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0.01초 소드마스터 169화
‘······갔나?’
나는 포탈을 무섭게 노려보다가 눈가의 힘을 풀었다.
‘휴, 갔네.’
놈들이 포탈을 타고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저것들이 떠났다고 해서 허세가 같이 풀리는 건 아니었다.
“폐하!”
아론을 비롯한 부하들과 기사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덕분에 허세가 더욱 활활 타오르며 내 눈에 다시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러다 쥐 나겠네.’
근육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아 풀려고 했으나, 어떻게 해서든 컨셉을 유지하고 싶은 허세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아오. 이 미친 특성.’
허세와 함께 하는 게임 라이프라니.
정말 눈물 나도록 행복하다.
“폐하. 이 많은 악마를 폐하께서 혼자 처치하신 겁니까?!”
그때 내게 달려온 아론의 말에 기사들은 놀란 탄성을 내질렀다.
“이 많은 숫자의 악마들을 폐하께서 단신으로?”
“오오······. 과연 폐하의 힘은 한계가 없으시다.”
“악마 놈들. 상대를 잘못 골랐군.”
블랙 메테오가 터지면서 타다 남은 악마들의 시체가 사방에 가득했다.
거기다,
“폐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저 악마 잔당들을 모조리 도륙내겠습니다!”
이 양심 없는 바빌론 놈들이 악마 군단을 놔두고 지들만 쏙 빠져나갔다.
잔반 처리는 알아서 하라는 거야 뭐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전부 죽여라. 짐의 땅에는 단 하나의 악마도 있어선 안 된다.”
“예!!”
아론을 필두로 제국의 기사단은 자신들을 지휘해 줘야 할 바빌론들을 잃고 우왕좌왕 거리고 있는 악마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 뒤를 따라 카르만도 왕국 기사단과 함께 진격하여 악마들을 휩쓸어 버리는 등, 지휘관을 잃은 악마들은 그렇게 숫자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참히 짓밟혔다.
“이 정도 숫자의 악마가 쳐들어오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라일라칸의 말이었다.
“이 많은 숫자의 악마를 잃었으니, 악마들도 더는 활개를 치지 못하겠군요.”
나는 그런 라일라칸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고작 그따위 공격 하나 막지 못하고 혓바닥을 놀리는 것이냐?”
“······소, 송구합니다.”
라일라칸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다음에 또 그런 추태를 보인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솔직히 블랙 메테오를 정면으로 막아 내며 버티는 것만으로도 라일라칸이 얼마나 미친 캐릭터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걸 몸으로 막아 내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긴 했다.
하지만 이놈의 허세가 언제 그런 걸 따졌던가.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짐의 기사들이라는 것들이 고작 악마들을 상대로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어찌 짐이 너희를 곁에 두겠느냐?”
꼬물꼬물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다가오고 있던 알렉산더와 레바노스는 얼른 무릎부터 꿇었다.
“폐하. 다시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나이다!”
“용서해 주십시오!”
사실 이들이 블랙 메테오를 향해 달려나간 것부터가 굉장히 용감한 행동이긴 했다.
하지만 원래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칭찬은 짜고 잔소리는 긴 법!
“짐이 언제까지 너희를 위해 힘을 써야 한단 말이더냐? 짐이 너희의 실력을 의심하게 만들지 말거라.”
“예!!”
“알아들었으면 너희도 가서 저들을 돕거라. 빠르게 이곳을 정리하고 가야 할 곳이 있다.”
“황명을 따르겠나이다!”
잠깐 사소한 이슈가 있었지만, 다행히 잘 해결이 됐다.
이제 이곳에 왔던 본 목적을 이행할 때가 왔다.
‘빠르게 세상의 끝을 찾아서 이 게임을 끝내는 거다!’
제발 여기에 문이 있어라.
* * *
“하아- 하아-”
포탈을 타고 간신히 도망쳐온 바빌론들은 숨을 헐떡였다.
