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0.01초 소드마스터 191화
콰아아아-!!
온 하늘과 땅에 황금빛 눈동자들이 가득했다.
백성들은 그 무시무시하고 위압적인 눈동자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 빌었으며, 카르만 역시 온 하늘에 가득한 눈동자들을 보고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칼라 왕국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현재 대륙 전체에 저 눈동자들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카르만이 있는 이곳 칼라 왕국 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역에 황금빛 눈동자가 나타나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힘은,
“폐하의 것인가.”
일전에 카르만도 한번 본적이 있다.
저 눈동자를 쓸 수 있는 건 오직 아슬란 뿐.
하지만 설마 저 정도로 많은 눈동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누, 눈동자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눈동자들이 일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
그 뒤에 몰아치는 폭우와 낙뢰에 카르만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 * *
“커헉!”
칼에 찔린 테르카나의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놈은 자신의 몸을 꿰뚫은 칼을 뽑기 위해 손으로 붙잡았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칼에 힘을 주고 있는 이상, 놈이 이 칼을 뽑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제 그 몸을 내놓아라, 테르카나.”
나는 신성한 빛을 칼에 주입하여 놈의 몸뚱이에 쑤셔 넣었다.
그러자 테르카나는 발작을 일으키며 난리를 치다 결국 라일라칸의 몸에서 튀어 나오고 말았다.
“······.”
테르카나의 영혼이 빠져 나간 라일라칸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이미 늦은 것일까.
아니. 미약하게나마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생명의 힘을 그 안에 불어 넣었다.
촤아아-!
그러자 미약했던 심장 소리가 쿵쾅 거리기 시작했고, 축 늘어졌던 라일라칸의 몸이 벌떡 일어났다.
“으헉!”
그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나와 테르카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폐하. 이게 대체······.”
“물러나라.”
나는 손가락을 튕겨 라일라칸의 몸을 뒤로 물렸다.
본래의 몸뚱이로 돌아온 테르카나는 온몸이 갈라진 상태였다.
“크으으.”
테르카나는 얼른 자신의 뒤로 포탈을 만들어 봤으나,
콰앙-!!
놈은 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포탈 전체에 방어막을 씌워 테르카나의 몸이 들어가지 못 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테르카나.”
나는 테르카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 * *
라일라칸은 정신이 멍했다.
테르카나에게 몸을 빼앗긴 뒤에도 흐릿하게나마 의식은 남아 있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돌아갈 순 없을 거라고 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 아슬란이 나타나 그를 구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 아슬란의 모습은······.
‘다르다.’
예전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이질감이 항상 느껴졌다.
저 강력한 힘과 더불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런 걸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드디어 완전체가 된 것처럼, 아슬란은 최강이란 말이 부족할 정도로 완벽한 상태였다.
그에게서 흘러 나오는 강렬한 힘은 초월체 중에서도 가히 최강이리라.
저 테르카나가 겁을 먹고 발악하며 소리치는 것만 봐도 지금 아슬란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 수 있었다.
“오, 오지 마!!”
테르카나는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온 땅이 검게 타들어 갈만큼의 지독한 마기를 뿌려 보았지만, 아슬란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천천히 앞으로만 나아갈 뿐.
테르카나는 단 한 발자국도 그의 걸음을 막지 못했다.
“소용 없는 짓이다, 테르카나.”
테르카나의 몸은 이제 살짝만 툭 건드려도 전부 붕괴해 버릴 것만 같은 상태였다.
온몸이 갈라져 더는 힘을 발휘하는 것조차 힘든 테르카나는 절규했다.
“네, 네놈만······ 네놈만 없었더라면······ 내 완벽한 계획이 성공했을 것이다.”
“너의 계획은 처음부터 그리 될 운명이었다.”
“뭐라고?”
“난 이 세상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다. 그리고 매번 다른 세상 속에서 너를 지켜보았지.”
“그, 그게 무슨······.”
“네놈은 항상 이 세상에 혼란을 일으켰지만, 결코 네놈의 뜻을 이루는 일은 없었다.”
“!?”
“그것이 네게 주워진 운명이란 것이다.”
“웃기지 마!!”
테르카나는 마지막 발악을 하며 손을 뻗어 보았지만, 위에서 아래로 그어지는 아슬란의 검에 의해 몸이 갈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것 역시 네놈의 운명이다.”
몸이 산산조각나 후두둑 바닥에 떨어진 테르카나.
그 조각들은 곧 먼지가 되어 사라졌고, 테르카나는 짧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렇게 테르카나는 소멸되었다.
“폐, 폐하.”
라일라칸은 조심스레 아슬란에게 다가갔다.
“이제 끝난 것입니까?”
“아니. 아직이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먼지가 되어 사라져 가고 있는 테르카나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괴성을 지르면서 하늘 높이 날아 올랐는데, 그 기괴스러운 모습과 괴성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저건 무엇입니까?”
“레메게톤의 영혼이다.”
“예? 그럼 쫓아가서 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라일라칸은 아직 성하지 않은 몸으로 레메게톤의 뒤를 쫓으려고 했다.
그런 그를 아슬란이 붙잡았다.
“됐다. 일부러 놔준 것이다.”
아슬란은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던 테르카나의 몸 위로 손을 올렸다.
그러자 남아 있던 테르카나의 몸뚱이가 순식간에 그의 손에 흡수되었다.
“······?”
테르카나의 몸을 흡수한 아슬란은 몇 번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로군.”
그런 뒤 그는 손가락을 튕겨 뒤에다 포탈을 만들었다.
“저걸 타고 가면 제국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서 휴식을 취하고 있거라.”
