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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83화 (183/200)

183화

0.01초 소드마스터 183화

[크롸라라라-!!]

하늘을 울리는 거센 울음소리.

그 공포스러운 포효는 듣는 이의 몸을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포효는 하늘의 제왕이자, 모든 드래곤 중의 최강이라 불리는 혼돈의 드래곤, 리렉시온의 것이 아니었다.

분명 그의 브레스에 의해 몸이 꿰뚫리고 처참하게 짓밟혔던 레드 드래곤의 것이었다.

그것이 다시 원혼의 불꽃에 의해 살아나 주인의 명령을 따르고자 포효하는 중이었다.

[아슬란.]

레드 드래곤 플레임.

거칠게 포효하던 놈은 나를 쓸쓸하게 내려다 보았다.

[미안하다.]

그 말을 남기고 나서 플레임은 리렉시온을 향해 나아갔다.

콰득-!!

그리고 냅다 그 목덜미를 물어 몸부림 치는 리렉시온을 절대 놔주지 않았다.

그에 이어,

“폐하.”

아론과 엘버스테인이 내 앞에 섰다.

“악마를 소탕하라는 폐하의 명령을 이렇게라도 다시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비록 저희는 죽었지만, 폐하의 힘으로 잠시나마 살아났으니, 반드시 임무를 마치겠나이다.”

“······.”

아론과 알렉산더도 우악스럽게 기함을 터트리며 리렉시온을 향해 뛰어갔다.

“폐하. 베라크 제국의 무궁한 영광을!”

“폐하에게 무한한 영광을!”

그 둘을 따라 기사들도 한번씩 내게 경례를 한 뒤 리렉시온을 죽이고자 앞으로 나아갔다.

“······.”

난 그들의 처절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울컥한 마음이 차올라 미안하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저들이 기억하는 내 모습은 언제나 위풍당당하고 꼿꼿해야 하기에, 그들이 죽어서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황제여야 하기에, 나는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애써 숨기며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바라보았다.

“아슬란 폐하를 위하여!!”

“모두 몸을 아끼지 마라!!”

리렉시온은 가소롭다는 듯 그들을 향해 브레스를 마구 내뿜었다.

검은 불길이 사방을 불태우며 그들의 몸을 녹여냈다.

하지만,

“쓰러지지 마라!!”

“폐하를 위해 다시 한번 일어나는 것이다!!”

“우린 위대하신 아슬란 폐하의 기사들이다!”

그들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났다.

원혼의 불길로 살아난 기사들은 불사의 몸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마저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혼돈의 드래곤이다.

하지만 리렉시온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원혼의 불꽃마저 태워 버릴 강력한 브레스를 갖고 있어도, 저들의 의지를 꺾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죽여라!!”

거기다 플레임이 강하게 물은 목덜미를 절대 놔주지 않고 있어서 하늘로 비행해 이들을 일방적으로 죽일 수도 없었다.

리렉시온은 계속해서 브레스와 마법으로 플레임을 쳐내려고 했으나, 녀석은 끝까지 턱의 힘을 빼지 않으며 버텼다.

[절대 놔주지 않는다. 오늘 여기서 넌 우리와 같이 사라지는 거다, 리렉시온.]

결국 저 거대한 마물도 위기감을 느낀 것일까.

울음 소리가 한층 옅어지고 겁에 질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나는 브레스에 몸이 녹아 내려도 다시 일어나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저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폐하?”

“위험합니다.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리렉시온이 더 발악을 하며 난동을 피우자 기사들이 내 앞을 가로 막았다.

나는 부드럽게 그들을 뿌리치며 말했다.

“이 싸움은 너희들만의 것이 아니다.”

“······?”

“이 싸움은 짐과 너희들의 것이다. 그러니 너희 혼자 싸운다고 생각하지 말거라.”

내게 남은 찰나의 괴력은 이제 단 한번.