만약 조금만 늦었더라면 아슬란 손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강렬하게 죽음의 공포를 느껴봤던 적이 있던가.
그들은 살아 나왔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너무나도 뼈아픈 패배로군.”
모데루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대로······이대로 그냥 넘어갈 순 없다. 다시금 힘을 모아 공격해야 한다. 이번 패배를 교훈 삼아 똑바로 대처한다면······.”
모데루스의 말에 다른 바빌론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미쳤어?! 다시 싸우자고? 아까 그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그는 아까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손을 떨었다.
“아슬란 그놈은 우리가 수백 년 동안 공들여 만든 블랙 메테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뤘다. 그걸 쏘아 보내는 순간, 우리도 통제하지 못 하는 것을 놈은 무슨 장난감 다루는 것마냥 우리한테 다시 돌려보냈다고!”
다른 바빌론들도 목청을 높였다.
“맞아. 아슬란 그자는 우리의 상식을 한참이나 벗어난 힘을 쓰고 있었어.”
“그런데 그놈한테 다시 쳐들어가자고? 제정신이야?”
“뒤지고 싶으면 혼자 뒤져!”
바빌론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데루스의 곁을 떠났다.
“난 더 이상 너희들이랑 같이 있을 생각이 없어. 레메게톤 님도 없어진 마당에 우리가 모여있는 것도 웃긴 거 아닌가?”
“지금까지는 같은 바빌론이기에 봐줬지만, 다음에 만나면 그땐 적이다. 그러니 두 번 다시 보지 말자.”
“싸우려면 너 혼자 싸워.”
그렇게 모데루스는 혼자 남게 되었다.
마치 그런 그를 비웃듯, 테르카나가 다가오며 말했다.
“참으로 대단한 의리로군요. 역시 바빌론들이라 그런지, 그 의리의 깊이가 남다른 듯합니다.”
모데루스는 그런 테르카나를 노려보았다.
“지금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저는 그저 있는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네놈이······!”
모데루스는 손을 뻗어 테르카나의 목을 붙잡았다.
“이런. 저한테 화풀이를 하시는 겁니까? 전 모데루스 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만-”
“······.”
결국 그는 테르카나를 붙잡은 손을 놓았다.
“너도 꺼지거라.”
“그럴 순 없지요. 모데루스 님은 아직도 아슬란을 쓰러뜨리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까?”
“······저들의 말이 맞아. 아슬란과 우리 악마들의 격차는 너무나도 크다. 우리 힘만으로는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야.”
“그건 사실입니다. 아슬란의 힘은 바빌론들의 힘을 다 합쳐도 털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지요. 하지만-”
테르카나가 마치 상대를 유혹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레메게톤께서 부활을 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레메게톤 님을?”
“예. 저 지하 어딘가에 잠들어 계신 레메게톤 님을 부활시키는 겁니다.”
“하지만 그분이 어디에 잠들어 계시는지, 또 그 영혼이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저 밑바닥에서 자신을 꺼내 줄 충직한 부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테르카나의 말에 모데루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분께서 정말 계시단 말인가?”
“예. 물론, 그분을 다시 부활시키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무엇이든 그분을 위해서라면 난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말에 테르카나는 비열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분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 *
‘이쪽 부근일 텐데.’
나는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문을 찾고자 주변을 수색하며 돌아다녔다.
한 가지 부담스러운 것이 있다면 내 뒤로 수만의 기사단이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언제 또 악마들이 공격해올지 모른다며 아론이 기사단을 이끌고 내 뒤를 따르는 중이었다.
‘여긴가?’
기억을 더듬으며 길을 찾던 중, 나는 가장 눈에 익은 장소에 도착했다.
“작은 동굴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찾아라.”
“예!”
그래도 한 가지 쓸만한 점이 있다면 이 수만 명의 기사단을 산 전체에 풀어 쥐 잡듯이 장소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찾았습니다!!”
“여기에도 있습니다!!”
