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0.01초 소드마스터 174화
“······.”
하늘을 뒤덮을 것처럼 올라오는 버섯 모양 구름에 모데루스는 할 말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바빌론을 새로 뽑아 악마 군단을 만들기 위해 공들여 놓았던 땅이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대, 대체 어떻게 저런 힘이 가능하단 말인가.”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차 들렸던 것인데, 갑자기 아슬란과 제국군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멀찍이 서서 상황을 관전하고 있었던 모데루스였다.
그 두꺼운 테리슈나 때문에 제국군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거늘.
아슬란은 괘념치 않는다는 듯이 냅다 메테오를 던져 저곳에 있던 모든 악마를 싸그리 쓸어 버렸다.
그 덕택에 밀려오는 후폭풍이 모데루스마저도 덮쳐 버렸다.
만약 그가 안간힘을 다해 막아내지 않았다면 저들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존재가 소멸되었을 것이다.
“과연 신의 힘이로군요.”
뒤에 있던 테르카나의 말이었다.
“우리 악마들이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을 공들여 만드는 것이 블랙 메테오입니다. 그런데 아슬란은 저리도 쉽게, 그것도 한 번에 만들어 내다니. 심지어 블랙 메테오보다 훨씬 더 위력이 강하더군요.”
“······.”
틀린 말이 아니기에 할 말이 없었다.
“저것이 바로 우리가 상대해야 할 라할입니다, 모데루스 님.”
“그래. 라할이니 저런 힘이 가능한 것이겠지.”
한때 바빌론의 힘만으로 아슬란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저런 힘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강자라면 바빌론과 악마의 힘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니,
“더더욱 레메게톤 님께서 돌아오셔야 한다.”
“후후. 맞습니다.”
테르카나는 등 뒤로 포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군요. 악마 군단을 만들고자 이곳에 많은 마석을 뿌렸었는데 말입니다.”
속이 쓰린 일이었다.
이곳에 들어간 자원이 얼만데.
이 정도 규모의 땅을 악마화 시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역시도 레메게톤 님께서 부활하신다면 다 해결이 될 일이니.”
“그렇겠지.”
모데루스는 포탈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테르카나가 그 뒤를 따라오지 않았다.
“넌 왜 안 들어오지?”
“아. 먼저가 계십시오. 저는 잠시 확인할 것이 있어서.”
테르카나는 모데루스가 들어간 포탈을 닫고 새로운 포탈을 열어 그 안에 들어갔다.
여전히 음흉하게 웃는 얼굴로 말이다.
* * *
콰콰콰쾅-!!
“폐, 폐하!!”
“폐하께서 땅 밑으로 떨어지셨다!!”
기사들이 다급하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디디고 있던 땅만 무너져서 기사들이 함께 떨어지진 않았다.
푸히히히힝~!!
이 말 새끼가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괜히 일이 이렇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내 망토에 있는 비행술 덕분에 훅 하고 떨어지다 지금은 허공 위를 날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나와 내 말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너 때문에 하마터면 뒤질 뻔했잖아.”
푸르르르-!!
내 꾸지람에 반성하는 기미를 보여야 하는데, 이 건방진 놈이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나는 이대로 말에서 내려 놈을 저 아래로 떨어뜨리려 했다.
“어디 혼자 잘 날아봐라, 그럼.”
푸, 푸르르르-!!
그 낌새를 느낀 말이 발버둥을 치며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어댔다.
그러고는 세상 제일 불쌍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마치 한 번만 용서해 달라는 듯이 말이다.
“하여튼 겁은 더럽게 많아요.”
평소에는 온갖 허세란 허세는 다 부리는 놈이.
“앞으로 한 번만 더 개기면 그땐 국물도 없어. 알겠냐?”
말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럴 것이지.”
그런데 잠깐.
예전부터 너무 익숙해서 잘 생각을 못했던 건데, 이놈은 어떻게 내 말을 다 알아듣는 것일까.
