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0.01초 소드마스터 188화
‘일단 오긴 했다만.’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퀘스트 완료 메시지.
[위기에 빠진 신전]
-테르카나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신전을 구하러 가십시오.
-보상으로 10골드를 얻습니다.
내가 빛의 기둥까지 타고 와 신전으로 온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다.
하나는 저 10골드가 급했기 때문인데, 저 10골드를 얻어야만 상점을 열 수 있었다.
상점에는 내가 꼭 사야 할 것이 있었다.
둘째로는 테르카나에 대한 분노 때문에 잠시 이성이 마비된 것도 있었다.
생각해 보라.
지금 내 힘으로 레메게톤의 힘을 흡수한 테르카나를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걸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막상 여기로 오고 나니, 잠시 집을 나갔던 이성이 빠르게 복귀했다는 것이었다.
“아슬란 폐하?”
“아, 아슬란 폐하가 오셨다!!”
“아슬란 폐하께서 우릴 구하러 오셨다!!”
“우와아아아!!”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봤을 때, 내가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온 것 같았다.
저들이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제 이걸 어쩐다.’
묘한 분위기 속에 잠시 침묵하고 있자, 테르카나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아슬란.”
놈의 옆에는 레헤나가 검은 마기에 휩싸인 채 비틀대고 있었다.
저 쳐 죽일 놈이 레헤나마저 저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인가.
잠시 사그라들었던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초대받지 않은 곳에 왔구나.”
“짐이 말하지 않았나. 네놈을 반드시 죽여 주겠다고.”
테르카나는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그래. 네게 나를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날 죽이고자 한다면 여기 있는 레헤나도, 그리고 이 몸의 원래 주인인 라일라칸도 함께 죽여야 할 것이다.”
누가 악마 아니랄까 봐 저놈은 치사하게 인질을 잡고 있었다.
라일라칸 저 멍청한 놈은 대체 뭘 어쩌다 붙잡힌 건지, 거기다 레헤나는 과연 정상으로 돌아올 순 있는 건지.
그 예뻤던 레헤나가 얼마나 흉측하게 변했는지 보라.
악마의 마법으로 인해 정신 지배를 당하고 있는 거 같은······.
‘잠깐. 정신 지배?’
그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지금 레헤나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테르카나의 마법이고, 그 마법을 풀 수 만 있다면-
“거기다 겁도 없이 혼자 오다니.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거 아닌가?”
급한 대로 혼자 오긴 했으나, 기사들은 지금쯤 포탈을 타고 이쪽으로 넘어오고 있는 중일 것이다.
테르카나는 손을 휘저어 자신의 마기를 사방에 퍼뜨렸다.
그러자 멀쩡하던 사람이 괴성을 지르며 점차 악마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저것이 바로 어둠의 권능.
아무리 정신 줄을 꽉 붙잡고 있어도 저 마기에 닿는 순간 흑화하여 악마가 되어 버린다.
“신전에서 너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테르카나는 비열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너를 영웅이라 칭송하던 이들의 목숨을 직접 빼앗아 보거라.”
저 싸이코패스 새끼.
테르카나의 마기에 잠식되어 좀비처럼 내게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이 자리에서 죽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나에겐-
투웅-!!
손가락만 튕겨도 저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정화의 파동이 있기 때문이다.
“으헉!”
“으악!”
그 정화의 파동에 닿은 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레헤나 역시 토악질을 하며 정신을 차렸다.
“이게 무슨······!”
거기에 테르카나도 몸이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큭!”
검게 흐르기만 하던 마기 속에서 푸른 전류가 스파크를 일으키더니, 놈은 곧 비틀거리며 괴로운 신음을 토해냈다.
“또 이상한 술수를 부리는군.”
하지만 아쉽게도 라일라칸이 돌아오진 않았다.
테르카나는 비틀 거리던 몸의 균형을 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다시 마기를 뿌리면 이들은 또 내 노예가 된다.”