물론 동굴들이 여러 개라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 동굴들을 일일이 찾아가며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제일 적합해 보였다.
‘여기가 맞는 거 같은데.’
그러자 옆에서 하리엘이 내게 물었다.
“폐하. 그런데 여기서 무엇을 찾고 계신 건가요?”
“흠.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을 찾고 있다.”
“네?”
“그런 게 있다.”
나는 나의 안전을 위해 기사들을 먼저 안으로 보냈다.
물론 내가 알기로 문이 있는 곳에는 별다른 함정 같은 게 없는 것으로 안다.
그 문으로 들어가고 난 후부터가 진짜 시작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아마 저기에도 별다른 함정 같은 게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르르르-!!
왠지 불안한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
“으헉!”
앞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던 기사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재빨리 동굴을 빠져나왔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저리도 놀랐는지는 나도 금방 알게 되었다.
“크워어어-!!”
동굴을 박차고 나오는 거대한 골렘 같은 것이 괴성을 질러댔다.
[이곳은 신성한 땅. 감히 외지인들이 더럽히려는 것이냐?]
그 굵직한 목소리에 땅과 하늘이 울렸다.
뭐야. 왜 저런 게 여기 있는 거야?
거기다 신성한 땅?
그렇다는 건······.
‘저기에 정말 문이 있다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저놈이 저런 말을 할 리 없지 않은가.
‘기사단을 데려오기 잘했네.’
저 작은 동굴에서 어떻게 저렇게 큰 놈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내겐 아주 빵빵한 군사력이 준비되어 있다.
이대로 놈을 한꺼번에 들이친다면 된다.
“놈을 짐 앞에서 치우거라.”
“예!”
라일라칸을 비롯한 실력자들과 내 기사단이 크게 울려 퍼지는 뿔 나팔 소리에 따라 저 거대한 골렘을 향해 진격했다.
그런데,
“응?”
“어, 어디 갔지?”
“갑자기 놈이 사라졌다!”
그 집채만 한 놈이 갑자기 뿅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그 몸뚱이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크워어어-!!”
사라졌던 놈의 몸이 다시 섬광처럼 나타났다.
그것도 바로 내 코앞에서 말이다.
‘이, 이런 미친 새끼가!’
콰아아앙-!!
그리고 놈이 뻗은 큼지막한 주먹이 그대로 나를 강타했다.
“폐, 폐하!!”
“이, 이런!”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돌발 상황이었다.
하지만-
[네, 네놈······.]
이 골렘의 주먹이 내게 닿는 일은 없었다.
반사적으로 펼친 수호의 방패가 놈의 주먹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충격에 의해 놈은 자신의 주먹과 팔이 서서히 갈라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감히-”
기다렸다는 듯이 강렬한 허세가 발밑에서부터 솟아올라 정수리까지 닿았다.
“하찮은 돌덩이가 짐의 앞길을 막는 것이냐?”
[!?]
무언가 잘못됨을 느낀 것일까.
골렘은 반대편 주먹을 들어 그대로 나를 내려치려 들었다.
그러나 놈의 주먹보다 내 검이 훨씬 더 빨랐다.
“꺼져라.”
콰콰콱-!!
허리춤에서 가볍게 뽑힌 검.
그 칼날에서 방출된 검강이 골렘의 몸을 이등분하여 갈라 버렸다.
[이, 이럴 수는······.]
골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탄식하며 두 쪽 난 몸이 양옆으로 쓰러졌다.
콰아아앙-!!
그에 휘몰아치는 흙먼지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쯧. 미물 따위가 끝까지 폐를 끼치는구나.”
나는 찰나의 괴력을 검에 실어 한번 더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강한 풍압이 사방에 퍼져 나가며 흩날렸던 흙먼지를 깔끔하게 없애 주었다.
“······.”
기사단과 부하들은 그런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런 그들을 향해 꾸짖듯 말을 던졌다.
“꾸물대지 말고 움직이거라. 갈 길이 바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