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0.01초 소드마스터 182화
“꺄하하하! 어리석구나. 필멸자들이여. 이제 레메게톤 님께서 부활하셨으니, 너희는 모두 죽은 목숨이다!”
악마들은 이번에도 죽지 않고 또 돌아왔다.
그것도 훨씬 더 강하고 많은 숫자로 말이다.
이들은 한 곳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대륙 곳곳에서 출몰하며 그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나 탐식의 여왕, 레마레데가 너희를······컥!”
베라크 제국에서는 대대적으로 군사를 파견하면서 그들을 정면으로 상대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론이 있었다.
“시끄럽구나. 위대하신 아슬란 폐하의 이름으로 너희를 이곳에서 전부 정화시키겠다.”
“크읍. 저급한 피, 필멸자 따위가!”
“그 더러운 입으로 더 이상 떠들지 말거라!”
푸욱-!
“꺄아아악!”
제국 기사 중 가장 높다는 대기사단장임에도 불구하고 아론은 용감하게 앞장서며 악마들을 퇴치하는 데에 힘을 썼다.
자신이 이 제국을 대표하는 기사라는 사실을 늘 머릿속에 되뇌며 절대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모두 돌격!!”
“아론 대기사단장님을 따르라!!”
“우와아아아-!!”
그 덕분에 군사들은 더욱 사기를 드높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대기사단장님. 이곳 일대는 거의 정리가 된 듯합니다.”
“그래. 그럼 이번에는 플레임 님과 함께 엘버스테인이 있는 오메르 왕국 쪽을 지원하러 가겠다. 포탈을 준비시키거라. 그리고 알렉산더는 이쪽 구역을 맡도록 하고, 라일라칸 님께서는 자스트라 영역을 책임져 주십시오.”
“예!”
“그러지.”
아론이 아슬란에게 전권을 받아 지휘를 하자 라일라칸을 비롯한 기사들은 그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랐다.
그의 무력이 이들보다는 조금 낮을 순 있어도, 군을 지휘하는 데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곧 다시 뵙겠습니다, 대기사단장님.”
“그래.”
아론은 엘버스테인을 돕기 위해 오메르 왕국 쪽으로 이동했다.
엘버스테인은 반갑게 그를 맞이하며 나왔다.
“아론. 아주 잘 와주었네. 자네가 오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하군. 그런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몇 주 동안 잠도 제대로 자고 악마 토벌만 다녔다고 들었는데.”
“악마를 퇴치하는 것은 우리 황제 폐하께서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일이니까. 그분을 위해서라면 그깟 잠이 대수겠나.”
“후후. 자네답군. 폐하께는 항상 자네가 곁에 있으니, 내가 마음을 놓을 수가 있어.”
“그래서, 상황은 어떻지?”
“보다시피 악마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어. 어딘가에 악마들이 튀어나오는 포탈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 그것을 찾아서 파괴한다면 이들이 당분간 오메르 왕국을 침범하지 못할 걸세.”
아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엘버스테인과 함께 성 밖으로 나섰다.
플레임은 먼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주변을 관찰했다.
성 밖에는 악마들의 시체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예전에는 악마들을 이 정도까지 원활하게 상대한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지. 하지만 폐하께서 우리 대륙을 구원하기 위해 강림하신 이후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지. 제국에서 지원해 주는 무기들과 마법으로 악마들을 이리도 쉽게 상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엘버스테인의 말대로 각 왕국은 베라크 제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악마들을 상대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게 되었다.
그 결과, 아론의 도움이 조금 늦어도 충분히 그들끼리 버틸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그 유례가 없는 악마들의 대대적인 공격이 이어지고 있네. 아슬란 폐하가 계시기 전이라면 대륙은 금방 멸망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우리가 악마들을 사냥하고 있지. 나는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발악처럼 느껴지더군.”
“동감이야. 이번에만 잘 막는다면 대륙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지겠지. 아슬란 폐하의 이름 아래에서.”
그리 이야기를 나누며 악마들이 나올 만한 게이트를 찾던 중이었다.
[이 멍청이들아! 피해!!]
위에서 들려오는 레드 드래곤 플레임의 다급한 목소리.
콰아아아-!!
그 앞으로 검은 브레스가 치달았다.
아론과 엘버스테인은 차마 반응할 시간조차 없었다.
