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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80화 (180/200)
  • 180화

    0.01초 소드마스터 180화

    “어둠의 왕이시여. 당신의 명령을 종들이 수행하고 왔나이다.”

    테르카나 손에 의해 창조된 악마들 손에는 울부짖는 망령들이 묶여 있었다.

    그들이 그것을 앞에 내놓자 테르카나는 망령들을 흡수하며 몸 곳곳에 일어나고 있던 균열을 잠재울 수 있었다.

    “흠.”

    몸이 원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테르카나는 짧게 침음성을 뱉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몸 전체가 붕괴되겠군.’

    망령들을 흡수하는 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결국 그도 새로운 그릇이 필요했다.

    ‘그릇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뽑자면······.’

    역시 아슬란 말고는 없다.

    그는 라할의 화신이지 않은가?

    라할의 힘을 버텨내는 몸이라면 어둠의 힘 역시 능히 버티고 남으리라.

    문제는,

    ‘아슬란을 어떻게 잡느냐는 건데-’

    아니. 이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었다.

    ‘굳이 아슬란을 먼저 잡을 필요는 없잖아?’

    차근차근 한 단계씩 올라간다는 마음으로, 그릇들을 갈아 치우며 위로 올라가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정한 테르카나는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일단은 다른 문제부터 해결해야겠군.”

    테르카나는 포탈을 열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둠만이 가득한 공간.

    그 안에서 짙게 맡아지는 냄새는 바로 혼돈이었다.

    “이런 곳을 혼돈의 레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테르카나가 중얼 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는 등 뒤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또한 몸을 꿰뚫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겁을 상실한 놈이로구나. 제아무리 마기가 높은 악마라고 해도 이곳에서는 제대로 숨조차 쉴 수가 없다.]

    혼돈의 드래곤이 거하는 레어는 악마조차 견딜 수 없는 혼돈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래서 바빌론들도 감히 혼돈의 드래곤이 있는 곳으로 접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혼돈의 드래곤, 리렉시온. 너의 주인이 왔다.”

    [······?]

    리렉시온은 이놈이 드디어 미친 건가 싶은 눈동자로 테르카나를 바라보았다.

    “너의 눈이라면 볼 수 있을 터. 내가 바로 레메게톤이다.”

    그러자 리렉시온이 두 눈을 부라렸다.

    [닥쳐라! 감히 하찮은 악마 따위가 그분을 칭하다니!]

    콰아앙-!!

    그리고 냅다 앞발을 들어 테르카나를 찍어 눌렀다.

    하지만 그의 발을 테르카나는 아주 간단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똑바로 보거라. 나에게 넘쳐흐르는 이 마기를. 너라면 볼 수 있지 않느냐. 지금 나의 마기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뭐라고?]

    “레메게톤의 영혼을 내가 흡수하였다. 그가 가지고 있던 힘은 이제 나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보고도 모르겠느냐? 이제 내가 바로 어둠의 신이다.”

    [하찮은 놈이 하찮은 소리를 하는구나. 나는 이미 레메게톤 님을 만나고 왔다.]

    “······뭐?”

    [그분이 내게 보이셨던 마기에 비하면 네놈은 참으로 귀여운 수준이로구나.]

    리렉시온은 입가에 혼돈을 모으며 테르카나를 위협했다.

    [썩 꺼지거라. 그리고 다시 한번 그따위 소리를 지껄였다가는 네놈의 몸을 내가 직접 녹여 주겠다.]

    테르카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레메게톤을 흡수하고 나면 알아서 혼돈의 드래곤도 고개를 숙이게 될 거라 여겼건만.

    “어쩔 수 없지. 네놈을 강제로 굴복시키는 수밖에.”

    [뭐라?]

    그때 테르카나의 위로 불을 휘감은 거대한 거인 같은 것이 올라오더니, 그대로 들고 있던 도끼로 리렉시온을 찍어 버렸다.

    콰아앙-!!

    [크읍-!]

    방어막을 뚫어 버릴 정도로 강력한 일격에 리렉시온은 당황했으나, 곧바로 힘을 끌어모아 반격에 나섰다.

    [감히-!!]

    콰아앙-! 콰콰콰쾅-!!

    혼돈의 레어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곳곳에서 어둠의 힘이 폭발하고,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에 리렉시온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네놈이 이런 힘을······.]

