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0.01초 소드마스터 185화
“뭐······?”
테르카나는 스스로의 몸을 칼로 찌른 하리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을 파고 들던 마기는 빠르게 흩어졌고, 하리엘은 피를 쏟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대체 뭐하는 짓이냐!!”
테르카나의 일갈에 하리엘은 힐끗 미소를 지었다.
“네가 내 몸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어. 절대로······.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아.”
“그렇다고 여기서 자결을 해?!”
“이 베라크 제국과 아슬란 황제 폐하를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은 목숨이야.”
저 지독한 여자는 스스로 심장을 찔렀다.
그것도 자신의 힘이 최대로 실린 검으로 찔렀으니, 얼마 못 가 죽고 말 것이다.
“대체 아슬란 따위가 뭐라고 그리 희생을 한단 말이냐?”
“따위? 그분께서는 이 대륙에 빛을 가져오셨고, 구원을 가져오셨다. 악마인 너는 영원히 알지 못하겠지. 넌 파괴만 일삼는 놈이니까.”
“어리석은 년. 내 영혼을 담을 영광스러운 기회를 이렇게 차 버리다니.”
테르카나는 입술을 깨물며 포탈을 열었다.
하리엘을 그릇 삼아 베라크 제국을 흔들어 놓겠다는 계획이 전부 뭉개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포탈을 타고 사라졌고, 하리엘은 홀로 남게 되었다.
“아······.”
청승 맞게도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빗물이 온몸을 적시며, 그녀의 피로 웅덩이가 빨갛게 물들었다.
“······폐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고 싶다면 욕심일까.
하리엘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아슬란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더 이상 숨을 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땐,
“······.”
이미 그녀의 숨결이 끊어진 상태였다.
* * *
“······.”
나는 길 한 가운데에 칼이 꽂힌 채 무릎을 꿇고 있는 하리엘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이 고통스럽진 않았던 것일까.
그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군요. 하지만 대체 왜 하리엘 단장이······.”
나를 따라온 호레스 역시 적잖게 충격을 먹은 듯보였다.
그 밝고 청순했던 하리엘이 이런 식으로 숨을 거둘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나는 하리엘 곁에 쭈그려 앉았다.
“라파엘.”
“······네.”
평소 하리엘과 친하게 지내던 라파엘이 눈물을 닦아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알아야겠다.”
“예.”
라파엘은 마력 가루를 사방에 뿌려댔다.
그러자 그 가루에 있는 마력들이 퍼져 나가면서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마치 홀로그램처럼 보여 주었다.
“······.”
그곳에서 우린 하리엘이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테르카나에게 몸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어 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미안하다, 하리엘.”
나는 하리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짐이 부덕하여 네가 이런 꼴을 당했구나.”
하지만,
“기다리고 있거라. 짐이 반드시 너희 모두를 살려낼 터이니.”
나는 뒤에 있던 병사들에게 말했다.
“하리엘의 시신을 수습하거라.”
“예, 폐하.”
그러고는 그들에게 물었다.
“하리엘과 같이 정찰을 나간 것이 라일라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근데 지금 그는 어디에 있는 거지?”
그러자 모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놈은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 * *
“하아- 하아-.”
이곳에서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또 얼마나 많은 악마들을 베어낸 것일까.
라일라칸은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캬오오오!!]
파지직-!!
이 악마들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튀어나와 라일라칸을 공격해댔다.
그들을 쉬지 않고 베어내며 나아갔지만, 아무리 걸어도 이곳을 빠져 나가는 입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이대로 영원히 이곳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런 일련의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쯤.
“라일라칸.”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흠. 꽤 오랫동안 이 무저갱에 가둬 놓았는데도 걸을 힘이 남아 있는 모양이군.”
“너는······.”
“나는 지옥의 왕, 테르카나다. 일전에 우리가 한번 만난 적이 있었지?”
테르카나.
라일라칸은 당연히 놈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번에 목소리로 라일라칸에게 힘을 주겠다고 유혹하지 않았던가.
“그때와 지금 내 뜻은 다르지 않다. 너에게 최강의 힘을 주마.”
“그 대가는 나의 몸을 바치는 것이겠지?”
“후후. 대가 없이 힘을 가질 순 없지.”
“그럼 거절하겠다.”
“어리석은. 하리엘이란 계집도 그렇고, 너도 유연성이란 것이 없구나.”
하리엘이란 이름에 라일라칸은 미간을 좁혔다.
“잠깐. 하리엘이라고 했느냐? 그녀를 어떻게 한 거지?”
“후후. 끝내 이 몸을 거부하다 악마들의 손에 갈가리 찢겨 죽었지.”
“!?”
“참으로 멍청한 년이었다. 그냥 나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힘에 취하면 될 것을, 끝까지 거부하다 결국 목숨을 버리다니.”
라일라칸의 눈동자에서 핏줄이 터졌다.
검을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래. 어차피 이리될 일이었다.”
“뭐라고?”
“지옥의 왕을 죽여 악마들을 끝장내는 것이 나의 평생 숙원. 그것을 이곳에서 이루게 되었구나.”
라일라칸의 기세가 뜨겁게 타오르자 테르카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의미 없는 발버둥이다. 네가 인간 중에 최강이란 건 알고 있지만, 인간이 어찌 신을 벨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는 테르카나가 손을 뻗자 거대하고 검은 손아귀가 뻗어 나와 라일라칸의 몸을 움켜쥐었다.
콰앙-! 콰아앙-!!
그 손아귀는 라일라칸을 붙잡아 벽과 바닥에 냅다 집어 던져 버렸다.
하지만 라일라칸은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촤아아악-!!
검은 손아귀에서 벗어나 그는 테르카나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강한 전류와 마기가 부딪히면서 그 안에 있던 악마들이 휩쓸려 몸이 녹아 내렸다.