참 신기한 놈이란 말이지.
“폐하!”
“폐하!! 괜찮으십니까!”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밑에서 위로 올라오자 기사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호들갑 떨지 말거라.”
난 과하게 망토를 펄럭이며 사뿐히 말과 함께 지면으로 착지했다.
‘아까 메테오 때문에 지금 여기 땅이 다 불안정한 건가?’
갑자기 훅 땅이 꺼질 줄은 몰랐기에 심장은 아직도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근데 다른 곳은 괜찮은 거 같은데.’
딱 내가 디디고 있던 땅만 무너져 내렸다.
그렇다는 건,
‘여기 아래 뭐가 있는 건가?’
그런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쩌면 내가 찾고 있는 것이 이 아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파엘.”
“예, 폐하.”
“이 아래로 길을 만들어라. 이 밑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겠다.”
라파엘은 마법 병단과 함께 구덩이 아래로 길을 만들었다.
나는 그곳을 기사단과 같이 내려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깊진 않네.’
아파트 5층 높이 정도 되는 수준이었다.
파앗-!
라파엘과 마법 병단이 마법을 발현해 준 덕분에 어두컴컴한 내부가 환하게 밝혀졌다.
“폐하. 저길 보십시오.”
내 뒤를 따라 같이 내려온 아론이 저 앞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거목의 뿌리가 내려앉은 듯한 것이 있었다.
정작 이 위로는 나무가 없는데 말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스르륵-.
그 두꺼운 줄기들이 움직이면서 길이 열렸다.
그 안에는 무언가가 초록빛을 띠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촤아아악-!!
열리는 것처럼 보이던 길이 갑자기 닫히면서 사방으로 나무줄기들이 올라왔다.
그것들은 순식간에 우리가 내려왔던 입구를 막아 버렸고, 마력으로 만들어진 길마저 부러뜨렸다.
그로 인해 아직 밑으로 다 내려오지 못한 기사들만 저 위에 묶이게 되었다.
콰콰콱-!!
우리의 퇴로를 막아 버린 줄기들은 앞뒤로 공격을 가했다.
그 줄기에 맞은 기사들은 온몸이 묶여 날아다니고, 대형이 와해 되는 등, 아주 난리가 벌어졌다.
콰직-! 콰콱-!!
내 부하들은 검을 들어 줄기들을 쳐내며 그것들을 잘라 냈으나, 이놈들은 아무리 잘라도 계속 재생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줄기들이 공격을 해오는 터라 수호의 방패로 그것들을 막아냈다.
그런데,
쫘아아악-!!
내 몸을 동그랗게 보호하고 있던 수호의 방패를 감싸더니, 이 줄기들이 나를 안쪽으로 세게 끌어당겼다.
“폐하!!”
아론이 다급하게 나를 불러봤지만, 이미 난 안 속 깊숙하게 빨려 들어가 버렸다.
기사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
푸르르······.
나는 순간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그건 내 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은 주변을 조용히 살펴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 초록빛을 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체 덕분에 어둡진 않다는 것이었다.
“역시나 이곳으로 오셨군요.”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에 테르카나가 있었다.
“이곳에 오실 거라 예상은 했습니다.”
내가 여기 올지 알고 있었다고?
“이 생명의 힘을 취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까?”
생명의 힘?
그것이 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생명의 힘은, 라할 당신께서 처음 이곳 자스트라 영역을 만들 때 부여하신 힘. 이 힘을 마기로 타락시키기 위해 이곳에다 적잖은 공을 들였는데, 결국 당신 손으로 그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셨군요.”
테르카나는 특유의 웃음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으셨습니다. 당신이 만들어 놓은 이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아무리 마기를 퍼부어도 꿈쩍하지 않더군요. 역시 창조주이신 당신의 힘을 넘어서기에는 악마들의 힘이 턱없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
뭐지.
이놈도 날 정말로 라할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심지어 이게 라할이 자스트라 영역을 만들 때 불어넣은 힘이라고?