난 땅에 박혀 있던 칼을 뽑아 들고 리렉시온에게 다가갔다.

[크롸라라라-!!]

녀석도 살기를 느낀 것일까.

검은 브레스를 토해내며 내가 다가오는 것을 막아 보려 했지만, 목덜미를 강하게 물어 뜯는 플레임 때문에 정확하게 내 쪽을 조준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 결과 검은 브레스가 사방에 먹물처럼 뿌려졌다.

“혼돈의 드래곤, 리렉시온.”

나는 몸부림을 치며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떼어 내려고 하는 혼돈의 드래곤에게 말했다.

“네가 혼돈으로 지배하던 영겁의 시간은 이제 끝났다.”

그리고 칼을 들어 놈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그러니 이제 흙으로 돌아가라.”

촤아아아-!!

그러자 섬광처럼 번쩍이는 검강이 순식간에 혼돈의 드래곤을 베어 버리고 지나갔다.

“······!”

놈이 내뿜고 있던 브레스도 정확하게 반으로 잘려 나가며 흩어졌고, 놈의 거대한 몸뚱이 역시 스르르 양옆으로 갈라졌다.

쿠우웅-!!

하늘의 제왕, 모든 드래곤 중의 최강인 혼돈의 드래곤이 그렇게 쓰러졌다.

“······.”

잠시 정적이 흐르고,

“폐하께서 혼돈의 드래곤을 쓰러뜨리셨다!!”

“폐하께서 승리하셨다!!”

“우와아아아!!”

기사들의 함성이 평야를 뒤덮었다.

무려 내가 그 어떤 유저도 감히 쓰러뜨릴 수 없었다는 혼돈의 드래곤을 쓰러뜨린 것이었다.

하지만 전혀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저 씁쓸함과 울컥 거리는 무언가가 나를 괴롭힐 뿐이었다.

“폐하.”

혼돈의 드래곤이 쓰러지자 아론과 엘버스테인이 내게 다가왔다.

“마지막까지 함께 싸울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한다라.

저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나였다.

그런데 내게 감사를 하다니.

“폐하. 당신이란 분을 제 주군으로 모실 수 있었던 건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조금이나마 폐하의 대업을 위해 힘을 쓰다 죽을 수 있게 돼서 영광입니다.”

“······.”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머리 끝까지 허세가 차올라도 이 격한 감정을 추스릴 수가 없었다.

“아론. 엘버스테인. 나는······.”

“폐하.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 이건 저희의 선택이었습니다.”

“폐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당신을 위해 싸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디 부족한 저를 용서하십시오.”

그 둘의 말에 다른 기사들도 하나둘 내 쪽으로 몰려들었다.

“폐하. 당신은 영원히 저의 주군이십니다.”

“당신을 위해 싸울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폐하를 위해서라면 이 목숨은 절대 아깝지 않습니다.”

“또 한 번 당신을 위해 싸울 수 있다면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항상 이곳에서 당신의 부르심만을 기다리겠나이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나서 그들은 모두 떠나 버렸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그저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들이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왜 이렇게 슬픈 거지.’

늘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들은 게임 속 캐릭터에 불과하다고.

진짜가 아닌, 데이터 쪼가리로 만들어진 가짜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정을 줄 필요도, 진짜라고 몰입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믿었건만.

결국 난 이들을 진짜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들은 진실로 나의 사람들이었고, 지금 난 그들을 잃었다.

그것이 사무치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싸늘하게 식어 가는 그들 앞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 * *

“폐······!”

“쉿.”

아론과 엘버스테인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빠르게 악마를 소탕한 뒤 그 참혹한 장소로 넘어오게 된 알렉산더.

하지만 이미 그 지역에는 다른 사람들도 다 와 있었다.

그가 소리를 치기도 전에 라일라칸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라일라칸 님.”

“폐하를 방해하지 말거라.”

“······.”