콰아앙-!!
하지만 브레스가 닿기 전에 플레임이 몸을 던져 그들을 대신해 막아 주었다.
[크윽-!]
“플레임님!”
[이, 이 머저리 같은······! 내가 피하라고 했잖아!]
플레임은 검은 브레스를 향해 자신도 똑같이 브레스를 날렸다.
피이이잉-!!
그러나 너무 힘의 차이가 컸던 탓일까.
콰콰콱-!!
검은 브레스는 그대로 플레임의 몸을 꿰뚫어 버렸다.
“프, 플레임님!!”
플레임은 그대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쿠웅-!!
온 하늘이 검게 변하고 그 아래로 거대한 무언가가 천지를 흔들며 떨어졌다.
균형을 잡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땅이 흔들려서 아론과 엘버스테인은 그만 말 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크롸라라라라-!!]
거센 포효를 터트리며 검은 몸통과 붉은 눈동자로 그 둘을 내려다보고 있는 드래곤, 리렉시온이 그곳에 있었다.
* * *
“······.”
불안할 정도로 평화로운 나날이다.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아론이 부하들과 기사단을 대거 이끌고 나간 뒤로부터 황궁은 썰렁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리고 연이어 들어오는 승전보를 들으며 나는 한가하게 침실에 누워 있었다.
아. 딱 한 가지.
내 평화를 방해하는 것이 있었다.
“폐하!”
늙은이가 참 힘도 좋다.
오늘도 지치지 않고 내 침실까지 쳐들어온 호레스.
놈은 갑자기 단검을 앞에 탕! 내놓았다.
뭐, 뭐야. 무섭게 갑자기.
“폐하! 혼인을 하지 않으시려거든, 이 자리에서 소인을 죽여 주십시오!”
“······.”
오늘도 지랄이 풍년이구나.
결정을 내리지 않을 거라면 여기서 죽여 달라며 호레스는 이제 단검까지 들고 와 시위하고 있었다.
“물러가라. 가서 네 손주들이나 챙기거라.”
“폐하!!”
호레스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소인을 죽이지 않으시겠다면, 차라리 제가 직접 자결을······!”
그리 소리치며 저 미친 영감이 단검을 뽑아 스스로 목을 베려는 찰나.
“폐하!! 폐하!!”
얼마나 다급했는지, 기사 하나가 알현을 청하지도 않고 우당탕 침소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을 보고 호레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이놈! 감히 폐하의 침소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소, 송구합니다. 하지만 급히 보고드릴 것이 있어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말해 보거라.”
기사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소리쳤다.
“혼돈의 드래곤 리렉시온이 오메르 왕국에 출현! 당시 그곳에 있던 아론 대기사단장과 오메르 왕국의 국왕, 엘버스테인이 기사단과 함께 리렉시온을 막으려 했으나······.”
설마-.
“결국 그 힘을 당해 내지 못하고 전사했습니다. 또한 같이 있던 레드 드래곤 플레임 역시······.”
“!?”
호레스는 들고 있던 단검을 황망하게 떨어뜨렸다.
나 역시 보고하고 있던 기사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다,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국왕 엘버스테인과 아론 대기사단장이······정녕 죽었단 말이냐?”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던 호레스의 물음에 기사는 통곡하듯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아아-”
호레스는 곧 휘청거리며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어찌 이런 일이······. 아론이 이리도 허망하게······.”
아론을 보낸 건 실수였나.
아니. 그 누구를 보냈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는 바로 그 리렉시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가만 있던 리렉시온이 대체 왜······.
‘레메게톤이 부활하면서 리렉시온부터 움직인 거구나.’
놈은 그동안 내가 레메게톤인 줄로만 알고 가만있었다.
하지만 진짜 레메게톤이 부활한 이상, 놈도 내 정체를 알고 있을 터.
그래서 놈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거기에 아론과 엘버스테인이 있다가 당한 것이고.
“······전군에 전하거라.”
방어를 해야 한다.
리렉시온이 언제 이곳으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현재 각 대륙 곳곳에 나가 있는 기사단을 전부 불러서 이 성을 지켜야 한다.
분명히 그래야 하는데,
“모두 각자의 위치를 사수하여 악마들을 막으라고 전하라.”
나는 내 마음과 다른 말이 튀어 나갔다.
