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0.01초 소드마스터 186화
할라즈 왕국.
대마법사 켈린을 필두로 베라크 제국의 도움을 받아 발전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은, 마법 병단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키우는 중이었다.
예전에는 악마 군단이 나타나면 어찌할 바를 모르며 제국의 도움만을 기다렸으나, 지금은 웬만한 악마 군단 정도는 스스로 처리해 나갈 수 있을 만큼의 발전을 이뤄냈다.
그렇게 오늘도 병사들은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를 악마를 경계하며 왕국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엇. 저기······.”
“음?”
그들은 성으로 다가오는 거수자에 경계를 했다.
“누구지?”
“멈춰라!!”
“이곳은 할라즈 왕국의 성이다! 신원을 밝혀라!”
그들의 외침에 성으로 다가오던 남성은 발걸음을 멈췄다.
할라즈 왕국 기사들은 성 밖으로 나가 남자의 신원을 확인해 보았다.
“당신은······!”
그들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라, 라일라칸 대기사단장님?!”
“아니. 여긴 어쩐 일로!”
라일라칸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들어가도 되겠나?”
“아! 예. 어, 얼른 안으로 모시거라!”
온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입고 있는 갑옷은 너덜해졌다.
그는 몸을 비틀거리며 간신히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병사들이 부축해 주지 않았다면 중간에 가다가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대체 얼마나 끔찍한 전투를 치르고 오셨으면······.”
“제국에서 대기사단장님을 찾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라 들었습니다.”
“여태까지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라일라칸은 말할 힘도 없다는 듯 그들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쉴 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 뒤 대마법사 켈린을 불렀다.
소식을 듣고 켈린은 부리나케 달려와 라일라칸을 만날 수 있었다.
“라일라칸 님!”
켈린은 몰골이 말이 아니게 변한 라일라칸을 보고 놀란 눈빛을 띠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악마들의 습격을 받고 실종되셨다고 들었는데······!”
“······.”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보이는 라일라칸.
그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켈린은 자세한 건 나중에 묻기로 했다.
“일단 치료부터 하겠습니다. 곳곳에 상처가 많아 보이시는군요.”
그는 도움을 줄 수 있는 마법사들을 데리고 와 라일라칸에게 회복 마법을 걸었다.
“조금 있으면 몸이 괜찮아지실 겁니다.”
대마법사를 비롯해 여러 마법사가 달라 붙어 회복 마법을 걸어 주니, 과연 라일라칸의 몸이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라일라칸 대기사단장님은 회복력이 굉장히 뛰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자력으로 회복하지 못할 수준이시라니. 대체 얼마나 대단한 적을 상대하셨기에······.”
“끔찍한 전투였다.”
그제서야 라일라칸이 입을 열었다.
“지옥의 왕이라는 자와 싸웠지.”
“지옥의 왕이라면······ 서, 설마 레메게톤!?”
“그래.”
“그, 그럼 그자를 죽이신 겁니까?”
라일라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죽이지 못했다. 내가 죽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어.”
“그런······. 얼른 치료를 끝내고 폐하께 라일라칸 님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려야겠습니다.”
그렇게 라일라칸을 회복시키는 마법을 이어가던 중, 켈린은 뭔가 이상함을 발견했다.
‘강한 이질감이 드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자신이 알고 있던 라일라칸의 힘은 잘 느껴지지 않고 다른 무언가가 몸속에서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심지어 그것은 마기에 가까웠다.
대체 왜 라일라칸의 몸에 마기가······.
“여긴 너희가 맡도록 하거라. 난 잠시 폐하께 보고를 하러 갈 테니.”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켈린은 이곳 주변을 마법으로 봉쇄하고 베라크 제국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을 라일라칸이 붙잡았다.
“그냥 밑의 사람을 시키면 될 것을. 왜 네가 직접 간다는 것이냐?”