    “후후. 아직 내가 모든 것을 보여 준 것이 아니다. 마침 나도 힘을 마음껏 연습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잘 됐구나.”

    테르카나의 양쪽 손바닥 위로 검은 구체가 떠올랐다.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즐겨 보도록 하지.”

    그리고 구체들은 여지없이 리렉시온을 향해 떨어졌다.

    콰아아앙-!!

    * * *

    ‘생각보다 잠잠하네?’

    레메게톤이 부활했다.

    비록 그때 내가 놈을 잠시 쫓아내긴 했지만, 놈이 곧바로 다시 나타나 대륙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레메게톤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고,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이젠 정말로 황제 폐하의 황후가 되실 분을 뽑을 때가 되었습니다.”

    호레스가 저 말을 꺼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맞습니다! 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미뤄야 한단 말입니까.”

    “그동안 여러 일이 벌어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미루긴 했다만, 이젠 정말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폐하! 부디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에휴. 시끄러운 것들.

    뭔 틈만 나면 황후 타령이야.

    하지만······.

    ‘이거 진짜 다 드러누울 기세인데.’

    내가 황후를 들이지 않으면 자기 목을 치라고 발악하는 놈들 천지였다.

    그럼 정말로 황후를 골라야 한다고?

    아니. 현실 세계에서도 아니고 이 게임 세계에서 결혼을 하라는 거야?

    ‘그건 안 될 일이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그동안 황후를 맞이하지 않은 건 내가 모태솔로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황후를 들인다는 건 결국 가족을 만든다는 것인데, 만약 여기서 내 핏줄이 덜컥 태어나게 되면······. 그땐 내가 현실 세계로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아무리 여기가 게임 속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가족의 연을 쉽게 끊을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분명 망설이게 될 것이고, 두고두고 내 발목을 붙잡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생각이 없다.”

    “폐하!!”

    “지금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황후를 들이시는 것보다 급한 것이 무어란 말입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책에서 본 왕들이 딱 이런 심정이었구나.

    호레스를 필두로 저것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머릿수로 나오니, 참으로 어지러웠다.

    그렇다고 싸그리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다 죽이겠다고 협박해도 그럼 얼른 목을 치시라고 목덜미를 빼꼼 내밀 놈들이었다.

    “폐하! 급보입니다!!”

    바로 그때 나를 위기에서 구해 주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반란입니다! 테고 성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테고 성?”

    테고 성이라면 에인소프 왕국에 속해 있는 성이었다.

    그런 곳에서 대체 왜 갑자기 반란이 일어난 건지 상세하게 물어보고 싶었다만-

    “······.”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황후를 맞이하라며 눈에 불을 켜고 있는 호레스를 보고 차라리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에인소프 왕국으로 가겠다. 포탈을 준비시키도록.”

    “폐하. 그런 일이라면 대기사단장 아론을 보내십시오.”

    “예. 아론이라면 충분히 해내고도 남을 겁니다.”

    아론을?

    나는 애써 늠름하게 서 있는 아론을 쳐다보았다.

    됐다. 알렉산더한테도 이제 비비지 못하는 놈을 괜히 보냈다가 무슨 꼴을 보라고.

    거기다 아론을 대신 보내게 되면 나는 여기서 또 하루 종일 이놈들한테 얼른 황후부터 들이라고 바가지를 긁힐 게 뻔했다.

    “짐이 황제가 된 이후, 처음으로 일어나는 반란이다. 만일 이 사태를 짐이 친히 해결하지 않는다면 반란의 불씨가 사방에 퍼지게 될 터. 짐의 말이 틀리더냐?”

    “그, 그건······.”

    이들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 보였다.

    내 말대로 여기서 내가 반란을 제대로 진압하지 않는다면 다른 곳에서도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가겠다.”

    나는 전각 밖을 나서며 포탈을 타기 위해 이동했다.

    그런데 밖에서는,

    “나이도 어린놈이 선배한테 똑바로 해야지.”

    [나는 나보다 약한 놈의 말을 듣지 않는다.]

    “누가 봐도 내가 너보다 더 강한 거 같은데?”

    [흥. 한 입 거리도 되지 않는 놈이 주둥이만 살았구나.]

    “뭐야!? 이 브레스도 제대로 못 쏘는 놈이.”

    [원한다면 이 자리에서 보여 줄까? 네놈의 목을 두 동강 내주겠다.]