“제법이구나. 분명 많이 지쳤을 텐데 말이야.”
“닥쳐라. 하리엘의 복수를 해주겠다.”
“미안하지만, 네가 아무리 발악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인간은 절대 신을 벨 수 없어.”
테르카나는 라일라칸을 밀쳐낸 뒤, 검은 창을 입에서 뽑아내 던져 버렸다.
푸욱-!!
“컥!”
날아오는 검은 창을 막아 보기 위해 칼을 들었지만, 창은 그대로 검을 통과하여 라일라칸의 몸에 박히고 말았다.
그것이 몸을 관통해 벽 뒤에 박히면서 라일라칸은 그 위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격이 되었다.
손으로 창을 뽑아내려 했으나, 손에 닿기만 해도 검은 마기가 치솟아 쉽게 뺄 수도 없는 상황.
“하리엘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네놈도 날 받아들이지 않은 죄로 죽을 것이다, 라일라칸.”
음흉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라일라칸에게 다가가던 테르카나.
뚜둑-!
그때 무언가가 균열을 일으키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
팔에서부터 일어나는 균열로 인해 살점이 돌처럼 굳어 버려 뜯겨 나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라일라칸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결국 네놈도 제어하지 못하는 힘으로 지옥의 왕이라 자처하고 있었구나. 한심한 놈.”
“그래. 실컷 떠들어 보거라. 결국 네 몸뚱이는 나의 새로운 그릇이 될 터이니.”
테르카나의 검은 손아귀가 벽에 꽂혀 있는 라일라칸을 향해 뻗어나갔다.
* * *
“라일라칸은 아직도 소식이 없느냐?”
“예. 라일라칸과 함께 정찰갔던 기사들이 습격받은 흔적은 있으나, 라일라칸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라일라칸은 악마를 막다가 검은 블랙홀 같은 것에 빨려 들어가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었다.
‘그 정도의 괴물이라면 분명 어떻게 해서든 살아 돌아올 텐데.’
타이밍이 참 절묘하다.
테르카나가 하리엘을 공격하기 전, 라일라칸이 함정에 빠져 사라졌으니까.
그렇다는 건 이 모든 일에 테르카나가 있다는 뜻이었다.
제일 시급한 문제는 라일라칸이 문을 닫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
문을 찾아도 라일라칸이 없으면 닫을 방법이 없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
아론, 엘버스테인, 플레임, 그리고 하리엘까지.
테르카나로 인해 벌써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라일라칸도 테르카나의 함정에 빠진 것이라면 일은 더 심각해진다.
‘놈을 직접 만나러 갈 수 있기만 하다면.’
어떻게 해서든 놈을 쓰러뜨려 놈이 가진 어둠의 권능을 빼앗을 수 있을 터.
그런데 이 얍삽한 놈은 내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와 정면으로 맞붙으면 진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 찰나의 괴력이 잘만 맞는다면 가능한 일일 수도.’
문제는 놈이 가진 힘이었다.
지옥의 왕이라는 레메게톤.
그 지독한 어둠의 힘을 가진 테르카나를 과연 내가 없앨 수 있을까?
찰나의 괴력을 잘 맞췄다고 해서 놈이 진짜 쓰러지기는 하는 것일까?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인간은 신을 벨 수 없다고.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인간이 신을 벨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 게임의 설정이었다.
‘테르카나도 그걸 모르진 않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정면 승부를 피하려는 건 내가 라할이라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 아니라면 진작 놈은 이곳까지 쳐들어와 나를 죽이려 했을 것이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폐하. 입구가 열리고 있습니다!”
기사의 외침에 나는 상념에서 벗어나 전방을 바라보았다.
보고대로 동굴 입구를 막고 있던 마법이 해제되면서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들어가겠다.”
악마들이 출몰하고 있고, 이것저것 해결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을 찾는 일을 소홀히 할 순 없었다.
나는 자스트라 영역 안에 있는 또 다른 후보지를 찾아냈다.
만약 여기서 문을 찾는다면-
‘······그건 일단 찾고 생각을 해보자.’
난 기사단과 함께 입구를 지나 이 거대한 동굴 안쪽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어느 정도 들어갔을까.
“음?”
그 끝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높은 천사 석상 하나가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었다.
“치우거라.”
“예.”
기사들은 그 석상을 무너뜨려 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쿠쿵-! 쿠쿠쿵-!!
가만히 있던 석상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그 굳은 몸을 풀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이 아닌가?
“저, 저런!”
“모, 모두 전투 준비!!”
천사 석상은 우리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
[이곳은 신성한 지역. 그분의 허락 없이는 감히 누구도 안으로 들일 수 없다.]
석상은 들고 있던 칼을 높이 들어 우리를 한꺼번에 찍어 누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칼을 머리 위로 드는 순간.
콰콰콱-!!
검은 검강이 다리 밑에서부터 솟구쳐 올라 순식간에 그 머리까지 다다랐다.
그 검강을 쏘아낸 나는 석상을 향해 말했다.
“감히 짐의 앞길을 막아서지 말거라. 이곳에서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
석상은 짧은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쩌적 소리를 내며 그 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쿠우웅-!!
기사들은 놀란 눈동자로 나와 석상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두 쪽으로 나뉜 석상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뭣들 하느냐.”
난 뽑았던 칼을 다시 집어넣으며 병사들에게 말했다.
“어서 가서 길을 밝히거라. 지체할 시간이 없다.”
“아, 예!!”
잠시 넋을 놓고 있던 병사들은 후다닥 앞서 나가 횃불을 들어 길을 밝혔다.
나는 밝혀진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저건······.”
내가 찾던 바로 그 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