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0.01초 소드마스터 165화
엘비하스는 숨을 헐떡이며 감히 자신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는 라일라칸을 노려보았다.
‘괴물 같은 놈!’
자신이 만들어낸 함정을 라일라칸은 겁 없이 당당히 들어왔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엘비하스는 라일라칸을 쉽게 붙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놈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자신의 노예로 삼아 베라크 제국을 내부에서부터 파괴시키려는 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그런데도 저놈은······.’
라일라칸은 300년 전에도 대륙 최강자로 불렸던 몸.
그의 전투력은 익히 알고 있었고, 실제로 그가 악마들과 싸우는 것을 종종 지켜봤다.
하지만 아까 전 그 전투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라일라칸은 꺾이지 않았다.
마치 광전사처럼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더욱 강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놈은 단신으로 함정을 파훼하고, 그곳에 있던 악마들을 모조리 죽인 뒤 엘비하스까지 붙잡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놈이 아슬란에게는 별로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제압됐다는 게 사실이야?’
엘비하스는 믿을 수 없다는 눈동자로 저기 거만하게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슬란을 쳐다보았다.
‘맛있는 냄새가 나진 않는 것 같은데.’
엘비하스의 능력은 흡혈.
뱀파이어처럼 상대방의 목덜미를 물어 흡혈을 한 뒤, 그를 노예로 삼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피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었고, 강자일수록 그 냄새가 달콤하게 진동한다.
지금 뚝뚝 피를 흘리고 있는 저 라일라칸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슬란에게서는 딱히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무색무취라고 해야 할까.
혹시 전투 중에 자신의 후각이 잘못된 것은 아닐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설마 우리가 그동안 저자를 잘못 알고 있었던 거라면······?’
바빌론들이 겁을 먹고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건 바로 저 아슬란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가 라할의 화신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분명 엘비하스가 매우 달콤한 피 냄새를 맡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마치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냄새를 풍기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의심이 됐다.
아슬란은 사실 일반인과 다름없는 힘을 지녔는데, 사실 바빌론들끼리 오해를 한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힘이 점점 돌아오고 있다.’
라일라칸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거의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다.
그러나 이곳까지 오면서 서서히 힘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바빌론의 장점은 바로 뛰어난 회복력이지 않던가.
지금은 무기력한 척하고 있지만, 조금 더 힘이 회복되는 즉시 라일라칸의 피를 빼앗을 생각이었다.
그럼 신선한 피에 힘이 더욱 강해지고, 흡혈을 당한 라일라칸은 자신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라일라칸을 노예로 만들어 아슬란을 공격한 뒤, 놈의 피까지 빨면······.
‘이 제국이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 거지.’
엘비하스는 힐끗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다른 바빌론들과 달리 대륙을 파괴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 꽉 막힌 놈들은 대륙을 불바다로 만들고 모든 생명을 없애는 것이 사명이라 여기는데, 엘비하스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을 전부 자신의 노예로 삼고. 이 대륙을 자신의 뜻대로 다스리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방향이지 않겠는가.
영원히 이들의 피를 섭취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위대한 업적의 시작이었다.
‘오늘 너의 가면을 모조리 벗겨 주마, 아슬란!’
그리 뜻을 품고 기회를 틈타던 중.
“라일라칸.”
아슬란의 위엄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잡종은 무엇이냐?”
자, 잡종?
이 대륙을 통째로 집어삼킬 생각에 미소를 짓고 있던 엘비하스의 얼굴에 금이 갔다.
“바빌론이라는 악마입니다. 이놈들은 대악마를 이끄는 지휘관들로서······.”
“그러니까 묻는 것이다. 왜 저런 잡종을 내 앞에 데려온 것이냐?”
“······.”
라일라칸은 할 말을 잃은 듯 대답하지 못했다.
“설마 저런 개만도 못한 잡종을 네 힘만으로 잡았다고 자부하면서 그걸 자랑이라도 하려고 여기 데려온 것이더냐?”
이번에도 라일라칸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엘비하스는 점점 더 참기가 힘들어졌다.
‘저놈이 뭐라고 떠들어대는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감히 자신을 잡종이라 일컫다니.
하지만 참아야 한다.
왜냐하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힘이 다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좀만 더······.
“고작 저따위 잡종을 잡았다고 우쭐대지 말거라, 라일라칸. 짐이 손가락 하나만 까닥해도 저런 것들은 모조리 소멸시켜 버릴 수 있으니까. 네 힘은 고작 저런 것들을 잡는 데에서 멈춰 서서는 안 된다.”
아슬란의 말에 라일라칸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아직 자신에게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알려 주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엘비하스는-
“잡종이라고?! 감히 누구에게 그따위 헛소리를!”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렸다.
그녀는 모아왔던 힘을 폭주시키며 부러졌던 날개와 몸을 회복시켰다.
그 괴물 같은 회복력에 라일라칸은 눈을 꿈틀거렸다.
라일라칸 역시 그에 못지않은 회복력을 지니긴 했으나, 이 정도로 빠르게 회복시킬 순 없기 때문이다.
“네놈들을 모조리 나의 노예로 삼아 평생 이 발아래 기어 다니도록 해주마.”
엘비하스는 라일라칸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양손과 날개로 붙잡았다.
그대로 목덜미를 물려는 때였다.
“누가 감히 짐의 허락도 없이 움직이라 했느냐?”
귀를 파고드는 둔중한 목소리에 엘비하스는 쩍 벌리던 입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슬란을 바라보는 순간.
“건방지구나. 감히 잡종 따위가 짐과 눈을 마주치려 하다니.”
거부할 수 없는 힘이 그녀를 강하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커헉!”
