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0.01초 소드마스터 173화
자스트라 영역은 악마를 만들기에 무척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이 땅은 유독 마기와 감응이 잘 되어서 일정량의 마기를 풀어 놓으면 스스로 자생하여 넓게 퍼져나가게 된다.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이 그 마기에 잠식당해 마수화가 되는 것이었다.
“방해꾼들이 나타났습니다, 세이트랄 님.”
세이트랄은 바빌론들의 리더격인 모데루스에게 새로운 바빌론 직위를 받은 마녀였다. 그녀는 저 먼발치에서 보이는 베라크 제국의 기사단을 보며 입꼬리를 씰룩였다.
“걱정할 필요 없다. 방해꾼이 나타날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 저들의 공격에 대비하고자 테리슈나를 두껍게 깔아 놓지 않았더냐?”
악마의 절대 방어 마법인 테리슈나.
내부에서 그 마법을 풀지 않는 한, 그것을 지탱하는 마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테리슈나는 절대 깨지지 않는다.
들리는 소문에는 아슬란이 한번 그 테리슈나를 깼다고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를 것이다.
그의 막강한 힘에 대항하고자 테리슈나의 마법벽을 더욱 두껍게 만들었으며, 그것을 끝까지 유지하고자 대량의 마석을 쏟아 부었다.
“뚫고 싶으면 어디 뚫어 보라지.”
테리슈나의 장점은 외부에서 어떤 공격을 써도 멀쩡하다는 것이다.
대신, 안에서도 테리슈나를 걷지 않는 이상 상대방은 공격할 방법이 없다.
즉, 완전 방어에는 최적화가 된 마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이트랄 님. 저, 저걸 보십시오.”
세이트랄은 다시 주문을 외워 더욱 강한 마기를 퍼뜨려 자스트라 영역 전체를 마기화 시키려 했다.
그것이 모데루스가 자신에게 내린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뭐, 뭐야. 저게?”
저 절벽 위에서 높이 뻗은 아슬란의 손 위로 거대한 구체 같은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점점 그 형상은 커져만 갔고, 세이트랄은 그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브, 블랙 메테오?!”
악마들 사이에서도 최강의 마법으로 꼽히는 블랙 메테오.
마치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그 파괴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블랙 메테오는 만들기가 무척 까다롭고,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 아니겠지. 저게 설마 블랙 메테오일 리 없다.”
저건 블랙 메테오가 아니다.
저렇게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아슬란 손바닥 위에서 피어나오는 건 아무리 봐도 블랙 메테오가 맞았다.
이 먼 곳에서도 그 강렬한 힘이 살 떨리듯 느껴지지 않은가.
거기다,
피이이잉-!!
처음에는 검게 물들어 있었던 블랙 메테오가 갑자기 그 속성이 바뀌어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럼 이제 저걸 뭐라고 해야 되지?
골드 메테오?
“세, 세이트랄 님. 브, 블랙 메테오가 이쪽으로!!”
아슬란은 무심하게 그 메테오를 던져 버렸다.
그 가벼운 손짓에도 메테오는 강한 추진력을 받아 세차게 날아올라 이곳 중앙을 향해 날아왔다.
“이, 이럴 순 없다. 어, 어떻게 메테오 마법을 저리도 쉽게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래 겉보기에는 메테오처럼 보이나, 그 위력은 악마들이 쓰는 블랙 메테오보다 떨어질 터.
거기다 이곳은 테리슈나가 두껍게 깔려 있지 않던가.
분명 이 절대 방어 마법이 이곳을 지켜 줄 것이다.
콰아아앙-!!
메테오가 두꺼운 벽에 부딪혔다.
보통 때라면 그 뚫리지 않는 마법에 의해 알아서 소멸되었겠지만-
콰콱-! 콰콰콱-!!
저 무지막지한 힘은 테리슈나의 벽을 뚫고자 끝까지 파고 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어벽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런! 모든 악마들은 망가진 테리슈나를 복구 시키는 데에 힘을 쓰거라!”
그녀는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악마들을 총 동원하여 녹아 내리고 있던 테리슈나에 주문을 외우도록 했다.
