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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90화 (190/200)

190화

0.01초 소드마스터 190화

“······.”

대체 이놈의 게임은 어디까지 나를 몰아 붙이는 건지 모르겠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엘티히 여왕님마저······.”

“엘프들이 전멸을 한 것인가?”

그 고고하고 아름다웠던 엘티히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마기에 타 버린 거목 아래에서 발견됐다.

그 주변으로는 수많은 엘프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으며, 모두 생기를 빼앗긴 듯한 모습이었다.

“엘티히.”

나는 가슴팍에 구멍이 뚫린 채 눈도 감지 못 한 그녀의 눈을 감겨 주었다.

“폐하······.”

부하들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제 모든 스킬을 제약 없이 쓸 수 있었지만, 정작 이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원혼의 불꽃을 쓴다면 잠시 살릴 순 있어도 이들을 완전히 되살리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하루라도 빨리 테르카나를 붙잡아 그놈 안에 있는 레메게톤을 죽여 어둠의 권능을 얻어야만 했다.

“꼭 다시 너희를 되살려 놓겠다.”

문제는 테르카나 이놈이 정면으로 절대 부딪치지 않고 자꾸만 내 주변을 습격한다는 것이었다.

놈이 계속 그렇게 나온다면 내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폐하!”

그때 기사 하나가 다급하게 달려와 내게 아뢰었다.

“일라이 성 근처로 악마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것도 엄청난 숫자의 악마들입니다!”

내가 직접 찾으러 갈 필요도 없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는 모르겠으나, 테르카나가 드디어 정면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 * *

“후후. 그동안 잘도 나를 속였겠다, 아슬란.”

그 난쟁이들을 흡수해서 기억을 살펴본 결과, 놈들은 거짓을 고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힘과 능력을 꿰뚫어 볼 수 있던 그들은 몇 번이나 아슬란을 살펴보았고, 아슬란의 진짜 정체를 알아냈다.

그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많은 부분이 달랐다.

라할의 화신도 아니었으며, 대륙의 최강자 역시 아니었다.

그는 모두를 속여왔다.

지금 자신의 안에 있는 레메게톤마저도 아슬란의 사기극에 완전히 당했던 것.

“크흐흐흐. 다른 의미로 대단한 놈이로구나, 아슬란.”

하지만 놈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테르카나는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다.

“그동안 감히 나를 속여온 대가를 철저히 치르게 해주지.”

그래서 그동안 주변 왕국과 베라크 제국에 동조하는 자들을 먼저 공격해 그들의 힘을 흡수해 왔던 것을 멈추고, 테르카나는 정면으로 나섰다.

더 이상 베라크 제국의 힘을 갉아 먹으며 힘을 키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와라, 아슬란.”

그런 그의 음성을 들은 것일까.

투웅-!!

악마들로 하여금 성을 포위시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빛의 기둥이 그 아래로 떨어졌다.

펄럭~!

오늘도 멋들어지게 망토를 휘날리며 아슬란이 그 빛의 기둥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의외인 건 놈은 혼자였다.

“호오. 드디어 겁을 상실한 모양이구나, 아슬란. 혼자서 이곳에 나타나다니.”

그 말에 아슬란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같은 쓰레기들을 쓸어 버리는 데에 굳이 많은 손이 필요하겠느냐?”

예전에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위엄 넘치고 무서웠지만, 지금은 그저 허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슬란. 예전이었다면 네가 힘을 한번 보여 주는 것으로 악마들이 두려움에 떨며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 모두가 알아 버렸거든. 네놈이 그동안 우리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것을. 네놈에게는 단 두 번밖에 힘을 쓸 기회가 없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아슬란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건방진 소리를 하는구나. 짐의 힘은 무한하며, 너희는 그 발끝조차 따라올 수가 없다.”

“크크. 그래. 끝까지 허세를 부리겠다는 것이냐? 그럼 어디 한번 버텨 보거라. 네놈이 어디까지 허세를 부리는지 보고 싶군.”

테르카나의 손짓에 그 끝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거대 악마들이 아슬란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

아슬란은 그 악마들을 슬쩍 쳐다본 뒤,

촤아아악-!!

검강을 그 몸을 반으로 쪼개 버렸다.

검강 하나에 한 마리씩.

벌써 두 번의 검강을 날려 버린 것을 보고 테르카나는 비웃음을 지었다.

“어리석은 놈. 결국 네놈 허세 때문에 한계치를 다 써버렸구나.”

난쟁이들의 정보에 의하면, 아슬란이 날릴 수 있는 검강 횟수는 단 두 번.

그 위력이 끔찍하리만큼 대단하나, 단 두 번밖에 쓸 수 없는 것이라면 이런 대인전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을 터.

이제 아슬란에게 악마들을 막을 힘은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그럴 것인데-

“가소롭구나.”

아슬란은 허리춤에 칼을 집어 넣은 채 천천히 악마들 속으로 걸어갔다.

저놈이 드디어 미쳐서 목숨을 던지는 구나!

테르카나는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콰콰콱-!!

그에게 손을 뻗은 거대 악마들의 몸이 수십 조각으로 나뉘어 쓰러졌고, 그의 앞에 달려들던 악마들 역시 육편이 되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 어떤 악마도 아슬란의 10보 안으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접근을 하려는 순간,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몸이 갈려 나가기 때문이었다.

“······!”

아슬란은 그렇게 천천히 뚜벅뚜벅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나아갔다.

“이게 무슨······.”

아슬란 앞에서 죽어 나가는 악마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무엇이 자신들을 죽이고 있는지 말이다.

그건 바로 아슬란의 검이었다.