그대로 엘비하스는 바닥에 고꾸라져 버렸다.
그 옆에 있던 라일라칸과 플레임 역시 그 무지막지한 힘을 느끼며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잡종은 잡종답게 거기 쓰러져 있거라.”
엘비하스는 바닥에 처박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거대한 힘이 지금 그녀의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감을 느껴본 적이 또 있었을까.
피가 거꾸로 솟아 입으로 터져 나오고 숨을 쉴 수 없는 압박감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것이 아슬란······!’
무색무취의 피 냄새였기에 사실 그가 가짜 힘으로 모두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의 피 냄새를 맡지 못했던 건, 그가 피를 흘리는 존재가 아닌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크헉!”
왜인지 모르겠지만,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힘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엘비하스는 지금 기회를 틈타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다.
하지만-
‘모,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어.’
힘이 풀리긴 했으나, 몸을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아슬란! 괜찮은 것이냐!?”
“폐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슬란의 기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거기에는 엘프들의 여왕이라는 엘티히도 있었다.
엘티히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엘비하스와 눈을 마주쳤다.
“이곳에서 사악한 힘이 느껴진다 했더니, 네년 때문이었구나.”
“아니. 그건 내가 아니라······.”
“닥쳐라, 이 건방진 잡종년! 싸우려면 상대를 봐가면서 싸웠어야지.”
엘티히는 그녀의 몸에 마법을 걸어 온몸을 사슬로 묶어 버렸다.
또한 그녀의 날개 역시 마법으로 불태워 버렸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네년에게 딱 어울리는 처분을 내렸을 뿐이다. 그 사슬이 묶여 있는 한, 몸을 쉬이 회복시킬 수도 없을 게다.”
“이, 이거 풀어!”
엘티히는 음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순 없지. 네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엘비하스. 예전부터 네년 같은 바빌론을 붙잡아 여러 가지 연구를 해보고 싶었지. 마침 딱 이렇게 선물처럼 우리에게 와주었구나.”
“!?”
마법 연구?
감히 나를 실험용으로 쓰겠다는 건가?
엘비하스는 알고 있었다.
엘티히 같은 마법사들이 몬스터나 악마들을 붙잡아 여러 마법 연구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무척이나 끔찍하다는 것 역시.
“내 몸에 손이라도 대봐! 그땐 다 죽여 버릴 거다!”
“시끄럽구나. 네년은 그 입부터 손을 봐야겠다.”
엘티히의 손짓에 엘비하스는 입이 사슬로 막혀 더 이상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그저 몸부림을 치며 이 속박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것이 전부일 뿐.
엘티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돌아와 아슬란에게 물었다.
“아슬란. 어디 다치지는 않았느냐?”
“······.”
“뭐, 이딴 년이 네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을 리 없지. 그나저나 라일라칸 너는 왜 또 그 모양인 것이냐? 혹시 아슬란에게 또 덤비다 맞기라도 한 것이냐?”
“······.”
“아무튼, 난 이만 우리 땅으로 돌아가겠다. 이렇게나 좋은 마법 재료를 얻었는데, 여기 가만 있을 순 없지.”
엘티히는 호호 웃으며 부하들을 시켜 엘비하스를 끌고 오게 만들었다.
그녀는 엘프들 손에 끌려가면서 살려 달라는 눈동자로 아슬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항상 그렇듯, 무미건조한 눈빛을 할 뿐이었다.
* * *
어휴. 저 미친년 저거.
엘티히는 어지간히 좋은지 깔깔 웃으며 엘비하스를 끌고 가 버렸다.
엘비하스가 불쌍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거기다······.
‘이 새끼도 정상은 아니야.’
나는 라일라칸을 힐끔 쳐다보았다.
조조군의 포위망을 단신으로 뚫고 나온 조자룡마냥 비장하게 서 있는 라일라칸은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다.
그 괴물 같은 회복력으로도 아직 다 회복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요즘 따라 미친놈들이 주변에 많네.’
악마들이랑 싸워야 하는데, 왠지 점점 이놈들이 더 악마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너희들도 그만 물러가거라.”
이제 나도 쉬자, 이것들아.
“그럼 난 먼저 간다?”
플레임은 손을 흔들며 먼저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라일라칸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뭐야. 무섭게 왜 넌 안 나가.’
놈은 나를 진득하게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 눈빛을 보고 겁이 났지만, 겉으로는 허세를 부렸다.
“짐에게 할 말이라도 있는가, 라일라칸. 저런 잡종 한 마리를 데려와서 짐의 심기를 건드린 죄를 용서받고 싶은 것이냐?”
그러자 라일라칸이 대꾸했다.
“······전 폐하를 넘어설 생각이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감히 뛰어넘을 수 없는 존재이니 말입니다.”
이놈이 갑자기 뭐라는 거야.
“하지만 항상 폐하를 바라보며 달려나갈 것입니다. 폐하의 말씀대로 제 힘은 고작 저런 걸 하나 잡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면서 놈은 혼자 다짐을 하고 있었다.
“전 반드시 지금보다 더 강해질 겁니다.”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가 있는 거였나?
“폐하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니, 전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저러는 거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으나, 나는 치밀어 오르는 허세력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디까지 성장하는지 지켜보겠다. 대륙 최강자라는 이름은 그때까지 맡아 놓도록 하지.”
“······!”
라일라칸은 감복한 얼굴로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 이내 예를 갖췄다.
“기다려주십시오, 폐하.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라일라칸은 의기에 찬 얼굴로 밖을 나갔다.
나는 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나한테 도전이라도 하는 건······.”
그런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이고. 이놈의 주둥이~!”
그전에 빨리 이 게임을 탈출해야만 한다.