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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92화 (192/200)

192화

0.01초 소드마스터 192화

지옥이 무너지고 있다.

레메게톤의 시점에서는 그리 보였다.

아니. 지금 이곳 지옥에 있는 악마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그들의 지옥이 지금 저 한 남자에 의해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콰콰콰쾅-!!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땅이 갈라지며, 붉은 하늘이 무너진다.

수많은 악마가 지옥의 붕괴를 막고자 달려 들었지만, 아슬란이 가볍게 추는 칼춤에 모두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이 지옥에서 잠들어 있던 고대 악마들도 소란을 듣고 하나 둘 눈을 떴다.

콰콰콰콰-!!

하지만 그들의 긴 촉수와 거대한 몸통도 아슬란의 일격을 막아내지 못 하고 육편이 되어 흩뿌려졌다.

“감히-.”

아슬란은 지옥의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채로 지옥에 있는 모든 생명에게 심판을 내렸다.

“더러운 악마들 따위가 짐의 힘을 거부하는가.”

그가 지상으로 내려와 한 발자국씩 발을 디딜 때마다,

콰콰쾅-!!

땅이 분열되어 서로 솟아올라 부딪히고, 그 아래 있던 지옥의 불길이 치솟았다.

그러나 그 뜨거운 불길도 아슬란의 솜털 하나 태우지 못했다.

그 대신, 그가 일으키는 황금빛 불길이 악마들을 끔찍하게 태워 버리고 있었다.

그야 말로 전능함.

진정한 신의 힘이 무엇인지 아슬란이 이곳에서 보여 주는 것만 같았다.

레메게톤은 수백만에 달하던 악마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며 천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슬란을 마주 보았다.

“······!”

그 번뜩이는 안광이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이 지옥의 왕은 나 레메게톤이고, 내가 곧 지옥이며 어둠이거늘.

어찌 한낱 인간에게 이리도 겁을 먹을 수가 있단 말인가.

“레메게톤.”

더군다나 저 위압적인 음성은 마치 심장을 움켜쥐는 것만 같았다.

“네가 가진 어둠의 권능을 짐에게 바쳐라.”

레메게톤은 발악하듯 소리쳤다.

“막아라!! 놈을 가까이 오게 놔둬서는 안 된다!!”

악마들은 그의 권능에 따라 움직이며 아슬란을 막기 위해 달려 나아갔다.

하지만 코앞에 있던 그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

악마들과 마찬가지로 레메게톤 역시 아슬란의 움직임을 놓쳤다.

대체 어디로······.

“마지막까지 추하구나. 지옥의 왕이여.”

“!?”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레메게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보았다.

“헉!”

서슬 퍼런 칼날이 이미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대,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것이냐? 내가 대체 너한테 뭘 했다고! 지금까지 네 제국에 피해를 끼친 건 내가 아니라 테르카나였다!”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해 보았지만,

푸욱-!

“커헉!”

칼날은 이미 그의 목을 꿰뚫어 버렸다.

“짐 앞에서 감히 간사한 혀를 놀리다니. 어차피 너나 테르카나나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짐은 이미 알고 있다.”

레메게톤은 몸을 뒤로 날려 목에 박혀 있던 검을 뺄 수 있었다.

그는 괴성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공격을 날렸다.

어떻게 부활한 몸인데, 이대로 끝낼 순 없지 않은가.

“죽어! 죽으란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발악을 하며 공격을 날려 보아도 아슬란은 덤덤하게 레메게톤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이제 되었다.”

그는 천천히 칼을 높이 들었다.

“지옥의 왕이라기에 조금은 다를 줄 알았더니.”

그리고 그 칼을 아래로 휘둘렀다.

“시시하구나.”

⎯⎯⎯!

레메게톤이 공격이 멈췄다.

그는 멍하니 아슬란을 바라보았다.

“이, 이럴 수는······.”

그러다 서서히 그의 시야가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검게 물들었다.

쿠웅-!

