어 주고, 그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었지. 너희가 그들을 버리지만 않았어도 내가 나서는 일은 없었을 터.”
미카엘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우린 어둠을 없앨 수 없다. 어둠을 없애면 우리 빛도 사라진단 말이다!”
“그렇다고 어둠이 대륙 전체를 물들이도록 방관만 했다는 것이냐?”
“그건······.”
“너희가 말한 대로 어둠이 사라졌으니, 이제 빛도 사라져야 한다. 그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짐이 너희에게 온 것이다. 예전에 짐이 네게 경고하지 않았더냐. 곧 이 몸이 너희에게 강림할 것이라고.”
“!?”
아슬란이 검을 높이 들자 그 위로 시커먼 마기가 끓어 올랐다.
그의 심부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지독한 마기.
미카엘은 그것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어둠의 권능을 네놈이 삼켰구나. 그건 라할께서도 감당하지 못했던 힘. 그래서 레메게톤이 그것을 삼키고 자신의 땅을 지옥으로 만든 것이었다. 어둠의 권능을 품은 자는 반드시 자신의 땅을 지옥으로 만들며, 자신의 사람들을 악마로 만든다.”
“······.”
“그것이 너라고 다를 줄 아느냐? 결국 너도 어둠에 잡아 먹혀 새로운 지옥을 만들고, 새로운 레메게톤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넌 대륙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겠구나. 크하하하!”
미카엘은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라할이 어둠의 권능을 취하지 못했던 건, 그것을 품으면 언젠가 자신의 땅을 지옥으로 만들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형제인 레메게톤으로 하여금 어둠의 권능을 삼키게 만들었다.
그 힘은 자신이 디디는 땅을 지옥으로 만들게 하는 저주가 깃들어 있었다.
즉, 아슬란도 그 힘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리라.
하지만 그는,
“가소롭구나.”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너희는 어둠을 두려워하지만, 짐은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너희는 어둠을 다스릴 수 없지만, 짐은 빛과 어둠을 동시에 다스릴 수 있다. 그런 짐이 고작 어둠 따위에 먹힐 것처럼 보이느냐?”
“지금은 자만하고 있겠지만, 결국 너도 어둠에 먹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이 어둠이 되어 똑똑히 보거라.”
“뭐?”
아슬란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미카엘에게서 치솟는 황금빛 핏물이 금방 검게 물들어 허공 위로 치솟았다.
“으헉!”
치솟은 검은 핏물은 미카엘의 몸을 덮었고, 그의 몸은 검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도, 찬란한 그 몸도, 위엄 넘치던 그 날개도 모두 검게 타들어 갔다.
“아, 안 돼!”
절규하며 발버둥을 치고 있던 미카엘을 아슬란은 무심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의 영혼 한 조각은 이 어둠 속에 남겨 두겠다.”
“······!”
“그러니 심연 속에서 짐이 과연 어둠에 먹히는지 지켜보거라.”
“아, 아슬······.”
대천사 미카엘이 그렇게 소멸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미, 미카엘 님!!”
“이럴 수가. 어떻게 대천사께서 저리도 쉽게!”
“도, 도망가!”
미카엘이 소멸되는 것을 본 천사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천국 곳곳에 있는 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콰콰콱-!!
검은 마기가 모든 입구를 틀어막았다.
“헉!”
“무, 문이!”
그들에게 이곳을 빠져나갈 구멍은 더 이상 없었다.
오직 그들 앞에 남아 있는 것은-
“감히 짐의 허락도 없이 어딜 가려는 것이냐?”
그토록 지독한 마기를 뿌리고 있음에도 무엇 하나 검게 물들지 않은 채 붉은 망토를 휘날리고 있는 아슬란이었다.
* * *
“라, 라할이시여······.”
“어찌하여 저희를······.”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천사들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보면 내가 이놈들을 벌써 다 쳐 죽인 줄로만 알겠다.
“라할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자가 있으면 말하라.”
“······.”
이 수많은 천사 중 라할의 행방을 아는 자는 없었다.
“없느냐? 여기서 정녕 다 죽고 싶은 것인가?”
“우, 우린 모릅니다!”
“저희도 300년 동안 라할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억울합니다!”
그들은 억울함을 토로했다.
라할이 천국에 상주할 때도 감히 그를 보지 못했다면서 말이다.
‘미카엘을 괜히 먼저 죽였나.’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감정이 격하게 올라가면서 미카엘을 단칼에 죽여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놈도 라할이 어디에 있는지 딱히 아는 바가 없는 것 같았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희는 당신과 절대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천사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나는 천계에 강림했을 때, 내게 덤벼드는 놈들만 싸그리 먼지로 만들어 버렸다.