“하하. 그야 제가 직접 보고를 드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여기 남거라. 아직 내 몸은 다 회복되지 않았다. 회복 마법을 전부 끝낸 뒤에 가도 늦지 않아.”
“······굳이 저까지 남아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 아이들의 실력이 무척 뛰어나니 믿고 맡겨 보십시오.”
그리 얘기를 하며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역시 눈치를 챈 모양이군.”
싸늘한 라일라칸의 목소리에 켈린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크크크. 하긴. 대마법사나 되는 놈이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하겠지.”
“······!”
켈린은 재빨리 구속 마법을 라일라칸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라!! 놈은 라일라칸 님이 아니다!”
그러자 그들도 빠르게 뒤로 물러나면서 구속구를 던졌다.
콰쾅-!!
구속구들이 터지면서 라일라칸의 몸을 속박했으나,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그것들을 순식간에 녹여 버렸다.
라일라칸은 자리에서 일어나 비열한 웃음을 터트렸다.
“고맙다. 안 그래도 이놈의 몸뚱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 회복도 더뎠는데, 덕분에 완벽하게 회복을 한 것 같군.”
“너, 넌 누구냐! 어째서 라일라칸 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무슨 그리 아쉬운 소리를. 이 몸은 라일라칸이 맞다. 다만-”
푸욱-!!
언제 뒤로 이동을 한 것인지, 라일라칸의 팔이 켈린의 등을 꿰뚫었다.
“커헉!”
“이 안의 영혼이 바뀌었을 뿐.”
“케, 켈린 님!!”
마법사들이 켈린을 구하기 위해 마법을 펼치려 하자 라일라칸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가는 마기가 저들의 몸을 검게 물들였다.
“크아악!”
“으악!”
라일라칸은, 아니. 그의 몸을 취한 테르카나는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인간 중 최강자의 몸은 다르구나. 제약 없이 힘을 쓸 수가 있다니.”
“크으읍-! 네, 네놈은 대체······.”
“아- 아직 안 죽고 살아 있었나?”
테르카나는 켈린을 바닥에 내던지며 그의 머리를 짓밟았다.
“내가 바로 지옥의 왕, 테르카나다. 라일라칸 이 어리석은 놈은 감히 내게 대항하다 그 몸을 빼앗겼지.”
“그런······!”
“이제 내가 너희 모두를 짓밟고 새로운 세상을 그 위에 세우겠다.”
하지만 그 말에 켈린은 겁먹지 않고 오히려 날을 세웠다.
“결코 네 뜻대로만 되진 않을 것이다.”
“뭐라?”
“지옥의 왕이라는 놈이 그 엄청난 힘을 가지고도 아슬란 폐하께 직접 가지 않고 그 주변부터 공격한다는 것은 너도 결국 폐하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 이미 넌 그분께 패배한 것이다.”
“!?”
테르카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켈린의 머리를 마구 짓밟았다.
“감히 누가 누구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냐! 나는 어둠의 신이다! 누구도 감히 나를 쓰러뜨릴 수 없다!”
“······.”
켈린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테르카나가 그의 머리를 끔찍하게 터트려 놓았기 때문이다.
“쯧. 나약하기는.”
그리 중얼거리며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밖에서는 소란을 들은 기사들이 경계를 하고 있었다.
“라, 라일라칸 님?”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 피는······!”
테르카나는 피식 웃으며 양손을 뻗었다.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알려 주마.”
* * *
“저건 대체 뭐지?”
“문처럼 생긴 것 같은데.”
“함정 아니야?”
네모난 문처럼 생긴 빛이라고 해야 할까.
석상을 지난 길에 있는 이 빛의 문은 내가 찾고 있던 그 문이 맞았다.
게임에서도 여러 번 봤던 것이니, 틀림없으리라.
“폐하. 대체 저건 무엇입니까?”
“함정일지 모르니, 조심하십시오.”
이건 함정이 아니다.
저 문은 세상의 끝으로 다다르게 해주는 차원의 문.
그러니 함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 물러나라.”