세이트랄 역시 흑마법을 부려 테리슈나가 뚫리지 않게 방어했다.
하지만 이걸로는 역부족인 것인가.
콰직-!!
모든 악마가 달려들어 테리슈나가 깨지지 않게 온힘을 바쳤으나, 방어벽 전체에 균열이 일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한 빛을 뿜어내던 메테오는 검은 마력이 닿자 그 힘을 증폭시키며 더욱 맹렬하게 타올랐다.
결국,
“아-”
세이트랄의 짧은 탄성과 함께 메테오가 테리슈나의 벽을 완전히 허물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아슬란!!”
세이트랄은 저 멀리 작은 점처럼 보이는 아슬란을 향해 소리쳤다.
“이대로 전부 다 같이 죽을 셈이냐!?”
테리슈나의 벽이 사라지고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이 메테오가 가진 위력을 말이다.
이건 악마들이 만들어낸 블랙 메테오보다 훨씬 더 강한 위력을 가진 마법이다.
대체 어떻게 이것을 아슬란 혼자 만들어낸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으나, 이것이 터지면 저 아슬란과 그의 기사단이 있는 곳까지 그 위력이 퍼진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결국 네놈이 모든 생명을 소멸시키는구나!”
그의 오만함에 세이트랄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아슬란이 조약돌 던지듯이 던져 버린 이 메테오가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을 없애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 * *
‘미친.’
하늘이 굉음과 진동에 찢겨 나갈 것만 같았고, 땅은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만큼 흔들렸다.
테리슈나가 어떻게든 막아 주지 않을까, 막연하게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역시 블랙 메테오는 그 결이 달랐다.
아니. 심지어 저건 속성이 성속성으로 바뀌어서 블랙 메테오보다 2배는 강해진 마법이지 않은가.
결국 악마들이 자랑하는 절대 방어 마법 테리슈나가 깨져 버리고 그 아래로 메테오가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
핵폭탄이 터진 것처럼 일어나는 버섯구름.
“우, 우와아아아-!!”
“과, 과연 폐하이시다. 어, 어떻게 이 정도의 힘을!”
“말도 안 돼······.”
그리고 터져 나오는 기사들의 탄성.
하지만 난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피할 수 있을까?’
꽤나 먼 거리라서 여기까지는 영향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블랙 메테오에 두 배나 되는 위력이 가해졌으니, 저 어마어마한 폭발력이 일으킨 후폭풍이 이곳까지 닿게 될 터.
아니나 다를까.
콰아아아아-!!
성난 파도가 치듯, 빛으로 무장한 불기둥이 이곳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어······. 어어.”
“여, 여기까지 폭발이!?”
“마, 막아라!!”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저건 일반적인 폭발이 아니다.
무려 블랙 메테오가 일으킨 폭발이지 않은가.
촤아아아-!!
라파엘을 중심으로 마법 병단이 방어 마법을 펼쳤으나, 방금 보았던 대로 저건 테리슈나마저도 박살을 내 버린 괴물 같은 힘이었다.
콰콰콱-!!
“바, 방어벽이 버티질 못합니다!!”
“곧 깨진다!!”
“폐하! 피, 피하셔야 합니다!”
피하자면 피할 수 있다.
내게는 공간 이동 스킬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 있는 수만 명의 기사단은 그대로 저 풍파에 휩쓸려 죽어야 한다.
뭐, 라일라칸이나 알렉산더 같은 놈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겠지만, 그 밑으로는 저 힘을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폐하!!”
“모두 폐하를 지켜라!”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쳐라!!”
“폐하를 대신해서 죽는 것이다!”
그들은 다급하게 소리치며 겹겹이 내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고기 방패라도 해서 나를 지켜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내가 혼자 치사하게 도망칠 수가 없잖아.
바로 그때였다.
“아론.”
“예! 폐하.”
“호들갑 떨지 말고 비키거라.”
“······.”
잠잠하던 내 허세가 발밑에서부터 꿈틀거리며 머리끝까지 용솟음쳤다.
나는 어수선을 떨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모인 기사들을 지나갔다.
“폐, 폐하!”