병신 같은 허세 때문이 아니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가 차가운 내 머리를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허세에 취한 것이 아니었다.
분노.
바로 그것이 내 차가운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겁쟁이처럼 뒤로 물러나 우주 방어를 하며 리렉시온을 맞이했겠지만,
“짐이 직접 리렉시온을 처단하러 갈 것이다.”
“폐, 폐하!”
“위험합니다, 폐하. 리렉시온은 드래곤 중의 최강입니다! 차라리 모든 군을 불러들이십시오!”
“지금 대륙 곳곳에서 들고 일어난 악마들을 초기에 잡지 못한다면 그 혼란은 금방 모든 것을 불태우고 말 것이다. 그러니 혼돈의 드래곤은 짐이 잡아야 한다. 호레스, 경은 짐의 힘을 의심하는 것이냐?”
“그, 그건······.”
“너희는 그저 짐의 등을 바라보며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나는 손을 뻗었다.
그러자 전시대에 있던 검이 빠른 속도로 내 손에 다가왔다.
우우웅-!!
나의 분노를 이 검도 느끼는 것일까.
거센 검의 울음이 내 손을 타고 온몸에 전해졌다.
“가겠다.”
나는 황실 기사단을 이끌고 포탈을 넘어 아론과 엘버스테인, 그리고 플레임이 죽었다는 오메르 왕국에 도착했다.
“이, 이럴 수가.”
“여기가 정녕 오메르 왕국이란 말인가.”
나와 함께 도착한 기사단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아름다웠던 오메르 왕국이 잿더미가 되어 전부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거기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민간인 시체가 줄을 이었다.
“어린아이까지 무참히 살해하다니.”
“이런 쳐 죽일 놈들!”
하지만 이들은 악마 군단으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혼돈에 의한 몰살.
리렉시온이 뿌린 혼돈의 마법이 이들을 전부 죽게 만든 것이었다.
먼저 오메르 왕국에 있는 마탑을 파괴하고, 마법 방어를 전부 무력화 시킨 다음, 광역으로 혼돈을 퍼뜨려 이들을 한순간에 죽여 버리는 것.
그것이 리렉시온의 힘이었다.
‘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리렉시온이 가진 힘을 깨달으니, 잠깐 집을 나갔던 이성이 돌아왔다.
저기 어디선가 들리는 리렉시온의 울음 소리가 몸을 떨게 만들었다.
지금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나도 저들처럼 허망하게 죽게 되리라.
그러나,
“아론······?”
저 끝에 있는 아론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론은 이미 숨을 거둔 채였다.
그것도 무릎을 꿇고 끝까지 검을 놓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의 앞에는 엘버스테인이 쓰러져 있었고, 또 그 앞에는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버린 플레임이 있었다.
[플레임!!]
나를 따라 포탈을 타고 오메르 왕국에 왔던 카릴디움은 처참하게 죽어 있는 플레임에게 뛰어갔다.
[플레임. 눈을 떠라! 플레임!]
몇 번을 외쳐봐도 플레임은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모두 이미 숨을 거둔 것이었다.
그리고,
쿠웅-!!
혼돈의 드래곤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지성이 있는 드래곤이었지만, 지금 모습은 마치 그 혼돈의 지성을 잃어버리고 오직 짐승의 본능만이 남아있는 흉포한 드래곤처럼 보였다.
놈은 기괴하게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리렉시온.”
잠시 되찾았던 이성이 한 번 더 끓어오르는 분노에 의해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스르릉-
나는 허리춤에서 천천히 칼을 뽑았다.
그런 뒤 당당히 리렉시온 앞에 섰다.
당장이라도 놈이 브레스를 내뿜으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허세 때문이 아니었다.
이건 오로지 나의 의지, 나의 분노에 의한 것이었다.
나는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입술을 꾹 깨물며 그 끝을 높이 세웠다.
“오늘 네놈은 이곳에서 죽는다. 하지만 짐이 가벼이 네놈을 죽일 거라 생각하지 말거라.”
그리고 그것을 냅다 바닥에 꽂았다.
콰직-!!
“저들의 원혼이 오늘 네놈의 살점 하나도 남기지 않고 태워 버릴 것이다!”
그러자 검끝을 타고 흐르는 원혼의 불길이 순식간에 사방에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