“예? 폐하께서는 같이 안 가십니까?”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레메게톤을 죽이고, 지옥에 있는 모든 악마를 없애 버릴 작정이다.”
“······!”
진심이었다.
이 남자는 진심으로 지옥에 있는 모든 악마를 없애 버릴 생각이다.
“폐하. 소인도 함께 가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오히려 번거로울 뿐이다. 아군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휩쓸리지 않게 힘 조절을 해야 하지 않느냐?”
“······.”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아슬란은 일부러 부하들을 데리고 가지 않는 것이다.
아군이 없으면 힘 조절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아슬란이 제대로 힘을 보여 주지 않았던 건 전부 부하들이 휩쓸릴까 걱정이 돼서 그랬던 거였나.
“그만 돌아가거라, 라일라칸.”
아슬란이 손가락을 긋자 그 앞으로 포탈이 새로 생겨났다.
그 포탈 안에는 지옥의 비명 소리가 가득 들려왔다.
“폐하! 소인도 함께······!”
라일라칸은 꿋꿋하게 그 뒤를 따라가려고 했다.
아슬란이 어떻게 지옥을 멸망시키는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슬란의 눈짓에 그의 몸이 저 포탈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폐하!!”
그가 도착한 곳은 아슬란이 있는 곳이 아닌, 베라크 제국이었다.
그것도 군사들이 한창 군사 훈련을 하고 있는 제국 군사 훈련장 한 가운데였다.
“저, 저건!?”
“테르카나!!”
“악마다!!”
“지옥의 왕이 나타났다!!”
지옥의 왕이라면 응당 두려움을 자아내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도망부터 칠 것이다. 하지만 후퇴란 기사로써 불명예를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제국 기사단은 라일라칸을 보고 물러서지 않았다.
“악마의 왕이다!! 죽여라!!”
“처단하라!!”
그 결과 그들은 라일라칸을 보자마자 그가 아직도 테르카나인 줄로만 알고 눈에 불을 켜며 달려 들었다.
“아······.”
라일라칸은 그들을 바라보며 짧게 탄식할 뿐이었다.
폐하. 하필 포탈을 열어도 이런 곳에······!
* * *
촤아아아-!!
테르카나의 몸에서 드디어 해방된 레메게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부활을 했다는 걸 만천하에 알리며 축제를 할 시간도 없이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왔다.
“테르카나. 이런 멍청한 놈!”
하필 덤벼도 저런 괴물에게 덤비다니.
레메게톤은 지옥의 왕으로써 부끄럽지만, 아슬란은 지금까지 상대해 온 그 어떤 놈들보다 상식을 뛰어넘는 강력한 적이었다.
그 라할마저도 저 괴물 같은 놈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지 모른다.
“그릇이······ 그릇이 필요하다.”
영혼 상태로 계속 돌아다닐 순 없었다.
그는 지옥으로 돌아와 자신의 예전 본거지로 돌아왔다.
그곳에 있던 악마들은 전부 하급이라 그릇으로 쓸 순 없었으나, 그나마 쓸모가 있어 보이는 놈들이 있었다.
“이건 뭐지? 응? 으아악!”
레메게톤의 영혼을 보고 고개를 갸웃 거리던 악마 하나의 몸에 들어갔다.
테르카나가 만들어 놓은 바빌론 중 하나였다.
“쯧. 이 정도로는 택도 없어 보이는데.”
하지만 아무리 바빌론 등급의 악마라고 해도 레메게톤의 영혼을 제대로 감당할 순 없었다. 벌써부터 몸에 균열이 일어나고 갈라지는 것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조금은 버틸 수 있다. 새로운 육신이 만들어질 때까진······!”
테르카나가 그래도 아주 멍청한 놈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놈은 자신의 영혼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육체를 만들어 내려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곧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만약 그것만 완성이 된다면, 더 이상 그릇을 갈아탈 필요가 없어진다.
그런데,
[레메게톤.]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지옥 전체를 흔들고 있었다.
[네가 여기에 있는 걸 짐은 알고 있다.]
“!?”
이 목소리의 주인은 아슬란일 터.
레메게톤은 설마 하는 마음에 헐레벌떡 밖으로 나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러니 나오너라.]
저 멀리 아슬란이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레메게톤은 그것을 보고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크. 어리석은 놈. 여기가 지옥이라는 것을 잊었단 말이냐.”
제 아무리 아슬란이 막강한 적이라고 해도 이곳은 인간 세상이 아닌, 악마들과 괴물들만 사는 지옥이다.
이곳에서 피어 오르는 마기로 인해 악마들은 대륙에서보다 두 배 이상 힘이 강해지고, 이곳에 있는 악마들의 숫자도 굉장히 많다.
대륙에서 많은 악마를 죽인다고 할지언정 이곳에서 무한으로 악마들이 생성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문을 닫지 않는 이상, 악마들의 침공은 영원히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적진 한복판에 아슬란이 제 발로 들어왔다.
이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을까.
“가라. 나의 노예들이여.”
레메게톤이 자신의 마기를 뿌려 악마들을 움직였다.
이 세상 모든 악마는 태초의 악마였던 레메게톤에 의해 탄생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악마도 레메게톤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의 음성이 퍼져 나가면서 지옥에 있는 모든 악마들이 튀어 나와 아슬란에게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적을 보고도 아슬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침 잘 됐구나.”
검을 든 아슬란의 몸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너희 악마들을 모두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리려 했거늘. 일일이 찾아 다니는 수고를 덜게 만들어 주는군.”
그리고 그가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콰아아아아-!!
“!?”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악마들의 몸을 순식간에 녹여 버리기 시작했다.
“오늘 지옥은 짐의 발아래 사라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