저것도 사실이다.
정화의 파동은 모든 마법을 풀어 주는 효과가 있지만, 한번 풀면 끝이기 때문에 다시 마법을 걸어 버리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놈이 또 개수작을 부리기 전에 끝을 봐야 했다.
스르릉-
“더러운 악마여.”
나는 천천히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이제 그 숨통을 내가 끊어 주겠다.”
정화의 파동을 쓰는 바람에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찰나의 괴력은 단 한 번뿐.
그러니 여기서 어떻게든 끝을 본다.
“후후후. 잊었느냐? 이 몸은 라일라칸의 몸이라는 것을. 날 죽이려고 한다면 라일라칸도 죽여야 한다.”
“짐은 라일라칸을 믿는다.”
사실 믿진 않는다.
“뭐?”
“그는 어떻게든 잘 버텨낼 것이다.”
라일라칸이 죽어도 몸뚱이가 있으면 열쇠의 역할은 하지 않겠는가.
“죽어라.”
나는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칼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
그러자 거대한 빛의 검강이 저 신전의 천장과 바닥을 뚫으며 나타나 테르카나를 향해 치달았다.
콰아아앙-!!
테르카나는 검은 방어막을 펼쳐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냈다.
“고작 이 정도 가지고는 나를······엇!”
처음에는 여유를 부리더니, 무지막지한 검강의 힘에 화들짝 놀라며 양손을 들어 막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나는 것이 보였다.
“크읍-!”
그래. 힘내라, 검강.
그대로 방어막을 부숴 버리고 놈의 몸을 통과해 버리는 거다.
유효 사거리 안에서 빨리 테르카나의 몸을 갈라 버러야 한다.
콰콰콰콱-!!
테르카나는 이를 악물고 검강을 막아내고자 했으나, 결국 저 벽까지 밀려나 그곳에 부딪혔다.
“으아아악!”
콰콰콰쾅-!!
해치웠나?
“······크으.”
자욱한 연기.
저 신전의 벽이 갈라진 것을 보고 나는 테르카나 역시 똑같이 갈라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놈은 치명상을 피했다.
왼쪽 어깨 쪽이 너덜너덜해진 것 빼고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왼쪽 어깨도 자력으로 회복이 되고 있었다.
‘이게 문제야.’
찰나의 괴력으로 이뤄진 검강은 엄청난 위력을 보이지만, 공격을 피해 버리거나 혹은 공격을 빗겨 맞을 경우 그 이후에 할 것이 없었다.
쿨타임이 돌 때까지 나는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안에 치명적인 공격이라도 들어온다면······.
콰아아아-!!
바로 그때였다.
테르카나가 손을 뻗자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아가리 같은 것이 순식간에 내게 달려와 몸을 덮쳤다.
차마 반응조차 못 한 공격이었는데, 신성한 보호가 나를 지켜 주었다.
만약 신성한 보호가 없었다면 방금 전 공격으로 나는 죽었을 것이다.
“회심의 한 발이었는데, 그것조차 통하지 않는 것인가? 네놈은 완전 괴물이로구나, 아슬란.”
나는 속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면서 말이다.
“역시 악마라 그런지, 잡스러운 공격밖에는 할 게 없는 모양이군.”
“그래. 네놈에게는 내 강한 마기가 담긴 공격조차도 잡스러운 것으로 보이겠지.”
테르카나는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의 검은 피가 뚝뚝 떨어지자 바닥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이걸로 끝이라 생각하지 마라. 나의 힘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고, 그 잡스러운 힘이 곧 너를 삼키게 될 것이다.”
놈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뒤로 몸을 던졌다.
언제 만들어 둔 것인지, 그 밑에 있던 포탈이 놈을 집어삼키고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아, 악마가 도망갔다.”
“지옥의 왕이 도망쳤다!!”