반쪽이 되어 갈라진 몸뚱이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죽음을 거부하는 레메게톤의 영혼이 떠오른 것이었다.

[아슬란. 네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신을 죽일 순 없다.]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절대 파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신이라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라할조차도 레메게톤을 끝내 죽이지 못 하고 그를 봉인해 버린 것이었다.

[어둠의 권능을 갖고 싶나?]

레메게톤의 영혼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아슬란에게 달려 들었다.

[그럼 너의 몸을 내게 바쳐라!]

검은 연기가 아슬란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몸 구석구석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어둠의 기운.

[크흐흐.]

음산한 웃음 소리가 아슬란 안에서 들려왔다.

[어리석은 놈. 결국 네 스스로의 힘에 취해 이리 되었구나.]

레메게톤은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아슬란의 몸을 취했다.

하지만-.

[······아니?]

분명 자신의 영혼을 강제로 넣었는데도 아슬란의 몸은 여전히 멀쩡했다.

[왜······ 왜 내 명령이 통하지 않는 것이냐!]

레메게톤은 자신의 영혼으로 아슬란의 몸을 장악했다고 여겼으나, 사실 그 반대였다.

“레메게톤.”

아슬란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정말 신의 영혼은 소멸될 수 없다고 생각하나?”

[뭐, 뭐라고?]

“아니. 이 세상에서 소멸되지 않는 것은 없다. 그건 신도 마찬가지다.”

아슬란은 손바닥을 펼쳤다.

그 위로 레메게톤의 영혼이 작게 피어 올랐다.

몸이 작아진 채로 보는 아슬란은 무척 거대해 보였다.

“짐은 신을 죽이는 자. 이제 너도 그만 소멸되거라.”

[자, 잠깐!]

콰악-!

아슬란은 폈던 손을 바로 움켜 쥐었다.

마치 두툼한 포도알이 터지는 것처럼, 레메게톤의 영혼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외마디 비명도 없이, 어둠의 신이 맞이하는 최후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

아슬란은 움켜쥐었던 손을 천천히 펴보았다.

그 위로 작게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얻었다.”

레메게톤의 영혼이 품고 있던 어둠의 권능이 그 위에 남았기 때문이다.

“캬오오오!!”

아슬란의 뒤로 악마들이 다시 우글우글 몰려 들고 있었다.

죽여도 죽여도, 끊임 없이 악마가 생성되는 곳이 바로 이곳 지옥이지 않은가.

아슬란은 몸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악마들도 더 이상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이제 짐이 너희의 새로운 주인이다.”

그 말에 악마들이 괴성을 지르며 새로운 주인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아슬란의 얼굴은 더욱 싸늘하게 변해 갔다.

“하지만 짐은 너희가 필요하지 않다.”

“······?”

바로 그때였다.

우우우웅-!!

붉은 하늘에 수놓듯 수십, 수백 개의 블랙 메테오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블랙 메테오들이 하나로 모여 들어 거대한 구체 모양을 띠었다.

“······.”

그날 악마들은 목도했다.

지옥의 종말을.

* * *

“폐, 폐하!”

지옥에 있는 모든 생명을 지워 버리고 그곳을 파괴한 뒤 나는 황궁으로 돌아왔다.

밤새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모양인지, 신하들과 기사들이 내 침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라일라칸 대기사단장에게 들었습니다. 홀로 지옥을 소멸시키러 가셨다고······.”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옥은 이제 사라졌다. 더 이상 악마들의 침공은 없을 것이다.”

“그, 그것이 정녕 사실입니까?”

“지옥의 왕이라는 레메게톤도 소멸되었다. 이 대륙에 아직 악마들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순 있겠지만, 지옥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악마는 이제 없을 거다.”

레메게톤이 소멸되었다는 말에 그들은 믿기 어렵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제 아무리 신이라고 할지언정 짐의 심판을 피할 순 없다.”

“······.”

나는 호레스를 불러 물었다.