아슬란이 눈으로 차마 쫓을 수 없는 속도로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휘두른 뒤, 다시 검집에 검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부, 분명 더 이상 부릴 수 있는 힘이 없을 텐데?!”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난쟁이들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아슬란은 이미 두 번의 검강을 날렸기 때문에 더는 힘을 발휘할 수 없어야만 한다.

그런데 어떻게 저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콰콰콰콱-!!

그렇게 아슬란은 베고, 또 베어 버리며 점점 더 테르카나에게 가까워졌다.

악마들이 뿌리는 핏방울도 베어 버리면서 감히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침내,

“대체 네놈이 뭐라고 감히 짐의 힘을 함부로 판단하는가?”

“······.”

아슬란이 테르카나 앞에 섰다.

그리고 그가 칼을 높이 들자 테르카나는 얼른 뒤로 몸을 내뺐다.

“······!”

식은땀이 멈추질 않는다.

오늘 아슬란의 숨통을 끊으려고 왔건만, 역으로 테르카나의 목숨이 날아갈 판국이었다.

“짐이 왜 부하들을 아무도 데려오지 않고 단신으로 왔는지 아느냐?”

높이 든 검에서 검은 기운과 빛이 동시에 일렁이더니, 그 위로 블랙 메테오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수십 개가 한꺼번에 만들어 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짐이 힘 조절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슬란은 그것을 무심하게 툭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런 미친!”

테르카나는 곧바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막을 펼쳤다.

콰아아아앙-!!

수십 개의 블랙 메테오가 한꺼번에 떨어지면서 그 가공할 만한 힘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이 평야를 가득 채우고 있던 악마들을 휩쓸어 버리기 시작했다.

“캬오오오!!”

악마들은 뒤늦게 위기를 감지하고 도망치려 했으나, 그 무지막지한 폭발로 순식간에 몸이 녹아내렸으며, 수백만에 달하던 악마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그 안에서 여전히 붉은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바로 아슬란의 눈동자였다.

“테르카나. 네놈은 너무나도 많은 죄를 지었다. 오늘 그 죗값을 치르게 해주마.”

“!?”

무시무시한 그 목소리에 테르카나는 서둘러 포탈을 열었다.

“이런 멍청한 난쟁이 새끼들!”

역시 아슬란은 라할의 화신이 맞았다.

그에게 전능한 힘이 있는 것 역시 맞았다.

이 난쟁이 놈들에게 속아 하마터면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할 뻔했다.

테르카나는 얼른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음산한 음성이 들려왔다.

“또 도망을 치는 것이냐? 지옥의 왕이라는 놈이? 네가 정말 어둠의 권능을 가졌다면 이리로 나와 싸우거라.”

그리 도발을 했지만, 테르카나는 넘어가지 않았다.

지금 자존심을 세워봤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후-”

그렇게 간신히 포탈을 타고 도망친 테르카나.

그는 간신히 지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두 번 다시 이 퀴퀴하고 냄새나는 곳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맹세했지만, 지금 가장 안전하다고 여기는 곳이 이곳이었다.

아무리 아슬란이라도 이곳에는 올 수 없······.

“응?”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아-!!

곳곳에서 황금 눈동자들이 나타나 주변을 미친 듯이 살펴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눈동자들은 강렬한 빛을 발하며 악마들을 두렵게 만들었고, 그 안에서 아슬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테르카나. 네가 어디로 도망치든 감히 짐의 눈동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

테르카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저 눈들이 자신을 꿰뚫어 보기 전에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는 찰나.

콰아아아-!!

눈동자 하나가 새롭게 더 나타나면서 테르카나를 내려다 보았다.

[거기 있었구나.]

“으, 으아아아!”

테르카나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빠르게 포탈을 열어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후우- 후우-”

숨을 헐떡이며 테르카나는 주위를 바라보았다.

목적지를 제대로 정하지도 않고 무작정 포탈부터 연 터라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콰아아-!

저 멀리서부터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황금빛 눈동자가 사방에서 하나 둘 생겨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테르카나.]

그리고 그 안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테르카나에게 엄청난 공포를 심어 주었다.

[그만 숨고 나오너라.]

테르카나는 한 번 더 포탈을 열었다.

“제기랄!”

그렇게 저 눈동자로부터 영영 도망칠 생각이었다.

저 눈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테르카나. 네가 어디로 가든 내게서 숨을 수 없다.]

눈은 계속해서 쫓아왔고, 아슬란의 목소리는 테르카나의 골을 흔들어 놓았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포탈을 열고 도망을 쳤을까.

“허억- 허억-”

포탈을 여는 데에 힘을 다 써버린 테르카나는 숨을 헐떡였다.

대체 아슬란은 눈동자를 한번에 몇 개나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자세히 보니, 아슬란은 테르카나의 위치를 알고 있어서 저 눈동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대륙 곳곳에다 눈을 마구잡이로 깔아 놓아 테르카나를 찾는 것이었다.

[여기 있었구나.]

결국 이 대륙에서 저 눈동자를 피할 방법은 없는 것이었다.

테르카나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태양처럼 밝은 그 눈동자에서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아슬란이 걸어 나왔다.

“대체 어떻게 그런 힘이 가능하단 말이냐.”

테르카나는 망연자실하며 절규하듯 소리쳤다.

“나 역시 너와 같은 신이다! 어둠의 신을 내가 흡수했고, 그 힘을 내가 가졌다! 그런데 어떻게 너의 발끝조차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냐!”

아슬란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꿇어라.”

“!?”

그리고 그 거부할 수 없는 음성에 테르카나의 몸이 절로 꺾여 바닥에 쓰러졌다.

사지가 무언가에 묶여 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슬란은 그런 그를 거만하게 내려다보았다.

“처음부터 그리 정해진 것이었다.”

“······?”

“너와 나의 차이가 말이다.”

아슬란의 검이 그대로 테르카나의 몸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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