“폐하께서 지옥의 왕을 물리치셨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이미 상황은 다 끝났는데 지금에서야 도착한 부하들과 기사들은 안타까운 탄식을 터트렸다.
“이런. 테르카나를 놓치고 말았군요.”
“재빠른 놈. 그사이 도망을 쳐버리다니.”
“안타깝지만, 다음에는 꼭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이내 생각을 접었다.
‘이대로 끝난 게 다행인 거겠지.’
방금 저 한 방이 전부였다는 걸 테르카나가 눈치라도 챘으면 놈은 이대로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허세로 무장해 쫓아내지 않았다면, 지금 막 도착한 부하들과 함께 우리 모두 테르카나 손에 소멸되었을 터.
‘이번에는 운 좋게 넘어갔다만.’
테르카나가 죽지 않았으니, 우린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며 그땐 지금처럼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놈은 오늘의 패배를 거울삼아 더욱 철저하게 대비를 할 터.
원래 그런 게임이었다.
‘나도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지.’
나는 내 앞에서 열리고 있는 상점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찾는 아이템이 제일 상단에 나타났다.
[르브론의 펜던트]
내가 찾는 마지막 6번째 펜던트였다.
* * *
쿠웅-!
포탈에서 간신히 밖으로 나온 테르카나는 몸을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 이상한 정화 파동에 맞아 1차적으로 몸이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였고, 그에 이어 날아오는 검강에 치명상을 입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 몸이 회복되고 있긴 하나, 문제는 아슬란의 검강에 실린 빛의 힘이 회복력을 억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크흐흐. 어둠의 권능을 가졌어도 고작 검강 하나조차 막아내지 못하다니.”
자신의 꼴이 우습기도 했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그냥 되는 대로 포탈을 열어 부리나케 도망을 친 터라 자신이 지금 어디에 떨어졌는지도 알지 못했다.
“당신 뭐야?”
“이방인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때 엘프 두 명이 테르카나에게 다가왔다.
그들에게 흘러 넘치는 마력을 보고 테르카나는 입맛을 다셨다.
“마침 좋은 식사 거리들이 있구나.”
“뭐?”
“일로 와라.”
“으, 으아악!”
곧 엘프들의 비명 소리가 숲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르브론의 팬던트]
-악의 힘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진 고대의 유물.
-여섯 개로 나뉜 팬던트들을 하나로 모으면 전설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생명의 신, 르브론의 가호가 함께 하는 팬던트입니다.
드디어 얻은 마지막 팬던트.
이제 6개의 팬던트가 모두 모였다.
[6개의 팬던트가 모두 모였습니다.]
팬던트를 얻자마자 새로운 창이 나타나면서 여섯 개의 팬던트가 허공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중앙에서 서로 융합하며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전능의 팬던트]
-팬던트에 부여된 모든 효과를 유지하며, 그에 새로운 효과를 더합니다.
6개의 팬던트가 모여 하나의 팬던트가 되었다.
라할이 신들에게 팬던트를 쪼개서 나눠 주기 전 모습의 팬던트인 것이었다.
“이 팬던트를 다 모으면 악마들을 싸그리 몰아낼 수 있다고는 하는데.”
사기적인 옵션들을 플레이어에게 부여하여 악마들을 보다 더 쉽게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문제는,
“레메게톤이 깨어나면 도루묵이라는 거지.”
레메게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팬던트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옵션이 잘 떠야 돼.”
다른 건 몰라도 부여될 옵션이 제일 중요했다.
[새로운 옵션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몇 개의 옵션이 부여될지는 몰랐다.
그건 어디까지나 랜덤이기 때문이다.
[1개의 새로운 옵션이 부여됩니다.]
“아······.”
미친.
고작 한 개?
100개를 줘도 모자랄 판에?
나는 망연자실하며 팬던트에 부여된 옵션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운명의 힘]
-당신은 영웅이 될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모든 스킬의 쿨타임을 없앱니다.
“······?”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옵션이 부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