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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77화 (177/200)
  • 177화

    0.01초 소드마스터 177화

    [나의 대업을 이루려면 이 봉인된 관에서 나와야 한다.]

    봉인된 관에서 울려 퍼지는 레메게톤의 목소리.

    그 어둠으로 가득하고 사악하기만 한 음성은 동굴 전체를 울렸으며, 저 멀리 있던 악마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나의 종이여.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테르카나라고 합니다.”

    [테르카나. 너에게 귀중한 임무를 맡기겠다. 곧 봉인은 깨질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마땅한 그릇이 필요하다.]

    바빌론들을 흡수하면서 레메게톤은 힘을 회복했다.

    점점 그 힘이 강해지면서 봉인이 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더 강한 힘을 갖추기 위해서는 마땅한 그릇이 필요했다.

    [난 이 땅을 지배하는 신이다. 그렇기에 그 그릇도 특별해야 한다.]

    레메게톤은 이미 원하는 그릇이 있었다.

    [이곳에 묻혀 있었지만, 나는 이 대륙의 지긋지긋한 목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이름을 외치는지도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아슬란. 그자의 이름 밖에 들리지가 않더군.]

    이 지독한 바닥에서도 듣고 있던 그 이름, 아슬란.

    레메게톤은 그의 몸을 가지고 싶었다.

    [아슬란을 이곳에 데려와라. 내가 그의 영혼을 취하여 나의 위대한 대업에 쓸 것이다.]

    테르카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레메게톤 님께서는 아슬란을 죽일 수 있으시다는 겁니까?”

    [이 지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내 힘을 거부할 수 없다. 아슬란이란 인간이 아무리 큰 명성을 쌓았다고 해도 결국 내 앞에서는 초라한 인간일 뿐이다.]

    “아슬란은 평범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는 라할의 화신이며, 대륙의 모든 종족이 그를 라할이라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레메게톤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라할이라고? 아슬란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군.]

    “라할이 아니라는 겁니까?”

    [라할은 나와 크나큰 전투를 벌이고 그 힘을 크게 상실했다. 결국 놈은 나를 죽이지 못하고 이곳에 봉인만 시켜 놓았지. 아마 진작에 소멸을 했거나, 아니면 대륙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이건 새로운 정보였다.

    그리고 신뢰성이 무척 높았다.

    왜냐하면 이건 라할과 직접 싸워 본 레메게톤에게서 나온 것이니까.

    [그런데 놈이 벌써 힘을 되찾아, 그것도 인간의 몸으로 나타났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만일 라할이 정말 살아났다면 내가 그의 존재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군. 그러므로 놈은 라할이 아니다.]

    아슬란이 사실은 라할이 아니었다니.

    그건 그것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그럼 아슬란은 대체 누구입니까?”

    [특별한 힘을 지닌 인간이라는 건 알겠군. 나의 그릇이 되기에는 충분한 놈이다.]

    “그를 이곳까지 데려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아슬란은 대륙 최강자이며, 바빌론들도 그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못하고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레메게톤은 짧게 침음을 내뱉었다.

    [내가 흡수한 바빌론들의 기억 속에서 보았다. 아슬란, 그자가 가진 힘을. 라할의 빛과 비슷한 힘을 쓰고는 있지만, 결코 그는 신이 아니다. 그저 하찮은 인간일 뿐. 내가 그를 이곳으로 인도해 주지.]

    “예?”

    [나 레메게톤의 힘에 아슬란은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모든 대륙의 종족이 그러할 것이다.]

    관 속에서 검은 마기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 대륙으로 향했다.

    * * *

    위대한 조각상, 카릴디움.

    그것을 내가 갖겠다고 말하자, 브루엔은 울상이 되었다.

    하지만 차마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감히 황제의 명령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이게 권력의 맛이로구나.’

    후후. 나는 속으로 음흉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비싼 걸 날로 먹을 수 있다니.

    ‘문제는 내가 정말 이걸 살릴 수 있느냐는 건데.’

