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0.01초 소드마스터 179화
레메게톤은 자신의 마기를 갈라 버린 카릴디움의 브레스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레메게톤의 마기는 특별하다.
악마의 신인만큼, 그 능력 역시 다르다는 것이다.
그의 마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며, 일반적인 마법이나 공격으로는 절대 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오직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건 바로 라할의 빛이었다.
저 신전의 제사장들이나 교황이 다룬다는 빛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라할의 손에서 나오는 그 유일한 빛만이 레메게톤을 상처 입힐 수 있었다.
그리고 방금 그 브레스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는 레메게톤의 마기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어떻게 네가 라할의 빛을 가지고 있는 거지?]
그 물음에 카릴디움이 웅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건 나의 위대하신 주인께서 주신 힘의 일부분일 뿐이다.]
위대하신 주인?
그렇다면 정말로 저 아슬란이 이 드래곤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인간 따위가 어떻게 생명의 힘을······.]
바로 그때였다.
“아까부터 쫑알쫑알 시끄럽구나.”
저 밑에 있으면서 마치 상대를 내려다보는 듯 거만한 시선으로 아슬란이 레메게톤을 바라보았다.
“어둠의 신이라는 놈이 고작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꼴이 우습구나, 레메게톤.”
[무엄하다! 네놈이 감히 나를 능멸해?!]
레메게톤은 불같이 화를 내며 어둠의 힘을 발산했다.
[복종하라. 이 땅에 있는 모든 생명은 나의 노예다!]
그 힘으로 아슬란과 카릴디움을 무릎 꿇리려 했다.
하지만-
“······.”
아슬란과 카릴디움, 둘 다 멀쩡하게 서 있었다.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뭐, 뭐지?]
저 밑바닥에 있는 몬스터들을 보라.
레메게톤이 뿌린 어둠의 힘에 의해 몸을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지 않은가.
저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아슬란은, 그리고 그가 만든 드래곤 카릴디움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고작 이게 끝이더냐?”
그 뒤에 울려 퍼지는 아슬란의 목소리.
“정말 이게 끝이라면 실망이로군. 어둠의 신이라기에······. 조금은 짐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늘.”
스르릉-!
아슬란은 천천히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그리고 말했다.
“더 볼 것이 없으니, 이만 꺼지거라.”
[!?]
촤아아악-!!
가볍게 휘두른 검에서 차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빛이 검강으로 퍼져 나오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으헉-!]
그것으로 레메게톤은 자신이 보낸 혼과 연결이 끊기고 말았다.
아무리 혼의 일부분만 보냈다고 해도 설마 이 정도로 무력하게 베일 줄이야.
그것도 그 어떤 종족의 힘으로도 벨 수 없다는 레메게톤의 마기를 아슬란은 아주 우습게 베어 버렸다.
그리고 그가 보여 준 것은 바로,
[라할의 빛······. 대체 어떻게 그 힘을 아슬란이······.]
아슬란이 라할의 화신이라는 게 어쩌면 거짓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놈은 라할의 화신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라할의 빛을 놈이 사용할 수 있을 리 없다.
심지어 오직 신만이 가질 수 있다는 생명의 힘으로 그 드래곤을 만들지 않았던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나.]
그때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다.
“아슬란과는 즐거운 만남을 가지셨습니까?”
[······.]
레메게톤은 빙긋 웃고 있는 테르카나를 보고 말을 아꼈다.
[그래. 하지만 내 그릇으로 쓰기에는 부족해 보이더군.]
“그럴 리가요. 그는 이 대륙에 있는 모든 종족 중에서 최강이라 해도 될 만한 인물입니다. 그자가 아니고서야 감히 레메게톤 님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있겠습니까?”
[내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것이냐?]
“······.”
[아무튼, 새로운 그릇을 찾아 보거라.]
그리 명령을 남기고 레메게톤은 잠에 들어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
아슬란이 날린 일격으로 인해 예상보다 많은 힘이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크크-.”
기분 나쁜 웃음 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그건 바로 테르카나의 웃음 소리였다.
“역시 너도 다른 악마들과 다를 바가 없구나.”
[······뭐라고?]
“그나마 너는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너 역시 아슬란에게서 꽁무니를 빼다니. 그 이름값이 아깝구나, 어둠의 왕이여.”
[네놈이 드디어 미쳤구나. 네가 지금 누구 앞에서 입을 놀리는지 모르느냐?]
“너야 말로 어리석고 둔하구나.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널 살리는 줄 아느냐? 그리고 네가 그 밑바닥에서 잠을 쳐자는 동안, 내가 여기서 무엇을 했는지 아느냐?”
[······?]
테르카나는 상대를 실컷 비웃으며 조롱했다.
“자기 영혼에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과거의 영광에 취한 꼴이라니. 네가 왜 라할에게 패배하여 이곳에 봉인 당했는지 알겠구나.”
[테르카나!!]
레메게톤은 남아 있던 마기까지 끌어 올려 테르카나를 그대로 집어 삼키려고 했다.
하지만 테르카나의 손짓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그것을 보고 레메게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뭣이?!]
“미안하지만, 넌 내 명령 없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뭐라고?]
“내가 널 처음 이곳에서 발견한 순간부터 네가 깨어나는 순간까지 난 하루도 빠짐없이 네 영혼에 마법을 각인해 놓았지. 그 시간이 무려 300년이다.”
[!?]
“시간 앞에서는 아무리 신이라도 장사가 없더군. 결국 네 영혼에는 나의 마법이 각인 되었다. 물론, 워낙 네 힘이 강해서 처음에는 내 마법이 먹히지가 않더군. 하지만 오늘 네가 아슬란을 만나고 오면서부터 달라졌다.”