싸울 의지가 없고, 내게 대항할 의지가 없는 놈들은 죽이지 않고 놔두었다.
그 결과 천계에 있는 절반 이상의 천사들이 내게 항복했고, 나머지는 미카엘처럼 어둠에 흡수당하여 사라졌다.
“라할을 찾을 방법을 아느냐?”
“그걸 알았다면 저희가 진작 그분을 찾아 나섰을 겁니다!”
“저흰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며 목숨을 구걸하는 천사들을 보니 딱한 마음부터 들었다.
이놈들이 방관을 하긴 했어도 악마들처럼 대륙을 파괴하려고 공격하진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너희에게 묻겠다. 앞으로 너희는 짐을 섬기겠느냐, 아니면 라할을 섬기겠느냐?”
그들은 망설임 없이 소리쳤다.
“아, 아슬란 님을 따르겠습니다!!”
“아슬란 님만이 저희의 신이십니다!!”
“라할은 우리를 버렸습니다. 그는 저희의 신이 아닙니다!!”
그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짐을 섬기거라. 라할이란 이름은 모두 잊어야 한다. 이곳 천계에 남아 있는 라할의 흔적을 모두 지워라. 그런 뒤에 짐을 알현하러 지상에 내려와라. 알겠느냐?”
“예!!”
나는 천계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라할을 찾을 만한 단서는 없었다. 결국 난 천계에서 나왔다.
그리고 내가 향한 곳은 바로 신전이었다.
“아, 아슬란 폐하?”
한창 신전에서 기도 중이던 교황과 신도들.
그들은 빛의 기둥을 타고 나타난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여기 있는 모두에게 짐이 황제로서 명령을 내리겠다.]
나는 목소리를 저 신전 끝에 있는 사람도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울렸다.
[앞으로 라할이란 이름을 부르는 것을 금지하겠다. 그 누구라도 라할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형벌을 받을 것이다. 또한 라할에 대한 내용이 적힌 모든 흔적을 파괴할 것이며, 라할의 이름이 들어간 책과 기록 모두 불태울 것이다.]
“······!?”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내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것은 대륙 전체를 다스리고 있는 황제의 명령.
[모두 짐의 명령을 기억하도록. 이제 이 대륙에서 라할이란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라할, 네가 끝까지 나오지 않겠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너의 흔적을 지울 수밖에 없다.
* * *
라할이란 모든 이름을 지우라는 명령을 내린 지 보름이 흘렀다.
처음에는 뒤죽박죽 모두 섞여 버려 다들 혼란스러워했지만, 생각보다 금방 안정을 되찾았다.
아무래도 백성들은 내가 곧 라할이고, 라할이 곧 나라고 인식해서 그런지 라할이란 이름 대신 아슬란을 대신해서 썼고, 라할의 이름이 들어간 기록을 지우는 대신, 그 안에 아슬란이란 이름을 채워 넣었다.
또한 라할을 기리는 건물, 신전, 조각품, 서책 등등.
모든 것을 파괴해 라할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버렸다.
“제국의 힘이 대단하긴 하네.”
고작 보름 만에 이 대륙에서 라할이란 이름을 이 정도로 빠르게 지워 버릴 줄은 라할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이제 슬슬 입질이 올 텐데.”
내가 이런 극단적인 명령을 내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신이라는 건 결국 인간들에게 숭배를 받아야만 존재할 수가 있지 않던가.
레메게톤은 악마에 대한 두려움을 먹고 살았으며, 라할은 빛의 대한 희망과 경외심을 먹고 산다.
하지만 나는 라할이란 존재 자체를 대륙에서 지워 버리고 있으며, 더 이상 이곳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없었다.
대신 라할의 이름 말고 내 이름을 부르며 숭배하는 중이었다.
라할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
그러니 놈은 분명 은둔 생활을 깨고 내 앞에 나타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쿠구구구-!!
“저, 저게 뭐야!”
“전원 전투 준비!!”
침소 밖에서 소란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온 것인가.
나는 밖으로 나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슬란.]
저 하늘을 가득 채운 형상이 내 이름을 불렀다.
[감히 그대가 내 이름을 모독하는 것인가?]
라할.
그는 분명히 라할이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구나.”
나는 손을 뻗어 칼을 집었다.
우우웅-!!
내 칼이 강한 울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적 중 그 누구보다도 강력하다는 것을 이 칼도 깨달은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칼을 뽑았다.
스르릉-!
그런 뒤 저 하늘을 덮고 있는 형상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콰콰콰콱-!!
[!?]
그러자 수백 개의 검은 검강이 뻗어나가며 저 두려운 형상을 난도질해댔다.
“신 놀음은 그만하고, 내려와라.”
하늘을 덮고 있던 형상이 검은 칼날에 의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