알렉산더는 저 멀리 혼자 서 있는 아슬란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호레스를 비롯해 다른 신하들까지 모여 이곳에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꽤 오래 전부터 아슬란 혼자 조용히 저 평야에 서 있었다.

“아론, 엘버스테인, 플레임, 그리고 수많은 기사가 죽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상심이 크실 것이다.”

“······정말 그들이 죽은 것이로군요.”

“그래. 혼돈의 드래곤이 그들을 죽였다. 물론, 그 대가로 혼돈의 드래곤도 아슬란 폐하의 검에 의해 죽었지만.”

알렉산더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 세 사람이 이토록 허무하게 죽을 수가 있다니.

그리고 그 세 사람의 죽음에 누구보다 충격을 먹은 건 아슬란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알렉산더도 두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건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통곡을 하며 저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리고 호레스 역시 두 뺨에 눈물이 주륵 흐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모두 울지 마라.”

그때였다.

모두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들리던 아슬란의 목소리.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덤덤한 얼굴이었다.

“이들은 헛되이 죽은 것이 아니다. 우리 베라크 제국의 무한한 영광을 위하여 명예롭게 죽은 것이다.”

“······.”

“그러니 이들을 위해 슬피 울지 말거라. 이들은 마지막 순간에도 명예로웠으며, 진정한 기사다웠으니.”

아슬란은 포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말했다.

“오히려 이들을 위해 웃거라. 그들을 자랑스러워하며 그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말거라. 나 역시 이들을 위해 울지 않고, 오늘 하루 기쁘게 웃을 것이다.”

그리 말하며 아슬란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보았다.

그 미소와 함께 떨어지는 아슬란의 눈물을 말이다.

* * *

악마들과의 전투가 계속 이어지면서, 우리 제국은 이 대륙에 있는 거의 모든 악마의 씨를 말려 버렸다.

그동안 철저하게 준비했던 성과가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 전투 속에서 우리 제국은 정말로 많은 기사를 잃어야만 했으며, 악마들에 의해 부서진 마을과 성의 숫자도 상당했다.

“내가 바란 건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이렇게 된 것일까.

아니. 차라리 이렇게라도 막은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야만 하는 것일까.

조금만 더 내가 잘했더라면, 조금만 더 내가 주의를 했더라면 이런 참극이 발생하진 않았을 것이다.

“전적으로 나의 탓이다.”

이 게임의 미래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난이도 때문이라며, 아슬란의 스텟이 쓰레기라서 그런 것이라며 핑계를 대기에도 이제 지겨웠다.

“거기다 아직 레메게톤은 나오지도 않았어.”

가장 큰 적이라 할 수 있는 레메게톤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분명 놈은 살아 있는데, 아직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중이었다.

대체 놈은 뭘 꾸미고 있기에 이토록 뜸을 들이는 것일까.

사실 놈이 지금 당장 나와서 활개를 치기만 해도 제국 절반이 우습게 갈려 버릴 텐데 말이다.

“······.”

나는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조각상들을 바라보며 그것들에 생명의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놈들은 꼬물꼬물거리며 몇 번 움직이다 다시 원래의 조각상으로 돌아갔다.

“생명의 힘이 있는데, 죽은 자는 되살리지 못하다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힘.

하지만 이 힘은 죽은 자를 되살릴 순 없었다.

이 얼마나 쓸모없는 힘이란 말인가.

만약 내게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있는 힘이 있었더라면 지금까지 허망하게 죽어간 이들을 전부 되살릴 수 있을 텐데······!

꽈악-.

난 손바닥에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그런 내 뜻에 반응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갑자기 내 앞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나타났다.

[지옥의 권능]

-레메게톤을 죽여 지옥의 권능을 얻으십시오.

-지옥의 권능을 얻을시, 그것을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영원의 힘과 교환할 수 있게 됩니다.

“······!?”

그들은 아직 죽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저 힘을 갖기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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