    내가 가진 생명의 힘.

    과연 그것으로 이런 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이미 이런 조각상에도 생명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뀨루루 울던 작은 조각상을 통해서 증명이 됐다.

    그렇다면 이것에도 충분히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황무지에 무수히 많은 꽃과 나무를 일으켰던 것처럼 말이다.

    “폐하. 이토록 큰 조각상을 본국에 옮기려면 포탈을 이용하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워낙 크기가 커서 포탈에 들어가지가 않아, 직접 기사들을 시켜 호송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호레스는 이 조각상을 성에 가져간다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듯 보였다.

    왜냐하면 워낙 크기가 커서 포탈은 이용할 수가 없고, 기사들을 움직이자니 엄청나게 많은 인력이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기서 본국까지는 거리도 멀어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브루엔이 말을 거들었다.

    “맞습니다. 심지어 이 조각상은 아스릴타디움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입니다. 아스랄타디움은 강철보다 두 배나 무거운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옮기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아니.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스릴타디움이 무기나 갑옷으로 잘 쓰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강철보다 두 배나 무거운 무게.

    그래서 얇게 방어구에 펴 바르는 경우는 있으나, 차라리 그럴 바에는 다른 물질로 만든 갑옷을 쓰는 게 더 좋았다.

    하지만 갑옷과 무기 목적이 아닌, 다른 시설을 지을 때 쓰는 거라면 굉장히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채취량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금액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아스릴타디움은 대륙에서 최고의 내구성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물질이지요. 오직 이곳, 아렌티아에서만 채취됩니다. 그 특별한 자원을 폐하의 본국으로 옮겨 새로이 조각상을 만들어 드리겠나이다.”

    브루엔은 어떻게든 저 드래곤 조각상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 허세에 불을 지필 뿐이었다.

    “불가능이라 했느냐?”

    하필이면 이놈의 허세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를 브루엔이 꺼내고 말았다.

    “감히 짐 앞에서 불가능을 입에 담다니.”

    “예······예?”

    “짐은 불가능이란 말을 제일 싫어한다. 안 되면 되게 하는 것이 우리 제국이며, 나 아슬란이다. 그런데 감히 네가 짐을 의심하는 것이냐?”

    브루엔은 내 눈빛을 마주 보고는 마른침을 삼키며 얼른 고개를 숙였다.

    “소, 송구합니다, 폐하!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조, 조각상은 얼마든지 가져가셔도 됩니다. 저, 저희가 아낌없이 인력을 지원하겠나이다!!”

    “필요 없다.”

    “헉.”

    나는 이 거대한 조각상을 본국으로 이송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호레스가 우려했던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 그때 발생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터.

    고작 이런 조각상에 내 아까운 돈을 쓸 순 없지.

    “브루엔.”

    “예! 예, 폐하.”

    “너는 너의 예술 작품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나?”

    브루엔은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했다.

    “예술가의 혼이 그 안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곧 예술품의 생명이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저 추상적인 대답이지 않나. 만일 진짜 생명이 너의 예술품 안에 깃든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거라. 그것이 진짜 숨을 쉬고 너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그건······. 모든 예술가의 꿈일 겁니다. 결코 이룰 수 없는 꿈.”

    “그런가?”

    나는 그 위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아 있는 카릴디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럼 보거라. 너희 예술가들이 그토록 이루고 싶어 하는 꿈을 짐이 이뤄 주겠다.”

    파앗-!!

    내 손을 타고 뻗어나간 생명의 힘이 카릴디움 조각상 전체에 퍼져나갔다.

    찰나의 괴력을 섞어 쓴 것이라, 땅이 흔들릴 정도로 강한 태동이었다.

    이윽고,

    우드득-!

    “카, 카릴디움이······!”

    “우, 움직인다!!”

    광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놀라 소리쳤다.

    그들의 외침대로 카릴디움은 그 굳은 몸을 바득바득 움직였다.