나는 거만하게 그들을 향해 말했다.
“짐은 다른 어리석은 이들과 다르게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헛수고는 그만 하고, 방어벽이나 풀거라.”
“폐하! 그랬다가는 여기 있는 모두가 휩쓸리게 될 겁니다!”
“라파엘.”
내가 정면으로 바라보자 라파엘은 마른침을 삼켰다.
“짐을 믿느냐?”
“······.”
라파엘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를 믿습니다.”
“그럼 짐의 뒤에 서거라.”
그녀는 마법 병단과 함께 내 뒤로 빠졌다.
방어벽이 사라지면서 엄청난 후폭풍이 비명을 지르며 내게 다가왔다.
콰아아아아아-!!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인 걸까.
하지만 후회하기에는 늦었다.
이곳에서 다 같이 죽거나, 아니면 다 같이 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은 뒤 그대로 전방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그러자,
콰콰콰콱-!!
거센 풍압과 함께 뻗어 나가는 검강이 아가리를 벌리며 우릴 삼키려 드는 빛의 파도를 갈랐다.
그에 멈추지 않고 앞으로 솟아 나간 검강에 그것들이 일제히 빨려 들어갔다.
콰아아아-!!
“······.”
거친 바람에 모두 고개와 몸을 숙이며 그것에 휩쓸려 가지 않고자 버텼다.
그리고 그들이 눈을 떴을 땐,
“이제야 알겠느냐?”
말 위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나 아슬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짐이 있는 한, 너희를 해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꽂혔다.
“그러니 짐을 믿어라.”
그들은 잠시 몸을 떨다 이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폐하를 믿습니다!!”
병사들은 크게 함성을 질렀다.
그 함성 소리에 괜히 몸이 떨려 왔으나, 나는 덤덤한 척 말고삐를 붙잡았다.
“내려가겠다.”
“예!!”
나와 기사단은 절벽을 내려와 메테오에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버린 평야를 걸었다.
아니.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기에는 무수히 많은 나무가 있었다.
그러나 메테오에 의해 전부 불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진짜 개사기 스킬이잖아.’
루겔로스 이놈이 내게 아주 좋은 선물을 던져 주고 갔다.
설마 진짜 블랙 메테오를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적어도 찰나의 괴력을 섞어야 비슷한 위력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말이다.
‘그래. 지금까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이런 사기 스킬 하나쯤은 있어야지.’
메테오가 떨어진 자리에 있던 모든 생명체가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다.
내가 가진 최강의 스킬다웠다.
나는 메테오에 의해 움푹 파인 땅을 살펴보았다.
‘문제는 내가 찾는 것이 여기 있느냐는 건데.’
눈을 부릅뜨며 이곳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단서를 찾아보았다.
“수상한 것이 있으면 즉각 보고 하도록.”
“예!”
라파엘과 마법 병단은 마력을 펼치며 주변을 탐색했다.
병사들도 사방에 뿔뿔이 흩어져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나는 편하게 말 위에 앉아 팔짱을 낀 채로 그들을 주시했다.
푸르르~
이놈의 말 새끼도 기분이 좋은 건지 울음을 터트리며 몸을 꿈틀 거렸다.
“가만히 좀 있어, 인마.”
내가 허벅지에 꽉 힘을 주며 눈초리를 보내자 이놈의 말이 건방지게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요즘 들어 점점 이놈이 내게 개긴다는 생각이 드는 참이었다.
“진짜 너 날 잡고 한번 비 오는 날에 먼지 나듯이 맞아 볼래?”
푸르르르-!!
놈은 불만 가득한 콧김을 내뿜어대며 마치 고춧가루 탄 물을 마신 닭마냥 날뛰기 시작했다.
아니. 이 미친 말 새끼가!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콰직-!
“어?”
말이 자신의 말발굽으로 때린 땅이 갈라지더니, 그 균열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잠깐. 이거 설마······.”
그리고,
콰아아아-!!
내가 서 있던 푹 꺼져버렸다.
‘으아아아!!’
이놈의 허세 때문에 비명은 지르지 못하고, 나는 그래도 저 어둠에 떨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