테르카나는 손을 들어 레메게톤과 아슬란이 서로 대면했을 때의 모습을 마력의 잔영으로 보여 주었다.
“사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레메게톤. 너의 마기가 아슬란에 의해 속절없이 베여나가는 것 역시 보았다. 힘의 차이가 뼈저리게 느껴지더군.”
테르카나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제아무리 레메게톤이라 할지언정 아슬란 앞에서는 그저 나약한 악마에 불과하다는 것을.
[대체 내게 무슨 마법을 걸어 놓은 것이냐?!]
그렇다면 아슬란을 쓰러뜨릴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널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마법.”
[뭐?]
원래 계획대로 레메게톤의 영혼을 취해 하늘과 땅아래 누구도 자신보다 강한 자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레메게톤. 이제 너는 더 이상 어둠의 신이 아니다.”
테르카나는 레메게톤의 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관 속에 있던 레메게톤의 영혼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당황한 레메게톤은 힘껏 저항하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테르카나가 300년 동안 공을 들여 심어 놓은 마법이 강한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저항하지 말고 나의 것이 되거라. 너를 나의 힘으로 삼아, 이제 내가 하늘에 설 것이다.”
[머, 멈춰라! 나는 어둠의 신이다! 저급한 네놈 따위가 감히 취할 수 있는 영혼이 아니란 말이다!]
“후후. 과연 그런지 한번 볼까?”
[크아아악!!]
레메게톤이 절규 섞인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쳐댔다.
하지만 점점 그 소리는 작아지고 이 동굴 전체를 흔들어 대던 떨림도 차츰 사그라졌다.
테르카나에 의해 그 강렬한 영혼이 마침내 저 밑바닥까지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
테르카나는 짧게 숨을 내쉬며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레메게톤을 닮아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아아. 느껴진다. 이것이 진정한 어둠이로구나.”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강렬한 이 기운.
진정으로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을 상대할 수 없을 거라는 자신감마저 들었다.
촤르르르-!!
그는 손을 펼쳐 마기를 밖으로 분출해냈다.
그러자 그 마기에 의해 새로운 악마들이 순식간에 탄생하며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의 주인이시여.”
“당신의 명령을 종들이 기다립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테르카나는 미친 사람처럼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쩌억-!
“!?”
그의 손바닥에서 균열이 일었기 때문이다.
“······제길.”
역시 이 몸으로는 레메게톤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가.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이런 상처쯤은 다른 고위급 악마들을 흡수하면 나아질 것이다.
문제는 그건 임시 처방에 불과하다는 것.
결국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릇인가.’
자신의 힘을 온전히 쓸 수 있는 그릇.
테르카나에게는 그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그릇 역할에 딱 맞는 사람이 누군지는 이미 그도 알고 있었다.
* * *
······갔나?
휴우우우.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갑자기 뜬금 없이 여기서 레메게톤이 나오는 게 어디 있어.
그나마 다행인 점은 놈이 내 일격을 맞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금 그것은 레메게톤의 일부에 불과하다.
놈의 본체가 온다면 내 일격쯤은 가볍게 씹어 먹을 수 있을 터.
그럼 이제 정말 게임이 이대로 끝이 나는 건가?
[휴우우-]
바로 그때.
카릴디움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땅 꺼지겠다.”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주인님.]
“······.”
이 자식, 진짜 어마어마한 쫄보구나.
그런 놈이 레메게톤 앞에서는 정말 당당하고 웅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건 아마도 허세에 잡아 먹혔었기 때문일 터.
“너 아까 그 브레스. 다시 한번 쏴봐.”
카릴디움이 보여줬던 브레스는 저 레메게톤마저 놀라게 만든 것이었다.
그 위력은 골드, 레드, 그리고 혼돈의 드래곤에게서도 보지 못 한 브레스였다.
그런 강력한 브레스를 쓸 줄 알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이놈은 왜 약한 척을 했던 것일까.
카릴디움은 힘껏 힘을 모은 뒤 입을 벌려 브레스를 밖으로 내보냈다.
뾰옥~
“······장난 하냐?”
[그, 그게 저도 다시 보여 드리고 싶은데, 지금 당장은 나가지가 않아요.]
뭐야. 설마 쿨타임이 있다고?
아니. 고작 한번 밖에 안 썼는데, 그것도 브레스에 쿨타임이 있는 드래곤이 어디 있어?
[죄송해요. 조금만 있다가 다시 보여 드릴게요.]
카릴디움은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잠깐. 브레스에 쿨타임이 있다는 건 설마······.
‘찰나의 괴력 같은 건가 이것도?’
그렇다면 방금 전 위력이 이해가 됐다.
이놈도 아슬란과 똑같이 찰나의 괴력처럼 쿨타임이 존재하는 브레스를 쓰고 있는 것이다.
‘미친.’
닮아도 뭘 그딴 걸 닮냐.
그냥 평범한 드래곤이었어도 괜찮은데.
만약 찰나의 괴력과 똑같은 효과를 가진 브레스라면 5분에 한번씩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확 녹여 버려 말어.’
하지만 레메게톤마저 갈라 버릴 위력의 브레스라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내 블랙 메테오와 이놈의 브레스가 함께 나간다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럼 설마 메테오도 쓸 줄 아나?
“흠흠. 혹시 메테오 같은 건 쓸 줄 아느냐?”
[메테오요?]
카릴디움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 날개를 넓게 펼쳤다.
그리고 녀석이 날개를 펄럭이며 힘을 발산하자,
콰릉-! 콰르릉-!!
하늘이 갑자기 검게 변하며 번개가 치는 거 같더니,
슈루루룩~ 톡.
작은 조약돌 하나가 우리 앞에 떨어졌다.
“······.”
[헤헤.]
카릴디움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진짜 녹여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이 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