“자스트라 영역은 이미 생명으로 넘쳐납니다. 그래서 이 신비한 힘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지요. 그러나 당신이 다시 나타난 이후부터 강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제가 이걸 가져가 보려 했으나 라할, 당신이 아니면 절대 만질 수도 없더군요.”
그리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테르카나가 내게 말했다.
“라할이시여. 어둠의 신이 곧 있으면 부활을 하게 됩니다. 레메게톤이 다시 한번 검은 날개를 펼쳐 이 대륙을 짓밟아 버릴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레메게톤.
그놈이 부활하면 사실상 게임은 끝이라고 봐야 했다.
개발자들이 진짜 게임을 끝낼 심산으로 레메게톤의 부활이란 이벤트를 만들어 놓은 것이니까.
즉, 우리만의 힘으로는 진짜 어둠의 신인 레메게톤을 막을 수 없다.
“그걸 그냥 가만히 두고만 보실 겁니까?”
그럼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 아닌가?
“하지만 당신이라면 그의 부활을 막을 수 있습니다. 대신, 한 가지를 버려야 하지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빛을 버리고 어둠이 되는 겁니다. 레메게톤을 당신이 흡수한다면,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원한 어둠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그리 만들어 드리지요.”
테르카나.
게임에서 매번 등장하지만, 놈의 정확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마치 조력자처럼, 때로는 방해꾼처럼 등장하여 플레이어를 괴롭히곤 한다.
그러나 수많은 엔딩 속에서 테르카나는 자신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유저들이 추측하기에는 테르카나에 대한, 아직 발견하지 못한 히든 퀘스트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종종 나오곤 했다.
“테르카나.”
“예, 라할이시여.”
나는 그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건지, 왜 갑자기 여기에 나타나 나를 유혹하는 건지 알아내고 싶었다.
“무슨 개수작이냐?”
하지만 이놈의 허세 때문에 말이 좋게 나가진 않았다.
“감히 그 간사한 혓바닥을 놀려 짐을 우롱하려는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에게 레메게톤의 힘을 가질 기회를 드리고자 함입니다.”
놈이 저렇게 말을 할수록 내 허세는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건방지구나. 고작 그따위 힘을 짐이 왜 가져야 한단 말인가?”
“고, 고작 그따위 힘? 레메게톤이 말입니까?”
“짐의 힘 앞에서는 레메게톤의 힘도 결국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너는 고작 그런 것으로 짐을 꾀하려 들었던 것이냐?”
“······.”
“레메게톤이 부활하든, 그렇지 않든 짐은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알아둬야 할 것이다.”
테르카나가 천천히 마른침을 삼키는 것이 눈에 보였다.
“레메게톤이 제 주제를 모르고 부활하여 짐 앞에 나타난다면 그땐 주저하지 않고 놈의 힘을 거둘 것이다. 영원히,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게 말이다. 짐이 베푸는 마지막 자비를 거절하지 말라고 전하거라.”
테르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무리 당신이 강하다고 한들, 레메게톤의 힘을 무시해선 안 될 겁니다.”
“그럼 얼마든지 놈을 데려와 보거라. 그 하찮은 힘을 눈앞에서 무참히 짓밟아 주마.”
“······.”
그렇게 테르카나는 말없이 포탈을 타고 사라져 버렸다.
그제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저 음침한 새끼.”
테르카나는 굉장히 음흉한 놈이기 때문에 괜히 잘못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기 딱 좋다. 그래서 놈은 가급적 멀리하는 것이 좋았다.
“이게 생명의 힘이라는 거지?”
나는 영롱하게 초록빛을 밝히고 있는 힘에 손을 가져다댔다.
“잠깐. 아까 테르카나가 오직 라할만 만질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라고 중얼거릴 때였다.
콰아아아-!!
작은 구체였던 생명의 힘이 점점 그 크기가 커지더니,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