나는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
드디어 찾았다.
세상의 끝으로 가는 문.
‘라일라칸. 그놈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평소에는 눈꼴시게 늘 황궁에 달라 붙어 있던 놈이, 꼭 필요할 때만 되면 없어진단 말이지.
나는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문에 가까이 다다랐다.
“너희들도 따라오도록.”
“예!”
먼저 앞장을 서서 발을 디딘 순간.
“폐, 폐하!”
“폐하!!”
기사들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왜 저러는 거지?
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
콰아아아-!!
문이 갑자기 소용돌이처럼 변하더니, 순식간에 내 몸을 안쪽으로 빨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미친! 설마 이게 함정이었다고!?’
내가 지금까지 봤던 문이랑 똑같았기 때문에 이게 함정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기사들은 나를 붙잡기 위해 뛰어왔으나, 이미 늦었다.
난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 어딘지 알 수도 없는 밑바닥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아이고야······.”
거친 소용돌이 때문에 전신이 쑤셔 왔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부터 살펴보았다.
“여긴 어디야 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두컴컴한 공간.
그곳에 혼자 남은 나.
오싹-
당연히 겁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
차라리 이럴 때 허세를 작렬하면 좋으련만, 이놈의 허세는 꼭 누군가가 있을 때만 발동이 되는 조건이 있어서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오들오들 떨며 일단 손으로 불부터 일으켰다.
그제야 간신히 주변이 조금 보이긴 했다.
“신전?”
불을 환하게 밝히고 나서야 이곳은 동굴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지어진 신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높은 기둥들이 솟아 있고, 마치 아테나 신전처럼 웅장하게 건설되어 있지 않은가.
“이런 곳은 또 처음 보네.”
단 한 번도 이런 형태의 신전을 이 게임에서 본 적이 없었다.
“함정이 아니라 그냥 포탈이었나?”
처음에는 이상한 함정에 걸려들어 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바로 그때.
쿵-!!
신전 입구가 열리더니, 그 안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히 신을 모시는 공간에 발을 들인 자, 누구인가?]
위압적이고 몸을 짓누르는 음성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잠잠하던 허세가 미친 듯이 치솟아 올랐다.
“짐은 대륙을 평정하여 다스리는 자, 황제 아슬란이다.”
상대방의 목소리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압도하려는 듯, 위엄찬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자 상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내게 물었다.
[그대가 아슬란?]
“그렇다. 감히 짐 앞에서 입을 놀리는 네놈은 누구인가?”
[나는 그분의 종. 라할께서는 이곳에 나를 남기시어 그분의 뜻을 이루려 하셨다.]
“라할의 뜻? 그게 뭐지?”
그러자 입구가 활짝 열리면서 목소리가 내게 말했다.
[들어와라. 그분의 뜻을 네게 보여 줄 터이니.]
설마 또 함정 같은 거 아니야?
나는 주변을 경계하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신전 안에는 라할의 거대한 조각상이 놓여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대천사들이 있었다.
[그분께서는 오래 전, 이곳에 나를 남겨 놓으셨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
“누구에게 말이냐?”
[바로 너, 아슬란. 그대에게 말이다.]
“······뭐?”
[그대는 이 대륙이 창조되기 전부터 선택된 영웅. 그분께서는 이 대륙과 천계의 운명이 바로 네 손에 달려 있다고 하셨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이것도 개발사들이 숨겨 놓은 무슨 이스터에그 같은 것일까?
[선택은 오로지 너의 몫. 운명의 때가 다다랐으니, 곧 그분께서 너를 찾아와 만나실 것이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넌 희생을 해야 한다.]
“······?”
[이 세계를 존속시킬지, 아니면 파괴할지. 그건 오로지 너의 몫이다, 아슬란.]
그 음성이 끝나기 무섭게 내 앞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새로운 메인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아포칼립스]
-오직 당신만이 이 세계의 끝을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라할을 대면하여 마지막 결정을 내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