    나 역시 그 황홀한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아름다운 물질로 만들어진 거대한 조각상이 기지개를 켜듯 몸을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그 위엄 넘치는 모습과 그 안에서 퍼져 나오는 강렬한 힘에 도시 전체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하늘의 제왕······.]

    거기에 멈추지 않고 카릴디움은 그 근엄한 목소리를 울렸다.

    [모든 드래곤 중의 최강자, 카릴디움이다.]

    뀨루루 거리던 작은 조각상처럼 이놈도 저 큰 덩치와 날카로운 인상으로 귀여운 소리를 내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건 괜한 걱정 같았다.

    이 힘을 이제 막 사용하고 있는 터라 잘은 모르지만, 조각상의 성격과 힘은 그 조각상이 가진 예술가의 뜻과 의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았다.

    [크롸라라라-!!]

    저 끝내 주는 포효 소리를 들어 보라.

    저것이 하늘의 제왕이자, 드래곤 중의 최강자, 카릴디움인가.

    골드랑 레드 드래곤이 저걸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심지어 몸도 아스릴타디움으로 되어 있잖아.’

    최강의 방어 물질로 이루어진 몸이고, 심지어 마법 방어도 짱짱해서 왠만한 놈들로는 저 드래곤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저게 이제 내 부하란 말이지?’

    레드 드래곤, 골드 드래곤, 이제는 내 손으로 창조한 아스릴타디움 드래곤까지.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을 정도였다.

    저 3마리면 공중전은 걱정할 것이 없었고, 땅에 있는 것들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 마디로 자동 사냥을 해주는 놈들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귀중한 자원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었다.

    그것도 드래곤!

    무려 드래곤이다.

    ‘자. 얼른 이 아빠에게 오너라.’

    저놈을 얼마나 멋있게 키워 줘야 할지,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무엇이냐. 이 역겨운 존재들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째서 이 위대한 몸이 너희와 함께 있는 거지?]

    오만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설마, 저놈 저거 아슬란의 특성이 함께 섞여 들어간 건 아니겠지?

    “우리가 너를 조각하고, 아슬란 폐하께서 네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걸 모르는 것이냐?”

    브루엔의 말에 카릴디움은 콧방귀를 꼈다.

    [하등한 존재들이 나를 만들어?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감히 그따위 소리를 하고도 너희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나는 이 대륙의 최강자, 카릴디움이다. 너희가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존재란 말이다!]

    어어. 뭐야.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늘의 제왕을 능멸한 죄로, 이곳에서 네놈들을 모두 쓸어 버려 주마!]

    카릴디움이 날개를 펄럭이며 그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놈의 몸 전체를 이루고 있는 아스릴타디움이 강렬한 빛을 발했다.

    ‘미친.’

    아니. 내가 애써 생명을 불어넣어줬더니, 이게 이렇게 된다고?

    바로 그때였다.

    [새로운 창조물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로 인해 새로운 스킬을 부여받습니다.]

    이 급한 와중에 정보창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창조주의 권위]

    -생명의 힘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경우, 그 존재는 반드시 창조주에게 복종합니다.

    -생명의 힘으로 탄생시킨 생명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어라?

    그럼 내가 저 시건방진 놈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건가?

    “그만-”

    곰곰이 생각을 하기도 전에 먼저 내 입이 열렸다.

    “그만 어리광 피우고 내려오너라.”

    그러자 카릴디움이 비웃음을 지었다.

    [후후. 내가 인간 따위의 명령을 들을 거 같은······. 헉!]

    콰아앙-!!

    하지만 그 건방진 목소리와는 달리 놈의 몸이 바닥 아래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감히 네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 창조주에게 반항을 하다니.”

    나는 놈의 머리 위에 발을 올리며 그것을 꾹 눌렀다.

    “죽고 싶은 것이냐?”

    그러자 나를 위협적으로 노려보던 카릴디움은,

    [······아, 아니요.]

    금방 꼬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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