“호레스. 짐에게 보고할 것이라도 있는가?”

“저······ 지옥이 정녕 사라졌다면 그리 중한 일은 아닌 듯싶습니다.”

“말하라.”

“대륙 곳곳에 열렸던 포탈들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폐하께서 발견하신 문도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중입니다.”

문 말인가.

이제는 상관 없다.

지옥이 사라졌으니, 문을 닫을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냥 놔두거라. 그곳에서 무언가 나올 일은 이제 없으니.”

“예. 그리 전하겠습니다.”

“모두 물러가라. 짐은 이제 쉴 것이다.”

그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살피다 모두 물러갔다.

드디어 혼자 남게 된 나는 드넓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지옥이 없어졌다.”

그리고 레메게톤 역시 사라졌다.

그러나,

촤아아아-!!

나는 손바닥 위로 레메게톤이 남긴 힘을 펼쳐 보았다.

[어둠의 권능]

-모든 어둠을 다스릴 수 있는 힘입니다.

-어둠의 권능을 땅에 심으면 새로운 지옥을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지옥을 없애고 모든 악마를 사라지게 했으나, 그들의 근원이 되는 힘이 내게 있었다.

어쩌면 저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신은 절대 죽일 수 없다고 했던가.

레메게톤은 소멸되었으나, 그의 권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죽었으나, 죽은 게 아닌 것이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건······.”

어둠의 권능을 얻었으니, 이제 라할을 찾아야만 한다.

그에게 모두를 되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

뭐, 그놈이 사실상 이 대륙을 창조한 신이니, 당연히 죽은 이를 되살리는 힘도 있을 터. 더군다나 이 시스템 창이 내게 말해 주지 않았던가.

어둠의 권능을 라할에게 주면, 죽은 이들을 되살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근데 왜 안 나타나는 거지?”

진짜 설마 어디서 콱 뒈져 버린 건 아니겠지?

난 어둠의 권능을 얻으면 라할이 바로 나타나 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옥을 없애 버린 뒤에도 그 자리에서 라할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대체 이놈은 어디에 숨은 것일까.

이미 시스템 창에서는 아포칼립스라는 퀘스트를 던져 주며 라할을 만나 마지막 선택을 하라는 말까지 남겼다.

“그런데 그놈이 안 나타나는 걸 어쩌라는 거야?”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

“내가 찾으러 가는 수밖에 없겠군.”

그럼 놈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내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이고. 방금 누웠는데. 젠장.”

짧게 한숨을 쉬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빛의 기둥을 내 머리 위로 떨어뜨렸다.

* * *

천계라 불리는 이곳.

라할의 신성한 땅이자, 그의 종들인 천사들이 모여 사는 천국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웠다.

늘 느껴졌던 창조주의 존재감이 사라진 뒤보다 훨씬 더 혼란스럽다고 해야 할까.

“지옥이······ 정말 지옥이 사라지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천국과 정반대인 지옥이 사라졌다.

모든 악마가 소멸되었고, 지옥의 왕이라는 레메게톤과 마기 역시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이, 이제 천국은 어떻게 되는 거지?”

“어둠이 사라졌으니 좋은 거 아닌가?”

“멍청하긴! 빛과 어둠은 서로 공존해야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한쪽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면 다른 한쪽도 균형이 붕괴되어 사라진다고!”

천계가 그동안 마계를 없애지 않고 놔뒀던 이유.

라할이 지옥을 없애지 않고 보존했던 이유.

천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빛과 어둠의 균형 때문이었다.

둘 중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한쪽도 균형이 맞춰지지 않아 무너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어둠이 있으려면 빛이 있어야 했고, 빛이 있으려면 어둠이 있어야만 했다.

[그럼 너희도 공평하게 사라지면 되겠군.]

“!?”

그때 천계에 떨어지는 빛의 기둥.

펄럭~.

그 밖으로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저 지옥처럼 말이다.”

그는 영원할 것만 같았던 지옥을 파괴시킨 아슬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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