    “오냐. 오늘 어디 한번 끝을 봐보자.”

    레드 드래곤과 카릴디움이 또 티격태격하며 싸우고 있었다.

    골드 드래곤은 그 둘이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 보였다.

    넌 좀 저런 걸 보면 말리는 척이라도 해라.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둘에게 다가갔다.

    “할 일이 없으면 너희들도 따라오너라.”

    거의 매일 아이의 몸을 하고 있는 레드 드래곤이 펄쩍 뛰며 말했다.

    “오! 어디 가는데?”

    “반란이 일어났다는군. 놈들을 쓸어 버리러 갈 것이다.”

    “오오-!”

    그러자 레드 드래곤과 골드 드래곤이 쪼르르 내 곁에 달려왔다.

    카릴디움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저놈을 진짜 어찌할꼬.’

    지금이라도 확 녹여 버려야 하는 건가.

    어떻게 닮아도 이 쓸모없는 몸뚱이를 닮을 수가!

    “······너도 따라와라.”

    [예! 주인님!]

    대답은 아주 해맑게 하고 있었다.

    그래도 저 덩치가 여기 드래곤 두 마리와 함께 있으면 그 모습은 무척 웅장하고 멋질 것이며, 상대에게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럼 가자.”

    나는 그들을 전부 데리고 포탈을 타서 테고 성으로 이동했다.

    “저건······. 그냥 반란이 아닌 거 같은데.”

    테고 성은 내가 알던 일반적인 성의 모습이 아니었다.

    모든 깃발이 내려가 있었고, 대신 검은 불꽃이 그 위를 대신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성은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악마들의 소굴처럼 보입니다.”

    라일라칸의 말대로 저건 악마의 소굴이나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성 주변으로 마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두꺼운 방어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광신도들인가.’

    광신도들이 악마를 성안에서 소환해 백성들을 현혹시키고, 성 자체를 악마들의 소굴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인 듯 보였다.

    “폐하.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이미 저 지경이 되었다는 건, 저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악마화가 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모두 남김없이 죽이거라.”

    그러자 레드 드래곤 플레임이 앞으로 나섰다.

    “저런 성 하나는 그냥 나한테 맡겨.”

    그러면서 플레임은 강력한 브레스와 함께 마법을 테고 성을 향해 뿌렸다.

    콰아아앙!!

    소리는 귀가 찢어질 것처럼 크고 요란했으나, 성은 아주 멀쩡했다.

    “비켜라.”

    이에 골드 드래곤이 플레임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앞에 나섰다.

    하지만,

    콰아아앙-!!

    골드 드래곤의 공격에도 테고 성은 여전히 멀쩡했다.

    “쯧.”

    나는 짧게 혀를 찼다.

    그러자 두 드래곤이 무안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다 플레임은 자신을 비웃고 있는 카릴디움과 눈이 마주쳤다.

    “넌 뭘 했다고 웃어?”

    [네 하찮은 힘을 비웃었을 뿐이다.]

    “네가 그렇게 잘났으면 한번 해보지, 그래? 아~ 넌 브레스도 못 날려서 안 되겠네.”

    플레임이 박박 긁어대자 카릴디움의 눈동자가 달라졌다.

    여기서 보니 딱 알겠다.

    지금 카릴디움의 허세가 꼬리를 타고 머리끝까지 차오르고 있음을 말이다.

    [보여 주마. 하늘과 땅을 떨게 하는 본좌의 힘을 말이다.]

    “아~ 예. 어디 제발 좀 보여 주십시오. 그럼 제가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플레임의 말에 카릴디움은 힘을 끌어모았다.

    부우우웅-!!

    성스러운 빛을 발하며 올라오던 브레스는 곧 카릴디움의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것이 일직선으로 쭉 뻗어 나가 테고 성에 깔린 방어벽을 부수고 성벽을 반으로 쪼개는 것을 보고 플레임은 눈을 희번덕 떴다.

    “뭐, 뭐야?”

    콰아아아앙-!!

    거기서 멈추지 않고 브레스가 가르고 간 곳이 크게 폭발을 일으키며 테고 성 절반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

    플레임은 믿을 수 없다는 눈동자로 카릴디움을 바라보았다.

    놈은 어깨를 쫙 펴며 플레임에게 말했다.

    [이제 나를 형님으로 모시거라.]

    플레임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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